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변명 - '보신탕'과 '동물 권리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남유철 지음 / (주)유미디어(유미디어드림) / 2005년 4월
품절


미국의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철학', 즉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에서 출발하는 철학을 제안한 바 있다. 과거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철학 논리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구체적인 쟁점에 다가가겠다는 상아탑의 철학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철학이라고 부르면서, 드워킨은 그러한 접근을 특별한 체형의 사람이 기성복 가게에서 맞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부질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16쪽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괜찮지만 보신탕은 안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개는 가축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개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개의 생물학적 특징 때문이 아니라 개가 인간과 함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역할을 해 온 개에 대해, 우리가 최소한의 애정과 예의는 보여야 한다는 보신탕 비판자들의 논리는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이다. -52쪽

"A라는 행위는 문화적 전통이다" 따라서 "A는 도덕적이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모든 전통적 행위는 도덕적이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고유 문화나 전통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도덕적, 실정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문화적 전통이 도덕적이고 합법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62쪽

미국 철학자 제임스 레이첼스는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공동체의 성립 및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에 대한 부정은 모든 문화적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살인은 안된다는 등의 가치는 공동체의 성립 및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동시에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가치라는 것이다. -81-82쪽

물론, 도덕적 논의는 수학 문제처럼 답이 딱 떨어지는 정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는 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를 지향하기 위한 인간의 이성적 판단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모든 상황이 최선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부조리로 귀결된다. -85쪽

문화상대주의의 논리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문화가 다르면 가치도 다르다는 '사실'을 하나의 '당위'로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다양하고 상이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왜 그러한 가치가 지속되고 옹호되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결국, 문화상대주의는 현재의 상황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자기 모순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85쪽

물론, 하나의 행위가 '전통'으로 지속되어 온 데에는 분명히 어떤 역사적 문화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 관점에서 성찰할 때는, 그것이 과연 오늘의 시점에서도 정당한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특정 문화권의 전통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비교 평가할 수 없다면, 지구 공동체 공통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86쪽

"균등의 원칙을 우리 자신의 종을 넘어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요지는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이해 관계의 균등한 고려 원칙을 이해하는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원칙이 개인의 생김새나 능력에 무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바로 이 원칙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종의 생명들을 착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되듯이, 우리와 종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이해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피터 싱어)-120쪽

단지 동물이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동일한 이해 관계에 대해 균등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이해 관계의 균등한 고려 원칙에 어긋난다고 싱어는 주장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동물이 말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우리에게 항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을 하는 이들에게도 그들의 행위가 잘못됐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싱어는 지적하고 있다. -122쪽

싱어는 그의 저서에서, 날개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좁은 닭장 안에 갇혀서 사육되는 닭의 고통을 예로 들면서 농장 동물의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자유롭게, 고통 없이 사육된 닭이 있다면 공리주의 원칙상 그 닭으로부터 생산된 달걀은 먹어도 괜찮다고 그는 말한다. 반대로 날개도 펼 수 없는 좁은 닭장에서 키운 닭으로부터 나온 달걀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그러한 계란을 소비하는 것은 그러한 사육 방식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43쪽

미국 러트거스 대학의 법철학 교수인 프란시온은 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종식시키고 그들의 인간에 대한 노예적 상태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동물에게 인간의 재산으로 취급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현 예속 상태가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종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을 단순한 재산으로 취급하는 법을 폐기하고 동물에게 재산으로 취급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51-152쪽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저술 하나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관습과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변화를 위한 사회 정치적 노력과 행동을 동반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설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리 있고 설득력 이쓴 '생각'이 먼저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만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의 조형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운동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서 필요하다. -161-162쪽

"일부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통일된 심리적 실재'라는 미스터리를 이 세계에 부여한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 역시 다양한 감성적, 논리적, 능동적, 의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보고 들으며, 욕망과 믿음,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다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들의 의지를 실현코자 한다. 우리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동물에게 있어서도 자신들의 운명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육체적인 즐거움과 고통도,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나아가서 동물들은 우리처럼 공포와 만족, 분노와 외로움, 좌절과 충족감을 느낀다. 동물들 역시 때로는 교활하게 행동하며 몰염치하기조차 하다. 여기서 열거한 그리고 열거하지 못한 다양한 심리적 상태와 특징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 인간과 동물은 (나의 용어를 빌리자면) 모두 정신적, 심리적 삶을 살아가는 '삶의 주체'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행복을 저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삶의 주체'들이 자신의 생명과 삶을 소중하게 취급받을 최소한의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3년 톰 리건)-164-165쪽

리건은, 육식은 (의식 있는 동물인) 가축의 '본원적 가치'인 생명 그 자체를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빼앗는 행위이므로 결코 도덕적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고통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는 무조건 육식을 회피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동물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일방적으로 빼앗기지 않을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175쪽

리건은 권리론이 주장하는 채식주의가 싱어와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채식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싱어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만약 채식주의가 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줄이지 못한다면 그 채식주의는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리건은 반박한다. (그 이유는 그 채식주의가 공리를 생산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건은 그래서, 싱어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한 개인이 채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얼마나 많은 타인들이 채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리건이 말하는 권리론의 채식은 다르다. 권리론의 채식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채식을 하느냐, 혹은 그러한 윤리적 채식주의가 실제 효과가 있느냐는 사실과 관계없이, 한 개인이 무조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177-178쪽

"상황에 관련된 모든 개체를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그리고 특수한 고려를 배제한다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모든 개체는 더욱 불리한 경우에 처해지는 상황을 피해 갈 권리가 있다. 설혹 그러한 행위가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또 다른 개체에게 피해를 준다 하더라도." (톰 리건)-179쪽

"권리가 있다."고 주자榜?것은 이미 주어졌어야 할 것이 박탈당해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없는 것을 새로이 달라고 주장하기보다 - 왜냐면, 새로운 것을 달라고 할 때는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충분히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미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현재 주어져 있지 않다는 식의 논리로서, 왜 그것이 없는지를 도리어 상대에게 설명하게 하는 수사학적 기교라고 할 수 있다. 리건이 내세운 동물의 권리론도 이러한 시류를 편승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의무를 강제할 수 없는 권리, 즉 법률적 권리처럼 강제성을 전혀 갇지 못하는 도덕적 권리에 불과하다면, 진정한 의미의 권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면, 그 때의 권리란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상징적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201쪽

우리가 동물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도덕적 질문의 앞에는, 우주와 지구 환경을 공유하는 하나의 생물체로서 인간과 다른 생물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우리의 철학적 명상은 결국 삶에 대한 성찰과 세계관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 점에서 볼 때 보신탕 논란의 진정한 요체는 그것이 혐오 식품이냐 아니냐, 민족 고유의 음식이냐 아니냐, 개가 가축으로 분류되어야 하느냐 아니냐, 외국 동물 애호가들의 시비에 굴복해야 하느냐 아니면 고유 음식 풍속에 대한 민족 자존심을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보신탕에 대한 논란은 고래나 돌고래 사냥에 대한 논란이나 영국의 여우 사냥 금지 혹은 야생 동물에 대한 보호 여부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지구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선택의 문제이고 현실적으로는 동물에 대한 각기 다른 정서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 간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에 대한 조정 그리고 법률적 접근 방식의 문제이다.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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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건의 생각은 '대자대비' 부처님의 생각과 유사하군요..

'보신(생존이 아닌)'을 위해 타생명체의 생명력을 이용하는 인간의 저열함에
자괴감을 느끼곤 합니다.
'한의사'들의 논리?!.. 녹용과 웅담과 기타 등등..
우주의 기(氣)를 내 몸속으로 끌어들이는 무서운 요기들, 도사들..
도저한 인간의 이기심을 봅니다.... 아프락사스님.


마늘빵 2007-06-0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리건은 부처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거의 같다고 봐야죠. 여기서도 저자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저자는 리건의 논리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비판을 가하더군요.

2007-08-14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4 18:20   좋아요 0 | URL
<시귀>라는건 소설인가요, 한번 검색해봐야겠네. 그쵸. 우리가 당하는 입장이라면 또 다를 겁니다. 언제나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육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육식했는데... ;;;

2007-08-14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4 18:22   좋아요 0 | URL
하하. 그쵸 이런건 모순이 아니고 고민 아닌가요. :) 참 큼지막한 주제 여러개를 꺼내셨는데,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님과 같은 '고민과정'에 있습니다. 모순은 나의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와 충돌을 일으킬 때를 일컫는거니, 이런 고민과정엔 해당사항 없을 듯 합니다. 요새 고민 많으신가봅니다. :) 좋은 현상(?)이에요. 크크.

2007-08-15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5 23:24   좋아요 0 | URL
남들이 사서 고민한다는 그런 고민들, 어쩌면 삶을 참 불편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전 개개인의 그런 사서하는 고민들로 인해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나아진 세상에 사실상 얹혀살고 있는 셈이지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

2007-08-16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6 10:5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데서 블로그 하는 재미를 느낍니다. 재미보다 좀 더 나아간 무엇이지만.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으니 저도 더 생각해보게 되고 좋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