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가라타니 고진의 코뮨주의

레디앙의 연재물 '세계의 사회주의자'에 뜻밖에도 가라타니 고진 편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단서조항이 없을 수 없는데, 편집자도 옮겨놓고 있는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가 사회주의자일 수 있다면,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 속에서일 것"이라는 게 '사회주의자 고진'의 근거이다. 알다시피 고진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은 NAM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책상에 올려놓은 지가 오래인데 바쁜 일들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아래의 연재는 고진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도 읽을 만하다.

레디앙(07. 03. 20)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잊고자 쓰는 사상가가 있다. 그는 개념으로 성을 쌓지 않는다. 남들이 자신의 착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할 때면 그 자리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형이상학을 극도로 경계하며,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내는 예언을 멀리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에게 ‘~주의ism’는 사상의 죽음을 뜻한다. 예수가 아닌 바울이 기독교(예수주의)를 만들었듯, 마르크스주의가 엥겔스의 산물이듯 ‘주의’는 사상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되며 시작된다. 그래서 이동을 감행하는 사상가에게 ‘~주의’는 사상이 멈춰선 자리,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전망이 상실된 90년대에, 그것도 쉰이 넘고 나서야 그는 코뮨주의자가 되었다. 바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이야기다.



비평은 위기적 상황으로 자기를 내모는 것

가라타니 고진은 1941년 일본의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문학 작품을 탐독했지만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다루는 데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결국 도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행방은 문학비평가로 시작되었다. 스물아홉에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론>으로 군조오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문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이 시기 그는 영문과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경제학과 출신의 문학비평가라는 다소 어색한 그의 이력을 두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이든 문학이든 그는 분과학문을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형이상학과의 싸움이 절실한 문제였다.

형이상학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이념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널리 읽힌 그의 초기 저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은 형이상학과의 대결이라는 문제설정을 경제학과 문학이라는 각기 다른 방면에서 펼쳐낸 것들이었다. 그는 이 저작들에서 자본주의와 근대문학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장치로 해명하여 근대인들을 속박하는 관념의 그물을 걷어내고자 했다.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첫 번째 평론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적 원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그 일절을 주목하자. “사상과 사상이 격투한다고 보일 때도, 실상은 각자의 사상적 절대성과 각자의 현실적 상대성이 모순되는 지점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상이 각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곳에서 결전이 이루어진 예는 한 번도 없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비평가’로서의 자기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그에게 비평은 다른 텍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전하거나 편을 짓는 작업이 아니었다. 비평이란 사상의 결전이 치러지는 장소 밑바닥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할극을 끝까지 주시하는 일이다. 대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입장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대치할 수 있는 조건, 그 무의식적 구조를 해명하는 일인 것이다. 그 조건과 구조를 밝힌다면 날이 선 온갖 사상적 입장들은 형이상학의 성채를 두르고 있던 부속물임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비평에는 으레 자신은 상처입지 않으면서 상황 밖에 서 있다는 푸념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고진은 홀로 옳은 곳에 서 있고자 비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비평(critique)이란 위기적인(critical) 상황으로 내몰리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평 대상만이 아니라 비평하는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가가 자신의 발화를 자명하다고 여겨 더 이상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면, 사상은 어느새 상업성을 띤 선교가 되고 만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비평이란 자신을 불명료함으로 내몰아 선교사의 입장을 피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개척해나가던 60년대 후반은 서구 지성계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시기이자 반체제 운동이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닌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다만 난무하는 여러 입장들을 곁눈으로 흘기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갔다. 당시 제기된 인간적 마르크스주의도 반체제 운동이 보여준 열정도 그에게는 ‘이념이 만들어낸 병’에 불과했다. 그 무렵의 학생들처럼 거리로 나섰으나 이내 회의를 느끼고는 이념을 걷어낸 자리를 끝까지 응시한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어떠한 ‘주의자’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입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태도 전환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 노정은 『탐구』에서 결실을 이룬다. 형이상학과 맞서 싸운다는 버거운 작업으로 삼십대에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그는 『탐구』를 통해 자신의 스스로 병을 치유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잡지 『군조우』에 『탐구』를 연재했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 할 것이다.”(『탐구Ⅰ』후기) 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타자의 문제’를 해명하여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해체주의 마냥 어려운 지적 수사에도 빠지지 않는 ‘삶의 비평’을 일궈냈다. 90년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온 이 책을 두고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라타니 고진은 90년대에 들어서자 『탐구Ⅲ』을 쓰겠다던 계획을 중단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90년대 이후 쓴 저작들을 보면 무언가 적극적인 발언을 하겠다는 충동이 가득 묻어난다. 하나의 선명한 입장을 갖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 전환이 응축되어 있는 저작이 바로 10년간 거듭해서 써낸 『트랜스크리틱』(2000)이다. 『트랜스크리틱』은 확신으로 씌어진 책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광명을 보기 시작했다”고까지 표현하는데, 사상의 구석진 자리를 응시하려던 과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1989년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경멸해 왔다. 그는 어떠한 입장에도 속하지 않고 비평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자신이 과거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유효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거대 서사’와 함께 종언했지만, 아울러 몇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주의의 종언이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서사’가 등장했으며, 민족주의와 원리주의라는 ‘서사’가 부활했다. 아울러 모든 이념을 조소하는 냉소주의도 만연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끝났을지언정 사상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인 기획에 몸을 담았다. 90년대의 상황이 학문적으로는 회의론적 상대주의가 범람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이 구가되었으나 그것들이 점차 파괴력을 잃어갔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이 시대의 변화와 아울러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했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구축된 실천의 방향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가다듬는다. 기억해야 할 대목은 그가 지극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폐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론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실천은 결코 변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정의감과 연민에 기반한 열정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토대로 삼는 논리구조를 해명할 때 그것을 극복할 단서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교환’에 내재된 근원적인 패러독스로 생겨났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지양할 코뮤니즘 역시 종교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닌 새로운 교환원리를 통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를 스테이트(state, 국가)와 네이션(nation, 공동체)과 겹쳐 사고한다. 89년 이후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자신의 정식을 설파하는 데에 경주했다. 그것들 각각은 등가교환, 상호부조, 강탈이라는 교환원리에 대응한다. 먼저 네이션 안에서는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 등가교환에 따르지 않고 공동의 감정에 기대 서로를 돕는다는 교환원리이다. 스테이트는 강탈을 자신의 교환원리로 삼는데, 그것이 교환인 까닭은 지속적으로 빼앗기 위해 수탈당하는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의 기원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는 시장원리에 따라 화폐를 통한 등가교환을 취한다.

이렇듯 상이한 교환원리가 합쳐져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자본주의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자본주의를 깨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가 뒤따르거나 네이션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래서 우리는 공황에 직면하면 국가기구가 전면화되고 민족주의가 활성화되는 현실을 목도한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던 것이 레닌주의이고,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을 꾀했던 것이 파시즘이다. 이들 모두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사슬을 끊지 못했기에 역사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세 가지 교환원리에 기반해 있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교환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또 한 가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인 단서는 자본의 자본화 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에 있다. 여기에는 두 차례 개입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M-C의 계기, 즉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C-M'의 계기, 즉 상품이 다시 잉여가치가 부가된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것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파는 일이 된다. 무산대중에게 이것은 노동자가 되고 소비자가 되는 일로 나타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M-C-M'의 과정을 끊자고 제안한다.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사상의 실패인가 새로운 사상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는데, 그것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운동이다. NAM 운동은 그가 제안한 최초의 현실운동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NAM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NAM 지부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꾸려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제안한 NAM 운동은 새로운 교환원리인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발상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화 운동은 원리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가 『가능한 코뮤니즘』이나 『NAM 원리』에서 제시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운동 역시 자본이 되지 않는 화폐를 매개로 삼는 지역통화 운동의 일종이다. 그리고 NAM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연대를 목표로 삼는다. 화폐 경제에서 판매와 구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분리, 나아가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의 분리를 낳는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을 해산시킨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현실에서 보여준 시도와 실패는 일본과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평가는 예순이 넘은 가라타니 고진의 나이를 상기시키며 “가라타니 고진도 이제 다했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정녕 사상의 실패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실패를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운동의 실패를 사상의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꾀했던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리라.

가라타니 고진은 이제껏 여러 사상적 입장에 가격을 매겨 왔다. 이제 자신의 사상적 궤적을 제작비이자 홍보비 삼아 하나의 입장을 상품으로 내놓았으니, 그것은 팔릴 것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의 사상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늘과 불쾌함을 더 이상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한 사상가를 진정 대면하려면 그 사상이 지닌 탄성을 제멋대로 줄여놓고 쉽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2007년 가라타니 고진은 재직 중이던 컬럼비아 대학과 긴키 대학에서 물러나 일본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또 한 번의 사상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자신의 명성에 사로잡히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기에 그는 건강하다. 그리고 이 말도 보탤 수 있겠다. 기꺼이 실패하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역할이다. 사회주의자는 하나의 입장에 관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는 타오를 것인가.(윤여일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0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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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식민지 근대'에 연착륙한 문학연구

* 담론비평(2007. 3. 20)  / '식민지 근대'에 연착륙한 문학연구

 

역사비평 봄호, 최근 문학연구 동향 총정리

 

리뷰팀 review@dambee.net

 

가라타니 고진이 일러주지 않았어도 근대문학의 종말은, 적어도 '근대문학' 전공자들 일부에게는 암묵적 동의를 얻고 있었다. 그것은 "부자되세요"라는 광고가 내뱉기 힘든 것과 똑같이 알고 있어도 내뱉기 어려운 외침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최근 몇년근대=민족= 문학을 비판, 상대화하여 그것을 벗어나려는 글쓰기와 연구가 점증한 것은 우리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확인사살하고 싶어했던 그 욕망의 증거이다.

'역사비평' 2007년 봄호에 윤대석 인하대 박사후연구원이 이런 연구동향을 총정리하는 글을 실었다. 복잡한 연구지형을 몇갈래로 나누어 주요 연구자들을 언급하고 그 의미와 한계를 간단간단히 짚고 있어 매우 유용하게 읽힌다.

먼저 그는 문학연구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을 환기시킨다.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시기에근대=민족=문학이 그 존재의의를 가졌다면,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본이 직접  개개인을 제어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비효율적 사상, 문학이라는 비효율적 글쓰기는 퇴출대상 목록에 올랐다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문학이라는 제도를 지킨다는명목으로, 혹은 다음 세대로 무사히 이월시킨다는 핑계로 이런 과거의 문화적 기호들을 자본으로 변형시키는 문화콘텐츠론,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어용(혹은 자용) 학문이라는 자조가 오가기도 한다고 요즘의 분위기를 전한다.

그렇다면 이 틈새에 '의미있는 시대착오'로 존재하려는 경향, 아니면 그와는 자못 다르게 '자본에 흡수되려는 변태'로서의 문학연구의 흐름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문학연구가 민족=근대에서 최초로 탈출할 때 올라탄 것은 문화였다. 바로 문화연구로의 전환이다. 90년대 중후반 들어서 포스트콜로니얼연구(식민지라는 타자), 문화연구(대중이라는 타자), 페미니즘연구(여성이라는 타자)가 문학 개념의 자명성을 의심하고, 문학 개념 형성과정에서 드러난 권력의지를 계보학적으로 밝히는 공동전선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선두에 선 것이 문화연구다. 문화연구는 우선 문학 제도사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문화라 해도 문학과의 연관성을 살려두어야 국문학 제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탓이다. 이 연구들은 문학이 시장과 제도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드러냈다.(사실 이 분야 가장 선구적인 연구는 90년대 초반 김화영 교수가 계간 '세계의문학'에 소개한 '문학이라는 제도'라는 블란서제 담론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이런 제도사연구는 문화정책, 매체, 출판, 독자, 지식제도 등으로 그 소재를 다양하게 늘려나갔다. 최근에는 식민지기 검열연구를 통해 검열주체와 검열객체 간의 상호성의 측면에서 문학생산의 장을 해명하기도 하고, '소년', '청춘', '조선문단', '학지광' 등의 매체들이 어떻게 문학이라는 독특한 언어질서를 구성했는지에 대한 연구가 범람했다. 이런 연구들은 동인지나 등단제도 같은 연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근대문학의 종언'이 운위되는 시점에서 볼 때 오히려 '과거의 적'을 상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현실과 떨어져 학문적 유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들 연구에서 젠더의 관점이나 탈식민의 관점이 거의 없어서 더욱 그랬다고 윤 박사는 정리한다.

그 한편에서 문화연구의 또 다른 지류로 풍속사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천정환, 권보드래, 이경훈, 김동식 등이 대표적인 연구자들인데, 이들은 "텍스트의 미시적 측면에 대한 실증적 재구성, 사회문화사적 주제의 탐색과 텍스트 외부의 적극 참조, 텍스트 사이 경계나 문학 내부의 위계에 대한 무관심" 등을 특징으로 내세우며 문학=근대 너머에 내팽개쳐져 있는 타자성의 정치학을 발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구호에 가까웠고 실제 연구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은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인데, 게다가 이들은 하정일 원광대 교수 같은 이에게 "식민지기의 연애나 성풍속, 취미오락 등을 자본주의화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로 설명하는 데 그쳐 현재 고급 상업문화의 일부가 되었고, 시장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편입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윤 박사는 이런 비판에 대해 오히려 비판적인데 "연구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비판은 너무 심한 것이고, 또한 이들 풍속사 연구가 "개인을 평균화시키고 균질화시킴으로써 몰개성과 획일화를 불렀다"는 비판은 "대중의 성격이 고원하면서도 심연을 거느리고, 결핍이면서도 언제나 과잉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풍속사적 연구에 대해 "서구 형이상학의 존립논리와 같은 방식"(차혜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는데, 윤 박사는 이에 대해서도 "최종적 준거지점을 삭제하려는 급진적 타자성에다 대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대중을 혹은 문화를 최종준거로 삼아 근대=문학을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나 혹은 그에 대한 비판논리로서 훌륭하게 제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변호한다.

참 억지스러우면서도 포스트모던하게 느껴지는 논리이긴 하지만, 그 이상 주장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뭐라 반박할 여지도 주지 않는 논평이다.

아무튼 윤 박사는 세번째 흐름으로 넘어간다. 포스트콜로니얼 연구가 그것인데 이들은 근대=문학이 아닌, 한국=근대에 초점을 맞춘다. 이 흐름은 내셔널리즘비판과  파시즘연구를 거쳐 식민지근대의 연구로 이어졌다. 특히 이태준의 '농군'을 해석함에 있어서 김재용-김철 간의 해석논쟁, 홍기돈-김예림 간의 2차논쟁 등이 벌어지는 등 활발하게 성과를 냈지만 곧 심각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들이 근대의 주체가 거기 속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억압해왔다고 비판하지만, 주체 해체가 초래한 주체의 부재상태는 '누가' 근대극복을 실천할 것인가라는 상식적인 질문 앞에서 할말을 잃는다는 비판이다.

또한 이 분야 연구의 가장 대중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은 '대중독재론' 또한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난다면서 '지배와 동의'라는 메카니즘을 제시했는데, 이것 또한 '지배와 동의'라는 이분법에 매몰돼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저항행위 내에서 미세하게 작동하는 계급 역관계의 양상이나 그것의 시간적 변화양상에 대해 몰각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포스트콜로니얼연구가 연착륙한 곳이 바로 '식민지 근대'라는 일종의 공간성인데, 식민주체와 객체가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적 관계에 있고, '주체'로 회귀하지 않고 저항/협력할 공간이 발생한다는 관점이다.

권명아 등이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데, 이 단계에서 문학연구는 더이상 '저항'과 '탈'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움직임이 아닌, 근대문학 존재생성의 풍부한 육체 그 자체를 음미하려는 경향성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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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외국어로 강의하기와 한국어로 학문하기

 * 나는 개인적으로 강단 인문학이 부활하려면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본래적 가치와 의미를 끈덕지게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강단 인문학자들의 대중들에게로의 열린 학문적 포용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가장 급선무로 해야 될 일은 바로 우리 언어가 가진 맛과 멋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다듬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학문적 숭고함으로 포장된 지적 교만함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 언어로 말을 하고 우리 언어로 된 학문을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세계화=영어화' 혹은 '세계화=미국화'라는 말도 안되는 공식이 너무도 어이없게 통용되는 현재의 시점은 강단 인문학의 위기만을 가속화 할 뿐이다. "외국어로 강의하는 것이 필수사항이다."가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필수사항이다."로 이해되는 현재의 상황은 앞으로 한국의 학문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있어 큰 장애물이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문화적 세계화는 다질적이인 문화들을 열린 포용력으로 수용하는 것이지, 미국적 문화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적 세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언어의 문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질적이고 다성적인 언어들이 모두 각자의 목소리로 말하도록 하는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적 세계화이지, 영어가 그 목소리를 자신의 초월적 기표아래 통합시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곧 세계화의 첨단으로 나아가는 길로 착각하는 몰지각한 대학의 정책 입안자들과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몇몇 교수들의 한심한 작태를 볼 때 과연 그들의 학문적 진정성은 무엇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강단 인문학은 괴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대중적 지성 혹은 대중적 인문학은 발딛을 틈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학문은 여전히 세계의 지적 패권주의에 복속되고 종속되어 멸절해 버릴 것이다.

* 교수신문(2007. 3. 16)  / 외국어로 강의하기와 한국어로 학문하기

2007년 03월 16일 (금) 13:15:00 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여러 대학에서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을 늘이고 있다.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연구보조비를 지급하고, 폐강 기준을 완화하며, 절대 평가도 허용하고, 강의 시수도 높게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신임 교수는 반드시 1과목 이상을 외국어로 강의하도록 하고, 학생들은 반드시 외국어로 진행하는 과목을 수강하도록 강제하려고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대학에도 외국 유학생이 늘어나고, 우리 학생들도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의 차원에서 외국어에 능통할 필요가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또 우수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여 교수진 구성도 다양하게 한다면 당연히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의 확대가 한국어가 학문의 언어로서 자리 잡아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학문 분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 강의실에서 쓰이는 한국어는 정상적인 한국어라 하기 어렵다는 점이 거듭 지적되어 왔다. 주요 용어는 물론 서술어조차 외국어 일변도이고 한국어는 ‘토’로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강의를 외국어로만 하는 과목이 늘어난다면 한국어는 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역할을 급격하게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


 사실 근대 직전까지 우리는 한문으로 학문을 해왔고, 학문의 영역에서 한글은 기껏 경전의 번역용이었을 뿐이었다. 한글이 공용문자가 된 것은 1894년부터이며, 대학에서 학문의 언어로 자리 잡은 지는 이제 겨우 60년이 되었다. 그것도 난삽한 한자어, 번역어, 외래어 및 외국어로 점철된 한국어로 우리는 학문을 해왔던 것이다. 제대로 된 한국어로 학문을 하려는 노력도 전개되어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외국어로 전공 강의를 하도록 하니 우리 학문의 세계에 마치 제 2의 중세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지난 중세에는 한문으로 학문을 했어도 수업만은 한국어로 했는데, 이제는 수업도 외국어로 하자니 말이다. 


 원효, 퇴계, 율곡 등 여러 선인들이 한문으로 세계적인 학문을 했으니 장차 우리가 외국어로 세계적인 학문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계에 널리 쓰이는 언어로 학문을 하여 곧장 외국 학자들과 소통하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일원화의 방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원화의 방향에서도 이루어진다. 지식의 창조 역시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라틴어 못지않게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훌륭한 학문의 언어 역할을 하듯이 한국어도 한문 못지않게 세계적인 지식을 창조하는 언어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것을 학문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개설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어로 창조적인 학문을 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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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일.. 최악이다.

오전부터 공무원이 전화와서, 이제 일 열라 빡센 곳으로 내가 전출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사실 지금 있는 곳이 말이 안되게 편하기는 했지만.. 역시 우울이다...

안 그래도 최근에 너무 많이 공부할 것을 벌려놓은 감이 있어서, 열심히 해야지 했는데.. 몇 개는 피치 못하게 접어야 할 수도 ㅜㅠ

어쨌든 9시부터 6시까지는 책 한줄 읽을 시간도 없다고 하니;; 이거 원;;;;

당장 내일 아침부터 출근이다. 쩝;

힘 내야지! 애인도 체코에 있고, 친한 친구도 모레 공보의로 훈련소 입대하고.. 우울하네. 엄마는 친구랑 밥 사먹으라고 돈 입금해준다 하시는데..

쩝.. 어찌 할 수 없지 뭐. 현역들이 들으면 화낼 수도 있지만. 이제 내 공익 인생의 재탄생이구먼. 힘 내서 일이나 해야지 -_-; 글구 효율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공부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겠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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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2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나는 것은 일 못하는 공익을 일 못한다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내가 일 잘한다고 일 많은 데로 옮긴다는 것... 흠.. 어이없는 시스템이다.. 역시 공익은 태업의 일상화만이 편한 공익생활의 길인 듯... -_-a

이매지 2007-03-2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그래도 생일 축하드려요^^;;

비로그인 2007-03-2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그래도 부럽습니다. 전 이등병때 순수하게 양말 빨 시간이 없어서 10일동안 같은 양말을 신은 적이 있지요. (물론 발냄새난다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지만 ㅋ이건뭐 지내들 때문에 그런건데 후)

기인 2007-03-2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고맙습니다. ㅎㅎ
테츠님/ ㅎ 제가 현역님들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죠. ^^

아아.. 그리고 더 충격적(?)인 뉴스는 방금 전화와서, 당분간 그냥 하던 일 하라고.. ㅋㅋㅋ 오우 제발 여기서 전역할 수 있기를!!

릴케 현상 2007-03-2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업의 일상화...군대는 역시 개겨야 돼요 ㅋ
아참 생일은 축하해야죠!

기인 2007-03-2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께 앞으로 배우겠습니다. ㅋㅋ 진짜 공익은 더 개겨야 되요. 군대는 개기면 큰일 나지 않나요? 공익은 개기면 공무원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보내주는 것 같아요.
흑;; 저 같이 안 개길 것 같은 '이미지'는 참 안 좋아요. ㅋㅋ

비로그인 2007-03-20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기인님 페이퍼 인사드리러 왔다가
저 위의 테츠님 댓글보고 기절해서 달아나야 겠어요 ㅎㅎ
잘 읽고 갑니다. 생일 축하해요 :)

프레이야 2007-03-2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앤님도 멀리 계시고 여러가지로 좀 우울하긴 하네요.
그래도, 생일 축하합니다!!

기인 2007-03-2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감사드립니다. ㅎ 뭐 야밤에 친구나 만날까 하다가.. 그냥 탕수육이나 먹으면서 하이킥이나 봐야겠습니다 ㅎㅎ

Mephistopheles 2007-03-2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익이던....현역이던...피같은 젊은 시간을 낭비아닌 낭비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보고 싶어요...^^ -이상 제 2국민역 메피스토가-

기인 2007-03-21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그쵸~ ㅎ 얼른 징병제가 도입되기를...

마태우스 2007-03-2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상치 못한 일이라 더 슬프겠군요 내년 생일은 좀 즐겁게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인 2007-03-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내년 생일에도 여기서 근무하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

늙은청년 2007-03-22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음을 틈타 늘 기인님 집 담을 소리없이 넘던 사람인데.
오늘은 불쑥 축하한다는 말을 흘리고 가고싶군요. 이틀 늦었지만;;

기인 2007-03-22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감사합니다. :)
 
도편수 1 - 벼락이 바꾼 운명
박신호 지음 / 해우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무협지가 대중 영웅소설이고, 최근의 무협지는 그 주인공의 파워 레벨을 조정하지 못해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일이 종종있다. 드래곤볼 식으로, 지구 박살래고, 우주에 구멍을 뚫는 수준! 그런데 이를 합리화(?)하는 방식은 재미있게도 도교나 불교에서 끌어와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나, 아니면 도가도 비가도니 하면서 본질을 초월한다느니 뭐니 하는 식이다. 이 '도편수'는 마지막에는 '기가신공'이라는 이름만으로도 giga를 패러디한 듯한 이상한 신공으로, 드래곤의 언령의 힘같은 무공을 펼친다.. 휴우...

이러면 이제 적이든 뭐든, 별반 재미가 없어진다. 무소불위의 주인공이니 어떻게 서사가 진행되겠는가? 말 한마디로, '소멸'하면 되는데!

대중적 영웅소설의 서사는,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꼭 잘 안 되는"이런 요소 때문에 진행되는데, 영웅이 너무 세져버리면, 이러한 '꼭 잘 안되는'요소가 없어진다. 무협지는 로드무비식으로 주인공이 길을 떠나면서 점점 기연을 얻거나 열심히 수련해서 세진다. 이 '점점'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미묘하게 강하게 해야지 한꺼번에 팍팍 올리는데, 인기를 끌면 또 권수가 늘어나다보면 완전 천상의 존재가 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드래곤볼. 귀엽던 손오공이 달을 뿌갠것이 10권이 못되서다. 우주인이 처음 침공한 것이 몇권째였을까? 이제 그 우주인네 종족 중 최강자인 베지타가 오고, 그 다음에 그 종족을 지배하는 다른 종족 중 최강자의 부하인 기뉴특전대, 그 후 그 종족의 최강그룹인 후리자, 그 다음에 이를 이길 수 있는 초샤이아인도 못 이겨서 미래에서 과거로 도움을 얻으러 올 만큼 센 '인조인간' 그리고 그 인조인간도 박살내는 '셀'과 이보다 더 쎈 마인부우... 정말 징하다. 이들은 '달'을 박살낸 손오공은 입김으로도 없앨 수 있는 존재이니, 시공간을 뿌개는 일은 일도 아니다...

'도편수'도 비스무리하게, 한꺼번에 너무 파워레벨을 올리다보니 작가가 감당을 못하게 되버려서 끝나고 만다. 이제 말 한마디면 다 죽는데, 더 이상 어찌하리오...

'도편수'라는 제목처럼, 목수가 주인공인데, 말만 목수고, '묵자'의 후예라는 설정만 있을뿐, 그 설정은 스토리라인에 별반 반영되지 못해서, 5~6권쯤 되니까, 짱센 주인공의 지맘대로라는 공식이 다시 도입되었다.

에코가 '슈퍼맨'을 분석한 것처럼, 이러한 주인공을 계속 우려먹으려면 (70년간 우려먹고 있는 슈퍼맨!), 시간축을 무시하던지, 슈퍼맨의 약점 (크립토나이트 등)을 이용해서 함정에 빠트리던지 해야 한다. 그래도 이는 2급 해결이고,

역시 김용의 영웅문처럼, '과도'하게 세지는 않게 파워레벨을 잘 조정해야하는데, 이것이 꽤나 힘든 모냥이다. 휘긴경(홍정훈)이 이를 패러디해서 소설을 썼듯이, 몇몇 환타지나 무협지를 보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요즘은 제일 잘 나가나는 무협(?)인 비뢰도나 묵향 모냥, 엄청 세고 성질 더러운 주인공의 통쾌함이 무협이나 환타지를 읽는 재미로 되니, 무협지와 환타지의 충실한 팬인 나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다시금 좌백님의 재필을 기대하고, '하얀 로냐프 강' 2부와, 이영도님을 기다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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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3-20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로냐프 강 2부는 지금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대여점에 갔다가 발견했어요.

기인 2007-03-20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ㅎ 안 그래도 그거 보고 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얼른 완간되어야 볼텐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