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13 -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 미국사 산책 1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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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의 글쓰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레포트식 글쓰기', '기자식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글쓰기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강준만은 자기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가지고 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체계를 다듬어 왔다. 그가 한 해에 십여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와 같은 서평도 책을 읽는 족족 쓰다보면 자기만의 스타일 생기고, 쓰는 시간도 무척이나 빨라진다. 개인적인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책을 읽고 뭔가 흔적을 남기는 행위에도 소홀해져 다시 내 안의 엔진을 가동시켜보려 애쓰는 시점이긴 하지만.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무려 총 17권으로 구성되었고, '미국사 산책'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같은 글을 원했다면 잘못 골랐다. 저자가 강준만이라는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한 번이라도 그의 글을 접했다면 그가 어떤 식으로 글을 쓰고, 책을 쓰는지 알 것이다. 그는 엄청난 자료 수집광이고, 평소에 수집해둔 그와 같은 방대한 자료에서 쓰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적절한 자료를 뽑아낸다. 그리고,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에 맞추어 그 자료를 편집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댄다.   

   어떻게 보면, 이건 대학생이 교수에게 제출하는 보고서의 방식과 닮아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채택된 자료를 가지고 아주 정교하게 구성한 잘 짜여진 창작물이다. 우리가 평소 어떤 신문이나 책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세세하고 비밀스러운 내용들을 어디서 찾아냈는지, 재밌게 잘 엮어냈다. 창작물이긴 하지만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즉 인용한 글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은 한국와 무척 닮았다. 아니, 거꾸로 말해야 옳다. 한국은 미국과 무척 닮았다. 여러 통계를 보아도 확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미국 사회를 따라가고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않고 - 개인적으로 나쁜 것만 따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 사회를 따라가고 있다. 대학 교수의 상당수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거나 박사 수료를 마친 사람들이며,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려면 미국의 인맥을 쌓고, 미국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어느 대학 강사에게 들은 바로는,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미국 박사 출신으로 자체 한정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미국사 산책 열일곱 권이 어떤 기준에 의해 각기 물질적으로 서로 다른 책으로 분류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기준에 대한 마땅한 설명은 못 본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간의 순서를 따르고 있고, 미국의 역사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각 책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미국사 산책 13권>은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1당 민주주의'에 홑따옴표가 붙은 이유는 깊이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민주주의'와 '1당'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자유롭게 정당을 설립하거나 없앨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누구나 자신의 성향에 따라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1당 민주주의라니.  

  13권에서 다루는 특별한 주제는 LA 흑인 폭동, 민주-공화 양당제의 종언을 고하는 제3의 대선 후보 로스 페로의 선전, 진보-보수를 초월한 승자 독식주의이다. 여러 민족, 인종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다보니 이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백인 경찰은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억압적이고, 거칠게 대응하며, 흑인이 백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 흑인은 더더욱 뭉쳐 보복을 하려 든다. 이와 함께 라틴계의 미국 유입이 많아지면서 흑인과 라틴계의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흑인의 일자리였던 부분에 임금이 싼 라틴계가 들어오면서, 저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이 흑인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하다. 요즘 식당이나 호프 등에 가보면 한국계 학생 알바나 아주머니보다 연변 동포들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말이 어눌하고,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대개 그 분들이다. 식당일을 하시는 분들은 노동에 비해 그다지 많은 돈을 받아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식당 주인은 연변에서 오신 분들의 임금이 한국인 아주머니의 임금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에 그분들을 고용한다. 그 몇 푼이나 된다고 그걸 또 깎기까지. 식당 경영 사정이 안 좋은 곳은 식당 주인을 탓하기도 뭣하다. 그리고 이건 탓할 문제도 아니다. 한국 아주머니가 일을 가져가면 연변 아주머니는 또 할 일이 사라지니까.  

  미국사 산책 13권이면 시간상 한참 전의 이야기인데도, 이 책 곳곳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와 비슷한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고 주장하며 살다가 이제서야 연변, 중국, 동남아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다문화 국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수십년전에 있었던 일들이 한국에서는 곧 심각한 갈등으로 표출될 것이다. 지금은 외부에서 들어온 분들이 소수지만, 이 숫자가 많아지면 한국 역시 다문화 갈등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무척 읽기 쉽게 쓰여졌고,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재미도 있다. 미국사를 공부한다기보다는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제별로 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읽는 데 전혀 부담이 없다. 번뜩이는 통찰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글이나 책, 보고서를 쓰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자료가 되기는 할 것이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 또다른 창작물의 좋은 자료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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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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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조선운동.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민 운동 중 하나이다. 한윤형이 연표에서 짚었듯 1995년 강준만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진중권을 비롯 고종석,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가세하며 널리 알려졌다.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엔 중학생이었던 한윤형이 고등학생 시절, 조선일보 논술 대회에서 대상을 거부하면서 주목받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안티조선운동의 주된 논의를 지켜보며 간간히 참여하기도 했던 그가, 지금 이 책을 낸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다. 

  한윤형은 <삼국지>의 저자 진수와 닮았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소설 <삼국지>의 저자는 나관중이지만,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삼국지'는 4세기경 촉의 장수인 진식의 아들 진수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서술된 역사의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윤형 또한 두 진영 중 한 쪽에 몸담아 싸웠기에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는 이 책에서 어떤 주의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하려고 애쓴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 짜릿함은 물론 안티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까는 시원함은 아니지만, 여러 다른 논점들이 등장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지적 쾌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한윤형은 진수와 닮았지만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닮았다. 조자룡이 유비의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을 뚫으며 여러 장수들의 목을 베는 것과 같이 세세한 안티조선운동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이 책 어딘가에서 한윤형은, 재임 기간 중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피력하기도 했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점에 안티조선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는 논쟁의 중심에 있던 진중권이나 강준만이 안티조선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면서 조용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자꾸 떠들고 논쟁을 키워야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데 이미 말을 할 사람들은 한 마디씩 다 하고, 치고 받고 싸울만큼 싸워 담론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다. 이후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고, 절독 운동 등으로 이어졌지만 이슈거리는 아니었다. 이것이 2008년 촛불 시위 현장에서, 미국소 수입이나 광우병 문제에 대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과거에 내놓은 의견과는 전혀 다르게 주장하며 촛불 시위자들을 매도하고 왜곡하던 조중동 절독 운동으로 부활하였다.

  다시, 그간의 논쟁과 시위 현장에서의 구호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조선일보가 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인식을 하지만, 여전히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마치 삼성의 행태가 잘못된 건 알면서 삼성 소비를 그만두지 않는 것처럼. 삼성을 소비함으로써 삼성이 그대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삼성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지지함으로써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조선일보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불가능하다.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언론이 불편부당한 관점을 취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들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심지어는 그저 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보도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한윤형은 위와 같은 이유로 안티조선운동이 실패했다고 본다. 확실히, 안티조선운동 과정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논쟁에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에 비해서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동은 실패했다. 그러나 관심없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이를 흉내내는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왜 문제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절반만 성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낮추고, 소설쓰기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운동의 성공은 인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는 것에서 행동으로 나아가야 실질적으로 타격을 주고, 그들의 태도를 개선시킴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 안티조선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약 15년간의 안티조선운동사를 정리함으로써 다시 한 번 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새로운 운동으로 잇기 위핸 동기가 될 것이다. 강준만과 진중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안티조선'이란 말도 몰랐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10년 넘게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덕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국일보를 보았고, 한국일보를 끊고 경향신문을 보았다. 두꺼운 지면과 문화 방면의 풍부한 읽을거리, 그리고 현금이나 자전거, 무료구독에 혹해 조선일보를 보게 되는 이들이 아직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아직 대학생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윤형은 그간 여러 유명 진보 논객들이 내는 책에 함께 이름을 올려 공저자가 되곤 했다.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보드 워리어 일지>와 <안티조선운동사>를 통해 강준만이나 진중권 못지 않은 놀라운 정리 능력과 글발, 논리력을 보여주었다. 아직 20대인 그가 그들의 나이쯤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힘차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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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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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의 호모 시리즈 중 최근작이다. 호모 쿵푸스와 호모 에로스를 썼던 고미숙이 이번엔 공부와 사랑에 이어 돈에 관해 썼다. 돈에 관해선 딱히 쓸 말이 없었으나 지인의 부추김에 본인이 집필을 시작했다고.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써나갔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관련된 여러 책을 읽었던 것 같고, 그 중 몇몇 책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서너가지 책이 자주 인용되거나 소개되는데, 주로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저자의 언어로 풀어낸다. 유누스의 그리민 은행이나,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 이야기, 비노바 바베라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철학자가 지은 <버리고 행복하라>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돈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고, 불려나갈 수 있는가를 말하는 재테크, 자기계발서 식의 전개가 아닌,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라는 뜻으로 '코뮤니타스'를 내세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킬까를 고민하는"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고미숙은 고정된 밥벌이 수단인 정규직 회사원의 삶을 박차고 나와 당시 연구 중이던 고전을 가지고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수유연구너머의 구성원이 되기까지, 또, 수유연구너머에서 일종의 기숙사 형태의 여러 방을 만들고, 원하는 이들이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도록 삶을 꾸리기까지의 과정 등에 관해 말한다. 그 모든 것이,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길이 아닌 적은 돈으로 알차게 사는 삶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은 수유연구너머의 공동체적 삶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특별한 메세지가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그린비의 호모 시리즈가 대개 이렇게 성격이 뚜렷하지 않고, 관련된 주제에 관해 재밌게 썰을 푸는 식으로 쓰여져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돈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저자와 연구너머 공동체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는가, 하면 이외의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책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적은 돈을 정당하게 벌면서 소박하게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고,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린비의 호모 시리즈를 이미 접한 이들은 대충 책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지만, 호모- 식의 거창한 이름 때문에 책을 집어들었다면 다시 내려놓는 것이 맞다.

  이 책의 내용이 별로이고,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책을 펼치기 전에 책에 기대를 많이한 독자의 잘못이다. 한편, 책의 내용 중 이 부분은 좀 관련 단체들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고미숙은 자신이 글과 강연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강연료가 너무 박하다는 지적을 한다(내용 전개상 엉뚱하기는 하다). 단체마다 천차만별인데, 어떤 단체는 돈이 없다고 사정사정하면서 불렀는데 갔더니 끝나고 회식을 거창하게 하더라, 또 어떤 단체는 돈을 적게 주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서 그랬다더라 하는 일화가 나온다. 적은 돈으로 공동체의 삶을 꾸리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고미숙과 수유연구너머에게도 유일한 수입원인 강연과 원고료, 인세는 매우 중요하다.

  진보를 표방하고,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인물과 단체에는 마치 적은 돈을 주는 것이 예의인양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돈은 중요하다는 것. 공동체의 삶을 꾸리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 단지, 그들은 어떤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들과 그들이 누리는 공동체적 삶을 함께 하기 위해 그 돈을 사용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알아야 한다. 고미숙을 비롯해 연구너머 팀원들이 강연을 해봐야 얼마나 받아가겠나. 청와대나 한나라당과 끈이 연결된 이들이야, 대학 강연이나 각종 단체 강연에 참석도 하지 않고 고액의 가욋돈을 받아가겠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정당한 댓가를 받고자 하는 것일뿐. 봉사도 한두번이지 매번 돈을 안 받거나 적은 돈을 받아가며 봉사해서 이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는 없다는 것.      

  그런데, 그린비의 이 시리즈. 인터넷체, 채팅체를 좀 절제할 수는 없을까. 각종 이모티콘과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 써가며 친근하게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더 거부감이 든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도 재밌게 쉽게 대중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다. 고려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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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돈의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from 빵가게 재습격의 책꽂이 2010-11-09 10:46 
      <수유+너머>의 전도사로 알려진 고미숙씨가 새 책을 냈다. 그린비와 수유 + 너머의 책을 자주 구입했고, 필자들을 신뢰하기는 하지만, 그 공간에 대해 다소 생각해 볼 여지는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침 자주 놀러가는 서재쥔장님의 리뷰도 올라왔고, 또 다른 관점에서 서술한 기사도 댓글로 소개되어 있길래(댓글은 '바라'님께서 올려주셨다) 먼댓글을 걸
 
 
L.SHIN 2010-11-0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아프님.
오랜만에 인사하려고 들렀어요. 잘 지내죠? ^^
날씨 추운데 감기 조심해요-

마늘빵 2010-11-08 23:59   좋아요 0 | URL
아, 오랫만이에요. ^^ 제가 알라딘에 좀 뜸해서. 엘신님도 감기 조심해요. 오늘부터 꽤 추워지네요.

바라 2010-11-09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유너머가 월세 천만원 짜리 공간에 있다는 얘길 듣고 놀랐었지요. "이 정도는 누구나 하잖아요. 이 정도도 못하면 그건 공동체가 아니잖아요, 그냥 청승이지." 제가 한 말은 아니고 얼마 전 읽었던 하승우님의 서평에 나온 건데, 혹시 못 보셨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022183817§ion=03

마늘빵 2010-11-09 09:09   좋아요 0 | URL
엇, 링크해주신 부분에 기사가 없다고 나오네요. 수유연구너머는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들만의 잘 만들어진 공동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봐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만일 그들이 그네들의 공동체만이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그 외부의 것들을 누군가의 말마따나 "찌질하게" 여긴다면, 이건 아닌데 싶습니다. 하승우님의 글을 보고 싶은데 검색해봐야겠네요.
 
원순 씨를 빌려 드립니다 - 대한민국 상상력 업그레이드 교과서
박원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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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 인사의 본격 자기계발서'라고나 할까. 그동안 박원순에 대해 다룬 책은 몇 권 있었지만, 그 책들과 이 책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도서 분류에 있다. 기존의 책들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으로 분류되었다면 이 책은 자기계발, 실용 등으로 분류된다. 어떻게 보면 이제 진보적 메세지조차도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인 셈인가 생각하게 되고,또 다르게 보면 진보 인사의 메세지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타협점을 찾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박원순은 여러 직함을 거쳐 희망제작소에 안착했다. 스스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고 하는 그가 잘 나가던 길을 마다하고 아름다운재단,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을 설립하는데 일조하고 꾸려왔던 것은, 조영래 변호사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이후 그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여러 자기계발적  항목 아래 담담히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른 한편 자서전이기도 하다.  

  그가 거쳐온 모든 조직이 온전히 제 발로 설 수 있고,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가 정치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과 주변인들의 상상력을 발휘했기 때문. 그는 그간의 노하우를 '상상력'이라는 항목 아래 풀어낸다. 이름하여 5C라고 붙였는데, 박원순의 생각이라기보다는 편집자나 출판사 등 책을 만드는 이들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명백히 박원순의 것이 맞다. 다섯 가지는 이렇다. consilience(통섭), credibility(믿음), community(커뮤니티), culture(문화), creativity(창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인정받기까지는 모험이 따른다.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들지 않고,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수없이 들 것이다.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쳐온 박원순의 다음과 같은 말이 그런 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확신과 힘을 주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살기 위해 먹습니까? 먹기 위해서 삽니까? 당연히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요. 좋은 인생을 살고 꿈을 이뤄내고자 직업을 택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본말이 전도되어 있습니다. 목적인 꿈과 가치보다 수단인 먹고사는 자체를 우선시합니다. 이른바 ‘먹고사니즘’에 중독된 어른들에 의해 젊은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고민해볼 틈도 없이 스펙에 갇히고 정해진 길로 내몰립니다. 측정 가능한 크기로 작아진 채 불안과 두려움의 시스템에 수동적으로 길들여져 갑니다. 젊은 꿈과 가치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세상의 주류 흐름을 따라갈 때 나는 노예가 되고,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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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출판기획 시리즈 2
강주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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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글쓴이 강주헌은 번역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명의 붕괴>,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와 같은 인문서에서부터 <슬럼독 밀리어네어>, <PING>,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 등과 같이 소설이나 자기계발서까지 번역에서 전문 분야를 따로 두지 않는다.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이자 동시에 그는 해외 출판 일을 하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가 해외 출판 일을 하면서 출판잡지 '기획회의'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은 결과물이다.  

  한 번에 쓴 글이 아니라 중간중간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기획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이후에 해외 출판 사례를 통해 출판과 책을 말한다. 그는 한 출판인과 베스트셀러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흔히 언급되는 베스트셀러의 조건에 부합하는 책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조건은 대충 이런 것이다. 첫째, 저자가 유명할 것, 둘째, 처음부터 끝까지 알찬 내용을 갖출 것. 두 가지 조건이라면 만족할 만한 원고가 많을 텐데, 강주헌은 그런 책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베스트셀러를 내는 요령에 관해 말한다.  

  "유명한 저자일 필요도 없고, 두꺼워도 상관없으며,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알찰 필요도 없다. 내용?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용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중략) 모두가 그 다양화에서 첫걸음을 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듯하다. (중략) 그런데 그 다양화가 내용의 다양화가 아니라 형태의 다양화였다. 어쨌든 다른 책들과 다른 방향을 찾아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가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와 있는 책들을 보면, (그런 경우는 거의 없긴 하지만) 어 이 책은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 하고 의문을 품게 되는 책도 있고 -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렇다 -, 이 책은 내용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나 많이 팔리다니, 이런 생각을 품게 하는 책들도 있다. 강주헌의 말대로 내용이 좋거나 저자가 유명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시대의 흐름과 방향을 타는 책을 내야 베스트셀러가 되기 쉽다. <아침형 인간>이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들이 그렇다. 원고 좋고 유명 저자이면 기본 판매부수는 먹고 들어가지만 베스트셀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 책은 이처럼 강주헌이 출판과 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에세이 쓰듯 자연스럽게 풀어낸 짤막한 글로 채워져 있다. 읽기 부담없으며, 특별히 어떤 교훈이나 성찰, 통찰을 기대하고 읽으면 곤란하다. 편안한 잡지글을 모아놓았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또 내용이 없거나 별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 출판, 책과 관련해서 얻을 부분이 있다. 부담없이 책장을 넘기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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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0-08-2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시크릿>이 왜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죽었다깨도 모르겠더군요.
미국에서도 서점에서 그 책 보고 이건 뭥미- 하고 1초의 고민 없이 옆으로 밀어놨었는데
엄청난 베스트셀러 ㄷㄷ 한국에서도 난리가 아니더군요. 정말 궁금하다능...

마늘빵 2010-08-28 23:50   좋아요 0 | URL
저는 <시크릿>은 훑어보지도 않아서 무슨 책인지 잘 모르겠어요. ^^ 이해 안 되는 베스트셀러가 많은데, 잠재적 독자들의 마음 어느 한 구석을 툭 건드려주면 대박이 납니다. 아침형 인간과 부자 아빠 신드롬도 마찬가지고. 베스트셀러가 되면 너도나도 다 사는데, 좋은 책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말여요.

BRINY 2010-08-2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이 독후감 써내는 책들 보면 [마쉬맬로 이야기][시크릿]이 많아요. 요건 학교권장도서도 아니고, 독후감 쓰려고 새 책을 사는 애들은 거의 없으니까, 그만큼 많은 가정에서 그 책들을 갖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게 다 기획과 마케팅의 힘인가요?

마늘빵 2010-08-29 05:2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집에 있던 책으로 하기가 쉽겠죠.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또 읽기도 쉽잖아요. 한 권 순식간에 뚝딱입니다. 기획과 마케팅도 있고, 사실 베스트셀러는 어느 부분에서 터질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편집자와 출판사도 예상치 못하죠. 마케팅도 한계가 있거든요. 초반 반짝할 순 있어도 꾸준히 많이 팔리려면 다른 무엇이...

감은빛 2010-08-29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주헌 선생의 명성이 대단하더군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마늘빵 2010-08-29 05:27   좋아요 0 | URL
출판쪽 강의도 하시는 걸로 압니다. ^^ 들어보고 싶은데 시간도 안 맞고, 여러모로 현재 여건이 안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