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출근을 핑계삼아 일찍 잠들었던 그날의 프로그램, 100분 토론을 '다시보기'했다.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나와서라기보다는 - 먼저 본 분들에 의하면 열심히 노트에 필기하는 모습밖에 안나왔다고 - 삼성 결과에 매우 심히 엄청나게 불만족스러운, 그간 삼성 제품 열심히 사다 썼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는가 궁금해서이다. 수사결과가 결과로 그치지 않고 100분 토론까지 이어진 건, 결과야 어찌됐든 미리 계획되었던 것이겠지만, 그만큼 논란이 많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일 터다.
화제의 김용철 변호사를 더 이상 왜곡된 언론이나 찌라시 신문쪼가리를 통해 보지 않고, 온전히 생방송으로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고, 먼저 본 분들에 의하면, 함께 나온 김상조 교수란 분이 참으로 옳은 말만 논리정연하게 빠득빠득 말씀 잘 하셨다기에, 또 반대진영에 나온 한 교수가 전화연결된 시청자로부터 "저 교수 왜 나왔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기에, 이거 또 어떤 대화가 오갔기에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 그리고 더불어 지인을 티비로 보는 겸 해서 '다시보기'를 통해서라도 뒤늦게나마 보게 된 것.
디워 이후로 처음 본 100분 토론인거 같은데, 꽤나 재밌었다. 100분 토론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보인다. 어디서 이한유 교수 같은 분을 섭외한건지. 그 분 발언할 때마다 그 바로 뒤에 앉으신 호랑나비 무늬의 브라우스를 입고 나오신 이쁘장한 여자분의 표정이 아주 재밌었다. 그리고 그건 방송을 보고 있는 내 표정과 같았다. 더불어 손석희 교수 또한 사회자이기에 자기의견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당황스러운 모습을 몇 번 보여주더라는. 디워 이후 다른 100분 토론을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큼의 '후끈'은 아니었어도 충분히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이나 '라인업'이나 '무릎팍도사' 보다 재밌었다.
100분 토론에서 김용철 변호사나 김상조 교수가 충분히 반대진영이 납득할만한, 이해할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발언했다고 본다. 금융실명제도 잘못되었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상속세를 무는 것도 잘못이라는 등의 발언과 합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 정말 이건 상식 이하의 발언이다 - 반대진영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아니 '수긍할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김상조 교수 덕분에 끄덕끄덕 많이 했고, 이한유 교수 덕분에 많이 웃었다. 그리고 김용철 변호사 같은 사람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살 맛 난다.
100분 토론을 시청하고, 저녁에 한겨레 신문 <책과 생각>을 넘겨보니 최재봉 기자의 '김성동의 분노와 문학 현실'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나는 전혀 듣도보고 못한 작가이다보니 블로그에서 몇몇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음에도 자세히 읽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를 읽어보니, 사건이 복잡할 것도 없는지라, 알고 있는 그대로가 다 였다. 한 명은 추리소설가고 다른 한 명은 '한국문학' 대표작가에 들만한 분인 듯 하다. 그런데 문학과 지성사가 작년 11월에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이라는 네 권짜리 책을 내면서 그 둘을 혼동하여 하나로 묶어 해설을 달아버렸다는 것인데(해설자는 충북대 국문과 이익성 교수), 작가의 항의로 잘못나간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수정하거나 해설자와 출판사 대표가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고작 보내온 메세지가 "수정하겠다"인데, 아니 무슨 배짱으로 작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그 따위 해설을 달고, '한국문학선집'이란 거창한 제목으로 그 따위 책을 낸단 말인가. 그것도 창비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 문학 출판사로 손에 꼽히는 곳에서. 너무 부끄럽고 얼굴 빨개질만한 실수를 저질러서 자신들도 당혹스러워서 그런건지 모르겠다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내놓은 책들을 전량 걷어들여 수정하겠다고 하면 끝날 일이 왜 여지껏 지속되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시끄러워지고 이목이 집중되니깐 지난주에야 작가에게 사과를 한 것 같은데, 너무 늦었다. 너무. 명색이 문학 대표 출판사라는 곳과 대학 교수가 작가 하나 완전히 죽여버린 꼴이다.
왜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삼성이 떠올랐을까. 하나는 재벌기업이고, 하나는 거대 출판사인지라 분야도 다르고, 다루는 내용물도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사건 내용과 맥락 또한 다 다르다. 그런데, 한 가지 같은 점이 있는데, 잘못하고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학과 지성사야 지난주에 겨우 사과했다고 하니 그나마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로서의 양심은 지킨셈(?)인데, 그야 시끄러워지니깐 뒤늦게 그리한 듯하고. 삼성은 아무리 시끄러워져도, 대한민국이 그 문제를 가지고 난리가 나도, 증거내놔, 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런 걸 보고 '삼성스럽다'라고 해야할지.
아니 잘못한거 잘못했다고 그냥 말하는게,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는게, 뭐 그리 어려울까. 눈에 뻔히 보이는 잘못을 해놓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빠득빠득 우기고, 증거내놓으라며 그 사이 이리저리 손쓰고 자기들이 가진 증거 없애는 거보다, 그냥 깔끔하게 아 미안하다, 그동안 관행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순수하게 연구에만, 제품 개발에만 신경쓰도록 하겠다, 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어쩌면 문학과 지성사가 한참 뒤늦게라도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미 내놓은 출판물에 명백히 증거가 드러나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증거를 책을 산 모든 이들, 사지는 않아도 서점에서 책을 찾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만인에게 접촉가능한 증거물이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하고 잘못을 시인했는지도.
사과에 정말 인색한 사람들이 많다.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오늘은 어디를 갔다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나보다 몇살 어려보이는 한 청년이 DMB 핸드폰을 이용해 - 이게 티비 볼 수 있는 핸드폰 맞나? - 음량을 아주 크게 해놓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버스 안엔 빈 자리가 곳곳에 있었다.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그들 모두 거의 조용히 있었으니, 티비 소리는 매우 컸을 수밖에 없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막 대화를 하다가 푸하하하 크게 웃고 하는 걸 보면 오락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대화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대화를 한다는 사실, 웃는다는 사실만 감지될 뿐. (소리가 커도 내용이 들리진 않는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한 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다. 그러면서 눈으로 몇 번 흘겨줬지만, 그 사람은 열심히 작은 액정에 몰입해 있는지라 나의 이런 눈초리를 느꼈을 리 없다. 그런데 앞에 있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다른 청년이 뒤를 돌아, 너무 시끄럽잖아요, 버스 혼자 쓰는거 아니잖아요, 볼륨 좀 줄여주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열심히 티비 보던 청년이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받아들이고 핸폰을 아예 꺼버리지 않았다면, 나도 한 마디 더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물리적으로 그 분보다 거리를 두고 있었다.) 상황이 그쯤에서 마무리 됐으니 다행이지.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말을 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건, 볼륨을 줄이거나 핸드폰을 끄는 행위이지, 사과가 아니다. 당연히 사과가 있어야겠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당사자로부터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 잘못을 인지했다면 행동을 수정하는 건 당연하고, 나아가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할텐데 그러지 않는다. 사과를 하기엔 피해 본 이들이 어디 멀리 있거나 접촉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 행동을 수정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기에. 정말 고마워해야하는지 모르겠다만.
어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지적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도 주변에서 쉽게 그에게 한 소리 날리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그런 사람들 부지기수로 봤다. 그런데 한 번도 그렇게 지적한 적이 없다. 왜냐. 한 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적해서 바로 행동을 수정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러리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피차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와 그 사이에 언쟁이 오갈 것이고, 그곳에 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몰릴 것이고, 여러 구경꾼들 앞에서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는 역할밖에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적을 했을 때 상대방이 수정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미리 전개상황을 예상해버리고 체념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여러번 목격했기에, 이미 아 그런 상황은 이렇게 전개되는구나, 에 대한 어떤 시나리오가 머리에 박혀있고, 그렇게 될거라면 에이 그냥 지나치자고 생각하게 되곤 한다. 삼성 사건도 그런게 아닐까. 분명 잘못된 일인줄 알지만, 지적해봐야 나만 피곤하고, 그러다보니 다들 못 본 채 지나가고, 그런데 갑자기 어떤 정의로운 분께서 혼자 총대를 메고 그거 잘못아니냐, 지적하니 당사자는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은 몰리고, 그들 중 누군가가 저 파렴치한, 어쩌고 하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사과하지 않은 채 발을 뺐으며, 구경꾼들은 에이 어디 이렇게 될거 모르고 있었나, 다 알고 있지 않았나, 문제제기한 놈만 안됐지, 하면서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간다. 작년엔가 접한 일본 기차 사건이 떠오른다. 한 남자가 혼자 앉은 젊은 여자 옆에 가서 흉기를 들이대고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그들은 그 남자의 협박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 여성은 기차 화장실에서 그 남자로부터 성폭행 당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관사에게도 경찰에게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마땅한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과하지 않아도 전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모든 사람들도 죄값을 치뤄야 한다. 김성동 사건은 그 사실을 안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로 인해 뒤늦게나마 출판사로부터 사과를 받았지만 - 그것도 미흡하다 - 삼성 사건은 이런저런 권력자들의 비호에 의해, 돈에 의해, '경제성장'이라는 유령에 의해, 그렇게그렇게 덮어졌다. 김용철과 사제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졌고, 삼성을 내버려둔 이들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100분 토론에서 어떤 여자분이 전화로, 삼성 사건을 지켜보면서 자기는 삼풍백화점 사건이 떠올랐다고 했다. 괜찮겠지, 문제 없겠지, 하고 내버려뒀다가 한번에 무너졌다는 말.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러한 결정을 내린 그들과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국민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사실. 우리는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한 마디씩 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소리 높여 그들에게 너 잘못한거 아니냐, 인정해라, 사과해라, 말한다면 그들도 마지 못해 뒤늦게라도 사과를 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삼성을 향해 한 마디씩 하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시끄럽게 티비를 보는 이들을 향해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것보다 쉽다. 직접 대면할 일도 없고,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으니.
사과해라. 삼성아. 사과하자. 잘못했다고 사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