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한기호의 자기 생존 솔루션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0월
품절


"인간은 유희에 젖어 있을 때 비로소 진실한 인간이 된다. 노는 인간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최고 수준으로 발휘한다."(실러,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
-152쪽

책이나 잡지의 원고를 쓰던, 단 한 장의 제품 기획서를 쓰던, 단 한 줄의 광고 카피를 쓰던, 한 단어의 제품 이름을 정하더라도 그곳에는 늘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정보 편집의 장치와 원칙은 알아 두어야 한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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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우스님 서재에 달린 익명의 댓글에 대해 답합니다.

  '캡쳐사건'이라고 칭해질 만큼, 비판하기 위한 용도로 서재에 달린 댓글을 캡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시각이 한 쪽에 있는 듯 하다. 이런 시각이 존재할 걸 예상 못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흐트러질까 우려되어 굳이 예상되는 비판에 대한 대응 비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그간 주장은 하면서도 '보이는 근거'를 대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항변하는 것도 같고, 그다지 믿지도 않는 것 같았다. 일부의 이야기다.

  수 차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난 번 실명(닉네임)을 언급하기 전까지. 그러나, 씨도 먹히지 않아서 작년말에 올린 글 마지막 두 줄에 고민 끝에 '닉네임'을 언급했던 것이고, 결국 - 또 일부 사람들이긴 하지만 - '마녀사냥' 이야기까지 나왔다. 조금 전에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라는 책을 다 읽었다. 강준만이 실명 비판을 하다가 여기저기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그에 대해 차분히(?) 입장을 밝히는 책이다. 몇몇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사족이고, 실명비판으로 마녀사냥까지 언급되어 더 이상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어느분의 말씀대로  그간의 '학습'을 통해 고민 끝에 캡쳐를 하나 내놓기로 했다.  

  캡쳐를 내놓았을 때는 또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맥락과 상관없이 일부분만 떼어다가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을 받을 수 있어 - 가능한 비판이다 - 맥락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캡쳐를 골라서 올렸다. 장문의 댓글에 당시의 하이드님의 의도가 모두 담겨 있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드러낼 필요도 없이 그냥 이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내용과 상관이 없이 방법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 분이 다른 서재에서 "소름이 쫙 끼치"고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하셨다. 논점을 흐리는 발언이다.

  지식인과 학자, 언론인, 정치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어떤 주장을 내세우는 데 있어서 자료를 수집하는 건 기본이다. 그 사람이 낸 책이든, 블로그든, 댓글이든, 심지어는 세금계산서든 자료의 출처는 상관이 없다. 댓글을 캡쳐하여 인용한 게 내가 처음도 아니고, 그 동안 수차례 다른 사람들이 해왔던 일인데, 내가 했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면 정당하지 않다. 타인이 나를 비판할 때도 캡쳐를 이용해왔고, 타인이 또다른 타인을 비판할 때도 캡쳐를 이용해왔다. 이 마을에서 자료로 캡쳐가 사용된지는 수년이 지났다. 그런데 내가 해서 문제가 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캡쳐를 내놓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너댓차례 증거물(?)없이 주장을 내놓기도 했었고, 증거물 없이 실명비판도 했었다. 그러나 먹히지 않으니 나더러 이제 어떻게 하라는 건가. 그간의 일들을 아예 머리속에서 지우지 않는 이상에야 더는 나도 예의를 차릴 방법이 없다. 한 2년쯤 나름 배려한다고 내놓지 않았는데, 진작부터 내놨어야 했던건가. 미리 내놓지 않아 문제가 되는지, 아니면 캡쳐를 해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최초 문제제기를 할 때 전부 다 내놓고 끝냈다. 자료가 부족해서 그렇다면 더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참겠다. 이번에 내놓은 자료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 만큼 했다. 

  첨언. 그 누가 상처받은 것은 당사자가 나 상처받았소,하고 지나가는 사람 바지가랑이 붙들고 울어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페이퍼와 댓글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 사람과 얼굴 맞대고 앉아 흐르는 눈물을 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용산참사까지 꺼낼 필요는 없지만, 지금 마땅히 떠오르는 예가 없으니 양해바란다. 누가 불을 붙였는가를 따지기 전에 그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상복 입고 정부에 항의하는데 직접 가서 당신 상처받았소?, 하고 물어보는 건 바보짓이다. 그냥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상처받았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물어야 한다면, 수소문해서 당사자와 통화라도 해보겠다. 이 공간에 그 분과 연락하는 사람 한 명 정도는 있지 않겠나. 

  누구나 상처받을 수 있다. 꼭 불에 손을 대봐야 뜨겁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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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8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8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8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9월
절판


내가 볼 때에 진짜 문제는 ‘비판’에 대한 인식에 있는 것 같다. (중략) 전체를 싸잡아 하는 비판은 아무리 독하게 해대도 ‘건전한 비판’인 데 비해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지목해 실명으로 비판하는 건 ‘인신 공격’이라는 거다. -12쪽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러니까 피부에 와닿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을, 너무 거시적이어서 현실적인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 몽롱한 사안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는 그러한 태도 말이다.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비평 문화의 폐해를 매우 심각한 어조로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그것을 외면하고 침묵해버리는 이러한 ‘선택적 이중사고’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건강한 비판과 논쟁의 문화는 형성되기 어렵다."(이명원)-12쪽

"우리 시대의 비판은 일종의 의식으로 전락한 걸까? 늘 사회 각계를 향해선 온갖 비판을 일삼는 지식인이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선 성실하게 반론을 할 생각은 않고 서로 얼굴 빤히 아는 같은 동업자끼리 그럴 수 있느냐며 비판을 한 사람의 ‘인간성’ 문제를 들먹이며 욕하는 건 학계 주변에서 얼마든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비판은 왜 하는지 묻고 싶다. (중략) 왜 정치인들은 마음껏 비판하면서도 동업자 비판은 안 된다는 걸까? 혹 동업자 비판에 대한 비난은 ‘비판=쇼’라고 하는 원칙을 훼손한 것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다 끼리끼리 뜯어먹고 사는 이 세상에서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이 아니겠느냐 이 말이다."(강준만, <인물과 사상>15권, ‘한국 지식인은 왜 심약하고 비굴한가? : 학계의 패거리주의와 ‘침묵의 카르텔’’)-13쪽

임지현은 내가 "마녀재판을 주관"했다고 그러시는데, 나로선 그런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가 근무하는 한양대에 대거 침투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임지현의 수업을 거부한다고 난리를 피웠을리도 없을 테고, 또 내가 누구를 비판하면 그 사람이 화형대에 설 만큼 내 힘이 강한 것도 아닌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임지현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한국 최대의 비대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의 지원 사격까지 받고 계신 분이 나에 대해 ‘마녀재판’ 운운하시니 언어 사용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하셔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87쪽

임지현이 나에 대해 느낀 분노는 인간 강준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실명비판’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임지현은 ‘실명비판=마녀사냥’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89쪽

나도 조심하겠지만, 우리 제발 감정이 격화되어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식의 싸움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90쪽

이진우식 글쓰기가 공격적 글쓰기에 비해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추상화의 수위가 한두 단계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감대의 ‘깊이’를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넓이’는 이진우식 글쓰기가 더 유리하지만, ‘깊이’는 공격적 글쓰기가 더 유리하다는 겁니다. 저는 ‘넓이’보다는 ‘깊이’가 더 필요하다고 보지만, 두 가지 종류의 글쓰기가 평화공존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진우식 글쓰기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비판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적 글쓰기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셨습니다. -97쪽

"조선일보를 얘기하려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기생하면서 사는 중산층 얘기를 해. 그게 뭐냐면, 전두환이 사람 때려죽이고 정권 잡은 다음에 중산층한테 국물을 조금 떨어뜨려줬단 말이야. 그래서 강남에 형성된 중산층들이 원죄의식이 있단 말이야. ‘아이, 전두환 이거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아이 몰라, 술 한잔 먹자, 돈 몇푼 생겼는데….’ 그러는 거지. 그래서 자신들의 원죄의식을 달래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해. 그럴 때 거대한 체계를 던져주면 덥석 문다고. 천민자본주의에서 형성된 중산층들이 그걸 자기의 이데올로기로 가져간 거야. 조선일보도 그 이데올로그를 자처할 때 이득이 생긴다는 걸 알아. 안다고. 둘이 붙어먹으면서 수지가 맞은 거야. 근데 재밌는 게 조선일보는 또 좌파 쪽을 팔아요."(황석영, ‘김규항, 김어준의 쾌도난담’(한겨레21 2000년 1월 6일)-104쪽

내가 출판 담당 기자래도 강준만의 책은 안 다뤄줄 것이다. 죽어라 하고 언론을 두들겨 패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강준만은 책을 너무 많이 낸다. 게다가 도무지 낯짝을 구경할 수 없는데다 인터뷰하자고 팩스를 몇 번 보내도 가부 연락조차 아예 해주질 않는다. 이런 싸가지 없는 저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신문들이 내 책을 거의 다뤄주지 않아도 억울해 하지도 않거니와 불만도 없다. 내 불만은 지극히 공적인 것이다. -117쪽

나는 번역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한국 신문들이 외국 유명 지식인들이 낸 책의 번역판에 베푸는 특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18쪽

저는 지식인의 저널리즘 행위 또는 대중매체 이용 행태와 그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도 건드리고 국문학자도 건드리고 경제학자도 건드리고 정치학자도 건드리고 소설가도 건드려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일망정 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생산해내는 현실참여적 글과 말에 대해서는 평가할 자격과 능력이 저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그런 믿음이 타당하며 그런 믿음에 근거한 저의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32쪽

위대한 철학자가 노상 방뇨를 했을 때 그걸 비판하는 건 위대한 철학의 이해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며 오히려 위대한 철학자이기 때문에 더욱 호된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133쪽

나의 이기주의를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그 어떤 독설로 공격하더라도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일 것이다. 나의 무식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진 않는데…"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대학 교수로서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아웃사이더’로 행세하는 나의 위선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재벌 총수들의 모임에도 아웃사이더는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중략)
그러나 나는 누가 나를 ‘지식인 혐오증’ 환자로 모는 것엔 결코 그 어떤 도량도 보여줄 수 없다. 내가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건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딱지는 내가 하는 모든 사회참여적 활동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런 비판에 임하여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보여줘야 할 도량이란 게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156-157쪽

나는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의 미덕과 공적인 논쟁에서의 미덕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며,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57쪽

운동이라는 게 뭔가? 나는 그게 ‘사람 장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람 장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적을 많이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몫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몫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 주장의 일부분에나마 공감하는 사람이 내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널리 퍼뜨린다면 그걸로 내 소임은 이루어지는 것일 뿐, 내가 중심이 되어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란 건 없다. 그게 바로 나의 한계이자 나의 몫이란 거다. -168쪽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는 아닐망정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많은 사람들이, 실명비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걸까? 물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는 정당한 비판마저도 ‘흠잡는 일’이라고 비하해서 부를 만큼 무얼 따지고 하는 일에 익숙지 않거니와 그걸 좀 상스럽게 보는 그런 문화를 갖고 있다.
-323쪽

한국인이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너만 깨끗하냐?"이다. 이는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의 의식 깊숙이 박혀 있는 것으로서, 나도 깨끗하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건데 왜 너만 잘났다고 모든 걸 까발려댐으로써 나를 불편하게 만드느냐 ‘이유 있는’ 항변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전국 차원’에선 내부 고발자에 대해 ‘용감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전국 차원’이란 건 그 내부 고발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대중매체들이 보여주는 당위의 차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민심은 그러한 당위와 거리가 멀다. 총체적 부패구조에 한 발을 담근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도 편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부 고발자가 소속돼 있는 조직에선 그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324쪽

나는 한국 국민이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부정부패는 척결되어도 좋지만 나의 부정부패는 ‘사람 있는 인정’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이중성이 한국인 다수의 머리에 콱 박혀 있다. -325쪽

한국인들이 진정 부정부패 척결을 원한다면,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로 몰거나 ‘무슨 딴 이유가 있겠지’라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중략) 한국인은 입으로는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내부 고발자에 대해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영원히 부정부패와 같이 뒹굴며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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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10-1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옥 같은 말씀들의 인용이네요.
정말 이성적/논리적/비판적으로 “따지는” 글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아름다운 글귀,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9-10-18 14:42   좋아요 0 | URL
밑줄치고 싶은 부분은 더 많았는데 고르고 골라서 올렸습니다. 요새 강준만의 옛 글들을 읽으려고 절판된 책까지 주문하네요. 중고샾에는 아직 몇 권이 남아있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10-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언급한 내용은 정곡을 찌릅니다.아무래도 자기 조직 내부의 문제가 되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마늘빵 2009-10-18 20:51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머리가 한번더 껍질을 벗는 듯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강준만의 글은 지금보다 그때것이 더 생생하고 살아있습니다. 주제는 옛것일지 몰라도 메세지는 현재진행형이에요.

글샘 2009-10-1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실명 비판을 하지 말고,
주어도 쓰지 말고,
곱게 말하자고 하잖습니까. ㅎㅎㅎ 쌀이 많이 남아 도니깐, 빨리 떡 돌리고 싶다고...

마늘빵 2009-10-18 20:52   좋아요 0 | URL
쌀 이야기는 뭔지 잘... 이해가...
 




  그러니까, 일명 체셔고양이 사건 때 '체셔고양이'를 몰아내려고 했던 건, 그냥 '싫어서'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싫어서' 토끼몰이를 하다니. 이때부터 계속 봐왔던 건데, 그녀의 비아냥과 막말은 대상과 수위를 가리지 않는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에 관해서 논하려면 개인의 호불호의 감정을 개입해선 안 된다고 본다. 체셔고양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하이드님의 코멘트는 '싫어서'였다. '싫어서'가 결국 세를 얻어 한 사람을 몰아냈다. 체셔고양이의 페이퍼가 좋든 싫든, 그 감정이 그녀를 몰아내는 동기가 되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하이드님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녀를 공격하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태우스님이 몇 시간 전 올린 페이퍼는 그동안 하이드님의 행적을 모르면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마태우스님이 하이드님이 단지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이전의 몇차례의 논쟁을 살펴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하이드님의 누군가를 향한 비아냥과 막말을 지적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지난번 나의 페이퍼 역시 그 연장에 있었다. 오히려 이전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으려고 했으나 사건이 커져서 일부분 둘러둘러 언급했던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들은 꺼내지도 않았다. 이건 그 중 하나다. 부족하다면 더 꺼내겠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길래 이때부터 보는대로 모으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대상 - 가령 예를 들면 이명박 - 에 대해서는 쉽게 욕을 첨가한다. 그는 내 곁에 있는 대상이 아니고, 나와 친분을 쌓은 대상도 아니기에 더 욕하기 쉽다. 평생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 주변에 있는, 더더군다나 나와 친한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보이면 그걸 지적하기는커녕 감싸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비판하거나 욕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제 주변 사람의 잘못부터 객관적으로 보고 조언하는 것이 기본이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곳 사람들 몇몇에게 실망감을 느낀 건 그런 부분이다.  

  호불호의 감정을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양 포장해서 내놓는데, 그게 의외로 먹힌다. 그게 참 묘했다. 왜 사람들이 그걸 모를까, 아니면 알면서도 호응해주는 걸까, 오래전부터 참 궁금했다. 재밌고 의미있는 페이퍼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런 페이퍼로 팬층을 끌어모아 누군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감정을 내놓는데 지지세력으로 활용한다. 평소 하이드님의 페이퍼를 좋아했던 사람이고, 하이드님이 서재에서 발언한 내용들을 잘 모르면, 또, 다른 사람들이 왜 이럴까,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앞뒤 사정 안 보고 무조건 지지를 보내는 데 대해선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마을에선 항상 먼저 문제제기하는 자가 '악'이 된다.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곳보다도 진보적이고 열려있지만,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닫혀있다.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게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고, 닫혀있는 건 분명하다.) 다들 말하기 조심스러워한다. 그냥 조용히 서재 꾸리면서 쉬고 싶은 사람들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고 피해입는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적극 나서서 말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관심을 갖고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집회에 참가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차 밀린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그런 비슷한 말이다. 
  
  마태우스님은 '정혜윤'의 책을 소재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중요한 건 정혜윤의 책이 읽을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아니다. 난 그녀의 책은 구경도 못했고, 글도 읽어 본 적이 없다. 관심 인물이 아니기에. 정혜윤의 책에 대한 타인의 서평에 어떻게 접근했느냐가 문제의 핵이다. 책이 아닌 알라딘에 리뷰든 페이퍼든 한 개라도 글을 쓴 사람들, '타인'에 관한 문제다. 예전부터 말하지만, 나는 하이드님이 '싫어서' 이런 페이퍼 쓰고 욕먹는 게 아니다. 하이드님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자꾸 말하는 거다. 삼겹살 구워먹으며 사이 좋게 잘 지내던 내가 이렇게 대립각을 세우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부의 문제를 비판하면 외로운 법이다. 그래서 전보다 많이 외로워졌다. 어떻게든 엮이는 다른 사람들과도 알게 모르게 사이가 벌어지니 말이다. 모르고 조용히 지내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첨언하는 내 심정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할 말이 없다면서 또 이렇게 말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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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향이나 감정은 상관할 바가 아니다
    from 내 안의 폐허에 닿아 2009-10-16 23:38 
      1  아프님,  저는 다른 사정을 잘 모르니까(체셔고양이님 사건을 모르니까)  제가 아는 부분에 대해서만 조금 말할께요. 물론 아프님의 입장은 이해가 됩니다만    호불호의 감정을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양 포장해서 내놓는데, 그게 의외로 먹힌다. 그게 참 묘했다. 왜 사람들이 그걸 모를까, 아니면 알면서도 호응해주는 걸까, 오래전부터 참 궁금했다. 
 
 
perky 2009-10-16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성적인' 아프락사스님도 좋고 '감성적인' 하이드님도 좋아요. 두분 다 알라딘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들이잖아요..그런 분들이 서로 비난하고 대립하는거 너무 속상해요. 앞으로 퍼질 파장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ㅠㅠ

푸하 2009-10-16 01:53   좋아요 0 | URL
약간 다른 얘기지만...
아프님이든 하이드님이든 이러한 사항에 대해서는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누가 옳은지 따져보는 것을 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엔 알라딘마을 주민들은 좋고 싫고에 따라서 합리적 생각을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perky 2009-10-16 07:01   좋아요 0 | URL
푸하님, 예전 일들을 끄집어내지 않고, 이번 사건만 '합리적'으로 놓고 본다면, 제 개인적으론 하이드님에겐 별 잘못 없다고 생각되어요. 읽은 책이 별로여서 안좋았다고 글쓴게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건가요? 마태우스라는 분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을정도로??? ('바보'라는 단어를 대체 몇번이나 쓴건가요?? 뿐만 아니라 인신공격적인 말들을 대놓고 엄청 퍼부었던데 그런 것이 한국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제겐, 마태우스라는 분이 하이드님에 대해 품고 있던 평소의 악감정이 그냥 폭발한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사실, 많은 알라디너 분들이 맘에 안든 책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비평의 글을 쓰곤 하잖아요..왜 하이드님에겐 똑같은 잣대를 주지 않는 건가요?)

푸하 2009-10-16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말씀 잘 들었어요. 제가 구체적 맥락에 대해서 잘 모르고, 특히나 전에 일도 잘 모르기에 말씀드리기가 지극히 조심스럽네요.
평소의 마태우스님은 마음속의 불편한 감정을 강한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유머섞인 풍자를 사용하였기에 앞선 포스트 보고는 평소의 스타일이 아니라 좀 다른신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마태우스님은 분명 현재의 일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말씀하신대로 '평소의 악감정'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한 감정은 견고하게 유지하던 '유쾌한 풍자'라는 마태우스님의 방식을 깰만한 감정이기도 한 거같구요.
전 하이드님에 대한 마태우스님의 감정이 이유를 가지고 있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에서 아프님이 인용하신 하이드님의 과거댓글을 보니 하이드님은 싫은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시는데 저로선 공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하이드님의 그러한 댓글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하이드님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자유로운 감정을 이야기 한 것이지만 그러한 자유가 남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될 수 있죠. 이러한 제 생각은 아마도 차우차우님이 마태우스님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동일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하이드님은 남이 싫으면(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선호의 문제) 싫다고 말하는 것이 뭐 문제냐?라는 입장이고
마태우스님은 아마도 (차우차우님의 가치관 처럼) 남이 싫다고 남에 대해 공개적으로 나쁘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신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 또한 그렇구요.
뭐... 여튼 그런 이유로 마태우스님이 하이드님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가지더 말씀드리면 위에 있는 하이드님의 댓글에 담긴 걸 보니... 가령 학교에서 같은 반으로 만난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왕따'시킬 그러한 논리를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마음에 안드는 사람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참는 게 좋은 것 같은데...그러시진 않는 것 같네요.

다락방 2009-10-16 08:48   좋아요 0 | URL
저는 푸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어쩌다 푸하님의 댓글을 보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시는 것 처럼 느껴져요.

위에 아프락사스님도 언급하신 것처럼 책에 대한 호불호나 평가는 물론 개인적인 것이지요. 그것 자체가-그것 하나만이-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모두의 앞에서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고(책의 저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싫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푸하 2009-10-16 14:54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처럼 당사자가 아니라 제가 모르는 '수많은 사실들'이 있음을 인정해요.
그러하기에 다른 사람 얘기 할 때는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야한다는 말씀 저도 십분동의합니다.
비밀댓글이 실수로 공개되셨다는 것은 제가 생각지 못했어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누가 싫으신 경우가 있다면 하이드님에게 피해를 주거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대로 두는 게 어떨까하는 건의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공개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셔도 싫은 감정을 마음에 품고 있는 상태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비아냥'(위에 하이드님의 댓글표현)을 표시하는 것은 어쩌면 직접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보다 상처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비밀댓글을 쓰셨는데 그건 말할 필요도 없이 개인적인 것입니다만. 그게 너무나 적나라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싫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 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 말씀해주신 내용중 " 한쪽 이야기만 들으시고, 부분만 들으시고 저에 대해 판단하시지 않"는 것을 하이드님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적용해보시는 것이 어떨까하는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글샘 2009-10-16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또,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군요. ^^
저도 책읽고 싫으면 싫다고 왕창 쏟아내는 스탈인데... 조심해야겠군요. ㅠㅜ

2009-10-16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6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6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10-1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라딘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이런 설전이 오가는군요.예전에 시무농님이 하시던 개인 홈피에 추리 소설과 관련되어 추리 마니아간의 거친 설전이 꽤 유명했지요.이글을 읽으니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네요.

2009-10-16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6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6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6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6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6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9-10-1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도 참. 빤쓰도 아니고 뭐 그런 걸 모으세요 :`(

하날리 2009-10-16 23:40   좋아요 0 | URL
흠...
간만에 보는 훌륭한 댓글이야요.

hanalei 2009-10-16 23:47   좋아요 0 | URL
흠...
미2.

하날리 2009-10-17 00:58   좋아요 0 | URL
빤스를 모으는 건 어떤 건가요?

hanalei 2009-10-17 01:01   좋아요 0 | URL
나르시즘이지...

땡땡 2009-10-17 13:20   좋아요 0 | URL
레이_시즌4님/ 누구의 빤쭈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닌가요?

비로그인 2009-10-17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밤입니다.

2009-10-17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7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9-10-1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아직도 이런건가? 아흠...
뭔가 알고싶다가도 알고싶지않아지는건 졸려서일까? =.=

마늘빵 2009-10-17 13:50   좋아요 0 | URL
어여 자.

비로그인 2009-10-17 15:41   좋아요 0 | URL
잠자기엔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시간인 듯 해요, 이리스 님(과연 바로 주무셨을지 궁금함)

이리스 2009-10-18 21:33   좋아요 0 | URL
날새고 일한 뒤 잠깐 자고 일어난 상태라서요 ㅋㅋ
바로 자고 싶었으니 곧 일하러 나갔어요. ㅜㅜ

yamoo 2010-03-18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게 싫어서 네이버에서 이리로 왔는데, 헉! 여기도...--;;

마늘빵 2010-03-18 09:47   좋아요 0 | URL
아하하. 저도 네이버에 블로그는 있는데 거의 방치 상태죠. 이거 하나 꾸리기도 그냥 버겁고, 요새 올릴 만한 페이퍼도 없고해서.
 
생태페다고지 - 탈토건 시대를 여는 생태교육 생태경제학 시리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9월
절판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아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화장실 물을 꼭 내려라.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64쪽

조경은 자연의 형상을 따라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시설물인데, 그렇다고 해서 조경물이 그 자체로 생태계인 것은 아니다. 그중에 어떤 것들은 생태계에 피해를 덜 줄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아주 많이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연은 조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 엄청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판단에는 감수성이 먼저 개입한다. 대체로 개발독재 시대의 사람들은 조경과 생태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88쪽

고등학생들 아니면 십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나중에’ 라는 말은 많은 교사들에게는 적어도 그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아주 좋은 임시방편이며, 이는 학부형에게도 마찬가지다. 하긴 지금의 고등학생이 생태에 대해 약간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자신의 앎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을 것이고, 또 그들에게 그렇게 앞장서라고 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교육적으로 옳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159쪽

농업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경제의 세계와 자연생태계 사이에 있는 입구이자 출구이며, 두 가지 모순되는 우주가 화해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은 공간으로 음식으로 그리고 정신으로 우리의 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어주는 문인 셈이다. 그러므로 ‘핸드폰 팔아서 쌀 사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경제의 생태적 전환이 영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185쪽

"혼자서 외치면 뻥이지만, 우리가 같이 외치면 길이 된다."-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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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10-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우석훈 신간을 벌써 다 섭렵하셨나는 말씀이잖아요...흐~

마늘빵 2009-10-14 11:11   좋아요 0 | URL
으흐흣. 연달아 다 읽었어요. 공저로 해서 한 권 더 나왔던데요?

turk182s 2009-10-14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내내 신간 3권다 읽었네요,,우박사는 볼수록 청소년,대학초년생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많은듯해요.청소년은미래다..뭐이런것같은데, 변태우파들이 점령한 한국사회에서 그래도 비젼은 10대한테있다..이런뜻인데, 근데 글발이 한국이 일말의 희망은 있지만 망해가는 속도가 너무빠르다 그래서 짜증난다. 뭐 이런 결론같습니다.

마늘빵 2009-10-15 00:03   좋아요 0 | URL
빠르시네요. ^^ 네 저도 읽으면서 그런 것 많이 느꼈습니다. 10대에 대한 애정. 많이 기대를 하고, 희망을 갖고 있는데 부응해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