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짭짤한 알바가 들어왔었다. 그 분을 통해 직접 들어온 건 아니고, 의뢰를 받은 친구가 나보고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온 것인데, 흔히 말하는 대필. 나보고 대필 작가가 되어달라는 건데, 거창하게 책을 내는 건 아니고, 직장과 대학을 동시에 다니는 어떤 직장인의 과제물을 대신 해달라는 것이었다. 가격은 무려 십만원. 서평 하나 쓰고 십만원이면 꽤나 짭짤한 금액이다. 너무 잘써줄 필요도 없다고 하니 그냥 평소에 쓰던대로 대충(?) 쓰면 되는건데, 아마 수년전이라면 했을 것이다. 글 한편 쓰고 그만한 돈이 들어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므로.

  그런데, 거절했다. 양심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물론 내가 안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알바를 넘길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직장인의 서평 레포트는 십만원과 거래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쓰여지고 제출되는 것이다. 그럼 결국 어떻게든 그리 될테니 내가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양심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고백하건대, 예전에 나는 술자리에서, 함께 밴드를 하던 똑같이 직장과 대학을 병행하던 동생의 부탁에 못이겨 약속을 해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가 기존에 써놨던 서평 두 개를 펌질하겠다는 거였는데, 이를 허락해버렸다. 

  약속이라고는 하지만 술자리에서 취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던 것이고, 번복하려면 할 수도 있었으나, 내겐 이미 성립된 약속을 뒤집는 것이 번복하는 것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결국 내 서평 두 개를 줘버렸다. 후회했다. 그런 약속을 한 것에 대해서. 그것은 나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안하겠다고, 못주겠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못하고 - 주변에 서평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거 같으므로 달리 도움을 요청할 길이 없었을듯 - 결국 본인이 시간을 내어 어떻게든 제출했을텐데, 내가 흔쾌히 약속해버림으로써 나의 양심을 배반하고, 그 사람의 양심을 쉽게 어기도록 만들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경우야 기억을 끄집어낸다면 더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던 부정행위를 대학에 와서 하기도 했었다. 결국 시험에 있어 도움을 받진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하니까, 그런 식으로들 시험을 보니까, 또 조교들도 알면서 다 봐주는 눈치니까, 나도 해봤던건데, 이건 분명 잘못된 행위였다. 주변 사람들이 다 그리해도 나는 그리하면 안 되는 거였다. 딱히 또다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야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릴 때는 친구집에서 가로 3센티, 세로 2센티 정도의 조그만 오토바이 모형 장난감을 훔친 적도 있었다. 나중에 후회했다.

  어제 만난 학교 선생님은 최근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해줬다. 시험 중 한 녀석이 부정행위를 했고, 감독샘이 이를 적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쪽지만 압수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쪽지를 해당 과목 기간제 샘한테 넘겨주고 일을 덮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근데 일을 덮으려면 본인만 알고 있으면 되는데 과목담당 기간제 샘에게까지 알린 것이다. 물론 덮어선 안 되는거다. 그 기간제 샘은 학교일이 처음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그런데 내가 만난 그 샘이 이게 어떤 사건인지를 명확히 짚어준 뒤에야 해당 학생에게 0점을 주고 원칙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대개의 사건들은 주어진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발생하지 않을까. 대구의 초등학교 집단 성폭행 사건도 그렇고 - 듣기로는 백명에 육박한다지 -  걸릴리도 없고, 걸려도 별 문제도 되지 않을테지만, 내게 들어왔던 알바 제의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서로 상부상조(?)함으로써 성립되고 행해진다. 나름 원칙이란 것이 있고,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삼십년을 뒤지면 나올게 더 있을 것이다. 꾸준히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쉽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별 것 아니게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해서는 안 될 행위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그 십만원은 누가 가져갔을라나. ( '')  (미련을 갖는게 아니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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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8-05-0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주 멋진 아프락사스 님이십니다.
그나저나 십만원은 누구에게?? 3=3=3

승주나무 2008-05-05 03:42   좋아요 0 | URL
알라딘을 통해서 제게 오만원이 왔더군요.
또 자랑질(퍼퍼퍽!!!) ㅋㅋ

마늘빵 2008-05-05 09:50   좋아요 0 | URL
뭐뭐뭡니까. 승주나무님 리뷰당선되신건가요? 확인해봐야지.

파란여우 2008-05-0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아녜요 -.-
ㅋㅋ

마늘빵 2008-05-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 글쎄요. 십만원은 누구에게 갔는지는 저는 잘... 저는 아니라는. 진짜루 아니라는... -_-a
파란여우님 / 파란여우님이 쓰시면 바로 걸립니다. 대충써도. :)

302moon 2008-05-0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가 나와 깜짝(;) 양심을 속이지 않은 것, 멋져요. 박수, 짝짝짝.(웃음)

마늘빵 2008-05-04 23:27   좋아요 0 | URL
박수받자는건 아니고 -_-a 과거사 고백이라고나 할까요.

순오기 2008-05-0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녁에 이걸 읽고 추천만 하고 댓글은 못 달았어요. 몇몇 후배나 친구의 리포트에 도움 준 적도 있었고, 아예 내 걸 가져가서 안 가져 온 사람도 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어서 찔렸거든요. 물론 돈을 주고 받고 해 본 적은 없어요. 하여간 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야죠~ 잘 하셨어요!!^^

프레이야 2008-05-0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얼마전 제 경우가 생각나요.
'원칙대로 하길 원한다'는 제 말에 어떤 엄마가 계속 씹어대던군요.
자기는 원칙대로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못박더군요. 그게 휴머니즘은 아닐텐데요.
전, 원칙대로 되길 원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징계가 가해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자필로 서명했지요. 인간적으로 많이 생각한 나름의 배려였어요.
그런대도 제가 '~ 원한다'는 제 원칙에 대해 뭐라고 따지다니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아무튼 원칙대로 잘 하셨구요. 서평 빌려드린 건 좀 별로인 것 같아요.ㅎㅎ
참, 저도 하나 고백해요.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컨닝 시도했어요.
사회 시험시간이었는데요, 결국 제대로 못 보고 컨닝실패했어요.

마늘빵 2008-05-0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 사실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지나가는 일들이 꽤 많을 겁니다. 저도 가만히 떠올려보면 더 있죠. ^^ 앞으로 안하면 되는거죠.

혜경님 / ^^ 서평 빌려준 건 그렇죠. -_- 술자리에서의 약속이라해도 약속이었던지라. 혜경님은 그래도 커닝을 거의 안하셨네요. 전 오히려 초중고에서는 한번도 안하고 - 초등학교 때 성적에 안들어가는 시험이라고 보여줬다가 걸려서 혼난 적은 있어요 아주 눈물 쏙 빠지게 - 대학에 와서 그랬다는게 더 부끄럽군요. -_-
 


  얼핏 듣기로 유럽 어딘가에서는 흥행에 참패했는데 한국에서만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영화 <테이큰>을 봤다. 아마도 흥행의 원인은 최근 발생한 몇 건의 납치사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용은 전혀 모르고 단순히 '납치사건을 다룬 액션영화' 정도로 알고 봤는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니면서도,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경쾌하지도 깔끔하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액션물이랄까. 액션물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고 있는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를 단순 액션 영화로 받아들일 수 없는건, 나의 내면의 분노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제일 하고픈 말은, 쌍욕이었다. 개X러새X 같은. -_- 차마 온전히 단어를 다 옮기지는 못하고. 영화 속 주인공 아저씨는 정말 신기에 가까운 80년대식 완전 무술을 선보이시는데, 내가 <람보>나 <다이하드>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달까. (<다이하드>는 그래도 아저씨가 많이 맞고 피흘리고 고생하니깐 완벽한 1인 액션으로 보기는 어렵다.) 요즘은 홀로 펼치는 '주먹구구식 만능 액션'보다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머리쓰며 지능적으로 복수하고 처벌하는 '복합 지능형 액션'이 먹히는데 - 가령 <본 얼티메이텀>시리즈 같은 - 무대뽀 액션을 가지고 관객을 끌어모을 생각을 했다니.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건 정말 주먹구구식 액션이긴 했지만,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한 주먹에 아홉명씩 떨어져나가는' 액션보다는 아저씨에게 감정이입되어 그 분노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게 되더라. 이 영화를 보면서 작년에 봤던 <호스텔>이 떠올랐는데, 범죄의 대상을 물색하는 방식이 일치한다. 갓 여행 온 파릇파릇한 이쁘장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절을 미끼삼아 꼬드겨내고 납치를 감행, 마약을 수시로 주사해 정신을 잃게 만든 뒤 창녀로 만들거나, 돈 많은 부자에게 경매를 통해 팔아넘긴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이런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정말 충분히, 어쩌면 모르는 사이에 광범위하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어디 신문에 나오고 티비 뉴스에 나와야만 실제로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마치 소위 말하는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사실만을 현실에서 실제 발생하는 사건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매일 새로운 뉴스거리가 쏟아진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란 사실. 세상엔 정말 개썅욕을 퍼부어도 부족한 놈년들이 가득하다. 뉴스는 오히려 충분히 드러나고 보여지는 사건만을 다루고 있을 것.

  작년이었던가. 동해바단지 서해바단지 모르겠는데, 젊은 남녀 둘이 배를 타고 어딘가를 들어가는데, 배 주인인 할아버지가 남자는 물에 빠뜨려버리고 여자를 성폭행하고 죽였다는 기사를 본 거 같다. 비단 해외 여행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납치-매춘' 사건이라는 사실. 어떤 개인의 잘못된 성적 욕구나 조직적인 범죄나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한 명이 당하느냐, 백 명이 당하느냐의 차이랄까. 공리주의자 벤담이라면 한 명이 당하는 것과 백 명이 당하는 것을 엄연히 일 대 백으로 나누어 후자를 더 큰 죄악으로 간주하겠지만,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이런 사건이 벌어진다는 자체에 우리는 분노해야 할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제일 먼저 내뱉고 싶은 말은 쌍욕이었고, 동시에 아저씨가 결국 주먹구구식 액션으로 모두를 평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딸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깔끔하지 않은건, 그 아저씨가 구하지 못한 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딸들이 마음에 밟혔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딸만 구한 것도 저 상황에선 대단해보이지만, 그럼 남은 여자들은 어떻게 하라고. 맹자라면 우선 다급한 상황에서 내 딸이라도 구해보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묵자라면 남은 이들을 두고 오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그 자신이 죽는다해도. 어떻게 보면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겠지만, 남은 이들이 끝내 마음에 밟힌다.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분노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분노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분노는 권장하고 지속적으로 키워야 한다. 미친소 수입이나 의료보험 민영화나 대운하 건설 같은, 영화 속 인신매매 같은 이따위 것들에 대해서는 분노를 키워야 한다. 분노는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테이큰>. 꼭 봐야 할 영화다. 보고 부정의한 짓거리에 대한 분노를 키워야 한다. 우리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 있는가 하면, 감정적인 분노를 표출해야 할 사안이 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는 감정적인 분노를 마음껏 표출해야 한다. 분노하고 욕을 퍼부어대고 부정의의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p.s. 바람직한 분노를 키울 수 있는 개봉 영화 : <식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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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5-04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분노를 효과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마샬아츠"를 열심히 수련해야 겠습니다.

마늘빵 2008-05-04 10:13   좋아요 0 | URL
메피님 그건 머에요? 또 새로운 숙제인거에요? :)

Mephistopheles 2008-05-04 19:43   좋아요 0 | URL
저기 무술의 일종이에요...숙제라고 하기엔 좀 과격하다는...ㅋㅋㅋ

마늘빵 2008-05-04 21:1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마샬아츠란 무술이 있군요. 이름이 멋져보이는데요. 얼마나 세길래. 저는 싸움엔 완전 젬병이라는.

순오기 2008-05-04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가진 부모 마음이 딱 그마음입니다. 시사회때 남편과 같이 보고 주위분들에게 많이 권했어요. 영화 '식코'는 아줌마들 동원해 택시 두대로 달려가 봤고요. 영화를 통해 문제의식을 깨우는 것, 정말 필요해요.
어제 지식e 베스트에서 식코도 편집해서 나오기에, 게임하던 아들녀석도 중지시키고 보게 했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 마음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야겠지요.

마늘빵 2008-05-04 10:15   좋아요 0 | URL
분노할 것에 대해서는 분노해야 합니다. 마치 모든 분노를 바람직하지 못한양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무때나 이성을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성은 판단할 때나 쓰는 것이고, 대응할 땐 최대한 감정적이 되어야죠. 그 대상이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대라면 더더욱.

Jade 2008-05-04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촛불문화제 전 집회에서 어떤 아주머니 분이 이런 농담을 하셨어요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 천명을 죽이면 영웅, 다 죽이고 이명박 혼자 살아남으면....?

나는 전설이다!"

뜬금없이 생각나서요 ㅋㅋ


이번에 표출된 건강한 분노를 보며 아직 우리사회가 역동적이라는 희망을 느꼈어요! ㅎㅎ

balmas 2008-05-0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를 권장함, 아주 멋진 표어네요. ^^

마늘빵 2008-05-0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드님 / 그 분 혼자 영화 찍으려나 봅니다. -_- 그래도 스텝은 확보해야할텐데 ( '')
발마스님 / ^^
 
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3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5월
절판


계몽사상가 루소는 사람들이 세상과 타인을 속속들이 볼 수 있을 때 투명한 사회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자신은 보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비대칭적 시선의 확장은 규율 사회와 감시 사회를 낳았다. 파놉티콘이라는 건물에 구현된 감시의 원리는 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 규율 사회의 기본 원리인 파놉티시즘으로 탈바꿈했다. -25쪽

기든스는 푸코가 이 둘의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주목하지 않고 단지 감옥에서 죄수를 통제하는 방법과 작업장에서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법을 동일시한닫는 점에서 푸코를 비판했다. 파놉티콘과 같은 건축물은 물리적 감금이 허용되는 감옥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고용주와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만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기든스의 비판의 요지였다. -54쪽

규율을 주입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사용했던 것은 당시 널리 보급되어 있던 시계였다. 시계는 노동자들을 근면하고 유능한 공장 노동자로 만든 중요한 메커니즘이었다. 공장에 시계가 도입되면서 작업은 생체 리듬이 아니라 시계의 시간에 맞춰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공장주가 시계를 독점하고 시간을 속여서 더 작업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정확한 시간의 중요성을 체화한 다음엥는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초과 노동에 대한 초과 수당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제 시간은 '때우는' 것에서 소비되고 사고 파는 것으로 변했다. '시간은 돈'이라는 식의 시간 관념이 중요해지면서 공장에는 작업 시간표와 작업량을 체크하는 표가 도입되었고, 이는 다시 규율과 시간 관념을 더욱 강화했다. -58-59쪽

전자건강보험증은 잠정적으로 포기되었지만 2002년 초 정부는 홍체나 얼굴형과 같은 생체 인식 전자 정보를 포함한 생체 인식 여권을 추진하기 위해 그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선진국은 추진하고 있는데 뒷짐만 지고 있다가는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측 논리다. 흥미로운 것은 전자주민카드를 추진할 때에도 정부는 이러한 핵심 기술에서 선진국에게 밀리면 안 되고, 오히려 이를 빠르게 추진함으로써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는 사실이다. -78쪽

2001년, 삼성 그룹은 참여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린 직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아직 기업에 의한 직원의 전자 메일 감시 등에 대한 법률적 규정이 없어 이러한 감시가 광범위하게, 직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91쪽

포스터는 자발성에 근거한 슈퍼파놉티콘이 파놉티콘을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회 전체를 관장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포스터의 수퍼파놉티콘은 가상 세상을 통한 파놉티콘의 권능 강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상 파놉티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디즈니월드에서 수많은 관광객에 대한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한 쉬어링과 스테닝은 그곳 통제의 특징을 "방문객의 자발적협조"라고 규정하면서, 파놉티콘식의 속박과 감시를 통한 통제가 아니라 미묘하고, 협력에 기초하고, 강제 없이 느슨하게 퍼져있는 통제의 네트워크가 현대 사회의 통제의 특성임을 지적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통제가 가능한가? 디즈니월드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듯이 "리얼리티쇼"의 세상이다. 여기에서 관광객들은 현란한 이미지를 구경 잘하고 즐기기 위해서 통제에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이를 조금 일반화해보면, 현대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부추기는 수만 가직 상품에 대한 현란한 이미지에 시선과 관심을 고정시킴으로써 통제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는 것에 만족한 나머지 보여지는 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102-103쪽

푸코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스펙터클의 사회"가 "감시 사회"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전자 파놉티콘의 사회에서는 "스펙터클"(보는 것)과 "감시"(보여지는 것)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현재는 스펙터클과 감시가 융합된 세상이다. 우리는 보여짐으로써만이 아니라 보는 과정에서도 감시와 통제의 네트워크에 포함된다. -103쪽

벤담의 파놉티콘은 푸코에 의해 현대 사회의 규율 메커니즘으로 탈바꿈했고, 푸코의 파놉티콘은 정보 파놉티콘과 전자 파놉티콘, 수퍼파놉티콘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19세기 이후 사회의 파놉티콘화와 더불어 의회, 언론, 시민운동과 같은 시놉티콘이 동시에 발전했으며, 정보 파놉티콘과 전자 파놉티콘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파놉티콘으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감옥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바로 감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았을 것"이라는 프랑스 작가 모리스 블랑쇼의 말이나 "현대사회=감옥"이라는 등식은 현대 사회와 조직에서의 통제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127쪽

미래는 부자를 제외하고는 프라이버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던 과거와 비슷해질 것이다. ......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시골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았지만, 미래에는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1999년 5월 1일자 -130쪽

사람들은 약간의 편리함을 위해 프라이버시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 당첨될 확률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경품 때문에 성명, 주소는 물론 전화번호까지 쉽게 제공한다. 적립금이나 마일리지 보너스를 위해 멤버쉽 카드를 만들고, 이를 위해 자세한 신상 정보를 제공한다. 공공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이점 때문에 폐쇄 회로 텔레비전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무관심하다. 핸드폰 전화번호는 이미 자기 사무실 전화번호만큼이나 공적인 것이 되었다. 실명 등록을 권하는 국내의 어느 포털 사이트는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아예 회원으로 등록할 수 없는 곳도 있다. -133쪽

기술의 궤적은, 기술이 새롭게 열어주고 힘을 부여하는 사회 세력들과 그 기술 때문에 힘을 잃게 되는 사회 세력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그때 그때 형성되는 불안정한 균형에 따라 불규칙하고 가지치기식인 경로를 따른다. 이러한 상호 작용 때문에 특정한 기술이 특정한 궤적을 그리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를 들어 정보기술은 반드시 '글로벌 파놉티콘'을 낳게 되어 있다는) 자칫 비관적인 결정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기술의 궤적에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이지, 기술의 초기 디자인에 각인된 발전 방향성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명백하게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기술을 놓고, 이 기술이 가져올 수도 있는 미래의 역설적인 결과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위험한 태도이다. 이럴 경우 기술의 궤적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궤적을 결정하는 것은 항상 기술과 사회 세력들의 다양한 개입 사이의 상호 작용이다.-139쪽

대부분의 데잍터베이스는 접근자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다른 패스워드를 지정해서 공개 정도를 차등적으로 결정한다. 파놉티콘이 시선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능했다면, 전자 파놉티콘은 정보 접근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능하다.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권력을 가진 어떤 자가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나를 옭아매는 파놉티콘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역파놉티콘은, 가능하지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운동과 다양한 NGO들에 의한 행정 및 사법 권력에 대한 감시, 대기업의 횡포와 통신, 인터넷 기업의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감시, 의정과 언론에 대한 감시, 시민운동의 또 다른 권력화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감시,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통제에 대한 반대운동, 정보의 수집을 제한하는 강력한 프라이버시법의 입법화, 그리고 역감시를 위한 정보 공개권의 확보 등이 결합할 때에 역파놉티콘이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140쪽

각주 56)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태도이다. 영국에서 사람의 조작에 의해 작동되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연구한 한 보고서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조작하는 사람이 뚜렷한 이유 없이 흑인 남성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카메라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슨 가핀켈, <데이터베이스 제국>, 195쪽.-151쪽

각주 98) 해킹과 해커 문화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도로시 데닝은 인터넷을 이용한 운동을 액티비즘, 핵티비즘, 사이버테러리즘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액티비즘은 인터넷을 연대, 홍보, 출판, 선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고, 핵티비즘은 가상 연좌 농성, 폭탄 메일 등을 사용해서 특정한 웹사이트나 통신을 일시 마비시키는 것이며, 사이버테러리즘은 비행기 관제 시스템 같은 기간 시설을 마비시켜서 살상과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 중 핵티비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이버액티비즘의 일부로 간주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이버테러리즘으로 간주되는 등 그 경계가 가장 모호하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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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출근을 핑계삼아 일찍 잠들었던 그날의 프로그램, 100분 토론을 '다시보기'했다.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나와서라기보다는 - 먼저 본 분들에 의하면 열심히 노트에 필기하는 모습밖에 안나왔다고 - 삼성 결과에 매우 심히 엄청나게 불만족스러운, 그간 삼성 제품 열심히 사다 썼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는가 궁금해서이다. 수사결과가 결과로 그치지 않고 100분 토론까지 이어진 건, 결과야 어찌됐든 미리 계획되었던 것이겠지만, 그만큼 논란이 많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일 터다.

  화제의 김용철 변호사를 더 이상 왜곡된 언론이나 찌라시 신문쪼가리를 통해 보지 않고, 온전히 생방송으로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고, 먼저 본 분들에 의하면, 함께 나온 김상조 교수란 분이 참으로 옳은 말만 논리정연하게 빠득빠득 말씀 잘 하셨다기에, 또 반대진영에 나온 한 교수가 전화연결된 시청자로부터 "저 교수 왜 나왔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기에, 이거 또 어떤 대화가 오갔기에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 그리고 더불어 지인을 티비로 보는 겸 해서 '다시보기'를 통해서라도 뒤늦게나마 보게 된 것. 

  디워 이후로 처음 본 100분 토론인거 같은데, 꽤나 재밌었다. 100분 토론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보인다. 어디서 이한유 교수 같은 분을 섭외한건지. 그 분 발언할 때마다 그 바로 뒤에 앉으신 호랑나비 무늬의 브라우스를 입고 나오신 이쁘장한 여자분의 표정이 아주 재밌었다. 그리고 그건 방송을 보고 있는 내 표정과 같았다. 더불어 손석희 교수 또한 사회자이기에 자기의견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당황스러운 모습을 몇 번 보여주더라는. 디워 이후 다른 100분 토론을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큼의 '후끈'은 아니었어도 충분히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이나 '라인업'이나 '무릎팍도사' 보다 재밌었다.

  100분 토론에서 김용철 변호사나 김상조 교수가 충분히 반대진영이 납득할만한, 이해할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발언했다고 본다. 금융실명제도 잘못되었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상속세를 무는 것도 잘못이라는 등의 발언과 합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 정말 이건 상식 이하의 발언이다 - 반대진영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아니 '수긍할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김상조 교수 덕분에 끄덕끄덕 많이 했고, 이한유 교수 덕분에 많이 웃었다. 그리고 김용철 변호사 같은 사람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살 맛 난다.

  100분 토론을 시청하고, 저녁에 한겨레 신문 <책과 생각>을 넘겨보니 최재봉 기자의 '김성동의 분노와 문학 현실'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나는 전혀 듣도보고 못한 작가이다보니 블로그에서 몇몇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음에도 자세히 읽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를 읽어보니, 사건이 복잡할 것도 없는지라, 알고 있는 그대로가 다 였다. 한 명은 추리소설가고 다른 한 명은 '한국문학' 대표작가에 들만한 분인 듯 하다. 그런데 문학과 지성사가 작년 11월에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이라는 네 권짜리 책을 내면서 그 둘을 혼동하여 하나로 묶어 해설을 달아버렸다는 것인데(해설자는 충북대 국문과 이익성 교수), 작가의 항의로 잘못나간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수정하거나 해설자와 출판사 대표가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고작 보내온 메세지가 "수정하겠다"인데, 아니 무슨 배짱으로 작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그 따위 해설을 달고, '한국문학선집'이란 거창한 제목으로 그 따위 책을 낸단 말인가. 그것도 창비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 문학 출판사로 손에 꼽히는 곳에서. 너무 부끄럽고 얼굴 빨개질만한 실수를 저질러서 자신들도 당혹스러워서 그런건지 모르겠다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내놓은 책들을 전량 걷어들여 수정하겠다고 하면 끝날 일이 왜 여지껏 지속되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시끄러워지고 이목이 집중되니깐 지난주에야 작가에게 사과를 한 것 같은데, 너무 늦었다. 너무. 명색이 문학 대표 출판사라는 곳과 대학 교수가 작가 하나 완전히 죽여버린 꼴이다.

  왜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삼성이 떠올랐을까. 하나는 재벌기업이고, 하나는 거대 출판사인지라 분야도 다르고, 다루는 내용물도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사건 내용과 맥락 또한 다 다르다. 그런데, 한 가지 같은 점이 있는데, 잘못하고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학과 지성사야 지난주에 겨우 사과했다고 하니 그나마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로서의 양심은 지킨셈(?)인데, 그야 시끄러워지니깐 뒤늦게 그리한 듯하고. 삼성은 아무리 시끄러워져도, 대한민국이 그 문제를 가지고 난리가 나도, 증거내놔, 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런 걸 보고 '삼성스럽다'라고 해야할지.

  아니 잘못한거 잘못했다고 그냥 말하는게,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는게, 뭐 그리 어려울까. 눈에 뻔히 보이는 잘못을 해놓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빠득빠득 우기고, 증거내놓으라며 그 사이 이리저리 손쓰고 자기들이 가진 증거 없애는 거보다, 그냥 깔끔하게 아 미안하다, 그동안 관행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순수하게 연구에만, 제품 개발에만 신경쓰도록 하겠다, 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어쩌면 문학과 지성사가 한참 뒤늦게라도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미 내놓은 출판물에 명백히 증거가 드러나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증거를 책을 산 모든 이들, 사지는 않아도 서점에서 책을 찾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만인에게 접촉가능한 증거물이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하고 잘못을 시인했는지도. 

  사과에 정말 인색한 사람들이 많다.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오늘은 어디를 갔다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나보다 몇살 어려보이는 한 청년이 DMB 핸드폰을 이용해 - 이게 티비 볼 수 있는 핸드폰 맞나? - 음량을 아주 크게 해놓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버스 안엔 빈 자리가 곳곳에 있었다.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그들 모두 거의 조용히 있었으니, 티비 소리는 매우 컸을 수밖에 없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막 대화를 하다가 푸하하하 크게 웃고 하는 걸 보면 오락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대화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대화를 한다는 사실, 웃는다는 사실만 감지될 뿐. (소리가 커도 내용이 들리진 않는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한 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다. 그러면서 눈으로 몇 번 흘겨줬지만, 그 사람은 열심히 작은 액정에 몰입해 있는지라 나의 이런 눈초리를 느꼈을 리 없다. 그런데 앞에 있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다른 청년이 뒤를 돌아, 너무 시끄럽잖아요, 버스 혼자 쓰는거 아니잖아요, 볼륨 좀 줄여주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열심히 티비 보던 청년이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받아들이고 핸폰을 아예 꺼버리지 않았다면, 나도 한 마디 더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물리적으로 그 분보다 거리를 두고 있었다.) 상황이 그쯤에서 마무리 됐으니 다행이지.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말을 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건, 볼륨을 줄이거나 핸드폰을 끄는 행위이지, 사과가 아니다. 당연히 사과가 있어야겠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당사자로부터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 잘못을 인지했다면 행동을 수정하는 건 당연하고, 나아가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할텐데 그러지 않는다. 사과를 하기엔 피해 본 이들이 어디 멀리 있거나 접촉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 행동을 수정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기에. 정말 고마워해야하는지 모르겠다만.

  어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지적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도 주변에서 쉽게 그에게 한 소리 날리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그런 사람들 부지기수로 봤다. 그런데 한 번도 그렇게 지적한 적이 없다. 왜냐. 한 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적해서 바로 행동을 수정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러리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피차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와 그 사이에 언쟁이 오갈 것이고, 그곳에 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몰릴 것이고, 여러 구경꾼들 앞에서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는 역할밖에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적을 했을 때 상대방이 수정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미리 전개상황을 예상해버리고 체념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여러번 목격했기에, 이미 아 그런 상황은 이렇게 전개되는구나, 에 대한 어떤 시나리오가 머리에 박혀있고, 그렇게 될거라면 에이 그냥 지나치자고 생각하게 되곤 한다. 삼성 사건도 그런게 아닐까. 분명 잘못된 일인줄 알지만, 지적해봐야 나만 피곤하고, 그러다보니 다들 못 본 채 지나가고, 그런데 갑자기 어떤 정의로운 분께서 혼자 총대를 메고 그거 잘못아니냐, 지적하니 당사자는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은 몰리고, 그들 중 누군가가 저 파렴치한, 어쩌고 하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사과하지 않은 채 발을 뺐으며, 구경꾼들은 에이 어디 이렇게 될거 모르고 있었나, 다 알고 있지 않았나, 문제제기한 놈만 안됐지, 하면서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간다. 작년엔가 접한 일본 기차 사건이 떠오른다. 한 남자가 혼자 앉은 젊은 여자 옆에 가서 흉기를 들이대고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그들은 그 남자의 협박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 여성은 기차 화장실에서 그 남자로부터 성폭행 당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관사에게도 경찰에게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마땅한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과하지 않아도 전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모든 사람들도 죄값을 치뤄야 한다. 김성동 사건은 그 사실을 안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로 인해 뒤늦게나마 출판사로부터 사과를 받았지만 - 그것도 미흡하다 - 삼성 사건은 이런저런 권력자들의 비호에 의해, 돈에 의해, '경제성장'이라는 유령에 의해, 그렇게그렇게 덮어졌다. 김용철과 사제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졌고, 삼성을 내버려둔 이들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100분 토론에서 어떤 여자분이 전화로, 삼성 사건을 지켜보면서 자기는 삼풍백화점 사건이 떠올랐다고 했다. 괜찮겠지, 문제 없겠지, 하고 내버려뒀다가 한번에 무너졌다는 말.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러한 결정을 내린 그들과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국민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사실. 우리는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한 마디씩 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소리 높여 그들에게 너 잘못한거 아니냐, 인정해라, 사과해라, 말한다면 그들도 마지 못해 뒤늦게라도 사과를 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삼성을 향해 한 마디씩 하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시끄럽게 티비를 보는 이들을 향해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것보다 쉽다. 직접 대면할 일도 없고,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으니.

  사과해라. 삼성아. 사과하자. 잘못했다고 사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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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4-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성동 이라는 사람이 두 명인데"가 아니고, 한 사람은 추리소설 작가 '김성종', 다른 사람은 <만다라>의 원작자 '김성동'입니다. 둘다 유명작가입니다. 혼동한다는 것부터가 난센스이고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마늘빵 2008-04-27 00:56   좋아요 0 | URL
아 이름도 다르군요. 수정하겠습니다. 김성종, 김성동. -_- 아니 이름도 다른데 왜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한대요.

Mephistopheles 2008-04-28 22:56   좋아요 0 | URL
"감성돔"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아 나의 뇌구조는 나도 잘 모를 때가 있어요..

마늘빵 2008-04-29 00:37   좋아요 0 | URL
메피님 그거 개그에요? -_-a

Mephistopheles 2008-04-29 01:19   좋아요 0 | URL
개그라뇨...단지 회가 먹고 싶을 뿐입니다.

Jade 2008-04-2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분토론 보셨군요. 양 이씨패널에 대한 네티즌들 의견을 검색해보다가 참 웃지못할 의견들을 많이 만났어요. 특히 김상조 교수와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험담...논리적 비판이라기 보단 감정적 분노에 더 가깝기에 험담이란 말이 적절할듯 하네요. 삼성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판단이라기 보단 종교더라구요. 어딜가나 말로 설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한번 깨닫는 기회였어요.

마늘빵 2008-04-27 00:57   좋아요 0 | URL
-_- 끌어들이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신도가 되고 참들 어쩌다 그리 됐는지. 무서운거죠 이런게.

다락방 2008-04-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성동'과 '김성종'은 제가 오늘 본 신문(어제 신문이지만 오늘 봤어요)에도 나왔어요. 읽다가 덮어버리기는 했지만.

지하철안에서 DMB 핸드폰을 이어폰 없이 보는것고 아주 불쾌하고, 시끄럽게 통화하는 것도 싫어요. 최근엔 영상통화까지 하더군요. 내참. 기가막혀서. 말씀하신대로 무슨 말인지는 정확하게 들리지도 않아요. 아마 그래서 더 짜증스러운지도 모르겠어요. 시끄럽고 큰데 웅얼대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영상통화까지 더해져서 대중교통 이용이 더 소란스러워졌어요.

내가 왜 저인간들 통화하는걸 들어야 하지? 내가 왜 저인간들 얼굴을 봐야하지?

왜 많은이들이 불편해하고 불쾌해하는 것에 대해 당사자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무리 내 생각과 같진 않다지만 기본적인 예의나 에티켓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는거 아닌가요?

잘못을 하지 말아야죠. 그런데 잘못을 하게됐다면 사과를 해야죠. 사과를 해야함이 마땅하죠. 내가 잘못했다, 고 상대에게 말하는것이 당연한거예요.

그런데 저 일본 기차 사건 말이지요. 그게 막상 내 눈앞의 현실이 된다면 나는 신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하나가 되서 그에게 덤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한 개인만이 신고를 한다거나 맞선다거나 하면 그 흉기가 자신의 앞에 들이밀어질 텐데, 그걸 감수하고 용기를 내어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누군가 한명이 먼저 용기를 낸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따르긴 하겠지만 누구든 그 처음의 한명이 되려고는 하지 않을테니 말이지요. 무서워요. 무섭고 불쾌한 일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본래 페이퍼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성폭행범들은 다 죽여버려야 될 것 같아요. 거세하거나. 한 여자의 인생을 완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거니깐요.

마늘빵 2008-04-27 09:03   좋아요 0 | URL
DBM에, PMP에, 뭐 각종 영상장비들 다 동원되더라고요 요새는. 전에는 엠피쓰리나 씨디피에 이어폰을 꽂고 크게 듣는 사람들 정도가 문제였는데, 요새는 아예 대놓고 켜고 들으니까요. -_-

살면서 잘못 숱하게 저지르고 다니지만,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말하면 되는거죠. 그리고 다시 안 하면 되는거죠.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하는 것을 못하는, 아니 안하는, 그리고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일본 기차 사건은, 성폭행범이 그 여자를 뒤로 데리고 간 뒤에도 시간이 있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해요. 그니까 성폭행 당하고 있는 그 시간에도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있었다는거죠. -_-

가넷 2008-04-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백분토론 봤는데, 재미있었어요. 저도 이 교수님 발언 할때 뒤에 계신 분이 참 예뻐 보이더라구요(????)

마늘빵 2008-04-27 08: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분 유심히 봤어요. 아무래도 가넷님과 저는 비슷한듯. (뭐가?)

야클 2008-04-2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드립니다. 맨날 염장성 페이퍼만 올려서.

마늘빵 2008-04-27 16:42   좋아요 0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클님! :) 야클님은 염장질 계속해도 돼요. 자극받아서 빨랑 저두 결혼(동거)해야죠.

도넛공주 2008-04-2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과를 잘 하는 편인데,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충고도 가끔 들어요."너 그러면 사회생활 못한다"는게 그이들의 요지랍니다.자세히 좀 설명해주지.음.

마늘빵 2008-04-27 21:31   좋아요 0 | URL
흐음, 명백히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하는 건 당연한건데 말여요. 잘못인지 아닌지 명확치 않은 것은 더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Mephistopheles 2008-04-2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안하는 이유가 간단하죠. 자신들이 한 행동이 절대 잘못이라고 생각을 않하는 거죠..^^
모두가 잘못이라해도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것...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마늘빵 2008-04-27 23:41   좋아요 0 | URL
-_- 글쵸. 그거죠. 정신상태가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는 것. 아 길게 말했는데 메피스토님이 한 줄로 요약하시네요. 크크.
 
미셸 푸코 살림지식총서 25
양운덕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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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그것을 지니고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로 설명하지 않고 권력이 주체 없이 행사된다고 볼 필요가 있다.

푸코는 권력을 어떤 개인, 집단, 기구가 소유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으로 본다. "권력, 그것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한도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이다."(푸코, 1976, 122)-17-18쪽

푸코는 특정한 권력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론을 생산하고 축적하고 유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권력은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작용한다. 이처럼 개인에 관한 진리가 권력의 작용조건이라면 근대 권력의 특성이 억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7쪽

"권력은 진리 추구를 제도화하고 (학교, 군대, 병원, 감옥에서) 전문화하고, 그에 대해서 보상하거나 처벌한다. 이처럼 권력 관계는 상품, 부를 생산하는 것처럼 진리를 생산한다. 진리의 담론은 (부분적인) 결정권을 지니며, 권력의 효과를 실어 나르고 가동시킨다. 이처럼 개인들은 (권력의 효과를 지니고 있는) 진리의 담론 안에서 재판 받고, 선고받고, 분류도고, 일을 강요당하며, 사는 방식은 물론이고 죽는 방식까지 지정받는다."(푸코, 1997, 22-3/43)-48-49쪽

푸코는 전면감시장치가 권력의 작용을 '자동적인 것'으로, 비인격적인 것으로 만드는 점에 주목한다. 이 장치는 비주체적으로 작용한다. 곧 이 장치가 확보하는 권력의 원천에 특정한 인물이 있을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이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장치를 작동시키는 의도나 동기에 따라서 기능이 달라지지 않는다. 즉, 이 장치의 효과는 주체의 의도와 무관하다. 전면감시장치를 장난삼아서 이용하는 경우이거나 진지하게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려는 철학자의 지적 호기심이거나, 몰래 훔쳐보기 위한 것이거나에 상관없이 이 장치는 '똑같이' 작용한다. 재미로 작동시키는 쪽이 덜 효과적인 것도, 진지한 쪽이 더 바람직한 것도 아니므로 (주체의 의도보다는) 이 장치가 산출하는 일정한 효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푸코, 1975, 203-4/298)-54쪽

각주7) 푸코는 서구의 경제적 도약이 가능하려면 자본축적뿐만 아니라 '인간축적을 관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인간과 자본의 축적은 상관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부양하면서 동시에 생산 기구를 확장하지 않는다면 인구축적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반대로 누적된 집단을 유용하게 노동하도록 하는 기술은 자본축적운동을 가속화한다. 즉, 생산기구상의 기술적 변화, 노동 분업, 규율 절차를 정교하게 하는것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런 지적은 자본주의의 생산적 토대가 생산기구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는 절차들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고 보는 견해를 보완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자본주의 경제의 확장은 그 구체적인 작동을 가능케 하는 규율 권력을 낳았고, 그것을 일반화한 양식, 힘과 신체를 복종시키는 방식인 정치 해부학은 다양한 정치기구나 제도로 이용된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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