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비군 훈련 3년차. 5년차까지 있는줄 알았던 예비군 훈련이 7년차까지 있단 말을 들었다. 이런. 철푸덕. 그럼 내년부터는 난 어디로 가란 말이냐. 오늘까지는 대학원 소속으로 3년동안 갔는데, 이제는 하루짜리는 물건너갔다.
- 새벽 일찍 일어나 어제 챙겨두었던 전투복 상 하의와 전투화, 전투모, 고무링밴드 (아 난 스스로가 이런 군대용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을 때 나 자신에게 짜증난다. 제발 2년 2개월의 모든 기억을 잊어줘) 등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 더 챙긴 것은, 사복. 반팔티 하나와 블랙진, 그리고 양말, 마지막으로 신발을 챙겨 배낭에 쑤셔넣었다. 갔다가 돌아올 때 입고 신으려고. 바로 전 페이퍼에서 썼듯이 나는 군복을 입은채로 거리를 돌아다니는게 아주 짜증난다. 그래서 갈 때는 어쩔 수 없다해도 돌아올 때 만큼은 완전히 변신해서 마음 편하게 집으로 향하자고 마음먹고 이 무겁고 귀찮은 녀석들을 등에 메고 집을 나선다.
- 예비군 훈련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역시 군대는 어쩔 수 없다는 것. 현역시절에도 훈련병시절에도 예비군 3년차까지 하면서 언제나 절실히 느끼는 바다.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과 여성비하, 강한 마초성, 집단, 단결, 애국 등등의 단어들이 그 모든 걸 표현해준다.
- "00대학교는 말이지 입소자가 매년마다 늘어나고 있어요. 그건 00대학교에 남자숫자가 매년마다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주 고무적이에요." 고무적이긴. 대학교에 여자보다 남자가 늘어나는게 뭐가 고무적이냐. 그 연대장(?)말로는 남자가 늘어나서 군대 갈 사람이 많아지고, 예비군 훈련 받을 사람도 많아지니 이 얼마나 좋으냐, 이런 뜻인거 같은데 참 별게 다 고무적이올시다.
- "노래방에 가면 말이죠. 도우미 있잖아. 도우미. 우리나라 여자들은 기본 2만원에 춤추고 노래하고 안해요. 엉덩이 좀 한번 흔들라치면 돈 더 달라하고, 뭐 좀 만지려고 하면 더 달라하고, 아주 힘들어. 까칠해. 비위맞춰주기 힘들어요. 그런데 말이지. 러시아 여자 있잖아. 러시아. 그 여자들은 그런거 없어. 아주 깔끔해. 2만원 주면 다 해결돼." 연대장아저씨. 해결되는거 하나도 없거든. 한국여자가 어떻구 러시아여자가 어떻구. 이런 말 해도 아직까지 아무 문제 없는게 신기하다. 훈련소에 여자가 없어서 그런가. 나라도 신고하고픈데 이런건 어디다 신고해야되나. 성희롱은 말이지 남자가 여자를 대상으로만 행해지는게 아니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동성을 대상으로도 충분히 행해질 수 있다. 오늘 절실히 느꼈다. 그 자리 묵묵히 앉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던 나는 분명 성희롱 당했다.
- "질문 있습니까 질문. 없죠. 질문이 있으면 안돼죠. 질문은 여자한테만 있죠"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왜 질문이 남자한텐 없고 여자한테만 있지. 몇초 지나지 않아 금방 알아챘다. 이런 XX같으니. 도대체 소령달고 제대했다는 이 교관은 나이를 어디로 먹은건지 모르겠다. 하긴 군대 안에서 나이 먹고 높은 계급 달고 있는 사람들 중 다수는 이런식의 사고방식을 하고 있다. 일상이다. 내가 경험한 모든 높으신 그 분들은 거의 다 그랬다. 내가 본 사람들을 가지고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지만 군대 내에서 이같은 발언이 아주 일상적임은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시리라.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건 저들의 말에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 나와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대학원생들이다. 군대밥 실컷 먹고 저러는거야 이해되지만 이 자리에 앉아 예비군 훈련을 받는 그들은 뭐가 그리 즐겁다고 웃고 있단 말인가. 저런 말하는 교관도 잘못이지만 그 말에 웃고 있는 그들도 잘못되었다.
- "사격 미실시자는 여기 앞으로 나와서 서명하고 사유를 적습니다. 원래 사격 미실시자는 끝나고 보충교육 한 시간 더 해야돼. 그게 규정인데, 우리는 안할테니까 걱정말고 나와서 쓰세요" 당연히 이번에도 사격을 '거부'했다. '미실시'가 아니라 '거부'이다. 나 이전에 서명한 이들의 사유는 대략 훑어보건데 중이염 등의 신체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사격을 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나는 재작년, 작년과 마찬가지로 사유에 이렇게 적었다. "양심과 신념에 따른 거부." 그걸 볼 그 교관이 뭐라 생각할지 대략 짐작된다. 사격 미실시자에게 원칙상 훈련 이후 한시간 보충교육을 받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격을 하지 않았을 뿐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있었는데, 훈련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른 훈련에 있어서 미실시자는 왜 따로 보충교육을 받지 않을까. 조금 멀리 나간 생각일지 모르지만 혹 나 같은 거부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실시하려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다.
- "화장실 갈 사람들은 지금 가세요 지금. 나중에 간다고 하지 말고." 별 말 아니지만 몇년전 훈련병 시절이 떠올랐다. 똥을 싸고 싶어도 똥도 제대로 쌀 시간조차 주지 않는 그때가. 단체로 움직이고 빨리빨리 움직이는 훈련병 시절에는, 자대배치 받은 이등병도 마찬가지다, 똥오줌조차 마음놓고 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오줌이야 금방 싸면 되지만, 똥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소요시간이 다르다. 그 짧은 시간을 줬는데 해결하지 못하고 제때 나오지 않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그를 미워한다. 그로 인해 밥먹을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잘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군대는 집단으로 움직이고, 집단 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람은 같은 훈련병 동기라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갈굼당하고 미움받는다. 조교가 그를 갈구기 이전에 그는 이미 동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한다. 동시는 그는 깨닫는다. 저들에 묻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내 편은 아무도 없음을. 그들은 그러면서 군인이 된다. 군인이란 그런 존재다.
- 국가는 의도했든 그렇지않든 예비군 훈련 이란 제도를 통해서 이미 군대에서 2년 2개월 - 이제는 2년 - 동안 겪은 집단, 단결, 애국, 마초, 남성 등의 키워드들을 정기적으로 그들의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군복을 입고 일년의 단 하루 이곳에 집결해 있는 그들은 생각외로 질서있게 행동하고 저들의 명령에 곧잘 복종한다. 나 또한 내 신체가 알아서 작동하기 때문에 내 머리를 통해 부러 어긋난 행동을 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전투모 쓰지마라. 꼭 써야되면 삐딱하게 써라. 총은 질질 끌고. 대충 한 손으로 잡고. 받들어 총은 무슨. 하지마. 국기에 대한 경례? 이거 왜해. 하지마. 등의 지시를 내리지만 그래도 내 몸은 머리의 지시보다는 몸이 다년간 체득한 그것을 자연스럽게 행한다. 애써 머리로 지시내리지 않는 다른 이들은 나보다 더 자연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
- 총을 반납하고 신분증을 받고 훈련비랍시고 5,300원을 받고, 나는 잽싸게 그 자리에서 누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복과 전투화를 내팽겨치듯 벗고선 달랑 속옷만 남은 몸에 준비해온 깔끔한 티셔츠와 블랙진을 입고 갈색캐쥬얼화를 신는다. 위아래 모두 사복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시간 길은, 작년, 재작년보다, 오늘 아침 전투복을 입고 집을 떠날 때보다 한결 가볍다. 집에 돌아와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온 나는 그제서야 어제의 나를 되찾은것만 같다.
* 예비훈 훈련 (before sunrise)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258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