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9월
절판


내가 볼 때에 진짜 문제는 ‘비판’에 대한 인식에 있는 것 같다. (중략) 전체를 싸잡아 하는 비판은 아무리 독하게 해대도 ‘건전한 비판’인 데 비해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지목해 실명으로 비판하는 건 ‘인신 공격’이라는 거다. -12쪽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러니까 피부에 와닿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을, 너무 거시적이어서 현실적인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 몽롱한 사안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는 그러한 태도 말이다.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비평 문화의 폐해를 매우 심각한 어조로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그것을 외면하고 침묵해버리는 이러한 ‘선택적 이중사고’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건강한 비판과 논쟁의 문화는 형성되기 어렵다."(이명원)-12쪽

"우리 시대의 비판은 일종의 의식으로 전락한 걸까? 늘 사회 각계를 향해선 온갖 비판을 일삼는 지식인이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선 성실하게 반론을 할 생각은 않고 서로 얼굴 빤히 아는 같은 동업자끼리 그럴 수 있느냐며 비판을 한 사람의 ‘인간성’ 문제를 들먹이며 욕하는 건 학계 주변에서 얼마든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비판은 왜 하는지 묻고 싶다. (중략) 왜 정치인들은 마음껏 비판하면서도 동업자 비판은 안 된다는 걸까? 혹 동업자 비판에 대한 비난은 ‘비판=쇼’라고 하는 원칙을 훼손한 것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다 끼리끼리 뜯어먹고 사는 이 세상에서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이 아니겠느냐 이 말이다."(강준만, <인물과 사상>15권, ‘한국 지식인은 왜 심약하고 비굴한가? : 학계의 패거리주의와 ‘침묵의 카르텔’’)-13쪽

임지현은 내가 "마녀재판을 주관"했다고 그러시는데, 나로선 그런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가 근무하는 한양대에 대거 침투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임지현의 수업을 거부한다고 난리를 피웠을리도 없을 테고, 또 내가 누구를 비판하면 그 사람이 화형대에 설 만큼 내 힘이 강한 것도 아닌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임지현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한국 최대의 비대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의 지원 사격까지 받고 계신 분이 나에 대해 ‘마녀재판’ 운운하시니 언어 사용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하셔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87쪽

임지현이 나에 대해 느낀 분노는 인간 강준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실명비판’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임지현은 ‘실명비판=마녀사냥’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89쪽

나도 조심하겠지만, 우리 제발 감정이 격화되어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식의 싸움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90쪽

이진우식 글쓰기가 공격적 글쓰기에 비해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추상화의 수위가 한두 단계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감대의 ‘깊이’를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넓이’는 이진우식 글쓰기가 더 유리하지만, ‘깊이’는 공격적 글쓰기가 더 유리하다는 겁니다. 저는 ‘넓이’보다는 ‘깊이’가 더 필요하다고 보지만, 두 가지 종류의 글쓰기가 평화공존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진우식 글쓰기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비판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적 글쓰기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셨습니다. -97쪽

"조선일보를 얘기하려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기생하면서 사는 중산층 얘기를 해. 그게 뭐냐면, 전두환이 사람 때려죽이고 정권 잡은 다음에 중산층한테 국물을 조금 떨어뜨려줬단 말이야. 그래서 강남에 형성된 중산층들이 원죄의식이 있단 말이야. ‘아이, 전두환 이거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아이 몰라, 술 한잔 먹자, 돈 몇푼 생겼는데….’ 그러는 거지. 그래서 자신들의 원죄의식을 달래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해. 그럴 때 거대한 체계를 던져주면 덥석 문다고. 천민자본주의에서 형성된 중산층들이 그걸 자기의 이데올로기로 가져간 거야. 조선일보도 그 이데올로그를 자처할 때 이득이 생긴다는 걸 알아. 안다고. 둘이 붙어먹으면서 수지가 맞은 거야. 근데 재밌는 게 조선일보는 또 좌파 쪽을 팔아요."(황석영, ‘김규항, 김어준의 쾌도난담’(한겨레21 2000년 1월 6일)-104쪽

내가 출판 담당 기자래도 강준만의 책은 안 다뤄줄 것이다. 죽어라 하고 언론을 두들겨 패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강준만은 책을 너무 많이 낸다. 게다가 도무지 낯짝을 구경할 수 없는데다 인터뷰하자고 팩스를 몇 번 보내도 가부 연락조차 아예 해주질 않는다. 이런 싸가지 없는 저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신문들이 내 책을 거의 다뤄주지 않아도 억울해 하지도 않거니와 불만도 없다. 내 불만은 지극히 공적인 것이다. -117쪽

나는 번역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한국 신문들이 외국 유명 지식인들이 낸 책의 번역판에 베푸는 특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18쪽

저는 지식인의 저널리즘 행위 또는 대중매체 이용 행태와 그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도 건드리고 국문학자도 건드리고 경제학자도 건드리고 정치학자도 건드리고 소설가도 건드려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일망정 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생산해내는 현실참여적 글과 말에 대해서는 평가할 자격과 능력이 저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그런 믿음이 타당하며 그런 믿음에 근거한 저의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32쪽

위대한 철학자가 노상 방뇨를 했을 때 그걸 비판하는 건 위대한 철학의 이해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며 오히려 위대한 철학자이기 때문에 더욱 호된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133쪽

나의 이기주의를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그 어떤 독설로 공격하더라도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일 것이다. 나의 무식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진 않는데…"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대학 교수로서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아웃사이더’로 행세하는 나의 위선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재벌 총수들의 모임에도 아웃사이더는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중략)
그러나 나는 누가 나를 ‘지식인 혐오증’ 환자로 모는 것엔 결코 그 어떤 도량도 보여줄 수 없다. 내가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건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딱지는 내가 하는 모든 사회참여적 활동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런 비판에 임하여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보여줘야 할 도량이란 게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156-157쪽

나는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의 미덕과 공적인 논쟁에서의 미덕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며,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57쪽

운동이라는 게 뭔가? 나는 그게 ‘사람 장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람 장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적을 많이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몫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몫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 주장의 일부분에나마 공감하는 사람이 내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널리 퍼뜨린다면 그걸로 내 소임은 이루어지는 것일 뿐, 내가 중심이 되어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란 건 없다. 그게 바로 나의 한계이자 나의 몫이란 거다. -168쪽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는 아닐망정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많은 사람들이, 실명비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걸까? 물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는 정당한 비판마저도 ‘흠잡는 일’이라고 비하해서 부를 만큼 무얼 따지고 하는 일에 익숙지 않거니와 그걸 좀 상스럽게 보는 그런 문화를 갖고 있다.
-323쪽

한국인이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너만 깨끗하냐?"이다. 이는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의 의식 깊숙이 박혀 있는 것으로서, 나도 깨끗하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건데 왜 너만 잘났다고 모든 걸 까발려댐으로써 나를 불편하게 만드느냐 ‘이유 있는’ 항변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전국 차원’에선 내부 고발자에 대해 ‘용감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전국 차원’이란 건 그 내부 고발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대중매체들이 보여주는 당위의 차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민심은 그러한 당위와 거리가 멀다. 총체적 부패구조에 한 발을 담근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도 편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부 고발자가 소속돼 있는 조직에선 그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324쪽

나는 한국 국민이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부정부패는 척결되어도 좋지만 나의 부정부패는 ‘사람 있는 인정’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이중성이 한국인 다수의 머리에 콱 박혀 있다. -325쪽

한국인들이 진정 부정부패 척결을 원한다면,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로 몰거나 ‘무슨 딴 이유가 있겠지’라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중략) 한국인은 입으로는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내부 고발자에 대해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영원히 부정부패와 같이 뒹굴며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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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10-1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옥 같은 말씀들의 인용이네요.
정말 이성적/논리적/비판적으로 “따지는” 글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아름다운 글귀,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9-10-18 14:42   좋아요 0 | URL
밑줄치고 싶은 부분은 더 많았는데 고르고 골라서 올렸습니다. 요새 강준만의 옛 글들을 읽으려고 절판된 책까지 주문하네요. 중고샾에는 아직 몇 권이 남아있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10-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언급한 내용은 정곡을 찌릅니다.아무래도 자기 조직 내부의 문제가 되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마늘빵 2009-10-18 20:51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머리가 한번더 껍질을 벗는 듯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강준만의 글은 지금보다 그때것이 더 생생하고 살아있습니다. 주제는 옛것일지 몰라도 메세지는 현재진행형이에요.

글샘 2009-10-1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실명 비판을 하지 말고,
주어도 쓰지 말고,
곱게 말하자고 하잖습니까. ㅎㅎㅎ 쌀이 많이 남아 도니깐, 빨리 떡 돌리고 싶다고...

마늘빵 2009-10-18 20:52   좋아요 0 | URL
쌀 이야기는 뭔지 잘... 이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