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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좋은 방
용윤선 지음 / 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I'll hold you in my heart.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울기 좋은 방>의 저자 용윤선의 블로그로 들어가니 이사오 사사키의 이 음악이 배경 음악이다. 저자가 쓴 책을 닮았다. 책은 저자를 닮았을 것이니, 저자는 저 음악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울고 싶은 때가 있다. 감정이 차곡 차곡 쌓여 있는데, 아직 흘러넘치지는 않아, 누군가 여기에 마중물 한 그릇만 부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혹은 풍선처럼 부푼 마음이 자꾸 늘어나기만 해서, 자꾸 긴장감만 고조되어 가고 얇아지는 고무풍선의 두께처럼 내 마음은 점점 연약해져 가는 것 같은데, 누군가 핀 하나로 톡 찔러서 이 바람을 전부 빼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나는 푸쉬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편안히 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울기 좋은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며칠 째 지지부진한 내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마중물이 필요해. 작은 핀이 필요해.
용윤선이라는 사람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블로그를 훑어보니 카페를 경영하며 커피 수업도 하는 바리스타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블로그에서도, 책에서도 커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재생지인가? 잘 모르겠지만 연한 회색의 책의 속지도, 신명조체같지만 정확히 알 바 없는 글씨체도, 너무 자주 나오지 않는 사진도, 전부 마음에 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적당히 바래져가며, 손때가 묻어가며, 낡아가는 책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런 책은 소장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점점 대체불가능해질 것 같다.
하나, 아침이 된다
:멕시코 Mexico Altura Orizaba
둘, 그 사람 손을 본다
:콜롬비아 Colombia Narino Supremo
셋, 고맙다고 말한다
:인디아 몬순 India Monsooned Malabar AA
넷, 버지니아 슬림
:과테말라 Guatemala Antigua SHB
다섯, 왜 또 그러니?
:브라질 이파네마 Brazil Ipanema Euro, Natural
여섯, 내 남자거든요
:에티오피아 시다모 Ethiopia Sidamo Guji, Natural
일곱, 읽지 못하였고 쓰지 못하였다
:파푸아뉴기니 Papua New Guinea Sigri AA
여덟, 우리는 內海로 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Ice Americano
아홉, 사과해라, 나를 사랑한 것을
:케냐 피베리 Kenya Peaberry
내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보니, 가정을 꾸리는 일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수월해질 것 같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항해 같은 것이다. 어머니로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살았다.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것으로 어머니라는 자리의 몫 절반쯤은 해내는 것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커서 나에 대해서 "사랑 표현이라고는 하나 없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냉정한 엄마"라고 일축한다. 한번은 딸아이가 학교에서 심리 검사를 했는데 우울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찾아갔다.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검사를 하나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검사가 있었다면 우리 어머니도 학교에 가셨을 것 같다. 상담선생님이 내게 이런 조언을 하셨다. 딸아이에게 사과하라고. 그렇게 사랑한 것을 사과하라고.
집에 돌아와 내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생각해본다. 사랑이 죄라는 노랫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상담선생님 말씀은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데, 딸아이보다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법으로만 사랑했으니 사과하라는 뜻이다. 나는 심리적 통찰력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심리적 통찰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교육받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부족한 사람이 어머니가 되어 귀한 생명을 우울하게 살게 했구나 하는 생각. 그런데 사람은 왜 부족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던데.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 거구나.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법으로 사랑하며 살 수 없단 말인가. 사랑이 무엇일까, 다리를 뻗고 앉아서 날이 저물 때까지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가슴뼈가 부서지도록 주먹으로 쳐본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밥을 차려주고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준다. 딸아이는 케냐 피베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려 앉아 책을 읽는다. 마치 하루종일 읽고 있었던 책처럼 능숙하게 중간부터 펼쳐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가 이런 내 모습이 아이에게 상처였나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딸아이를 향해 돌아앉지 못한다.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며칠 후, 다시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 딸아이를 불러 마주 앉는다. 그리고 나는 사과한다.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열, 형
:케냐 AA Kenya Nyeri AA
열하나,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코스타리카 타라주 Costarica Tarrazu
열둘, 오늘은 안 왔으면 좋겠네
:에티오피아 아리차 Ethiopia Aricha
열셋, 에스프레소 가르쳐줄래?
:에스프레소 Espresso
열넷, 킬리만자로에 가는 길이다
:탄자니아 AA Tanzania Kibo AA
삼 년을 만나고 이십 년을 만나고 아니 평생을 만나도 사람은 모른다. 그렇게 된 과정에는 말없이 떠난 사람이 있었고, 돌아왔지만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고,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결국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지 못해 사람을 믿지 않는 모순의 자기애이기도 할 테지만 모른 채 사는 것이 상처를 덜 주고받는 생존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의 반짝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어와 턱을 괴고 웃는다. 다시는 가슴에 나무를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되고 바람을 일으킨다.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수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열다섯, 잘 지내세요
:르완다 Rwanda Bourbon
열여섯, 커피하는 사람
:에티오피아 코케 Ethiopia Koke, Honey
열일곱, 횡단보도에서 만나다
:하우스 블렌드 House Blend
몇 년 후 나는 그와 결혼했다. 건축학과에 다닌다는 그 사람에게 "우리 학교에 건축학과가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그 사람과 나는 커피집에서 하우스 블렌드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메뉴의 가장 위에 있는 것, 1번을 주문한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렇다. 그런 것부터 우리는 많이 달랐다.
그는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를 보다가 헌신은커녕 결혼해서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해 매 순간 고뇌에 빠져 있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결혼하면 네가 어머니처럼 변할 줄 알았어. 너도 우리 어머니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지금까지 그 생각이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 착각은 착각한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마찬가지다. 나 역시 결혼하면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처럼 변할 줄 알았다. 아니 세상 모든 남자가 우리 아버지 같은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이불을 정리해주고, 방을 닦아주고, 일찍 퇴근하여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갈치 살을 밥 위에 놓아주는....... 세상 모든 남자가 그런 줄 알았다. 조금 더 함께 살면 이십 년을 살게 될 것이다. 살아온 삶의 절반쯤을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은희라는 교육생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그렇게 오래 살면 지겹지 않으세요?"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시간은 지루한데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같아."
그 사람과 나는 가끔 밤에 나가 술을 마시는데, 몇 년 전 가을의 일이었다. 아마 십육 년 정도 함께 살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너와 결혼한 것은 내 운명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밤하늘에 큰 달이 침묵을 지키며 빛만 내보내고 있었다. 포기와 체념 같은 것이 맑은 소주와 뒤섞여서 목구멍으로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나의 혈관으로 한 사람이 저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운명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운명인가...... 탄식하던 적도 있다. 이제 헤아리지 않는다. 그만 헤아리겠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돌고 돌아 아주 멀리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도착지까지 가게 될 것이다. 만들어지는 것이 운명이라면...... 자신 없다.
그 사람은 여전히 어깨가 넓고 얼굴이 기다랗다. 머리카락만 회색이 되었다. 잘 웃던 눈이 나를 바라볼 때는 뱀눈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다 괜찮다.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면 헤어지는 일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거침없이 보여주고 살았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하고 있었을 그 찰나가 바보처럼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 외에 보이는 것이 없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존재했었다는 기억으로 어떤 사람들의 관계는 지탱될 때가 있다.
손해와 이득이 아슬아슬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관계, 결국 하나일 텐데 둘로 보일 때가 많았다. 어쩌면 분명 둘인데 하나라고 우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에 몽상가이며 환상과 착란 혹은 착각에 잘 빠지는 기질을 갖고 있는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그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갈 데도 없냐고 다그치면 생뚱맞은 얼굴로 어딜 가냐고 대답한다. 이제는 푸짐하게 나온 그의 배 위에 과민한 내 머리를 기대고 밤새 잠이 들곤 한다. 어쩌면 같은 맛으로 자리를 지키는 커피집의 하우스 블렌드 같은,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든든한 묵직함일지 모른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자는 그 사람의 큰 손을 가만히 잡아볼 때가 있다. 손톱 모양새를 물끄러미 본다. 소년의 손톱 모양과 같음을 발견한다. 이 손으로 내 손을 슬며시 잡고 길을 건너던 횡단보도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운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열여덟, 꿈
:카푸치노 Cappuccino
열아홉, 붉은 양파와 푸른 오이
:아침 커피 Morning Coffee
스물, 아침 산책
:에콰도르 Ecuador Loja SHB
스물하나, 차를 끓일까요?
:모카 Mocha
스물둘, 푸안루에서 버스를 타면
:샤커레토 Cafe Shakerrato
스물셋, 눈빛에도 표정이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 Indonesia Java
스물넷, 내가 못 살아
:도미니카 Dominica Santo Domingo
스물다섯, 사랑, 그 허망한 푸닥거리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Ethiopia Yirgacheffe
스물여섯, 타고나지 못했으면 노력을 해야죠
:운남성 云南省
스물일곱, 부디 그 말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스물여덟, 나는 코시체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예멘 Yemen Mocha Mattari
스물아홉, 힘들었어요?
:민트 커피 Mint Coffee
서른, 사랑하다가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이름
:아포가토 Affogato
서른하나, 아름답게 살기로 하였다
:룽고 Lungo
서른둘, 고백하지 마라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 Cuba Crystal Mountain
고백은 비겁한 것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비밀이니 혼자만 알고 있어달라고 한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비밀이라면 죽어서도 당신이 갖고 가야지. 털어놓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가벼워지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폭로하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어디다가 감히 고백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 쓰는가.
내가 말을 잘 들어주게 생긴 모양인지 아니면 넉넉한 몸과 보름달 같은 얼굴이 후덕하게 보이는지, 종종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고백의 대부분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들이다. 즉 제3자의 이야기들이다. 그게 무슨 고백이냔 말이다. 고백은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것이다.
나도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런 순간이 내게도 오더라. 그 순간은 참으로 간절한데, 잘 생각해보면 오로지 나만 간절한 것이다. 그 간절한 고백이 혹여라도 이기적인 것일 때 고백한 자는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된다. 왜 간절한지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기 떄문에 간절한 것이다. 지금 간절한 이가 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고 도치해보면 평범한 일이 된다. 평범한 감정을 고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백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어서 괴롭다면 그 괴로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답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눈의 깜박임, 손짓, 발짓, 숨소리, 머리카락...... 차라리 그런 아름다운 것들로 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모인 사람의 일생으로 오직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서른셋, 며칠 전에 말을 들었다
:파나마 게이샤 Panama Geisha
서른넷, 알지 못하는 형편
:아메리카노 Americano
서른다섯, 그 눈빛은 무엇입니까?
:에티오피아 미칠레 Ethiopia Michille
서른여섯, 기차가 타고 싶어서
:아이리시 커피 Irish Coffee
서른일곱, 죽어도 나는 못하겠다
:커피 루왁 Kopi Luwak
서른여덟, 동거
:도피오 Doppio
서른아홉, 굴라쉬 수프
:브랜디 커피 Brandy Coffee
마흔, 호수는 낙엽만 떨어져도 상처받죠
:우간다 Uganda Bugisu AA
마흔하나, 이제 살 곳을 정해야 한다
:페루 찬차마요 Peru Chanchamayo
마흔둘, 섬유유연제와 그 남자에 대한 기억
:하와이안 코나 Hawaiian Kona Extra Fancy
마흔셋, 당신
:네팔 굴미 Nepal Gulmi
마흔넷, 벌을 서고 싶어서
:도이창 Doi Chang
마흔다섯, 우리, 절에 갈래요?
:온두라스 Honduras Santa Barbara
마흔여섯, 걱정 마세요
:카페오레 Cafe au Lait
마흔일곱, 그 사람을 제게 주세요
:에티오피아 하라 Ethiopia Harrar Longberry
마흔여덟, 외로워서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페루 오가닉 Peru Organic
마흔아홉, 북쪽에 방이 있어 다행이다
:인도네시아 블루문 Indonesia Blue Moon
쉰, 오리 마을
: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Brazil Santo Antonio
쉰하나, 당신이 잘 보이는 자리
:니카라과 Nicaragua, Honey
쉰둘, 지금을 쓰면 된다
:코스타리카 호르헤 Costarica Jorge
쉰셋, 적당했다
:파나마 보큐테 Panama Boquete
쉰넷, 등을 보며 살았다
:콜롬비아 마라고지페 Colombia Maragogype
길을 걸을 때마다, 두 분의 등을 기억했다. 굽어가는 등을 생각하면서 가던 길에서 멈추기도 했으며 좀더 걸아가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아니 두 분께서 두려워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러나 그 길을 걸어들어가고 싶어 미쳐 돌아갈 때, 나는 아버지의 등을 생각했고 어머니의 등을 생각했다. 더 굽어질 등 때문이라도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나에게 당부했고, 그 당부가 결국 내 자신을 가두었으나 두 분의 등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으로 지금을 산다. 두 번 다시 두 분의 등이 나로 인해서 굽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싶다.
그런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때쯤, 나를 생각하느라 아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부모란 자식이 허물어뜨려도 일어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살고 싶었던 방향대로 살았어도 어쩌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것을 자식을 낳고 한참 후에 알았다.
쉰다섯, 혼자 먹어보기
:에티오피아 코체르 Ethiopia Kochere
쉰여섯, 일어서는 중이에요
:케냐 키아와무루루 Kenya Kiawamururu AA
쉰일곱, 이 냄새일 거예요
:인디아 아티칸 India Attikan
쉰여덟, 호텔
:얼그레이 라테 마키아토 Earl Grey Latte Macchiato
쉰아홉, 바람언덕 가는 길
:블랙커피 Black Coffee
예순, 무조건
:가요 마운틴 Gayo Mountain
예순하나, 나를 보고 웃지 않는
:예멘 모카 Yemen Mocha Sanani
예순둘, 목적이 없다
:인디아 아라쿠 India Araku
예순셋, 살고 싶은 사람
:에티오피아 코체르 피베리 Ethiopia Kochere Peaberry
예순넷, 가방 들어주는 사람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Papua New Guinea Marawaka Blue Mountain
사람들이 말한다. 커피가 다 같은 맛이지 커피를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는 것은 커피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작정한 후부터라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거나 공감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커피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도 비슷한 생각에 빠질 떄가 있다. 얼마 전에 상담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소개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상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상담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분석하는 일이 사람에 대한 이해나 위로보다는 심리학이나 그와 연계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밥벌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구경꾼이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듯하기에 내게 물어오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며, 당신이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깊고 기나긴 숙고 없이 한마디의 말이나 단편적 기록으로 피상담자와 그 주변에 대해 그렇게 단언해서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진정한 상담이란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지 그게 당신 연구를 위한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상담가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상담을 해준다는 행위를 자각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그런 말을 하면서 그 말은 결국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치는 사람에게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게 물었다. 이토록 폭력적인 나의 말은 그를 며칠 밤잠 못 이루게 할 거싱고 결국 그를 위한 약이 되기도 할 것인데, 이 사람에게 왜 나는 넘치고 있는가. 대강 적당히 바라보다 헤어지면 될 것을.
그 사람은 웃고 있었지만 붉은 얼굴은 터질 듯하였다. 그 사람은 큰 손짓을 하면서 목소리 높여 밝고 명랑하게 내게 질문한 것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나는 성인이고 중간에 나와 그 사람을 소개해준 선량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지인도 있었다. 신발을 신는 곳까지 나와서 나에게 인사해주었다. 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그 사람은 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신발을 다 신은 후에야 내 가방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두 손을 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싫었다. 당신이 내 가방을 그렇게 들고 있으면, 갑자기 진정성 있는 상담가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이 조금 편할 뿐이겠지.......
예순다섯, 북창동
:세상의 모든 커피 All the coffee in the world
예순여섯, 과메기 브런치
:더치커피 Dutch Coffee
예순일곱, 거닐다
:브룬디 Burundi Mpanga
예순여덟, 끝까지 감싸안겠다
:에티오피아 첼바 Ethiopia Chelba
예순아홉, 사랑은 왜 이렇게 어렵니?
:인도네시아 토라자 Indonesia Toraja
일흔, 오음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Guatemala Huehuetenango
일흔하나, 밀양
:에티오피아 이디도 Ethiopia Idido
일흔둘, 사이
:라테 그리고 모카 Cafe Latte and Cafe Mocha
일흔셋, 當身, 사로잡히다
:카페 콘파냐 Cafe Con Panna
일흔넷, 그냥 한번 살아보겠다
:핫 코코아 Hot Cocoa
일흔다섯, 하노이 보드카
:베트남 핀 드립 Vietnam Pin Drip
일흔여섯, 커피값은 제가 낼 테니
:파나마 게이샤 줄리엣 Panama Geisha Juliette
나중에 저 모든 커피를 마셔가며 각각의 해당하는 본문을 읽으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보았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올까? 오겠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정체 모를 공허함은 채워졌으니.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예순 넷에서 멈칫했다. 위선보다 위악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 챕터의 일화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람 참 피곤하구나,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도 들었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예민함은 글쓴이가 가져야 할 필수 요소 중의 하나일지언정, 그 칼날이 타인을 향해 있는 사람은 그냥 인간으로서 맞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몸에 차오르는 독기를 매번 발산해야 하는 것인지, 그 독기를 글쓰는 데에만 발휘하면 모를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분출하는 것을, 글쓴이의 과거 어린 시절과 사생활을 바탕으로 이해해줘야 하는 것인지, 너무 유아적인 태도 아닌가? 나에게는 이런 이런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나보다, 하고 결론내리는 것은? 글 전체를 보면 저자는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시인을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시인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마저 끌어안고 대신 울어주고 껴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독자로서 나는, 스스로의 아픔을 유치하게 남에게 발산하며 거기에 대해 자신의 사생활로 합리화하는 사람의 시는 보고 싶지 않다. 해당 부분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부분을 본 순간 이 사람 글은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는 시가 필요하지, 누군가의 감정 표출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