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9일 이라크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에서 숨진 오모 중위의 사인이 결국 ‘소총 자살’로 결론 내려졌다. 군 인사법 등에 따르면 자살자는 특별한 공적이 없을 경우 ‘순직’ 처리되지 않는다. 국립묘지에 묻힐 수도 없다. 오 중위 역시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군(軍)의 판단이다."

  군대에서 자살은 수치스러운 죽음이다. 동시에 군대 내에서 '자살'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고에 관한 잡음을 차단하는, 언제나 정당화되는 결론이기도 하다. 군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문스러운 죽음은 자살로 규명된다. 아니 자살이기 때문에 의문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내가 군대를 가기 대략 1년전쯤 나의 동아리 후배가 100일 휴가를 앞두고 동해바다에 시체로 떠올랐다. 100일 휴가 며칠 앞두고 집에 갈 수 있다는 설레임을 안고 편지를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설레임은 그저 마음 속에 묻어둬야만 했다. 어느날 아침의 동해바다는 후배의 시체를 떠올렸고, 원인은 자살로 판명되었다. 여러가지 의문스러운 점들이 있었지만 군부대는 결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녀석의 집안은 순식간에 뒤집어졌고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고 강원도 해안의 그 부대 앞에 천막을 치고 몇날며칠을 머물며 항의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항의는 하소연으로 바뀌었고 혼자만의 눈물로 마무리지어졌다.

  "하지만 오 중위가 군에 복무하지 않았더라면, 설사 동기가 개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끊을 정도의 극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보살핌 받을 기회가 더 많았을 수도 있다. " 오 중위도 그날 시체로 떠오른 내 후배녀석도 군에 복무하지 않았더라면 동기가 개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끊을 정도의 극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후배녀석은 강제복무한 것이 아닌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국가의 신성한 의무라 불리우는 군복무를 위해 강제로 군대에 간 것이 아니던가. 사인이 정말 자살이라 하더라도, 자살로 쾌활하고 사람좋은 그 녀석을 죽음으로 내몬 건 분명 군대다. 록밴드 공연에 열광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헤드뱅잉을 하고 슬램을 하던 그 녀석, 드럼을 배우고 싶다고 내게 가르쳐달라 조르던 그 녀석, 함께 술을 마시며 림프비스킷과 닥터코어911과 콘의 음악을 이야기하며 흥분하던 그 녀석은 이제 없다.

  자살은 나약한 자의 비겁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로 죽은 후배를 둔, 자살로 죽은 친구를 둔, 자살을 결심하려했던 가까운 누군가를 옆에서 본 나로선 그렇게 쉽게 자살을 이야기할 수 없다. 나는 단 한번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옆에서 그들을 지켜봤다는 것으로 감히 자살을 말하자면, 자살을 결심하기까지의 그들의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그들은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생의 끝에 발을 딪고 불안전하게 홀로 서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한 발 디디면 더 할 나위 없이 편안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다시 한 발을 뒤로 빼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다시 이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 외딴 이라크의 어느 마을에서 소총으로 자신의 턱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오중위의 죽음은 마땅히 존중해줘야 한다.

  "국방부는 한때 군내 자살자를 위한 별도의 묘지를 검토하다 반대 여론에 밀려 없던 것으로 해버렸다. 자살자를 혐오스러워 하는 낡은 국민 정서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모습이다."  자살자를 이토록 한심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하는 군대라면, 그런 국가라면, 더 이상 말 할 가치도 없다. 자살자는 임무수행 중 죽은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한다. 그들을 자살로 내몬 것은 군대이고 국가이다. 가해자가 어찌 피해자의 죽음을 모른 척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라에 충성을 바치고 봉사하려는 그들을 나라는 내팽겨쳐서는 안된다. 그들은 분명 국가에 봉사하다 죽었다. 어찌 자살자를 이토록 함부로 다룬단 말인가.

  오히려 국가는 2007년 6월 5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평화재향군인회장이자 예비역 준장인 표명일씨의 칼럼내용처럼 "전장에서 적군이 아닌 민간인을 학살하도록 지시한 자들이나 독립운동을 방해하고 독립운동가 탄압에 앞장섰던 자들을 비롯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 그리고 친일 권력에 붙어 반인권적 범행을 해온 자들은 국립묘지에 안장해서는 안 된다." 군대와 국가가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은,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대상은 바로 저들이다.



* 국립묘지에 묻혀선 안될 사람들(표명일, 예비역 준장 및 평화재향군인회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6/h2007060418130224360.htm

* 자살, 軍에 오지 않았다면... (김범수 기자, 한국일보 사회부)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6/h2007060517584624430.htm

* "그렇게 잘생겼던 아들이 군대가서 왜 분신을...."  (2007. 6. 6 기사)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53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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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7-06-0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복무중 자살자를 국립묘지에 안장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전혀 뜻밖이네요. 그렇다면 자살이라는 결론만큼 손쉬운 책임회피도 없겠군요.

이잘코군 2007-06-0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 / 네 그렇다고 합니다. 자살자는 국립묘지 대상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게다가 몇년(?)전인가 국방부에서 자살자 전용 묘지를 만들려고 했다가 여론에 부딪혀 포기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의문스러운 죽음, 불명예스러운 죽음은 자살로 결론나죠.

누에 2007-10-1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  예비군 훈련 3년차. 5년차까지 있는줄 알았던 예비군 훈련이 7년차까지 있단 말을 들었다. 이런. 철푸덕. 그럼 내년부터는 난 어디로 가란 말이냐. 오늘까지는 대학원 소속으로 3년동안 갔는데, 이제는 하루짜리는 물건너갔다.

-  새벽 일찍 일어나 어제 챙겨두었던 전투복 상 하의와 전투화, 전투모, 고무링밴드 (아 난 스스로가 이런 군대용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을 때 나 자신에게 짜증난다. 제발 2년 2개월의 모든 기억을 잊어줘) 등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 더 챙긴 것은, 사복. 반팔티 하나와 블랙진, 그리고 양말, 마지막으로 신발을 챙겨 배낭에 쑤셔넣었다. 갔다가 돌아올 때 입고 신으려고. 바로 전 페이퍼에서 썼듯이 나는 군복을 입은채로 거리를 돌아다니는게 아주 짜증난다. 그래서 갈 때는 어쩔 수 없다해도 돌아올 때 만큼은 완전히 변신해서 마음 편하게 집으로 향하자고 마음먹고 이 무겁고 귀찮은 녀석들을 등에 메고 집을 나선다. 

-  예비군 훈련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역시 군대는 어쩔 수 없다는 것. 현역시절에도 훈련병시절에도 예비군 3년차까지 하면서 언제나 절실히 느끼는 바다.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과 여성비하, 강한 마초성, 집단, 단결, 애국 등등의 단어들이 그 모든 걸 표현해준다. 

- "00대학교는 말이지 입소자가 매년마다 늘어나고 있어요. 그건 00대학교에 남자숫자가 매년마다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주 고무적이에요."  고무적이긴. 대학교에 여자보다 남자가 늘어나는게 뭐가 고무적이냐. 그 연대장(?)말로는 남자가 늘어나서 군대 갈 사람이 많아지고, 예비군 훈련 받을 사람도 많아지니 이 얼마나 좋으냐, 이런 뜻인거 같은데 참 별게 다 고무적이올시다.

- "노래방에 가면 말이죠. 도우미 있잖아. 도우미. 우리나라 여자들은 기본 2만원에 춤추고 노래하고 안해요. 엉덩이 좀 한번 흔들라치면 돈 더 달라하고, 뭐 좀 만지려고 하면 더 달라하고, 아주 힘들어. 까칠해. 비위맞춰주기 힘들어요. 그런데 말이지. 러시아 여자 있잖아. 러시아. 그 여자들은 그런거 없어. 아주 깔끔해. 2만원 주면 다 해결돼." 연대장아저씨. 해결되는거 하나도 없거든. 한국여자가 어떻구 러시아여자가 어떻구. 이런 말 해도 아직까지 아무 문제 없는게 신기하다. 훈련소에 여자가 없어서 그런가. 나라도 신고하고픈데 이런건 어디다 신고해야되나. 성희롱은 말이지 남자가 여자를 대상으로만 행해지는게 아니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동성을 대상으로도 충분히 행해질 수 있다. 오늘 절실히 느꼈다. 그 자리 묵묵히 앉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던 나는 분명 성희롱 당했다.

- "질문 있습니까 질문. 없죠. 질문이 있으면 안돼죠. 질문은 여자한테만 있죠"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왜 질문이 남자한텐 없고 여자한테만 있지. 몇초 지나지 않아 금방 알아챘다. 이런 XX같으니. 도대체 소령달고 제대했다는 이 교관은 나이를 어디로 먹은건지 모르겠다. 하긴 군대 안에서 나이 먹고 높은 계급 달고 있는 사람들 중 다수는 이런식의 사고방식을 하고 있다. 일상이다. 내가 경험한 모든 높으신 그 분들은 거의 다 그랬다. 내가 본 사람들을 가지고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지만 군대 내에서 이같은 발언이 아주 일상적임은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시리라.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건 저들의 말에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 나와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대학원생들이다. 군대밥 실컷 먹고 저러는거야 이해되지만 이 자리에 앉아 예비군 훈련을 받는 그들은 뭐가 그리 즐겁다고 웃고 있단 말인가. 저런 말하는 교관도 잘못이지만 그 말에 웃고 있는 그들도 잘못되었다.

- "사격 미실시자는 여기 앞으로 나와서 서명하고 사유를 적습니다. 원래 사격 미실시자는 끝나고 보충교육 한 시간 더 해야돼. 그게 규정인데, 우리는 안할테니까 걱정말고 나와서 쓰세요" 당연히 이번에도 사격을 '거부'했다. '미실시'가 아니라 '거부'이다. 나 이전에 서명한 이들의 사유는 대략 훑어보건데 중이염 등의 신체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사격을 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나는 재작년, 작년과 마찬가지로 사유에 이렇게 적었다. "양심과 신념에 따른 거부." 그걸 볼 그 교관이 뭐라 생각할지 대략 짐작된다. 사격 미실시자에게 원칙상 훈련 이후 한시간 보충교육을 받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격을 하지 않았을 뿐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있었는데, 훈련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른 훈련에 있어서 미실시자는 왜 따로 보충교육을 받지 않을까. 조금 멀리 나간 생각일지 모르지만 혹 나 같은 거부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실시하려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다.

- "화장실 갈 사람들은 지금 가세요 지금. 나중에 간다고 하지 말고." 별 말 아니지만 몇년전 훈련병 시절이 떠올랐다. 똥을 싸고 싶어도 똥도 제대로 쌀 시간조차 주지 않는 그때가. 단체로 움직이고 빨리빨리 움직이는 훈련병 시절에는, 자대배치 받은 이등병도 마찬가지다, 똥오줌조차 마음놓고 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오줌이야 금방 싸면 되지만, 똥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소요시간이 다르다. 그 짧은 시간을 줬는데 해결하지 못하고 제때 나오지 않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그를 미워한다. 그로 인해 밥먹을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잘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군대는 집단으로 움직이고, 집단 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람은 같은 훈련병 동기라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갈굼당하고 미움받는다. 조교가 그를 갈구기 이전에 그는 이미 동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한다. 동시는 그는 깨닫는다. 저들에 묻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내 편은 아무도 없음을. 그들은 그러면서 군인이 된다. 군인이란 그런 존재다. 

- 국가는 의도했든 그렇지않든 예비군 훈련 이란 제도를 통해서 이미 군대에서 2년 2개월 - 이제는 2년 - 동안 겪은 집단, 단결, 애국, 마초, 남성 등의 키워드들을 정기적으로 그들의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군복을 입고 일년의 단 하루 이곳에 집결해 있는 그들은 생각외로 질서있게 행동하고 저들의 명령에 곧잘 복종한다. 나 또한 내 신체가 알아서 작동하기 때문에 내 머리를 통해 부러 어긋난 행동을 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전투모 쓰지마라. 꼭 써야되면 삐딱하게 써라. 총은 질질 끌고. 대충 한 손으로 잡고. 받들어 총은 무슨. 하지마. 국기에 대한 경례? 이거 왜해. 하지마. 등의 지시를 내리지만 그래도 내 몸은 머리의 지시보다는 몸이 다년간 체득한 그것을 자연스럽게 행한다. 애써 머리로 지시내리지 않는 다른 이들은 나보다 더 자연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  

- 총을 반납하고 신분증을 받고 훈련비랍시고 5,300원을 받고, 나는 잽싸게 그 자리에서 누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복과 전투화를 내팽겨치듯 벗고선 달랑 속옷만 남은 몸에 준비해온 깔끔한 티셔츠와 블랙진을 입고 갈색캐쥬얼화를 신는다. 위아래 모두 사복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시간 길은, 작년, 재작년보다, 오늘 아침 전투복을 입고 집을 떠날 때보다 한결 가볍다. 집에 돌아와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온 나는 그제서야 어제의 나를 되찾은것만 같다.

 

* 예비훈 훈련 (before sunrise)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258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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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6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6-06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 졸린데 잠은 자기 싫군요. 내일이 휴일이라 그런가봅니다. 시원한 물 한컵 마시고 들어와야겠습니다.

춤추는인생. 2007-06-06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군 훈련이라는게 이런곳이군요.
여기 안가면 어떻게 돼요? 화악 부셔버리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이잘코군 2007-06-06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안가면 병역거부입니다. -_- 군대거부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재판받고 감옥갑니다. 아마도. 마음은 그랬지만 결국 현실이. 실천력없는 저를 탓할 뿐이죠.

비로그인 2007-06-06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알잖아요. 당신은 2% 라니까요~ ^^

antitheme 2007-06-06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민방위는 나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전 민방위 가면 헌혈하고 바로 마치는 방법을 주로 선택하는데 예비군은 그것도 없겠군요.

잉크냄새 2007-06-06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군 음담패설은 전국구군요.
아, 그리고 민방위 가면 총은 안싸요. 그냥 한숨 늘어지게 자다 오는거죠. 너무 불성실한 민방위죠?

이잘코군 2007-06-0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자님 / 제가 일반적이지 않다는건 저도 살면서 많이 느낍니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흔히 나오는 그런 음담패설들이 전 매우 불쾌합니다. 차라리 야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놀거면 남녀 모두 있는 자리에서 서로가 즐거울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후자는 저도 유쾌하니까요. 남녀가 모인 자리에서의 그것과 남자만 있는 자리에서의 그것은 분명 질적인 차이를 보이거든요. 적어도 '여성비하'적 발언은 없죠. 위에 언급한 상황에서 강한 불쾌감과 거부감, 분노를 느끼는걸 보면 저는 '남자'보다는 '여자'에 가까이 있나봅니다.

안티테마님 / 민방위는 아직 멀었군요. 까마득하네요. 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본거 같은데, 곧 예비군도 민방위도 없앤다는 이야기를. 언제쯤 그리될지 모르겠습니다.

잉크냄새님 / 아마도 그렇겠죠. 제가 가는 '군'과 접하게 될 때마다 무수히 많이 들었으니까요. 음담패널을 늘어놓은 그들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남성들이 함께 그걸 즐기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야기하는 거겠죠. 다 자기 같은 남자인줄 알고. 이 또한 남자와 여자를 생물학적 성에 의해 이분화시키는 폭력이라 생각합니다.

이잘코군 2007-06-0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먹히지 않겠죠. 공리주의를 적용시켜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끼리 살게 하고, 이쪽 세계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게 최선이지 싶습니다. 어느 누구도 얼굴 붉히지 않고 각자의 집단에서 행복하면 되니까요.

BRINY 2007-06-07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 뿐이겠습니까.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에 유토피아에 대한 글이 나와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대해 글을 써내라고 했다니, 하렘의 황제를 꿈꾼다는 글을 버젓이 써낸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답니다.

이잘코군 2007-06-0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 하하 이런. 유토피아에 대한 개념정리를 다시 해야겠군요. 아직 애들인지라 이해가 되면서도 고2,3학년 나이면 곧 사회인이 될 놈들도 많을텐데 생각하면 걱정도 되는군요.

marine 2007-06-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담패설이 불쾌하시다는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전 제가 여자라서 그런 말이 모욕적으로 들리나 했는데 남자들도 그럴 수 있군요 이건 좀 웃긴 질문일 수도 있지만, 포르노는 어떠세요? 전 그걸 보면 성욕이 끓어 오르기는 커녕, 불쾌하고 토할 것 같거든요 폭력적이고 여자를 학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이잘코군 2007-06-0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런. 마린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시는군요.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건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여자들 중에 그런 포르노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성욕이 끓어서 포르노를 보는건지, 포르노를 보기 때문에 성욕이 끓는건지, 어떤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인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새디스트와 메조키스트 등의 여러 가지 성적 환타지와 취향이 있듯이요. 자신의 성적 환타지가 어디에 해당하는가, 어디에서 내가 자극을 받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건, 모든 포르노가 남성 위주로 제작된건 사실이죠. (수위 높은 발언을 했습니다)

marine 2007-06-1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아프님의 말이 맞은 것 같아요 아마도 여자들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드라마처럼 일종의 서사 구조를 갖춘, 낭만적인 이야기 전개가 기본 골격을 이룰 때 비로소 성적인 부분에서 흥분을 하게 되는데 포르노는 너무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것 같아요, 님의 표현처럼 남성 위주로 말이죠^^ 어쩌면 제가 일부 자극적인 포르노만 보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누에 2007-10-1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착잡한 마음..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5
박병상 지음 / 책세상 / 2002년 2월
구판절판


일본 소화전공에서 생산한 '트립토판' 이라는 유전자 조작 건강식품으로 1989년 38명이 사망했고 약 6천 명이 근육통과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1998년 유럽 시민들에게 GMOs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스코틀랜드 로위트 연구소의 아파드 푸스타이 박사는 유전자 조작 감자로 동물(쥐)의 장기가 위축되고 면역 기관이 비대해지는 괴현상을 고발하기도 했다(참고로, 쥐의 장기와 생리는 사람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조작된 유전자가 삽입된 농산물에서 빠져나와 잡초에 전이된 사례도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시민 단체들은 GMOs에 괴물이나 먹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프랑켄푸드'라는 별명을 붙였다. GMOs를 먹으면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이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52-53쪽

백성들이 빵을 달라고 하자 고개를 갸웃하며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는가" 하고 의아해하던 프랑스의 왕비 마라ㅣ 앙투아네트는 분노한 시민들 손에 붙잡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세계 육류의 절반 정도의 고기를 먹어대는 미국이 배를 곯으면서도 계속 인구를 증가시키는 제 3세계를 답답해하며, 아이를 그만 낳든지 없는 밀가루 대신 고기를 먹으라고 충고한다면 제 3세계 국민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유전자 조작이 인구 증가와 기아에 허덕이는 제 3세계를 위한 대안이라 선전하는 미국계 초국적 자본이 우리를 언짢게 하는 장본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을 식량 증산보다 소나 돼지가 먹을 사료의 대량 생산을 연구한다. 그래서 배고픈 자는 여전히 배고프고, 배부른 자만이 연하고 기름진 고기를 골라 먹을 수 있을 따름이다. -59-60쪽

미주 8)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과 같은 용어는 다윈이 사용하지 않았다. 이 용어는 다윈의 추종자인 스펜서가 최초로 사용했고 골상학(머리의 크기와 생김새를 기준으로 상대적 우열을 평가하는 우생학)을 신봉했던 헉슬리가 널리 퍼뜨렸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성행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다윈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설명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환경에 가장 잘 적응된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더 퍼뜨리게 된다는 자연 선택의 개념은 제국주의적 견해를 지닌 후학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개념으로 이어졌지만 최근의 생물종 진화 이론은 자연 선택보다 우연을 강조한다. 스테펜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세종서적, 1998)가 참조할 만하다. -172쪽

미주 76)

1975년,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O. 윌슨이 <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민음사, 1992)을 출간하면서 촉발된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을 포함하여 사회나 문화 역시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단든 이론에서 출발한다.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는 몸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내세우며 에드워드 O. 윌슨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지만 하버드 대학교의 같은 학과 교수인 스테펜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윈틴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사회까지 과학의 영역에 맡기라고 주장하는 사회생물학의 주장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회생물학에 대한 윤리적 검토를 시도했고, 프란츠 부케티츠는 사회생물학을 변호하며 유전자의 문화와 조화를 조심스레 타진한다. 번역 출간된 서적을 중심으로, 사회생물학을 동조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은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1993)을 참조하고, 반론으로 스티븐 로우즈, R.C.르윈틴, 레온 카민이 함께 쓴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 생물학, 이념, 인간의 본성>(한울, 1993)과 리처드 르윈틴의 (궁리, 2001), 그리고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세종서적, 1998)를 참조하라. 타협을 모색한 경우는 프란츠 부케티츠의 <사회생물학 논쟁>(사이언스북스, 1999)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1996년 매트 리들리는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2001)를 발간하여 사회성에 얽힌 유전자의 발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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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드는 도킨스의 논리에 부러(?) 반대하는 기미를 보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좀 '튀어보려' 한다는 그런 느낌이지요..
막다른 골목에 학설이 도달하면 돌파구를 찾곤 합니다.
굴드가 그렇습니다. 다소 아전인수, 자가발전의 양상을 보입니다.
굴드는 도킨스를 의식합니다.
굴드에게서 자격지심과 얼마간 억지부림을 감지하곤 합니다.
그런 뉘앙스를 제외하더라도 저는 굴드의 학설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판다의 엄지'는 좋은 책입니다.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비로그인 2007-06-0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원틴은 좀더 소설적인 문체를 구사하므로 책이 읽히지 않더군요.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이기적 유전자에 일대일 대응하는)는 한권 소장하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발치에 못미치는 책입니다.
일종의 인간적 윤리에 부합되는 인간적 희망사항을 열거하고 있지요.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잘코군 2007-06-0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드는 저는 아직까진 간접적으로만 접했는데, 글쎄 전 굴드에게 좀 끌렸더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진화생물학 진영에 함께 있지만 차이는 분명 있죠. 그것이 억지스러움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 판단중지입니다. :)

르윈틴은 아직 모르겠어요. 저는 일단 도킨스의 책을 본 뒤에 도킨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다른 도킨스의 비판자들을 시간을 두고 봐야겠습니다. 한사님은 근데 언제 또 이렇게 다 보셨어요. ㅎㅎ
 


  - 내일은 예비군 훈련. 군대를 늦게 다녀온 - 알만한 분들은 내가 왜 늦게 갔는지 아실테고 - 나는 이제사 예비군 3년차. 요며칠 날씨가 푹푹 찌든데 내일 새벽부터 거기가서 모자 푹 눌러쓰고 군화(난 전투화라고 말하기 싫다. 그게 정식용어니까)신고 땡볕에서 돌아댕겨야겠구나. 그리 힘든거 시키는거 아니지만 산넘고 들판넘어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그래도 훈련이랍시고 타이어 넘고 구멍 통과하고 뻘짓거리 하는데 피곤하지. 

 - 나는 예비군 훈련 가서 총은 한번도 안쐈다. 사격거부하고 서명하고 사유적었다. 재작년, 작년 둘 다.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 내일 가서 '산넘고 들판건너'는 하겠다만 총은 안쏘겠다. 내 나름대로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재작년엔 함께 다른 두 선배도 동참했는데 두 분 다 이제 예비군 끝나버리고 대학원도 졸업하셨고 이제 나 혼자다. 가서 땡볕에서 얇은 책이나 보면서 시간 보내야겠다. 책세상 문고나 살림총서가 딱이더라고 주머니에 넣기엔.

 - 이른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땡볕에서 한참 구르는(?) 것보다, 집에서 두 시간 걸리는 그곳에 오가는 것보다, 더 싫은건,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인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군대'라는 집단 자체와 그것이 사회속에서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아주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길게 이야기할건 못되고.

 - 결론은, 내일 예비군 훈련 가느니 그냥  출근시간부터 퇴근시간까지 쉬지 않고 꽉꽉 채워 일하고 싶다. 예비군이 5년까지 있던가. 관심도 없다보니 잘 알지도 못한다. 올해 대학원 끝났으니 내년부터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내일 집에 돌아올땐 발바닥과 다리에 상처투성이겠다. 언제나 그랬다. 발바닥이 약해서 조금만 심하게 걸으면 물집이 장난 아니시다. 발등과 발목은 군화의 딱딱한 껍질에 쓸려서 진물나오고 피나고. 부대에 있을 때도 발이 이 모냥인지라 특별한 일 없으면 슬리퍼를 신거나 운동화를 신었더랬다.

 
* 예비훈 훈련 (before sunset)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25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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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2007-06-0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저 딱 1주일 전에 동원예비군훈련 갔다 왔어요 -ㅁ-;;
전 2박3일간 부대 안에 있었던;;
그래서 갈때 한 번, 올때 한 번만 군복과 군화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죠;
그나마도 올때는 거기서 만난 동창들이랑 함께 돈 모아서 택시를 타고 와서..
그리 많이 돌아다니진 않았어요..
[뭐 다들 같은 동네 학교 출신이라 동네 도착해서 새벽까지 그 차림으로 술 마셨지만 -_-;;]
음..그리고 다른 데는 힘들게 하는 곳도 많던데..
제가 간 곳은 좀 많이 널널해서 시체놀이 하다 왔어요;
암튼 잘 다녀오세요~!

멜기세덱 2007-06-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100배에요. 많이 비슷하네요. 저도 남들보다 군대를 좀 늦게 다녀와서 이제 야비군 4년차거든요. 글고 저는 건빵주머니에 들어가기 딱 좋은 게 시집이더라구요. 갈 때마다 한 권씩 넣어가지고 간답니다. 아참! 저도 총은 아직까지 한 번도 안 쏴 봤는데, 일부로 거부한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쏘라는 소리는 안하더라구요. 이번에는 저도 거부를 해야되겠네요. 특별히 문제되는 거는 없죠? ㅋㅋ 저도 담주 월요일부터 3일간 야비군 가야돼요...ㅠㅠ;; 벌써 갔다온 녀석들이 그러던데요, 무쟈게 덥다고. 벌써 저는 시집3권 준비해 놓았습니다.

드팀전 2007-06-0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ㅇ..대한민국에 아직도 예비군있습니까 ^^ 예비군도 졸업한지 오래..민방위 다니고 있는데

이잘코군 2007-06-0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님 / 네. 저는 딱 지하철 버스 타고 집에 곧바로 와서 화장실에 군복 던져놓고 샤워하고 다시 어제의 아프로 돌아오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군복을 입을 때의 난 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입고나면 몸에 맞지 않는 옷 입혀놓은 인형같은 생각이 들어요. 내일 새벽에 가려면 오늘 조금 일찍 자야겠어요.

멜기세덱님 / 다음주에 가시는군요. 님의 나이는 모르지만 예비군 4년차시면 저보다 늦거나 저랑 비슷한 시점에 군대 가셨나봅니다. 전 시는 안읽어서 아마도 요즘 읽고 있는 인간복제 관련된 책세상 문고 하나 들고 가야할 듯 합니다. 한 권이면 충분하더라고요. 갈 때 올 때 가서 읽으면 다 읽게 되거나 아니면 좀 남을거에요. 인간복제는 빨리빨리 안읽혀요 용어가 생소해서.

이잘코군 2007-06-0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 ㅎㅎㅎ 놀리시는거죠? 얼렁 빨리 졸업(?)하고 싶습니다.

이매지 2007-06-04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남자친구는 이제 1년차입니다 ㅎㅎ 몇 주 전에 갔다왔는데 심심해서 죽을 뻔 했다고 하더군요 -_ -; 자다가 왔다나 뭐라나.

Mephistopheles 2007-06-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방위가 지금 내가...음...10년차가 넘었나.....????? =3=3=3=3=3

잉크냄새 2007-06-0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비군 졸업....

네꼬 2007-06-0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 입내밀고 훈련 중이시겠네요.
잘 다녀오셨어요? : )

비로그인 2007-06-05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다행이도(?)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흘리는 일은 줄어들겠군요.
그나저나, 발이 그렇게 약해서야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미리 상처에 바르는 연고나
벤드를 가져갔을지 ...무튼, 사고없이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antitheme 2007-06-0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 다 끝내고 툴툴 털어버리실 시간이군요.

이잘코군 2007-06-0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 지금 들어왔습니다. 아휴 힘들어. 오늘 들은 이야긴데 예비군이 7년이라는군요. 쩝. 민방위는 예비군 10년차부터 그러니까 중간에 좀 쉬나봐요. -_-

잉크냄새님 / 아 까마득합니다. 이제 대학원 소속으로 가는건 끝났으니 저도 내년부터는 2박 3일로 가겠군요. -_- 어휴.

네꼬님 / 어떻게 알았어요. 입 삐쭉 내밀구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저리가라면 저리가고, 이리오라면 이리오고 하면서 시간 죽였습니다.

엘신님 / 날씨는 그나마 도와줘서 다행입니다. 오늘같은날 서늘해서. 어떤 분은 차라리 비왔음 좋겠다 이러시던데. 강당에서 종일 있으려고. 다행히 이 더운날 양말을 두 켤레 겹쳐 신었더니 오늘은 좀 나은거 같습니다. 걸어다닐만 했습니다. 대일밴드도 미리 준비했죠. 그리고 가방에 신발까지 넣어갔습니다. 돌아올 때 그거 신고 오고.

안티테마님 / 6시 넘어야 끝나는건데 우리가 군말없이 잘 따라줘서 좀 일찍 끝났습니다. 안티테마님 댓글 다신 딱 그 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는 길이 멀군요. 남양주에서 상도동까지.

비로그인 2007-06-0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인데 군복입은 아프님 상상이 안가여~~ ^^

이잘코군 2007-06-0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저도 입고 적응 안됩니다. :)

비로그인 2007-06-0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아프님 군복 입은 모습 상상이 안갑니다.
아프님의 이미지는 '샤방~' 이잖아요? (웃음)

이잘코군 2007-06-0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제가 '샤방'이었습니다. 하하. 근데 샤방은 어떤겁니까.

비로그인 2007-06-0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한테 한글을 물어보시다니...(긁적 긁적)
그러니까...눈은 반짝반짝하고, 머리는 옆으로 바람에 날리듯 하고, 뒤에는 꽃 배경이
있을 때 하는 만화적 표현 말입니다... '샤방~'....
네이트온 메신져를 하신다면, 그 이미지를 보여드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웃음)

이잘코군 2007-06-0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이트온 합니다. 속삭이겠습니다.
 
개를 위한 변명 - '보신탕'과 '동물 권리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남유철 지음 / (주)유미디어(유미디어드림) / 2005년 4월
품절


미국의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철학', 즉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에서 출발하는 철학을 제안한 바 있다. 과거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철학 논리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구체적인 쟁점에 다가가겠다는 상아탑의 철학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철학이라고 부르면서, 드워킨은 그러한 접근을 특별한 체형의 사람이 기성복 가게에서 맞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부질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16쪽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괜찮지만 보신탕은 안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개는 가축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개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개의 생물학적 특징 때문이 아니라 개가 인간과 함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역할을 해 온 개에 대해, 우리가 최소한의 애정과 예의는 보여야 한다는 보신탕 비판자들의 논리는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이다. -52쪽

"A라는 행위는 문화적 전통이다" 따라서 "A는 도덕적이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모든 전통적 행위는 도덕적이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고유 문화나 전통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도덕적, 실정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문화적 전통이 도덕적이고 합법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62쪽

미국 철학자 제임스 레이첼스는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공동체의 성립 및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에 대한 부정은 모든 문화적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살인은 안된다는 등의 가치는 공동체의 성립 및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동시에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가치라는 것이다. -81-82쪽

물론, 도덕적 논의는 수학 문제처럼 답이 딱 떨어지는 정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는 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를 지향하기 위한 인간의 이성적 판단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모든 상황이 최선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부조리로 귀결된다. -85쪽

문화상대주의의 논리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문화가 다르면 가치도 다르다는 '사실'을 하나의 '당위'로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다양하고 상이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왜 그러한 가치가 지속되고 옹호되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결국, 문화상대주의는 현재의 상황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자기 모순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85쪽

물론, 하나의 행위가 '전통'으로 지속되어 온 데에는 분명히 어떤 역사적 문화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 관점에서 성찰할 때는, 그것이 과연 오늘의 시점에서도 정당한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특정 문화권의 전통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비교 평가할 수 없다면, 지구 공동체 공통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86쪽

"균등의 원칙을 우리 자신의 종을 넘어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요지는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이해 관계의 균등한 고려 원칙을 이해하는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원칙이 개인의 생김새나 능력에 무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바로 이 원칙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종의 생명들을 착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되듯이, 우리와 종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이해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피터 싱어)-120쪽

단지 동물이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동일한 이해 관계에 대해 균등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이해 관계의 균등한 고려 원칙에 어긋난다고 싱어는 주장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동물이 말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우리에게 항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을 하는 이들에게도 그들의 행위가 잘못됐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싱어는 지적하고 있다. -122쪽

싱어는 그의 저서에서, 날개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좁은 닭장 안에 갇혀서 사육되는 닭의 고통을 예로 들면서 농장 동물의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자유롭게, 고통 없이 사육된 닭이 있다면 공리주의 원칙상 그 닭으로부터 생산된 달걀은 먹어도 괜찮다고 그는 말한다. 반대로 날개도 펼 수 없는 좁은 닭장에서 키운 닭으로부터 나온 달걀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그러한 계란을 소비하는 것은 그러한 사육 방식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43쪽

미국 러트거스 대학의 법철학 교수인 프란시온은 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종식시키고 그들의 인간에 대한 노예적 상태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동물에게 인간의 재산으로 취급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현 예속 상태가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종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을 단순한 재산으로 취급하는 법을 폐기하고 동물에게 재산으로 취급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51-152쪽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저술 하나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관습과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변화를 위한 사회 정치적 노력과 행동을 동반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설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리 있고 설득력 이쓴 '생각'이 먼저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만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의 조형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운동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서 필요하다. -161-162쪽

"일부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통일된 심리적 실재'라는 미스터리를 이 세계에 부여한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 역시 다양한 감성적, 논리적, 능동적, 의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보고 들으며, 욕망과 믿음,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다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들의 의지를 실현코자 한다. 우리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동물에게 있어서도 자신들의 운명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육체적인 즐거움과 고통도,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나아가서 동물들은 우리처럼 공포와 만족, 분노와 외로움, 좌절과 충족감을 느낀다. 동물들 역시 때로는 교활하게 행동하며 몰염치하기조차 하다. 여기서 열거한 그리고 열거하지 못한 다양한 심리적 상태와 특징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 인간과 동물은 (나의 용어를 빌리자면) 모두 정신적, 심리적 삶을 살아가는 '삶의 주체'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행복을 저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삶의 주체'들이 자신의 생명과 삶을 소중하게 취급받을 최소한의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3년 톰 리건)-164-165쪽

리건은, 육식은 (의식 있는 동물인) 가축의 '본원적 가치'인 생명 그 자체를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빼앗는 행위이므로 결코 도덕적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고통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는 무조건 육식을 회피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동물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일방적으로 빼앗기지 않을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175쪽

리건은 권리론이 주장하는 채식주의가 싱어와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채식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싱어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만약 채식주의가 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줄이지 못한다면 그 채식주의는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리건은 반박한다. (그 이유는 그 채식주의가 공리를 생산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건은 그래서, 싱어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한 개인이 채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얼마나 많은 타인들이 채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리건이 말하는 권리론의 채식은 다르다. 권리론의 채식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채식을 하느냐, 혹은 그러한 윤리적 채식주의가 실제 효과가 있느냐는 사실과 관계없이, 한 개인이 무조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177-178쪽

"상황에 관련된 모든 개체를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그리고 특수한 고려를 배제한다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모든 개체는 더욱 불리한 경우에 처해지는 상황을 피해 갈 권리가 있다. 설혹 그러한 행위가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또 다른 개체에게 피해를 준다 하더라도." (톰 리건)-179쪽

"권리가 있다."고 주자榜?것은 이미 주어졌어야 할 것이 박탈당해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없는 것을 새로이 달라고 주장하기보다 - 왜냐면, 새로운 것을 달라고 할 때는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충분히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미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현재 주어져 있지 않다는 식의 논리로서, 왜 그것이 없는지를 도리어 상대에게 설명하게 하는 수사학적 기교라고 할 수 있다. 리건이 내세운 동물의 권리론도 이러한 시류를 편승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의무를 강제할 수 없는 권리, 즉 법률적 권리처럼 강제성을 전혀 갇지 못하는 도덕적 권리에 불과하다면, 진정한 의미의 권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면, 그 때의 권리란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상징적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201쪽

우리가 동물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도덕적 질문의 앞에는, 우주와 지구 환경을 공유하는 하나의 생물체로서 인간과 다른 생물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우리의 철학적 명상은 결국 삶에 대한 성찰과 세계관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 점에서 볼 때 보신탕 논란의 진정한 요체는 그것이 혐오 식품이냐 아니냐, 민족 고유의 음식이냐 아니냐, 개가 가축으로 분류되어야 하느냐 아니냐, 외국 동물 애호가들의 시비에 굴복해야 하느냐 아니면 고유 음식 풍속에 대한 민족 자존심을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보신탕에 대한 논란은 고래나 돌고래 사냥에 대한 논란이나 영국의 여우 사냥 금지 혹은 야생 동물에 대한 보호 여부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지구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선택의 문제이고 현실적으로는 동물에 대한 각기 다른 정서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 간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에 대한 조정 그리고 법률적 접근 방식의 문제이다.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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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건의 생각은 '대자대비' 부처님의 생각과 유사하군요..

'보신(생존이 아닌)'을 위해 타생명체의 생명력을 이용하는 인간의 저열함에
자괴감을 느끼곤 합니다.
'한의사'들의 논리?!.. 녹용과 웅담과 기타 등등..
우주의 기(氣)를 내 몸속으로 끌어들이는 무서운 요기들, 도사들..
도저한 인간의 이기심을 봅니다.... 아프락사스님.


이잘코군 2007-06-0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리건은 부처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거의 같다고 봐야죠. 여기서도 저자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저자는 리건의 논리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비판을 가하더군요.

2007-08-14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8-14 18:20   좋아요 0 | URL
<시귀>라는건 소설인가요, 한번 검색해봐야겠네. 그쵸. 우리가 당하는 입장이라면 또 다를 겁니다. 언제나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육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육식했는데... ;;;

2007-08-14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8-14 18:22   좋아요 0 | URL
하하. 그쵸 이런건 모순이 아니고 고민 아닌가요. :) 참 큼지막한 주제 여러개를 꺼내셨는데,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님과 같은 '고민과정'에 있습니다. 모순은 나의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와 충돌을 일으킬 때를 일컫는거니, 이런 고민과정엔 해당사항 없을 듯 합니다. 요새 고민 많으신가봅니다. :) 좋은 현상(?)이에요. 크크.

2007-08-15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8-15 23:24   좋아요 0 | URL
남들이 사서 고민한다는 그런 고민들, 어쩌면 삶을 참 불편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전 개개인의 그런 사서하는 고민들로 인해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나아진 세상에 사실상 얹혀살고 있는 셈이지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

2007-08-16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8-16 10:5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데서 블로그 하는 재미를 느낍니다. 재미보다 좀 더 나아간 무엇이지만.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으니 저도 더 생각해보게 되고 좋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