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가족>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유정천 가족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노팅 힐>에서 낙과주의자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납득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계란, 생선, 유제품은 물론이고 채소조차도 피해 떨어지는 과실만을 먹는다는 발상이 놀라웠던 것이다. 특히 휴 그랜트가 '살해당한 당근'이란 말을 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이 세상의 어떤 생물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먹는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고 그것은 가장 본능과 가까운 행위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행위를 가지고 잔인하다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일부 극렬하게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잔인하다는 말을 듣는다. 덕분에 인도적인 도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했었다. 살면서 무언가를 죽이고 그 사체를 먹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잔인하다면 잔인할지도 모른다. 그 잔인하다는 시각조차도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읽어내는 인간의 오만한 시각이란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이 책 <유정천 가족>의 등장인물들 역시 살기 위해서 혹은 즐기기 위해서 무언가를 쉴 새 없이 먹고 마시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아버지의 죽음조차도 인간들이 그를 냄비 요리로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식인종이 등장한 것 같지만 주인공은 둔갑 너구리고 금요 구락부라는 이름의 미식가 클럽에서 그의 아버지 시모가모 소이치로를 너구리 냄비 요리로 먹은 것뿐이다. 이 일은 너구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으며 너구리들은 즉각 자신의 수장을 새로 뽑아야 했다. 그리고 소이치로의 가족이었던 아내와 사형제는 매우 슬퍼했다. 그 후에는 어처구니없지만 평소대로 살아간다. 자신이 사랑하던 아버지가 죽었지만 원래 세상 순리가 그렇다고 생각한 것이다.

너구리들은 텐구를 놀래키고, 텐구는 인간을 괴롭히며, 인간은 너구리를 잡아먹는 기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너구리들은 털 뭉치가 되어 늙어가거나 누군가에게 먹히는 죽음이 당연했던 것이다. 왜 굳이 맛있는 많은 음식들을 내버려두고 송년회 음식이 꼭 너구리 냄비 요리여야 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주인공 야사부로는 소이치로의 삼남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을 딱히 파헤치지도 자신의 아버지를 먹은 텐구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흘러가 아버지의 죽음과 닿고 그는 금요구락부 회원들과 쇠고기 전골요리를 먹는다. 그리고 그들과 담소를 나눈다. <유정천 가족>에는 묘한 뒤틀림이 숨어 있다.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정말 기묘한 관계가 아무렇지 않게 조성되고 텐구는 인간을 납치해 텐구로 만들고 텐구가 된 인간은 예전의 그 텐구의 힘을 빼앗는다. 너구리는 텐구를 돕기도 하고 인간과 교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말 금요구락부의 냄비요리 신세를 피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주인공 가족이 둔갑 너구리고 그들의 스승은 텐구, 첫사랑도 텐구, 인간이 은인이자 원수인 기묘한 고리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라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주인공의 슬픔을 받아들이다가도 '바보의 피'에 좌우되는 너구리들의 엉뚱한 변모부터 수많은 궤변들이 능청스러운 유머와 함께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그 혼란을 유유자적 즐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더욱이 양대 교토 작가로 불리는 모리미 토미히코의 교토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판타지라 익숙한 듯 신선한 맛이 숨어 있었다. 주인공이 너구리고 그의 아버지의 사인이 냄비 요리가 되었기 때문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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