<좋은 이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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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에는 스누피가 나오는 만화영화가 방송되었었다. 스누피의 존재도 존재지만 정작 관심을 끈 것은 자신의 이불을 끌고 다니는 아이의 존재였다. 어린 아이를 비롯해서 사람은 무언가에 애착을 품는다. 그것은 때로는 사람이고 때로는 동물이기도 하고 때로는 물건이기도 하다. 그런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덕분에 꼬질꼬질한 이불을 아이에게서 떼어내서 버리기도 어렵고 누군가의 죽음을 설명한다는 것은 더욱 곤혹스럽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것에 애착을 품는다. 그것은 소유욕이라는 형태로 대놓고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잃고 나면 허전한 느낌을 주는 은근한 기운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누구나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무언가를 언젠가는 잃게 되지만 그것에 익숙하지도 현명하게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 <좋은 이별>은 그런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를 말하는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마음 한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릴 정도의 고통을 겪지만 정작 어떻게 애도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그 구멍이 점점 커져 버리는 사람에게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를 잃는 순간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그 순간을 곱씹어보면 좋았던 것보다 나빴던 것만 많은 것 같아서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의 죽음부터 친구와의 이별, 애인과의 결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사람의 뇌는 감정에 좌우되고 묘하게도 부정적인 기억은 선명하게 남는다. 죽어버린 가족과의 마지막 대화가 다툼이었다거나 전학을 가는 친구와 제대로 작별을 할 순간을 어처구니없게 놓쳐버린 일 등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와 미련만이 남는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계속 하다보면 벌어진 상처를 헤집는 것 같아서 제대로 슬퍼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다고 한다. 진짜 문제는 그런 곳에서 발생한다. 사람은 충격적인 사건을 목도하면 바로 그것에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려버린 손가락에 감각을 느끼듯이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서 그 이별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상실을 상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이 아닌 공허한 환상만을 쫓거나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면 그 반작용이 온다고 한다.

결국 상처는 상처고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슬픈 것은 할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를 쌓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영혼의 일부를 넘겨준 것과도 같다.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자신, 누군가의 친구였던 자신,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자신이 그렇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계를 죽음이나 몇몇 다른 이유로 잃고 나면 자신이 넘겨주었던 영혼도 관계와 함께 죽어버린다. 깊은 상처가 생기고 그것이 아물더라도 상처가 있었다는 흔적이 남으며 예전의 자신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상처를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아물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감정을 발산할 곳을 찾거나 실컷 슬퍼하고 실컷 울어야 하는 것이다. 아픈 것을 아파하지 못하면 마음은 안으로 곪아 터진다. 당시에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담담하게 견딘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좋은 이별>은 다정하게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었다.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것이나 책에서 읽었던 내용의 예를 들어 상실과 애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가도 잃어버린 것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아파해야 할 응어리를 억지로 누른 기분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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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에 책이 있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시냇물에 책이 있다 - 사물, 여행, 예술의 경계를 거니는 산문
안치운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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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즐거운 점의 하나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진 기분에 따라 같은 날이 다르게 해석되듯이 전혀 다른 사람의 눈으로 통해 본 세상은 내가 본 것과는 상이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읽어내는 시각을 보는 것은 때로 좋은 자극이 된다. 공감을 하든 못하든 타인의 시각은 신선한 즐거움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시냇물에 책이 있다>는 그런 면에서 신선한 자극이 남는 책이었다.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문인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연극인이 쓴 에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사실 그 말에 그다지 동의할 생각은 없으나 머리말에 쓰여진 것을 보면 더없이 진지하게 글쓰기에 매진하는 사람이 쓴 에세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자신이 받아들이는 삶, 여행, 공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하나의 진한 생각을 한 자, 한 자 글로 적어냈다는 느낌이 강했다.

에세이라고 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생각을 꼬이게 만들 때가 잦은 책이었다. 아버지가 반대한 연극 공부를 해서 유대가 부서지자 그 유대를 잇는 유일한 방법은 반대한 공부에 계속 매진하는 것이었다는 내용부터 프랑스 인 부자가 울면서 그를 찾아왔던 이야기 속의 말과 단절에 대한 것은 진한 여운과 깊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아버지와의 단절의 계기가 단절 이후의 관계에서 유일한 관계의 끈이었기에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이제 어버이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기대하게 되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점차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프랑스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느끼고 있을 때 울면서 찾아온 아이를 위한 전화 연결과 대화를 하지 않은 채 관계의 단절을 했을 때 남겨진 자의 고통처럼 말과 관계의 단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한없이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읽은 책에 대해 써놓은 부분이나 프랑스에서 아내를 독려하고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하는 부분, 자신의 나라를 경유해서 가는 자들을 의심의 나라로 보게 된 나라의 이야기처럼 천천히 읽어나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책의 전체 분위기 자체가 조용한 숲 속을 걸으며 바람 소리, 숲이 뿜어내는 소리, 자신이 자아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 차분한 편이라 단숨에 읽어나가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과 담의 관계와 다른 점에 골몰해보기도 하고 팬과 프로팬의 차이점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안이 보이는 술집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사람들이 안이 보이지 않게 되자 목소리가 낮춰졌다는 이야기 다음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산책을 하다보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떠올리거나 뭉쳐있던 생각을 정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느낌이었다. 타인의 생각의 두루마리를 슬며시 풀어내어 읽어가다보면 머릿속에서 천천히 산책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것과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결국 모두 삶에 대한 이야기라 마지막에는 하나의 점으로 모여들고 다시 퍼져나갔지만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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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09-11-2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안님, 저도 이책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데, 정말 서평을 잘쓰시는거 같습니다. 추천 꾸욱 누르고 가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에이안 2009-11-27 14:59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 돌이님^^
 
인생은 박치기다 - 재일 한국인 영화 제작자 이봉우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책!
이봉우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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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때 외삼촌이 식사를 하시다가 문득 '사람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 안에 내포된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마흔이 되기 전에도 자신의 얼굴,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책임 안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체감할 때가 많다.

그런 만큼 자신의 손으로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낙담과 울분도 생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만들어 준 길을 얌전하게 밟고 가는 사람이 칭찬을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에 일정한 궤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칭찬해 줄 누군가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꽤나 힘들다. 덕분에 어른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출발선 상에서부터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본 세상은 같은 시대라도 다른 것이었겠구나 하는 것이다.

이 책 <인생은 박치기다>의 저자 이봉우가 본 세상은 지극히 불합리하고 서글픈 정글 같은 세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웃기는커녕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 눈을 부라리고 여차하면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했던 것 같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박치기!>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사는 데에 대한 애환이 드러났다면 이 책 끝부분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 <늑대 여인>의 경우에는 어린 소년의 일상적 경험이 실려 있지만 그 느낌은 황혼이 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그가 재일 한국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몰이해와 무관심에 화내는 것을 보면서 움찔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도 재일 '한국인'이라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가 영화 <서편제>를 감명 깊게 보고 그 영화를 수입, 배급하고 싶어서 한국에 오려고 했을 때 여권이 없어서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감은 점차 커져만 갔다. 대사관에서의 기분 나쁜 경험과 어렵사리 도착한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이 의심스레 그를 지켜보는 안기부 직원이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딱히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도 의심과 차별의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영화를 수입해서 상영하려 해도 한국 영화라 거절 당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식견을 믿고 영화를 계약해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는 부분에서는 감탄을 하게도 되었다. 책 전반에서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토로하는 것도 고생담을 늘어 놓으려 한다는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제작하거나 수입하려는 영화 대부분은 아픈 이야기를 뒤에 품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5장에서 그가 자신의 본 영화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결같이 진지한 영화이고 그에 대한 생각 역시 진지해서 그가 살아온 발자취와 품고 있는 책임감이 엿보이는 느낌이었다. 잘 알지 못하기에 차별하고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 영화가 정치를 이기지는 못한다는 한탄, 조국에 대한 애증처럼 복잡한 심경을 진지한 영화 제작자의 경험담을 통해 읽어볼 수 있어서 생각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한때는 예술이나 과학 분야의 문외한이라서 잘 모른다는 말이 변명으로 통용되었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이 죄는 아닐지라도 자랑도 아니라는 일침 이후 그런 말은 올리지 않으려 한다. 또한 재일 한국인에 대해 몰랐다는 것도 어쩐지 미안하게 느껴지는 그리고 그렇게 느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른다는 것, 어떤 주제든 이제 슬슬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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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잘린 뚱보아빠>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나이절 마쉬 지음, 안시열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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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돌연사가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의 영향인지 한 교수님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40대를 무사히 살아남으면 평균 연령 이상으로 장수할 확률이 대폭 올라간다는 것이다. 40대에 돌연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평균 연령을 낮춘 것이고 그 고비를 지났다니 평균 연령을 올리는 그룹에 들어간 거니 당분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설마 정말 그럴까 싶지만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에는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아 보인다.

사람이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는 없지만 중간에 치이고 자신의 경력만을 신경쓰다보면 삶이라는 사다리에서 길을 잃기 일쑤다. 가족이 없어서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라면 홀가분하기나 할 테고 거의 없는 여유 시간을 자신에게 퍼부을 수 있겠지만 대개 40대 남성은 가장인 경우가 보통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투자하고 그 덕분에 벌어들인 돈을 쓸 시간조차 없는 처량한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가족들이 누리는 금전적 여유를 위해 모든 시간과 신경을 쏟아붓다보니 시간이 나더라도 퉁명을 떨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시간을 보내고 은퇴해서 그제야 자신을 삶을 찾으려고 하면 가족들은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다. 여기 비슷한 난관에 봉착한 가장이 한 명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아이들 4명, 회사의 사장인데다가 탄탄대로를 달리는 경력, 그로 인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까지 다른 사람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다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내와 외식 약속을 번번이 어겼고 툭하면 고함을 지르는 아빠인데도 그의 귀가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다. 심지어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홀로 라디오를 들었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네 명의 아이들이 아빠를 맞이하려 현관문을 향해 내달릴 것을 알았으면서도 말이다. 생활수준은 신입일 때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동시에 가족도 늘어서 그가 생각하는 여유를 누릴 수도 없었다. 항상 일이 최우선 순위에 있었고 집에 돌아갔을 때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소진되어 있어서 움직이기도 싫었다. 술을 마시려고 들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자기 몸 상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음에도 얼굴 안에 얼굴이 들어 있는 형상의 뚱보 아빠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잘 참아주었고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였지만 점차 그것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의 일 때문에 수없이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야 했고 그 영향인지 둘째 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인하는 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를 '응가 아빠'라고 부르는 때까지 있었다. 그 상태에 대해서 외롭다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쳇바퀴를 돌듯이 생활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일변하게 하는 거대한 사건이 터진다. 회사가 합병되면서 그가 운영하던 자회사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물론 그는 유능한 사람이었으므로 언제든지 다른 자리로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에 따라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이주해야 했다. 이사 온지 12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말이다. 그는 고민을 시작한다. 잃어버린 자신의 삶과 가족들의 유대감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 자신이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이 섞여 그는 하나의 결심을 한다. 1년 동안의 휴지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 그 시작부터 꼬여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부터 쉽지가 않지만 그의 40대를 여는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삶의 방향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지난 이후 그도 그의 가족도 변화한다. 그들을 변화시킨 그 시간은 때로는 웃음이 나게 하고 때로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저자는 개인적 체험을 말하고 있지만 삶의 방향성을 잃고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의 삶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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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Walk 문워크 - 마이클 잭슨 자서전
마이클 잭슨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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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것이 스타의 숙명인지 오늘 아침에도 마이클 잭슨에 대한 뉴스가 텔레비전을 장식했다. 마이클 잭슨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아버지가 지나치게 엄격했다는 것을 넘어선 이유였다는 것이 뉴스의 내용이었다. 친구에게 한 육성 녹음에서 마이클 잭슨은 아버지가 자식들을 쇠사슬로 때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연해하는 것도 잠시 다음 사건소식으로 넘어가면서 마이클 잭슨에 대해 떠올렸던 생각은 서서히 지워졌다.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무렵이라서 사실 그에 대한 것은 자세히 몰랐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켜니 영화가 하고 있었고 웬 잘생긴 백인 남자가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문워커>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부터 마이클 잭슨에 대해 약간은 관심이 생겼다. 그가 흑인이라는 것도 그 이후에나 알았다. 이후 뮤직 비디오에서 보게 된 마이클 잭슨은 그저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수많은 스캔들 속에서 몰락한 가수였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서 만큼은 주변의 변하는 평가와 아무 관계없이 그저 푹 빠질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 MP3 플레이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노래는 마이클 잭슨의 것이었다. 그의 전성기는 20년 정도 지나 있었고 마이클 잭슨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막연한 호감뿐이었지만 <빌리 진>이나 <맨 인 더 미러>를 등하굣길에 숱하게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면서 빌리 진이라는 인물이 혹시 실존하는 것일지 빌리 진이 가진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는 가사가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일지 조금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이 책 <문워크>는 마이클 잭슨 본인이 서른 살에 쓴 자서전이다. 마이클 잭슨이 이 책을 낸 이후 20년 가까이가 지났으니 지금과는 한참 다른 이야기기도 하다. 덕분에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그를 몰락으로 이끌었던 스캔들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그의 노래를 울리게 하는 내용은 가득하다. 음악 속에 자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기타를 서로 치고 싶어서 안달했던 형제들의 이야기, 그들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가 매니저를 자청하면서 여기저기 쇼에 참가하게 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최정상의 자리에서 계속 군림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인생에서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어린 시절 노래를 하고 춤을 배우는 어린 마이클에서 성인이 되어 <스릴러>나 <배드>앨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는 그의 마음은 항상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움직이면 춤을 출 수 있고 입을 열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재능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한다. 다이애너 로스와 함께 공연한 영화 <더 위즈>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한 번 보기만 하면 안무를 익혀서 같이 공연하는 배우들을 곤란하게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열정에 사로잡혀 계속 노래하고 춤췄으며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자신을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을 피해 호텔방에 숨어 있으며 갑갑하기도 하고 친한 사람들에게 작은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지배하는 음악 속에 한없이 즐거워했고 오로지 진지하게 음악에 몰두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스타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음악인 마이클 잭슨이 보였다. 빌리 진은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여자들은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신변잡기적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스릴러>가 큰 인기를 끌고 나서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한결같이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것이 지금 그를 '전설이 되었다' 하게 만드는 힘이고 그의 죽음에 탄식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노래는 남았지만 앞으로 새로운 노래는 더해지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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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6 0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