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외국어로 강의하기와 한국어로 학문하기

 * 나는 개인적으로 강단 인문학이 부활하려면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본래적 가치와 의미를 끈덕지게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강단 인문학자들의 대중들에게로의 열린 학문적 포용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가장 급선무로 해야 될 일은 바로 우리 언어가 가진 맛과 멋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다듬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학문적 숭고함으로 포장된 지적 교만함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 언어로 말을 하고 우리 언어로 된 학문을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세계화=영어화' 혹은 '세계화=미국화'라는 말도 안되는 공식이 너무도 어이없게 통용되는 현재의 시점은 강단 인문학의 위기만을 가속화 할 뿐이다. "외국어로 강의하는 것이 필수사항이다."가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필수사항이다."로 이해되는 현재의 상황은 앞으로 한국의 학문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있어 큰 장애물이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문화적 세계화는 다질적이인 문화들을 열린 포용력으로 수용하는 것이지, 미국적 문화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적 세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언어의 문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질적이고 다성적인 언어들이 모두 각자의 목소리로 말하도록 하는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적 세계화이지, 영어가 그 목소리를 자신의 초월적 기표아래 통합시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곧 세계화의 첨단으로 나아가는 길로 착각하는 몰지각한 대학의 정책 입안자들과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몇몇 교수들의 한심한 작태를 볼 때 과연 그들의 학문적 진정성은 무엇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강단 인문학은 괴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대중적 지성 혹은 대중적 인문학은 발딛을 틈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학문은 여전히 세계의 지적 패권주의에 복속되고 종속되어 멸절해 버릴 것이다.

* 교수신문(2007. 3. 16)  / 외국어로 강의하기와 한국어로 학문하기

2007년 03월 16일 (금) 13:15:00 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여러 대학에서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을 늘이고 있다.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연구보조비를 지급하고, 폐강 기준을 완화하며, 절대 평가도 허용하고, 강의 시수도 높게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신임 교수는 반드시 1과목 이상을 외국어로 강의하도록 하고, 학생들은 반드시 외국어로 진행하는 과목을 수강하도록 강제하려고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대학에도 외국 유학생이 늘어나고, 우리 학생들도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의 차원에서 외국어에 능통할 필요가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또 우수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여 교수진 구성도 다양하게 한다면 당연히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의 확대가 한국어가 학문의 언어로서 자리 잡아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학문 분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 강의실에서 쓰이는 한국어는 정상적인 한국어라 하기 어렵다는 점이 거듭 지적되어 왔다. 주요 용어는 물론 서술어조차 외국어 일변도이고 한국어는 ‘토’로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강의를 외국어로만 하는 과목이 늘어난다면 한국어는 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역할을 급격하게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


 사실 근대 직전까지 우리는 한문으로 학문을 해왔고, 학문의 영역에서 한글은 기껏 경전의 번역용이었을 뿐이었다. 한글이 공용문자가 된 것은 1894년부터이며, 대학에서 학문의 언어로 자리 잡은 지는 이제 겨우 60년이 되었다. 그것도 난삽한 한자어, 번역어, 외래어 및 외국어로 점철된 한국어로 우리는 학문을 해왔던 것이다. 제대로 된 한국어로 학문을 하려는 노력도 전개되어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외국어로 전공 강의를 하도록 하니 우리 학문의 세계에 마치 제 2의 중세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지난 중세에는 한문으로 학문을 했어도 수업만은 한국어로 했는데, 이제는 수업도 외국어로 하자니 말이다. 


 원효, 퇴계, 율곡 등 여러 선인들이 한문으로 세계적인 학문을 했으니 장차 우리가 외국어로 세계적인 학문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계에 널리 쓰이는 언어로 학문을 하여 곧장 외국 학자들과 소통하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일원화의 방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원화의 방향에서도 이루어진다. 지식의 창조 역시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라틴어 못지않게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훌륭한 학문의 언어 역할을 하듯이 한국어도 한문 못지않게 세계적인 지식을 창조하는 언어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것을 학문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개설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어로 창조적인 학문을 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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