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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사회사 (양장) - 인문학의 눈으로 축제 들여다보기
김홍열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8월
평점 :
한울은 책의 모양새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고 내용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한울에서 나오는 책은 다소 찾아 읽는 독자층이 좁지만 깊고 검증되었다. 기존에 한울에서 나온 책을 읽고 무난했던 독자라면 계속 한울에서 나오는 책을 믿어도 된다는 의미다.
책은, 대학에서 독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김홍열이 후배의 축제 기획과 관련해서 조언을 해주다가 아예 작정하고 쓴 결과물이다. 글쓴이의 말대로, 한국은 언제부턴지 축제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이후 두 번의 월드컵은 바다 밖 먼 곳에서 치뤄졌지만, 그곳 못지 않게 이곳도 축제였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찾아보면 시청 광장에서 간간히 열리는 콘서트나 각종 문화 단체, 지방자치단체, 시, 구 주관으로 열리는 온갖 축제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모두 다 같은 축제는 아니다.
책의 한 대목을 살펴보면, 그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축제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축제가 아니라 반인간적이고 집단 광기적인 축제"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우리는 많은 축제를 보지만, 실상 시나 군, 구에서 주체하는 여러 축제들은 사실상의 축제가 아닌 '조작된 축제'에 불과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고 끌어모으고 억지로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진정한 축제는 얼마전 개봉한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열망을 모아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축제이다.
또, 그는 이어서 "신도들은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참여의 주체가 아니고 객체로 전락한다. 인류의 역사에는 정치와 축제가 어우러져 인류 보편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낸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아름다운 축제가 있는가 하면 정치와 축제가 결탁하여 인간을 파괴하고 인간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드는 암울한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축제는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 만들어놓은 장소에 몸만 덩그러니 와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상,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축제가 후자의 성격을 띤다.
미국 대선, 오바마의 연설 현장에서 그와 관중이 한데 어우러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UCC를 제작해 광활한 인터넷 공간에 퍼뜨리는 것 등등이 모두 축제다. 우리네 정치 문화에서도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 후보 출마시 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노무현의 영상과 말을 퍼뜨렸고, 그 파급력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 선거 이후 인터넷 공간은 정치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인위적 축제'로 둔갑시킨다. 똑같이 UCC와 포스터 등을 활용하지만,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참여시킨다. 이건 축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축제를 모르는 이들이 정치에 축제를 접목시키려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글쓴이의 말대로 축제 기획자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를 기획하고 연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나와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하고 그 출발점은 사회적 인간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철학적 통찰이어야 한다." 정치와 축제가 만나도 그것은 대등하게 만나야 하고,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일방 홍보와 밀어붙이기는 축제의 모습을 띤다 한들 축제가 아니다. 그냥 홍보다.
글쓴이는 정치와 축제를 비롯해서 축구, 페미니즘, 웃음, 죽음, 촛불 시위 등 다양한 곳에서 축제를 발견하고, 축제의 모습을 사회학적으로 살펴본다. 축제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역사적 사건과 축제는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우리네 삶 속에서 축제는 어떻게 드러나며, 오늘날 이땅의 축제는 어떤지 등을 다룬다. '축제의 사회사'라는 제목만큼이나 개론서적인 흐름을 따르고 있다. 그 내용도 하나의 축제 사회사 교과서의 성격을 띤다. '축제'를 기획하는 이들이 봤으면 하는 책이다. 그들에겐 철학이 있어야 하므로.
"축제는 사람들의 영성이 가장 자유로울 때,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본인이라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대부분의 축제 때 등장하는 음주가무는 엑스터시를 위한 주요한 도구이지만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다. 막걸이 한 주전자만 있어도,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몇 곡만 있어도 축제가 열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성을 가장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는 어떤 모멘텀이고 그 모멘텀을 발생시키는 계기이며 진보적 사유다."
p.s. 찾아보니 한길사에서 나온 <축제의 문화사>라는 책도 있다. 관심 있는 이들이 함께 읽으면 괜찮을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