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초콜릿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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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연애도 습관, 연애를 하지 않는 것도 습관이라고 한다. 세상은 연애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대학시절 누구보다도 연애에 적극적인 친구는 오히려 오래된 애인이 있는 쪽이었다. 소개팅을 하자고 말이 나오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자기도 끼워달라고 말했고 조건을 이것저것 따지고 들었다. 기가 막혀서 너는 애인이 있지 않느냐, 혹시 헤어질 생각이냐고 물으면 걔랑 결혼할 생각이지만 그래도 만나볼 수는 있는 게 아니냐고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있는 한 사람은 끊임없이 교류를 하면서 살아간다. 연애도 그런 큰 흐름 중에 하나다. 종족번식을 위해 뇌에서 시킨 것이든 아니든 사람은 자기의 취향에 맞는 이성에게 호감을 발산한다. 그런데 사람사이의 관계가 그렇듯 연애관게조차도 일종의 권력관계가 된다. 흔히 더 사랑을 하는 쪽이 약자라고는 하지만 은근히 그 끝에 도달하면 저울추는 일정방향으로 쏠리고 만다. 인간의 오래된 관계 유지책이니만큼 사회와 문화의 영향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고 믿는 순진한 시대는 사라지고 자유연애시대가 남았다. 말이 좋아 자유연애지 무한경쟁 혹은 가장 약삭빠른 사람만 이득을 얻는 시대가 된 것도 같다. 이 책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여성의 입장에서 본 연애관계도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인가도 했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소설은 아니고 여성학자가 들려주는 B급 연애 7종 세트라고 한다. 사실 B급 연애라는 말도 이해를 못했으므로 무슨 말인가 했다. 쉽게 말하면 연애에 지치고 치이면서도 계속 연애를 하면서 살아가는 여성 7명의 지질한 연애 경험담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는 식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반면교사라서 여성에게는 흥미의 대상이 될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남성에게는 그리 흥밋거리가 될 것 같지 않다. 통칭 B급 연애의 주범인 남성들이라면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매도당한다면서 짜증을 부릴 테고 해당되지 않는 남자라면 내 일 아니라며 상관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허나 사람사이의 거리를 0으로 줄이는 연애관계에서조차 몸은 몰라도 마음의 거리는 0이 아니고 같은 집단의 입김과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흥미롭기는 하다.

그 안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여성들은 여러 모로 몸부림을 친다. 자유연애를 아무렇게나 성관계를 하는 것인 줄 알았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나쁜 남자가 정말 나쁘면 연애는 와장창 부서지기 십상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7편의 경험담 속에서 유일하게 악녀라고 불릴 만한 초인이라는 여성만 연애관계의 승리자로 남았다는 것만 보아도 연애도 역시 권력관계이며 그 권력을 교묘히 조정할 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서글퍼진다.

어느 권력관계나 그렇듯이 연애관계도 힘이 있는 자들이 쓴 공식으로 가득하다. 같이 노는 여성은 어때도 괜찮지만 '내 여자'는 어떠면 안 된다는 불합리한 룰부터 이별에 대처하는 비겁한 자세까지 이 안에 담긴 이야기는 B급 연애 경험담이니 만큼 비겁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고 이별을 고할 때는 상대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을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린다. 6편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을 떠나가 버린 남자들이 그랬고 초인이라는 여성이 그랬다. 이들의 공통점은 연애전쟁에서 승리자로 남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것만 봐도 연애 공식의 저울추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다시 사랑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대담한 시선이라 꽤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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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
박성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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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기 위해 사는 법>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사람은 누군가를 부양하거나 부양을 받으면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매니저와 자신의 관계도 자신이 부양을 하는 대신 그에 필요한 조력을 받는다 부부와 같은 관계라고 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매니저와 담당 연예인의 관계는 모호하다. 누가 부양을 하고 부양을 받는 것인지 서로의 관계는 돈 문제 이전에 얽히고 설힌 밀접한 것으로 보여서 기타노 다카시가 말한 부부같다는 말에는 공감이 갔었다.

예전에는 신문에 난 외국의 어느 할머니가 우리나라 배우에 열광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렇게 열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 열정이 부러울 때가 있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열광하고 그것에서 활력을 얻는 사람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위광을 가진 스타 그리고 그 뒤에서 그 위광의 조력자인지 조정자인지 때로 알 수 없는 매니저까지 가끔은 관심이 갈 때도 있다.

이 책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는 스타의 뒤가 아닌 옆을 지키는 매니저에 관한 책이다. 텃세가 심한 남자들의 세계처럼 보였던 매니지먼트의 세계에, 운전도 하지 못했으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여성 매니저의 이야기다. 김혜수와 15년 동안 동반자로 함께 했고, 영화 <접속>이후에 전도연을 만나 '징글징글'하다면서도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잘생긴 청년 지진희를 배우 지진희로 인생을 바꾼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카리스마가 넘치는 유형의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들어가는 회사마다 전부 망했다면서 자신의 불운을 의심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매니저 생활 역시 처음부터 그 일을 선택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 입사한 회사가 망해서 퇴사하고 일자리를 찾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입사지원서를 넣었던 곳이 합격해서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인의 말에 따라 지원했던 곳이라 운전가능자야 했다는 것도 몰랐고 염정아의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이 알려져서 회사가 발칵 뒤집어 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랬기에 운전사가 따로 있는 김혜수의 매니저로 낙점되는 특혜 아닌 특혜를 받았고 거기서 김혜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 저자가 워낙 튀게 입고 가는 바람에 유독 냉담했던 김혜수와의 관계는 그들이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고 동갑이라는 부분에서 술술 풀려나갔다. 회사가 망한 이후에도 김혜수의 매니저로 그리 어려운 것 없이 해나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불러주는 사람이 있고 친한 척 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지 시행착오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김혜수 어머니와 부딪히자 자신이 손을 털고 나왔는데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그녀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고 한다. 누가 도와달라고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후 수없이 고생했고 실패하고 깐깐한 동생 전도연을, 잘생기고 어딘가 신비해 보이는 지진희를 배우로 만들면서 그녀는 점차 성공한 매니저의 길을 걸어간다.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배우들, 미처 붙잡지 못했던 배우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그리고 가장 성공한 시점에서 재충전을 위해 떠났다는 부분에 이르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스타에 둘러싸였고 정점을 찍으려는 참에 또 한 번 손을 털고 나온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후회하면서도 다시 부딪힐 각오를 한다. 매니저 일에 대해서 부모 자식과 같다고 자신의 동반자인 연예인은 그녀가 일을 잘해서 성공적인 길을 걷게 할 수록 아티스트와 비즈니스맨이라는 본질 때문에 멀어져만 간다고 말한다. 수없이 실패하고 부딪혔으며 만나고 이별했던 사람의 이야기라 읽으면서 놀라기도 많이 했고 공감도 꽤 했다. 스타에 대한 흥미 이전에 매니저라는 일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 개인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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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박성혜) : 스타를 부탁해
    from 프렌치플라이-들렀다가 갈때는 흔적을 남기는 곳.^^ 2010-01-18 17:10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을 켠다. 그리고 TV를 켠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다. 책을 읽는다든가 음악을 듣는 다던가 하는 다른 곳에 시선을 둬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TV는 내가 시선을 두든 말든 혼자서 계속 깜빡거리며 깔깔거리고, 중얼거리고, 노래를 한다. 자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TV를 끈다. 인간에게(현대인은 대부분 그러하기에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표현을 써도 큰 무리는 없겠지) TV는 생활의 일부 그 이상이다. 내가 박성혜(그녀는 김혜수..
  2. 영국의 면도기 광고
    from 프렌치플라이-들렀다가 갈때는 흔적을 남기는 곳.^^ 2010-02-01 18:28 
    영국의 면도기, Wilkinson Quattro Titanium 의 CG 에니메이션 CF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아빠와 아기의 엽기코믹한 스토리네요. 아기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주는 와이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기 피부처럼 만드는 면도기를 사용하는 아빠. 참 재미있군요.
 
 
 
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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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장이 멈춘 시점에서 나이를 세는 게 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육체가 크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세는 관념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많다. 십 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생각하는 법이 크게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동안의 봤던 것들, 그것에 대해 느낀 생각들로 인해서 사물을 보는 시각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라난 주관은 그리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있어야 세상도 있는 것이다. 죽음은 어떨까. 누구나 죽음이 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전혀 모르는 타인이 죽었을 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죽음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죽음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머리로는 성장이 멈춘 육체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노화가 진행되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이 한 줌 재가 되리라 실감하기는  어렵다.

이 책 <죽기 위해 사는 법>은 큰 사고를 겪고 생사의 고비를 오갔던 기타노 다케시의 에세이다. 사실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이 가진 생각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 그 생각에 거부감을 느끼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죽기 위해 산다는 말, 삶과 죽음을 성찰한 50대 남자의 말은 내심 호기심이 생긴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호기롭게 삶이 짐이고 벗어버리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삶의 언저리에 도달하면 그만큼 살고 싶기 마련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오토바이 사고를 겪고 자신이 보기에도 참혹한 사건 사진을 보면서 당시를 떠올린다. 그 얇은 거죽 밑에 어찌나 많은 피가 쏟아졌는지 자신이 보기에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이 '그 노인에게 그렇게 많은 피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말하는 식으로 자신의 사고를 담담하게 회상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수혈을 받지 않고 살아난 자신을 약간은 우쭐해하는 것이 느껴지니 정말 묘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스쳐지나간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어느 순간에 확 닥쳐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겨질 사람이라든지 정리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고 죽는 것은 뻔뻔스럽다고 말하니 인간은 죽음조차도 자연스럽지 않게 된 것 같다. 갑자기 죽음이 왔을 때 남겨 놓은 것이 있으면 싫다고 전에는 속 터지게 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어 주었지만 이제는 후에 그 사람들이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동정심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는 데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딱히 기타노 다케시의 광폭한 화법을 따라가 볼 생각도 없지만 타인의 죽음 직전과 회생, 그 사고로 남은 상흔 없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에는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지를 막연히 그려보게 되었다. 과연 어느 순간에야 후회가 없을 수 있을까. 죽음 앞에 나는 떳떳할 수 있을까. 죽음 이후가 있어도 없어도 지금의 인생은 지금뿐인데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병상에서의 에세이는 가볍게 읽히지만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는 만큼 가볍지 않고, 사고 전에 썼다는 몇 편의 독설은 가볍지 않게 읽히지만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의 글이라는 점에서는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사람이 언젠가 죽기 위해서 산다면 지금은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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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10-01-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말 저도 어젠가 했는데...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삶에 유한성을 인식하면 더욱더 삶이 값지죠.^^* 이 아침 에이안님의 좋은 리뷰를 읽게 되서 행운이네요. 잘읽었어요.^^*

에이안 2010-01-15 09:36   좋아요 0 | URL
메멘토 모리, 듣고도 계속 잊게 되는 말이에요. 값진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네요. 칭찬 감사하구요~^^
 
<스스로 행복한 사람>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스스로 행복한 사람 끌레마 위즈덤 시리즈 2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박윤정 옮김 / 끌레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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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은 눈치 채지 못하고 정작 자신에게 같은 말이 돌아왔을 때 분개하여 즉각 공격성을 드러낸다. 상대를 공격함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실은 열이 식고 나면 금세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누군가의 책 제목대로 지식은 시간이 쌓일수록 쌓여가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순수했던 어린 날에 전부 익혔는지도 모른다.

그 중요한 본성들을 전부 잊고 있을 뿐인 것이다. 자신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을 나타내고 말보다는 그 사람이 보여준 행동들이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에서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말을 내뱉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에 옮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 상처 입히는 칼날이 되는데도 말이다. 언젠가 아침 출근 시간에 다른 사람에게 발을 밟혔다. 그런데 도리어 사과를 했다. 발이 아파서 비난하려고 고개를 돌리자 상대는 오히려 나무라는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사람의 심리상으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도, 자신이 아닌 그 위치에 발을 둔 상대를 비난한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은 잘잘못을 거침없이 가리고 망설이지 않는 눈으로 대답한다. 상대도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봤다면 사과했을지도 모른다. 심리적 방어기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고 더 지혜로워지는 것도 마음의 벽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벽을 더 쌓고 에머슨이 강조하는 영혼은 어두워지고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못한다. 그 반작용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일어나며 분출되지 못한 분노는 해당되는 누구에게나 투사하는 지도 모른다.

이 책 <스스로 행복한 사람>은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을 모아둔 책이다. 감동적이라면 감동적이고, 깨달음을 준다면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내용은 간결하지만 그 말은 바로 심장에 와서 꽂힌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고 무엇을 잊고 있었는가를 질책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처럼 순수하지도 못하고 항상 불안에 휘둘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재능이 없음을 탓했지만 정작 재능의 불씨는 안에 갇혀 버렸으며 때로 그 재능이 인성을 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결국 모두 자신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소심한 편이라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나면 계속하여 그 싸움을 곱씹고 그 사람에게 반격할 말을 모색한다. 그 사람은 이미 그 다툼 자체를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쓸데없는 낭비를 해가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이끄는 것도 자신,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도 자신이다. 에머슨이 강조하는 대로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자신 안의 재능을 믿고 벽을 뛰어넘는 용기를 품는 것도 자신이 할 몫이다.

자기 자신을 믿는 재능, 다른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어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영혼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보통 한 장의 하나의 말과 설명이 달려 있는데 단숨에 읽는 것보다는 초콜릿 상자에서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 먹듯이 한 편씩 음미해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중간 중간 끼어 있는 사진과 그 뒤편에 쓰인 수많은 말들이 비처럼 내려 몸속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비난의 말과 달랐던 점은 부정적인 말은 날아오는 칼처럼 내리며 정신에 상흔을 남겼다면 에머슨의 말은 가슴으로 직접 들어와 영혼을 흔드는 기분이 들었다는 점이다. 다시 움직일 용기를 주는 책이라 편안한 활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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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맛>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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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시인의 말이 기사화 되었다. 시험 문제를 보고 자신의 시인데도 문제의 답을 모르겠더라는 말이었다. 학창 시절에 일률적으로 시를 '공부'하기는 하지만 정작 시를 즐기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시가 아닌 누가 지은 시이며 그 시인은 어느 시대 누구와 어울렸고 무슨 파, 시에 담긴 심상 등 온갖 것들을 역사 연표를 외우듯이 외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덕분에 시는 멀고 딱딱한 것이 되어 버렸다. 고대 문학 작품의 태반이 시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시는 먼 것이 되어버려서 시험 점수를 위해서 암기했던 시 몇 작품만이 아른 아른 기억에 날 뿐이었다. 정작 교내에서 열린 글짓기 대회에서 쓴 글이 산문시로 오해를 사 수상을 하는 지경이었는데도 말이다. 최근 그나마 시에 대한 마음을 돌렸던 것은 언젠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친구의 습작 때문이었다. 시에 대한 특별한 지식도 감성도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친구가 보여준 시는 천천히 마음에 남았다.

현실이 담겨 있지만 각박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읽고 음미하는 것이라 예전처럼 시험문제에 나올 만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읽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흘러가는 느낌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시인 백석의 이름도 그때 조금씩 흘러 들어왔다. 그런데 <백석의 맛>이란 제목은 흘러가는 것 이상의 관심을 붙잡았다. 시인 그리고 시에게 맛이라니 독특한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 <백석의 맛>은 작품에 비해서 덜 알려진 시인 백석과 그의 작품을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것이었다. 최고의 모던 보이이자 유별난 지성이었던 백석의 시에는 유독 음식의 이름이 그리고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고 한다. 제목에 음식의 이름을 넣은 것은 '국수'라는 작품뿐이지만 알려진 그의 시 백여 편 가운데 음식이 나오는 시가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또한 등장한 음식의 가짓수는 백여 종을 넘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음식을 묘사하며 맛을 나타내는 형용사도 수차례 나타난다고 한다.

데뷔작부터 사투리로 이루어진 작품을 발표해서 평단을 발칵 뒤집었던 유별난 지성의 소유자 백석이 그의 작품에 음식을 계속하여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시가 현실의 반영이라면 음식은 전체와 연결된 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문화이자 생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시인은 수차례 음식을 말하면서 개인의 서정을 넘어 전체의 보편적 감성을 그리고 그 너머의 끈끈한 무언가를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백석의 시와 작은 여담들을 곳곳에 배치하며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것은 뜨끈한 국물을 가진 음식이라든지 진장에 꼿꼿이 지진 달재 생선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일 수도 있다. 먹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로 먹힌 것에게 경의를 표하고 또 그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과정 등 이 책은 생각 거리를 도처에 늘어놓고 있다. 동시에 먹는다는 것과 시인의 감성을 함께 녹여낸 터라 조금은 생소한 백석과 그의 작품을 맛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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