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Monde Diplomatiqu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8 - 한국판
르몽드(월간지) 편집부 엮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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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몽드)가 생긴다고 했을 때, 아직 실체도 구경하지 않았으면서 정기 구독을 신청한 바 있다. 6개월인가 1년짜리로 구독했는데, 시사 주간지와 월간지에서는 볼 수 없는 심도 있는 기사들이 많았다. 한국판이긴 하지만 르몽드이다보니 아무래도 프랑스 등 유럽과 미국의 몇몇 국가들에 관한 기사가 많았다. 국제 문제에까지 관심 가지는 않아서 한 번 구독한 이후에 다시 사지 않았는데 나온지 좀 된 지금, 다시 보니 'COREE 특집'이라고 하여 상당 분량을 이 땅의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이 코너가 처음부터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1면에는 철학자 김상봉 선생님의 글도 매달 실리고 있다. 르몽드를 손에 들지 않았다면 연재되는 줄 몰랐을 것이다. 일간지 경향신문과 주간지 시사In에서 가끔 김상봉 선생님의 글을 볼 수 있지만, 지면 한계상 글이 짧다. 하지만, 르몽드는 깊이 있는 장문의 글을 싣기 때문에 일간지와 주간지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이번달엔 '아직도 진보가 살아 있다고 믿는가?'라는 글이 실렸다. 글 마지막 부분을 옮긴다. 매달 김상봉 선생님의 이와 같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진보는 죽었다.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지금 진보정당들의 가장 치명적인 허위의식이 생겨난다. 낡은 것이 죽고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역사의 역사의 자연스러운 운행이니, 죽은 것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 보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새로운 진보의 역사를 바란다면,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먼저 낡은 진보의 역사와 미련 없이 이별해야 한다. 언제나 생명의 씨앗은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 그러나 나 자신 속에 새로운 세계가 숨어 있음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새로운 시대의 씨앗이 될 수 있겠는가?"

  르몽드 8월호에는 '소셜 미디어의 혁명', '지자체 재정위기의 역설', '금융개혁안 점검' 등을 크게 다루고 있다. 국내 기사 'COREE 특집'에서는 '소득보장제도의 새 패러다임'을 여러 지면을 할애하며 크게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사가 매우 신선했다.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는 "노동 유무와 무관하게 유아부터 노령자까지 모든 사회 성원에게 무조건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도 이 기사를 읽고 완전 혹 빠져버렸는데, 이 제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소득에 따라 다섯 그룹으로 분류하여,소득이 없는 자부터 월 200, 400, 800, 1,600으로 구분지어 각 그룹의 소득에 따라 세금을 거두고, 이를 분배해 기본소득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소득이 전혀 없는 자부터 최고 소득자까지 모두 기본 소득을 받는 것이 취지다. 따라서 부자라고 소외되지 않는다. 다만,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가져간다.

   이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면 이 나라의 부자들은 모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소득이 없는 자와 월 200이 안 되는 자가 태반인 마당에 이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 이 표에 따라 15%를 과세하면, 소득이 없는 자는 90만 원을, 200인 자는 세금을 내고 기본 소득을 받아 사실상 소득이 260이 되고, 400인 자는 430이, 800인 자는 770이, 1,600인 자는 1,450이 된다. 800만 원 이상 버는 사람들만 소득이 깎이고, 그 앞 단계 사람은 모두 실제보다 소득이 늘어난다. 일하지 않고 90만 원을 받는다고 하여 그 사람이 평생 그렇게 살기는 힘들다. 그 돈으로 4인 가족이 먹고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매우 매력적인 제도다. 이 기사는 제도를 소개하고, 혹시나 의혹을 품는 사람들을 위해 네 가지 답변을 준비해놓고 있다. 구입하여 일독을 권한다.  

  르몽드는 시사 주간지보다 글이 어렵다. 어렵다는 말은, 바꿔 말해 깊이 있고 내용이 알차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제 문제나 노동, 복지, 여성 문제 등에 관심이 있다면 르몽드를 구독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시사 주간지에서 느끼는 부족함을 르몽드로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는 눈도 많이 올라가리라 생각한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주소 : http://www.ilemonde.com/ 
* 1년 정기구독시 <르 디플로> CD를 제공하고, 창간호 이후 모든 르몽드 기사를 PDF파일로 제공한다. 또한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원문 일부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매력적인 부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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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8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9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m 2010-09-0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봉 선생님이 글을 실으시는군요! 아주 좋은 정보 받아갑니다 ^^
건강하시죠? 전 건강히 땀흘리며 농사를 배우고 있고요, 아주 좋답니다. ㅎㅎ
홍성의 '파란여우'님과의 인연은 아직 못닿았고요. 자연스레 인연이 닿음 닿으리라 여기며..
건강하세요!

마늘빵 2010-09-05 20:49   좋아요 0 | URL
아, 올 여름 고생 많으셨겠군요. 태풍도 지나갔는데 피해는 없었나 모르겠습니다. 상봉 샘 글이 매달 실리더라고요. 글이 길어서 전면에 일부가 실리고 나머지는 뒤쪽에 이어지고.

가넷 2011-11-1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실리는 저자도 보면 만만한(???) 사람들도 아니고, 번역글이라서 좀 있어서 그런지 좀 무거운 느낌이 강하더군요. 정기구독하고 싶긴 한데, 잡지는 정말 공간의 문제가.... 필요 부분만 스크랩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습관이 안되면 제법 귀찮은 일이라서...ㅠㅠ;
 
축제의 사회사 (양장) - 인문학의 눈으로 축제 들여다보기
김홍열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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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울은 책의 모양새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고 내용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한울에서 나오는 책은 다소 찾아 읽는 독자층이 좁지만 깊고 검증되었다. 기존에 한울에서 나온 책을 읽고 무난했던 독자라면 계속 한울에서 나오는 책을 믿어도 된다는 의미다.

  책은, 대학에서 독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김홍열이 후배의 축제 기획과 관련해서 조언을 해주다가 아예 작정하고 쓴 결과물이다. 글쓴이의 말대로, 한국은 언제부턴지 축제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이후 두 번의 월드컵은 바다 밖 먼 곳에서 치뤄졌지만, 그곳 못지 않게 이곳도 축제였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찾아보면 시청 광장에서 간간히 열리는 콘서트나 각종 문화 단체, 지방자치단체, 시, 구 주관으로 열리는 온갖 축제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모두 다 같은 축제는 아니다.    

  책의 한 대목을 살펴보면, 그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축제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축제가 아니라 반인간적이고 집단 광기적인 축제"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우리는 많은 축제를 보지만, 실상 시나 군, 구에서 주체하는 여러 축제들은 사실상의 축제가 아닌 '조작된 축제'에 불과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고 끌어모으고 억지로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진정한 축제는 얼마전 개봉한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열망을 모아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축제이다.  

  또, 그는 이어서 "신도들은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참여의 주체가 아니고 객체로 전락한다. 인류의 역사에는 정치와 축제가 어우러져 인류 보편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낸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아름다운 축제가 있는가 하면 정치와 축제가 결탁하여 인간을 파괴하고 인간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드는 암울한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축제는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 만들어놓은 장소에 몸만 덩그러니 와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상,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축제가 후자의 성격을 띤다.   

  미국 대선, 오바마의 연설 현장에서 그와 관중이 한데 어우러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UCC를 제작해 광활한 인터넷 공간에 퍼뜨리는 것 등등이 모두 축제다. 우리네 정치 문화에서도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 후보 출마시 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노무현의 영상과 말을 퍼뜨렸고, 그 파급력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 선거 이후 인터넷 공간은 정치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인위적 축제'로 둔갑시킨다. 똑같이 UCC와 포스터 등을 활용하지만,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참여시킨다. 이건 축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축제를 모르는 이들이 정치에 축제를 접목시키려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글쓴이의 말대로 축제 기획자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를 기획하고 연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나와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하고 그 출발점은 사회적 인간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철학적 통찰이어야 한다." 정치와 축제가 만나도 그것은 대등하게 만나야 하고,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일방 홍보와 밀어붙이기는 축제의 모습을 띤다 한들 축제가 아니다. 그냥 홍보다.  

  글쓴이는 정치와 축제를 비롯해서 축구, 페미니즘, 웃음, 죽음, 촛불 시위 등 다양한 곳에서 축제를 발견하고, 축제의 모습을 사회학적으로 살펴본다. 축제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역사적 사건과 축제는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우리네 삶 속에서 축제는 어떻게 드러나며, 오늘날 이땅의 축제는 어떤지 등을 다룬다. '축제의 사회사'라는 제목만큼이나 개론서적인 흐름을 따르고 있다. 그 내용도 하나의 축제 사회사 교과서의 성격을 띤다. '축제'를 기획하는 이들이 봤으면 하는 책이다. 그들에겐 철학이 있어야 하므로.

  "축제는 사람들의 영성이 가장 자유로울 때,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본인이라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대부분의 축제 때 등장하는 음주가무는 엑스터시를 위한 주요한 도구이지만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다. 막걸이 한 주전자만 있어도,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몇 곡만 있어도 축제가 열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성을 가장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는 어떤 모멘텀이고 그 모멘텀을 발생시키는 계기이며 진보적 사유다."

p.s. 찾아보니 한길사에서 나온 <축제의 문화사>라는 책도 있다. 관심 있는 이들이 함께 읽으면 괜찮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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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8-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네요.

마늘빵 2010-08-21 16:42   좋아요 0 | URL
^^ 약간 대학 교재나 참고 도서 같은 책입니다.

leeza 2010-08-2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꼭 한번 읽고 싶어요~
그리고 스펙에 관한 얘기는 참 어렵긴 하죠. 그 분에게 아프락사스님의 서재를 보여드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여기야 말로 아프락사스님의 스펙, 그 이상을 보여주는 곳이니깐요.

마늘빵 2010-08-21 22:39   좋아요 0 | URL
관심 주제별로 발췌해서 읽어도 무방한 책입니다. 축제 사회사 교과서라고 보시면 돼요. ^^ 스펙을 따지는 분에게 이 서재는 독입니다. 이건 또다른 의미의 스펙이 될 수는 있어도,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스펙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멉니다.

yamoo 2010-08-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로 관심이 가는 분야가 아니지만, 아프님이 재미없는 책을 재밌게 리뷰를 작성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루다가 추천을 만번 날려 드립니당~ㅎ

한울의 책들은 대부분 괜찮은 거 같은데요..가격이 좀 비싼 것이 단점입니다. 평균적으로 12000원 정도 된다 싶은 책들도 20000원대로 책정되는 것이 불만입니다. 그래서 한울의 도서는 잘 안사는 편이라는~ㅎㅎ

마늘빵 2010-08-22 22:15   좋아요 0 | URL
간파하셨듯이 재미로 읽는 책은 아닙니다. 기획으로 만들어진 책은 아니라서. 대학 강의의 교재나 참고 문헌 정도로 활용하기 좋은 책입니다. ^^ 한울, 휴머니스트, 한길사, 길 등 주로 안 팔리는 인문서들 꾸준히 내는 곳들이 값이 많이 비싸죠. -_-

leeza 2010-08-2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반감이 들 정도면 대단한 권력자인가 보네요. 그리고 그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구요. 자신의 서재가 타인에게 안 좋게 보일 거라는 생각도 혹 개인적인 생각이진 않을까요, 혹 진짜 그렇게 본다해도 나의 가치를 몰라주는 거라면 그 분과 같이 있는 게 무슨 의미일까도 싶구요. 암튼 여기에 하나씩 새겨 넣는 것들이 그대로 '아프락사스'님의 모습이니깐요~

마늘빵 2010-08-24 22:02   좋아요 0 | URL
아, 어떤 특정인을 의미하는 건 아니랍니다. ^^ 기업체 임원의 대부분이 직원의 블로그나 트윗질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요. 다른 업체에 있는 분께 들은 것도 있고. 잘 보이고 싶다는 건 별로 맞지 않고, 아무래도 기업에서 품팔아 밥벌이하려면 이 정도는 되는 위인이다라는 어필은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서재에 쌓아왔던 이런 글들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된다는 거죠. ^^ 여기서 온갖 이야기를 뱉어냈으니까요. 정치적 색깔도 드러내고. 이런 정치색 기업체에선 별로 안 좋아합니다. 게다가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저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기업이나 임원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너무 비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서 '아프락사스'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드러내기보다는 숨겨야 할 이름입니다. 뭐 여튼 그렇습니다.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찾아보면 글쓰기에 관한 책은 굉장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글쓰기 책이 나온다. 저자와 출판사는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아, 컨셉을 어떻게 잡지? 어떻게 하면 기존에 나온 글쓰기 책들과 차별화할 수 있을까? 딱히 방법은 없다. 좀 더 재밌고 쉽게, 그리고 무엇보다 몸에 와닿게 쓰는 수밖에.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성공했다. 저자는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좌를 열기도 했고, 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도 했다. 오랜 글쓰기 강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살아있는 사례로 기본 개념을 녹여낸다.   

  닫힌 표현과 열린 표현, 구체성과 보편성, 부분과 전체, 개념 재규정, 예시와 비유, 눈높이에 맞추기, 글감 찾기와 개요 짜기 등의 글쓰기의 기본이 되는 내용으로 책을 구성하였고, 이 기준을 고스란히 이 책(텍스트)에 적용해보면, 아주 잘 쓴 글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 책 자체가 글쓰기의 표본인 셈. 저자는 곳곳에서 자기 삶의 경험을 풀어놓는다. 자잘한 일화뿐 아니라 신용에 문제가 생겨 사채를 쓰고, 독촉 전화를 받는 상황까지도 글쓰기의 사례로 녹여냈다. 아, 얼마나 가슴 아픈가. 빚을 갚고 체크카드를 만들어 22인치 모니터를 사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난다. 내가 저자의 상황에 '공감'했기 때문일까.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인용문이다. 인용되는 책을 통해 저자의 독서 취향과 관심 분야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인용문은 또다른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는 에띠엔느 질송의 <중세철학입문>, 단테의 <신곡>, 칼 알베르트의 <플라톤의 철학 개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등이 언급됐다. 이 중 일부는 알고 있고, 읽기도 한 책인데, 저자가 특별히 강유원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강유원이 번역한 <인문학 스터디>, 쓴 <인문 고전 강의>, <장미의 이름 읽기> 등이 언급되었고, 특히 이윤기의 <장미의 이름> 번역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페이지를 많이 할애하며, 바람직한 비판의 사례로 강유원을 들고 있다.  

  이 책 표지와 내지에 실린 삽화가 다소 촌스럽고, 문체가 코믹하다고, 안에 들은 텍스트도 촌스럽고 코믹한 건 아니다. 살아있는 경험과 훌륭한 인용문, 주변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광고 문구를 취해 저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으며, 독자가 글을 잘 쓰기 위해 무엇을 외우거나 배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해준다. 글쓰기 책이라고 무게 잡고 자 한 번 써 볼까,가 아니라, 그냥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탁석산의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와 성격이 비슷하다. 둘 다 재밌고 알차다. 이강룡의 책이 '글쓰기'에 촛점을 맞춘다면, 탁석산의 책은 '논리'에 촛점을 맞춘다. 두 책을 함께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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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4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5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하버드 철학 리뷰 편집부 엮음, 강유원.최봉실 옮김 / 돌베개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지는 '하버드 철학'을 말하는 책. 하버드 철학과 학생들이 창간한 철학 잡지 '하버드 철학 리뷰'의 일부 인터뷰를 책으로 엮었다. 현재 하버드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학자들도 있고, 하버드를 거쳐 다른 곳으로 간 학자도, 하버드를 거치지 않은 미국의 타 대학의 철학자, 이미 세상을 뜬 몇몇 학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들과 최근 조용히 출간된 <남자다움에 관하여>의 저자이자 미국 엘리트 우파 학자로 일컬어지는 하비 맨스필드도 대상이다.   
 
  모두 열 네명의 학자를 한 책 안에 담다보니 내용이 체계적이지 않고, 그들의 철학에 대한 기본 입장을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인터뷰 형식이고, 질문 내용이 거의 대상 철학자의 세세한 부분을 건드려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번역엔 문제가 없지만 내 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인터뷰 형식의 책이라고 해서 쉽게 읽힐 거라고 속단하면 안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아주 술술 읽히는 편이고, 이 책은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렵다. 대상 철학자의 철학 흐름을 꾀고 있지 않으면. 관심있는 학자 부분만 발췌해서 읽어도 괜찮다. 내 경우엔, 하비 맨스필드와 존 롤스, 마이클 샌들, 피터 웅어 정도가 관심 학자인데, 생각보다 얻은 바는 많지 않다.  

  이 책을 계기로 관심이 가는 철학자의 저서를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이 좋겠다. 대략 미국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들이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연구하는 철학 분과는 이런 정도구나 하는 정보를 얻고, 이들이 쓴 저서로 넘어가면 된다. 내 경우엔, 이후에서 나온 하비 맨스필드의 <남자다움에 관하여>라는 책을 구입했다. 몰랐던 학자 중엔 알렉산더 네하마스 정도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소득이다. 피터 웅어의 책 <고상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1996)를 읽어보고 싶은데, 국내엔 번역본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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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 편집자를 위한 저작권 지식 살림지식총서 345
김기태 지음 / 살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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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매체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법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저작권법이 자꾸만 바뀐다. 아니 저작권법은 한 번 바뀌었는데 모르니 자꾸 바뀐다고 생각한다. 저작권법을 바꾸어도 대개는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에 하던대로 했는데 어느날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다. 법이 사람들의 행태를 따라가야 할지, 사람들이 법을 따라가야 할지도 의문이다. 새로 만들어 억지로 적용하다보니 법과 현실의 괴리가 자꾸 생길밖에.

  이 책은 '편집자를 위한 저작권 지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법전에 명시된 저작권법을 술술 읽어도 이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해설서(?)'가 나오고, 관련 기관에서 수시로 저작권법 교육도 하는 건데, 사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해설서도 어렵다. 항목을 나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살림총서다. 살림총서의 장점은 얇고 싸다는 것. 단점은 역시 얇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담지 못한다는 것. 

  이 책의 아쉬움도 거기에 있다. 저작권법을 쉽게 풀기는 했는데, 구체적인 사례가 별로 들어있지 않다. 그래도 사례를 넓게 묶어서 서술하기는 했다. 저자도 이런 단점을 알았는지 다른 출판사에서 사례를 묶어 책으로 냈다. <김기태 박사의 저작권 클리닉 - 저작권 상담사례 200선>. 2009년 7월에 나왔으니 따끈따끈하다. 살림총서 <저작권>도 2008년 하반기에 나와서 새 저작권법을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다년간 출판사에서 근무를 했다. 그래서인지 출판계에서 문제가 되는 저작권 사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관련 책을 얼마 본 건 아니지만, 초점을 잘 맞춰서 얇은 책에 잘 농축시켰다.    

  저자는 현재 출판에 대해 정의 내린 부분이 변화된 매체 환경과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작물을 인쇄 또는 이와 유사한 방법을 통해 문서 또는 도화의 형태로 복제해서 그 복제물을 배포하는 것”만을 출판으로 봤을 때, 문서나 도화의 형태 아닌 전자 매체는 출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e-book은 저작권법상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는 말. 앞으로 종이책보다 이북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이용한 변화된 출판물이 더 많아질텐데, 지금의 저작권법으로는 이것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저작권은 보고 또 볼 때마다 새롭다. 알던 내용도 이렇게 보면 다르고, 저렇게 보면 또 다르고. 현실은 조심스럽고, 법은 어렵다. 이 책이 관련 종사자들의 꽉 막힌 답답함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주리라 본다. 얇아서 금방 읽는다. 출근 길에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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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2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작권법 넘 어려워요^^

마늘빵 2009-09-28 11:47   좋아요 0 | URL
어려워요. 저도. 사안 생길 때마다 다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고.

글샘 2009-09-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점... 초점으로 씁니다.
저도 정글고등학교 그림을 좀 오려서 연구자료에 넣었더니 '저작권'에 걸린다기에... 김규삼님께 쪽지를 보냈더니... 교육용으론 써도 된다고 답신이 왔더라구요. 휴=3=3 어려운 세상입니다. ㅠㅜ

마늘빵 2009-09-28 11:49   좋아요 0 | URL
엇,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시험 문제 출제나 자료집 만드는 거에는 저작권이 엄격히 적용되진 않을텐데요. '교육용'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웬만한 건 다 허용될 거에요. 심지어 학교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것도 교육용이기 때문에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에는, 교육청에서 저작권법에 걸린다고 영화 상영하지말라고 공문도 내려오곤 했는데. 혹 영화를 보여주게 되면 요것도 알아보심이 좋을 듯. (동네 비디오 가게들에서 난리가 나죠 보통은. 장사 망친다고.)

글샘 2009-09-28 14:01   좋아요 0 | URL
일반계에서 영화 상영은 언감생심...이구요...
연구자료가 교사대상 자료로 교육청에서 발간되는 거라... 저작권법 대상이 되죠. ^^ 학교 안에서 쓸 거면... 문제가 적기도 하지만, 요즘엔 뭐든지 웹에 오를 수 있어서...

2009-09-28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9-29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께가 얇다는 말에 급호감^^
저작권 걸릴 일을 안하고 살수도 없고...ㅜㅜ

마늘빵 2009-09-29 10:16   좋아요 0 | URL
살림총서 두께가 아마 나와있는 책들 중 가장 얇을 겁니다. ㅎㅎ

머큐리 2009-10-0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마늘빵 2009-10-01 23:58   좋아요 0 | URL
엇, 네 ^^ 머큐리님두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