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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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은, 대부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다. 고통스러웠거나 민망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지워버린다. 기억이 희미하면, 상처를 받아도 쉽게 잊는다. 상처를 쉽게 잊으니 상처를 받는 일도 점점 드물어진다. 사람으로선 놀라운 강점이지만 작가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상처받지 않는 작가라니,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말이다.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인간의 상처와 기억과 용서와 화해를 다루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살아선 <죄와 벌>이나 <위대한 개츠비> 같은 명작을 남기긴 애당초 글러먹었다. Y의 소설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시, 오, 이, 엔, 철자로 입은) 상처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결국에는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을 지나왔기 떄문일 것이다. 나도 더 늦기 전에 많이 상처 입고 (이거 원 기억이 나야지) 더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기억이 안 나) 더 많이 화해해서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에 도전해봐야겠다.

 

이 책은 김중혁과 김연수, 두 절친 소설가가 씨네 21에 연재한 영화 관련 칼럼을 엮은 책이다. 분명히 저자 이름에는 김연수가 먼저 올라와 있지만,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최근 읽은 김중혁의 몇몇 책들이 좋아서였기 때문에 나는 김중혁의 글이 더 궁금했다.

 

대중적으로는 김연수 작가가 좀 더 알려져 있고, 데뷔도 더 빨리 했으며, 더 많은 소설을 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중혁 작가의 글이 내 취향에 맞는다. 두 소설가가 번갈아가면서 쓰는 이 책에서도 나는 김중혁의 글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이니까, 김연수 작가의 글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일단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글 쓰는 이나 글 읽는 이나 어느 정도 긴장을 풀고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러다가 문득, 아, 하면서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게 되는, 돈오돈수의 순간이 종종 오기도 한다. 독자는 때로 작가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 때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분명히 두 작가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두 작가도 책의 맨 앞에서 특별히 둘 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밝히고 있다. 전문가라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하고 몇 번이고 마음 속에서 검열을 거치겠지만, 작가나 독자나 비전문가인 것은 마찬가지기에, 작가는 마음껏 영화를 주물러가며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왕창 늘어놓고, 독자는 또 즐겁게 깔깔대면서 읽으면 그만이다.

 

랜디와 잭 블랙 캐릭터의 차이는 뭘까. 랜디는 레슬링에 자신의 모든 것, 100퍼센트를 걸었다. 레슬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죽어도 좋아, 라는 심정으로 레슬링을 한다. 하지만 잭 블랙은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건다(완전 '자뻑'이다). 믿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어떤 대상이나 어떤 일에 100퍼센트를 거는 건 위험한 짓이다. 일이 망가지거나 실패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레슬링에 모든 것을 건 랜디는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고 말한다. 멋있어 보이려고 한 얘기인지 몰라도 나는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링도 나의 세계"라거나 "링은 나의 직장"이라거나 했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니. 레이가 랜디의 대사를 들었다면 이렇게 빈정거리지 않았을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염병할 링에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말이나 돼? 내가 브리주를 도망쳤듯 어서 빨리 그 빌어먹을 링에서 벗어나라고.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난 정말 살고 싶다고."레이의 말이 백번 옳다.

 

이 부분도, 글의 맨 앞에 인용한 부분도 전부 김중혁의 글 일부이다. 어떤 대상에 전부를 걸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100퍼센트 믿는 잭 블랙의 캐릭터는 김중혁과도 닮았다. 그러기에 당당히 소설가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인 자신의 기억력 부족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나. 그의 글은 멋있어 보이지 않으려고 하기에 매력적이다. 김중혁 작가의 글이 명태를 얼렸다 말렸다를 되풀이하여 노르스름한 겉은 꾸덕꾸덕하고 안은 포슬포슬한 황태와 같다면, 김연수 작가의 글은 명태의 알집을 소금에 절이고 발효하여 고소하고 짭짤해진 연분홍빛 명란젓 같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남녀상열지사를 다루는 소설은 김연수의 소설이 재미있는 것 같다.

 

나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참 좋다. 그분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는 건 소리와 빛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 일부분도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다. 낭만주의자가 될 때, 나는 일상의 소리와 빛에 민감해진다. 비행기 소리라거나 바람 소리, 혹은 도로로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되비치는 거리의 불빛들에 나는 끌린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는 일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 내리는 청두 거리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센티멘탈해진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도 그처럼 센티멘탈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바라보는 일상은 너무 큰 소리와 아름다운 빛으로 왜곡돼 있다. 그리고 이 왜곡은 의도적이다.

"연수 씨 작품에는 신파가 있어요"라는 말을 지난주에 들었다.(물론 그 문학평론가는 아니다.) 항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통속을 좋아하고, 신파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통속과 신파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추는 데 실패한 자의 것이다. <호우시절>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면은 물론 판다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었겠지만(기다려라, 청두의 판다들이여, 반드시 찾아가서 말을 걸어보고야 말겠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메이가 남편의 영정 앞에 돼지내장탕면(너도 기다려!)을 바치고 구슬프게 울 때였다. 메이처럼 예쁜 여자가 그렇게 울면 그게 어떤 장면이든 나는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아서, 그 장면에서 메이가 운 건 아무래도 죽은 남편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 남편의 영정이 웬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을지 모르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행은 사후에 낭만적으로 변형된다고 믿는 나는 동하가 한국으로 떠난 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났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햇다. 그러고 보면 정말 동하는 모든 여자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 결혼하기 쉽지 않겠다.

 

<호우시절>에 대한 김연우의 글 중 일부이다.  나 또한 이 영화를 참 좋아했다. 낭만, 신파, 통속... 그런 부분이 때로는 김연우의 글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때로는 내가 소화하기에 과하다고 느끼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에게 영화보기란 귀를 후비는 것과 비슷하다. 더 잘 듣기 위해 귀에 상처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귀지를 긁어내듯,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오동통한 생선살을 다치지 않고 가시만 깔끔하게 발라내듯, 나는 내 심장이 잘 뛰게 하기 위해 영화를 보며 핏속의 불순물을 제거해왔다. 내게 영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매년 1월이 되면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더 많은 상상을 하기 위해, 영화를 열심히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김중혁이 쓴 글이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 나 또한 그랬다. 특정 장르, 특정 감독, 특정 배우에 심하다싶을 정도로 좌우되는, 영화에 대한 내 호감도는 대체 내게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할 정도로 의문이 들 때도 있었고, 때로는 다양한 스토리를 넘나들며 영화를 좋아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는 나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이야, 하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김중혁의 이 글을 보는 순간, 옳다구나 했다. 나는 영화를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특별할 이벤트가 있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우울할 때,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생각하고 싶을 때, 머리가 텅 빈 것 같을 때, 내 자신이 지나치게 냉정하게 느껴질 때, 감성을 채우기 위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화를 열심히 보려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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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좋은 방
용윤선 지음 / 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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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I'll hold you in my heart.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울기 좋은 방>의 저자 용윤선의 블로그로 들어가니 이사오 사사키의 이 음악이 배경 음악이다. 저자가 쓴 책을 닮았다. 책은 저자를 닮았을 것이니, 저자는 저 음악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울고 싶은 때가 있다. 감정이 차곡 차곡 쌓여 있는데, 아직 흘러넘치지는 않아, 누군가 여기에 마중물 한 그릇만 부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혹은 풍선처럼 부푼 마음이 자꾸 늘어나기만 해서, 자꾸 긴장감만 고조되어 가고 얇아지는 고무풍선의 두께처럼 내 마음은 점점 연약해져 가는 것 같은데, 누군가 핀 하나로 톡 찔러서 이 바람을 전부 빼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나는 푸쉬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편안히 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울기 좋은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며칠 째 지지부진한 내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마중물이 필요해. 작은 핀이 필요해.

 

용윤선이라는 사람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블로그를 훑어보니 카페를 경영하며 커피 수업도 하는 바리스타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블로그에서도, 책에서도 커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재생지인가? 잘 모르겠지만 연한 회색의 책의 속지도, 신명조체같지만 정확히 알 바 없는 글씨체도, 너무 자주 나오지 않는 사진도, 전부 마음에 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적당히 바래져가며, 손때가 묻어가며, 낡아가는 책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런 책은 소장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점점 대체불가능해질 것 같다.

 

하나, 아침이 된다
:멕시코 Mexico Altura Orizaba
둘, 그 사람 손을 본다
:콜롬비아 Colombia Narino Supremo
셋, 고맙다고 말한다
:인디아 몬순 India Monsooned Malabar AA
넷, 버지니아 슬림
:과테말라 Guatemala Antigua SHB
다섯, 왜 또 그러니?
:브라질 이파네마 Brazil Ipanema Euro, Natural
여섯, 내 남자거든요
:에티오피아 시다모 Ethiopia Sidamo Guji, Natural
일곱, 읽지 못하였고 쓰지 못하였다
:파푸아뉴기니 Papua New Guinea Sigri AA
여덟, 우리는 內海로 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Ice Americano

 

아홉, 사과해라, 나를 사랑한 것을
:케냐 피베리 Kenya Peaberry

내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보니, 가정을 꾸리는 일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수월해질 것 같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항해 같은 것이다. 어머니로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살았다.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것으로 어머니라는 자리의 몫 절반쯤은 해내는 것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커서 나에 대해서 "사랑 표현이라고는 하나 없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냉정한 엄마"라고 일축한다. 한번은 딸아이가 학교에서 심리 검사를 했는데 우울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찾아갔다.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검사를 하나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검사가 있었다면 우리 어머니도 학교에 가셨을 것 같다. 상담선생님이 내게 이런 조언을 하셨다. 딸아이에게 사과하라고. 그렇게 사랑한 것을 사과하라고.

집에 돌아와 내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생각해본다. 사랑이 죄라는 노랫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상담선생님 말씀은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데, 딸아이보다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법으로만 사랑했으니 사과하라는 뜻이다. 나는 심리적 통찰력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심리적 통찰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교육받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부족한 사람이 어머니가 되어 귀한 생명을 우울하게 살게 했구나 하는 생각. 그런데 사람은 왜 부족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던데.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 거구나.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법으로 사랑하며 살 수 없단 말인가. 사랑이 무엇일까, 다리를 뻗고 앉아서 날이 저물 때까지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가슴뼈가 부서지도록 주먹으로 쳐본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밥을 차려주고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준다. 딸아이는 케냐 피베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려 앉아 책을 읽는다. 마치 하루종일 읽고 있었던 책처럼 능숙하게 중간부터 펼쳐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가 이런 내 모습이 아이에게 상처였나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딸아이를 향해 돌아앉지 못한다.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며칠 후, 다시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 딸아이를 불러 마주 앉는다. 그리고 나는 사과한다.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열, 형
:케냐 AA Kenya Nyeri AA
열하나,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코스타리카 타라주 Costarica Tarrazu
열둘, 오늘은 안 왔으면 좋겠네
:에티오피아 아리차 Ethiopia Aricha
열셋, 에스프레소 가르쳐줄래?
:에스프레소 Espresso


열넷, 킬리만자로에 가는 길이다
:탄자니아 AA Tanzania Kibo AA

삼 년을 만나고 이십 년을 만나고 아니 평생을 만나도 사람은 모른다. 그렇게 된 과정에는 말없이 떠난 사람이 있었고, 돌아왔지만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고,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결국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지 못해 사람을 믿지 않는 모순의 자기애이기도 할 테지만 모른 채 사는 것이 상처를 덜 주고받는 생존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의 반짝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어와 턱을 괴고 웃는다. 다시는 가슴에 나무를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되고 바람을 일으킨다.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수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열다섯, 잘 지내세요
:르완다 Rwanda Bourbon
열여섯, 커피하는 사람
:에티오피아 코케 Ethiopia Koke, Honey

열일곱, 횡단보도에서 만나다
:하우스 블렌드 House Blend

몇 년 후 나는 그와 결혼했다. 건축학과에 다닌다는 그 사람에게 "우리 학교에 건축학과가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그 사람과 나는 커피집에서 하우스 블렌드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메뉴의 가장 위에 있는 것, 1번을 주문한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렇다. 그런 것부터 우리는 많이 달랐다.

그는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를 보다가 헌신은커녕 결혼해서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해 매 순간 고뇌에 빠져 있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결혼하면 네가 어머니처럼 변할 줄 알았어. 너도 우리 어머니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지금까지 그 생각이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 착각은 착각한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마찬가지다. 나 역시 결혼하면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처럼 변할 줄 알았다. 아니 세상 모든 남자가 우리 아버지 같은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이불을 정리해주고, 방을 닦아주고, 일찍 퇴근하여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갈치 살을 밥 위에 놓아주는....... 세상 모든 남자가 그런 줄 알았다. 조금 더 함께 살면 이십 년을 살게 될 것이다. 살아온 삶의 절반쯤을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은희라는 교육생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그렇게 오래 살면 지겹지 않으세요?"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시간은 지루한데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같아."

 

그 사람과 나는 가끔 밤에 나가 술을 마시는데, 몇 년 전 가을의 일이었다. 아마 십육 년 정도 함께 살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너와 결혼한 것은 내 운명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밤하늘에 큰 달이 침묵을 지키며 빛만 내보내고 있었다. 포기와 체념 같은 것이 맑은 소주와 뒤섞여서 목구멍으로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나의 혈관으로 한 사람이 저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운명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운명인가...... 탄식하던 적도 있다. 이제 헤아리지 않는다. 그만 헤아리겠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돌고 돌아 아주 멀리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도착지까지 가게 될 것이다. 만들어지는 것이 운명이라면...... 자신 없다.

 

그 사람은 여전히 어깨가 넓고 얼굴이 기다랗다. 머리카락만 회색이 되었다. 잘 웃던 눈이 나를 바라볼 때는 뱀눈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다 괜찮다.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면 헤어지는 일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거침없이 보여주고 살았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하고 있었을 그 찰나가 바보처럼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 외에 보이는 것이 없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존재했었다는 기억으로 어떤 사람들의 관계는 지탱될 때가 있다.

손해와 이득이 아슬아슬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관계, 결국 하나일 텐데 둘로 보일 때가 많았다. 어쩌면 분명 둘인데 하나라고 우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에 몽상가이며 환상과 착란 혹은 착각에 잘 빠지는 기질을 갖고 있는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그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갈 데도 없냐고 다그치면 생뚱맞은 얼굴로 어딜 가냐고 대답한다. 이제는 푸짐하게 나온 그의 배 위에 과민한 내 머리를 기대고 밤새 잠이 들곤 한다. 어쩌면 같은 맛으로 자리를 지키는 커피집의 하우스 블렌드 같은,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든든한 묵직함일지 모른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자는 그 사람의 큰 손을 가만히 잡아볼 때가 있다. 손톱 모양새를 물끄러미 본다. 소년의 손톱 모양과 같음을 발견한다. 이 손으로 내 손을 슬며시 잡고 길을 건너던 횡단보도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운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열여덟, 꿈
:카푸치노 Cappuccino
열아홉, 붉은 양파와 푸른 오이
:아침 커피 Morning Coffee
스물, 아침 산책
:에콰도르 Ecuador Loja SHB
스물하나, 차를 끓일까요?
:모카 Mocha
스물둘, 푸안루에서 버스를 타면
:샤커레토 Cafe Shakerrato
스물셋, 눈빛에도 표정이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 Indonesia Java
스물넷, 내가 못 살아
:도미니카 Dominica Santo Domingo
스물다섯, 사랑, 그 허망한 푸닥거리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Ethiopia Yirgacheffe
스물여섯, 타고나지 못했으면 노력을 해야죠
:운남성 云南省
스물일곱, 부디 그 말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스물여덟, 나는 코시체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예멘 Yemen Mocha Mattari
스물아홉, 힘들었어요?
:민트 커피 Mint Coffee
서른, 사랑하다가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이름
:아포가토 Affogato
서른하나, 아름답게 살기로 하였다
:룽고 Lungo

서른둘, 고백하지 마라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 Cuba Crystal Mountain

고백은 비겁한 것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비밀이니 혼자만 알고 있어달라고 한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비밀이라면 죽어서도 당신이 갖고 가야지. 털어놓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가벼워지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폭로하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어디다가 감히 고백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 쓰는가.

내가 말을 잘 들어주게 생긴 모양인지 아니면 넉넉한 몸과 보름달 같은 얼굴이 후덕하게 보이는지, 종종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고백의 대부분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들이다. 즉 제3자의 이야기들이다. 그게 무슨 고백이냔 말이다. 고백은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것이다.

나도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런 순간이 내게도 오더라. 그 순간은 참으로 간절한데, 잘 생각해보면 오로지 나만 간절한 것이다. 그 간절한 고백이 혹여라도 이기적인 것일 때 고백한 자는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된다. 왜 간절한지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기 떄문에 간절한 것이다. 지금 간절한 이가 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고 도치해보면 평범한 일이 된다. 평범한 감정을 고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백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어서 괴롭다면 그 괴로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답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눈의 깜박임, 손짓, 발짓, 숨소리, 머리카락...... 차라리 그런 아름다운 것들로 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모인 사람의 일생으로 오직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서른셋, 며칠 전에 말을 들었다
:파나마 게이샤 Panama Geisha
서른넷, 알지 못하는 형편
:아메리카노 Americano
서른다섯, 그 눈빛은 무엇입니까?
:에티오피아 미칠레 Ethiopia Michille
서른여섯, 기차가 타고 싶어서
:아이리시 커피 Irish Coffee
서른일곱, 죽어도 나는 못하겠다
:커피 루왁 Kopi Luwak
서른여덟, 동거
:도피오 Doppio
서른아홉, 굴라쉬 수프
:브랜디 커피 Brandy Coffee
마흔, 호수는 낙엽만 떨어져도 상처받죠
:우간다 Uganda Bugisu AA
마흔하나, 이제 살 곳을 정해야 한다
:페루 찬차마요 Peru Chanchamayo
마흔둘, 섬유유연제와 그 남자에 대한 기억
:하와이안 코나 Hawaiian Kona Extra Fancy
마흔셋, 당신
:네팔 굴미 Nepal Gulmi
마흔넷, 벌을 서고 싶어서
:도이창 Doi Chang
마흔다섯, 우리, 절에 갈래요?
:온두라스 Honduras Santa Barbara
마흔여섯, 걱정 마세요
:카페오레 Cafe au Lait
마흔일곱, 그 사람을 제게 주세요
:에티오피아 하라 Ethiopia Harrar Longberry
마흔여덟, 외로워서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페루 오가닉 Peru Organic
마흔아홉, 북쪽에 방이 있어 다행이다
:인도네시아 블루문 Indonesia Blue Moon
쉰, 오리 마을
: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Brazil Santo Antonio
쉰하나, 당신이 잘 보이는 자리
:니카라과 Nicaragua, Honey
쉰둘, 지금을 쓰면 된다
:코스타리카 호르헤 Costarica Jorge
쉰셋, 적당했다
:파나마 보큐테 Panama Boquete

쉰넷, 등을 보며 살았다
:콜롬비아 마라고지페 Colombia Maragogype

길을 걸을 때마다, 두 분의 등을 기억했다. 굽어가는 등을 생각하면서 가던 길에서 멈추기도 했으며 좀더 걸아가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아니 두 분께서 두려워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러나 그 길을 걸어들어가고 싶어 미쳐 돌아갈 때, 나는 아버지의 등을 생각했고 어머니의 등을 생각했다. 더 굽어질 등 때문이라도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나에게 당부했고, 그 당부가 결국 내 자신을 가두었으나 두 분의 등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으로 지금을 산다. 두 번 다시 두 분의 등이 나로 인해서 굽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싶다.

그런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때쯤, 나를 생각하느라 아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부모란 자식이 허물어뜨려도 일어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살고 싶었던 방향대로 살았어도 어쩌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것을 자식을 낳고 한참 후에 알았다.


쉰다섯, 혼자 먹어보기
:에티오피아 코체르 Ethiopia Kochere
쉰여섯, 일어서는 중이에요
:케냐 키아와무루루 Kenya Kiawamururu AA
쉰일곱, 이 냄새일 거예요
:인디아 아티칸 India Attikan
쉰여덟, 호텔
:얼그레이 라테 마키아토 Earl Grey Latte Macchiato
쉰아홉, 바람언덕 가는 길
:블랙커피 Black Coffee
예순, 무조건
:가요 마운틴 Gayo Mountain
예순하나, 나를 보고 웃지 않는
:예멘 모카 Yemen Mocha Sanani
예순둘, 목적이 없다
:인디아 아라쿠 India Araku
예순셋, 살고 싶은 사람
:에티오피아 코체르 피베리 Ethiopia Kochere Peaberry

 

예순넷, 가방 들어주는 사람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Papua New Guinea Marawaka Blue Mountain

사람들이 말한다. 커피가 다 같은 맛이지 커피를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는 것은 커피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작정한 후부터라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거나 공감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커피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도 비슷한 생각에 빠질 떄가 있다. 얼마 전에 상담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소개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상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상담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분석하는 일이 사람에 대한 이해나 위로보다는 심리학이나 그와 연계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밥벌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구경꾼이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듯하기에 내게 물어오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며, 당신이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깊고 기나긴 숙고 없이 한마디의 말이나 단편적 기록으로 피상담자와 그 주변에 대해 그렇게 단언해서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진정한 상담이란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지 그게 당신 연구를 위한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상담가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상담을 해준다는 행위를 자각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그런 말을 하면서 그 말은 결국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치는 사람에게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게 물었다. 이토록 폭력적인 나의 말은 그를 며칠 밤잠 못 이루게 할 거싱고 결국 그를 위한 약이 되기도 할 것인데, 이 사람에게 왜 나는 넘치고 있는가. 대강 적당히 바라보다 헤어지면 될 것을.

 

그 사람은 웃고 있었지만 붉은 얼굴은 터질 듯하였다. 그 사람은 큰 손짓을 하면서 목소리 높여 밝고 명랑하게 내게 질문한 것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나는 성인이고 중간에 나와 그 사람을 소개해준 선량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지인도 있었다. 신발을 신는 곳까지 나와서 나에게 인사해주었다. 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그 사람은 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신발을 다 신은 후에야 내 가방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두 손을 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싫었다. 당신이 내 가방을 그렇게 들고 있으면, 갑자기 진정성 있는 상담가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이 조금 편할 뿐이겠지.......


예순다섯, 북창동
:세상의 모든 커피 All the coffee in the world
예순여섯, 과메기 브런치
:더치커피 Dutch Coffee
예순일곱, 거닐다
:브룬디 Burundi Mpanga
예순여덟, 끝까지 감싸안겠다
:에티오피아 첼바 Ethiopia Chelba
예순아홉, 사랑은 왜 이렇게 어렵니?
:인도네시아 토라자 Indonesia Toraja
일흔, 오음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Guatemala Huehuetenango
일흔하나, 밀양
:에티오피아 이디도 Ethiopia Idido
일흔둘, 사이
:라테 그리고 모카 Cafe Latte and Cafe Mocha
일흔셋, 當身, 사로잡히다
:카페 콘파냐 Cafe Con Panna
일흔넷, 그냥 한번 살아보겠다
:핫 코코아 Hot Cocoa
일흔다섯, 하노이 보드카
:베트남 핀 드립 Vietnam Pin Drip
일흔여섯, 커피값은 제가 낼 테니
:파나마 게이샤 줄리엣 Panama Geisha Juliette

 

나중에 저 모든 커피를 마셔가며 각각의 해당하는 본문을 읽으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보았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올까? 오겠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정체 모를 공허함은 채워졌으니.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예순 넷에서 멈칫했다. 위선보다 위악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 챕터의 일화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람 참 피곤하구나,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도 들었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예민함은 글쓴이가 가져야 할 필수 요소 중의 하나일지언정, 그 칼날이 타인을 향해 있는 사람은 그냥 인간으로서 맞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몸에 차오르는 독기를 매번 발산해야 하는 것인지, 그 독기를 글쓰는 데에만 발휘하면 모를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분출하는 것을, 글쓴이의 과거 어린 시절과 사생활을 바탕으로 이해해줘야 하는 것인지, 너무 유아적인 태도 아닌가? 나에게는 이런 이런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나보다, 하고 결론내리는 것은? 글 전체를 보면 저자는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시인을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시인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마저 끌어안고 대신 울어주고 껴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독자로서 나는, 스스로의 아픔을 유치하게 남에게 발산하며 거기에 대해 자신의 사생활로 합리화하는 사람의 시는 보고 싶지 않다. 해당 부분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부분을 본 순간 이 사람 글은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는 시가 필요하지, 누군가의 감정 표출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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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1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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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책 제목을 보고 나면 묘한 희망이 샘솟게 된다. 표지를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이 글귀. 본문 중 한 부분이며 편집자들로 하여금 책 제목에 영감을 주게 만든 본문의 한 부분을 책 바로 앞에 실어놓았다. 토닥 토닥, 위로를 해 주는 느낌이다.

 

얼마 전 <놀러와>에 출연한 그룹 백두산과 부활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나의 전설들은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모텔을 운영하며 카운터에 앉아서 기타를 연습하는 베이시스트와 각종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음악 활동을 하는 드러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하긴, 요즘 누가 헤비메탈 음악을 듣나. 불러주는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 다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로 선택하고, 결국 돈을 많이 벌게 된 사람이 어떤 걸 포기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기분 좋게 포기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생이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글쎄, 포기하지 않았어도 거머쥐긴 힘들었겠지만) 시간을 선택했다. 바쁘게 사는 대신 한가한 삶을 선택했다. 즐겁게 포기할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칠 수 있으니 부러울 게 없다.

 

이 부분이 참 좋았다. 흔히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저 돈을 벌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포기했다고 친구 관계를 희생했을 것이라고 독하다고 이야기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배고픔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정된 생활을 포기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그 둘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은 신선했다. 보통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거나,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한심하다고 평가하며 인생의 어느 한 요소에만 특별히 집중하기 마련인데, 사실 인생이란 수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느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진리이며,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므로 과도한 비판도 주제 넘는 칭찬도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즐거운 인생>과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생각났다.

 

일본의 동화작가 고미 타로의 책 『어른들(은, 이, 의) 문제야』에는 나처럼 산만한 사람들에 대한 글이 나온다.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글자의 생긴 모양이 시선을 모읍니다. 권權이나 군軍같은 글자는 획들이 모두 확실하게 붙어 있지만 심心은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몇십 년 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썼던 누명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산만해도 괜찮다고, 산만한 게 나쁜 건 아니라고, 고미 타로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잡생각'이라는 단어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잡생각하지 말라고, 공부에 집중할 때 잡생각하지 말라고. 부모님 말씀 덕에 나는 잡생각을 죄악시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덕에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가서 취직해서 밥 먹고 산다. 하지만 간혹, 그 어린 시절에 한없이 뻗어나갔던 잡생각을 가지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가지 탓에 뿌리마저 뒤흔들린 어른이 되었을까. 비록 지금은 뿌리가 튼튼한 어른이 되었다만, 한번쯤 바람에 가지들이 휘둘리고 엉키는 경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이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전부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 사람의 주장이 위험하다고 여겨진 적도 있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책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발명가 김씨'라는, 김중혁이 직접 그린 만화와 함께 이런 저런 발명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코너가 있는데, "안전벨트를 꼭 매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나의 목숨을 걱정해주는 걸까요? 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할까요? 가끔 안전벨트가 그려진 옷을 입어보고 싶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분명히 작가는 웃자고 쓴 말인지 확실히 알겠음에도 불구하고 죽자고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의 편식에 대해 옹호하면서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고. 다 큰 어른이 편식하는 것보다 오히려 어렸을 때 편식하는 것은 더 치명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공부를 잘하라는 주문도 아니고 반장을 하라는 주문도 아니고 그저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는 그 주문, 어머니의 그 주문을 그냥 감사하게 받으면 안 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부분들 때문에 이 책 전체의 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김중혁의 산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따스하며, 발랄하고, 살짝 살짝 발칙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좋다.

 

마지막으로 책 전체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마지막 부분. 이 부분은 일러스트가 압권이다. 책을 펼지면 두 페이지에 걸쳐 새까만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는 배경으로 본문은 흰색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괜히 뭉클해진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친구들과 저렇게 놀면 참 재미있겠다 싶다가도 텐트에서 자는 모습을 보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곤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늘 "밥은 밖에서 먹어도 잠은 집에 들어와서 자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제가 밖에서 좀 많이 잤죠. 어머니), 지금은 그 말의 깊은 뜻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는 어찌나 예민하신지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텐트에 누워 있으니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얘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자라."

그러고 싶었으나 그러긴 힘들었다.

텐트에 누워 있으니 우주에 나 혼자뿐이라는 기분이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모든 문명이 사라지고 역사가 없어지고 미래는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민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호들갑을 떠는 것이겠지만, 외로웠다.

스톡홀름의 한 호텔에 누워 있던 때가 떠올랐다. 아마 스톡홀름 시내에서 가장 싼 호텔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방에는 창문도 없었다. 고시원 정도의 크기였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잇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모두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창피한 얘기지만, 그때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글쎄, 누가 죽인대?)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글쎄, 누가 돌아가지 못하게 한대?) 가족들도 만나고 떡볶이도 먹고 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아주 작은 호텔, 그중에서도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의 코딱지만 한 침대에 누워서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이 캠핑을 떠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나처럼 유치한 마음이야 먹지 않겠지만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간섭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다음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하는 의지를 되새긴 후 돌아오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내가 스톡홀름의 작은 호텔방에서 외로워했던 것처럼 지금 이시간 서울의 어딘가 작은 쪽방에서도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모두들 외로워하며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서울은, 도시는, 야생보다 더욱 무서운 곳일지도 모른다. 자,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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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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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구매하기로 결정한 책.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표지와 삽화에 부록까지. 어쩌면 이렇게나 깜찍하게 마음에 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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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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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일단 책소개부터 옮겨놓고 싶다. 

 

20세기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자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애서가 헤르만 헤세.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에서 가려 뽑은 가장 빼어난 73편의 글. J. D 샐린저, 카프카, 토마스 만 등 세계문학의 고전들부터 공자, 노자, 붓다,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 등 동양의 걸작들에 이르기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은 작품들을 가려내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헤르만 헤세는 평생에 걸쳐 독서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스물한 살인 1898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00년 스위스 일간지 「알게마이네 스위스 신문」에 처음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도망친 후, 서점에서 조수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헤세는 서점에서 일하며 신문 문화면에 서평을 기고하던 처음 몇 해 동안이 "가장 최신의 문헌 속에서 헤엄치기, 거기 파묻히는 일이 술에 취한 것과 비슷한 쾌감"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체험은 물론 자신의 모든 체험을 글로 표현하고 탐색하던 헤세에게 신문 지면은 그런 글을 위한 중요한 통로였다. 오히려 이런 작업이 그의 책들보다 더 알려져 사회생활을 하는 데 상당한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당시 그는 서점 직원으로 얼마 되지 않는 임금을 받는 것 말고는 이런 문필작업의 고료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스물세 살인 1900년부터 죽음에 이른 1962년까지 평생에 걸친 헤세의 서평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책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과 에세이 가운데 가장 빼어난 글을 가려 뽑은 것이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은 소설 덕분에 헤르만 헤세의 이름은 나에게 단단히 각인되어 있었다. 멋모르던 사춘기 시절조차도, 독일인 특유의 절제된 태도와 담담한 서술, 그리고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겪는 질풍노도를 읽어나가면서 저절로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들. 내 기억에 헤세는 지적이고 차분한 작가였다.

 

순전히 이 책은 제목을 보고 골랐다. 고르고 나서, 엮은이의 말을 보고서야, 내가 헤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보다도 당대에는 서평으로 유명했으며, 사실상 그의 대부분의 수입이 그가 읽은 책에 대한 평가를 신문에 싣는 행위에 바탕했다는 것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신문사 문화면 기자인 셈인데, 이미 소설을 냈으나 그 소설은 크게 인기가 없고 북 리뷰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상상하면 되겠다.

 

요즘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은 많다. 책에 대한 방송도, 책에 대한 책도 많다. 나 또한 그런 방송의 애청자이자, 그런 책의 애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헤르만 헤세라는 계급장을 떼어 놓고서도 온전히 이 책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옮긴이의 글_ 피로 쓰고 피로 읽다

PART 1. 그토록 가지고 싶은 책들
|스러지지 않는 종류의 것들_ 《안데르센 동화집》
|위안 없는 세계의 아이_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꿈 세계의 구조물_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신이 우리를 찾아낼 수 있기를_ 프란츠 카프카의 《성》
|낯선 공간들, 낯선 운명들_ 프란츠 카프카의 《아메리카》
|그 목소리, 그 호흡의 긴 여운_ 막스 브로트의 《프란츠 카프카》
|천의 예술가_ 토마스 만의 《트리스탄》
|아주 오랜 삶의 수수께끼_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저 은밀한 러시아의 목소리_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
|카오스로 되돌아가는 사유_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유럽의 몰락_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통찰을 삶으로_ 레프 톨스토이의 《일기》
|러시아 문학이 내놓은 가장 아름다운 것들_ 레프 톨스토이의 《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
|가시 혹은 낙원의 유혹_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사랑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_ 로맹 롤랑의 《톨스토이의 생애》
|백 개의 매혹적인 이야기_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세계문학의 확장_ 셀마 라겔뢰프의 《그리스도의 전설》
|영혼의 탐구들_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리카 에발트의 사랑》
|켈트 문학, 정열적인 신음의 언어_ 피오나 매클라우드의 《바람과 파도》
|인간 영혼의 이야기 한 조각_ 켈트 전설 《마비노기의 나뭇가지 네 편》
|종교개혁 시대의 협잡꾼 문필가_ 아그리파 폰 네테스하임의 《모든 기술과 학문의 허영과 불확실
함에 대하여. 즉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이롭기보다는 해롭다는 것에 대하여》
|가장 사랑받는 독일 민요집_ 아힘 폰 아르님과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소년의 요술 뿔피리》
|내가 사랑한 작가_ 크누트 함순의 《시대의 자식들》
|떠돌이 악당과 제겔포스 세계_ 크누트 함순의 《시간이 지난 뒤에》
|미래의 학문_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
|내 작은 비밀_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니체를 기억함_ 헤르만 헤세의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치유할 길 없는 시대의 광증_ 쇠렌 키르케고르의 《선민의 개념》
|근대철학의 안내자_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모름의 앎에 대하여》
|부드러운 시인의 영혼_ 프랑시스 잠의 《다리를 저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다_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그의 인생관은 전혀 낡지 않았다_ E. T. A. 호프만의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
|아름답고 두렵고 위험한 책_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이토록 지적이고 이토록 문학적인_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투명한 세계의 온기_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제2권
|3세대의 연대기_ 펄 벅의 《아들들》
|잃어버린 것을 향한 사랑_ 카렐 차페크의 《호르두발》
|깊이와 악마성_ 조셉 콘래드의 《서양인의 눈으로》
|열대 동양의 뜨거운 대기_ 조셉 콘래드의 《올메이어의 어리석음》
|인적도 사랑도 없는 삶_ 엘리아스 카네티의 《현혹》
|무장해제시키는 천진한 이야기_ 제임스 힐턴의 《굿바이 미스터 칩스》

PART 1.5 작가들에 대한 기억
|사랑의 이상_ 스탕달
|이 죽음을 죽고, 이 지옥을 밟고 나서야_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삶의 모든 단계에 대하여_ 오노레 드 발자크
|고통스럽고 달콤한 어두움_ 클레멘스 브렌타노
|투쟁과 사랑_ D. H. 로렌스
|거대한 야누스의 사유_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예감을 지닌 사람_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PART 2. 동양을 향하는 눈길
|두 세계의 종합 가능성_ 공자의 《대화》
|붓다와 그리스도 사이_ 노자의 《최고 본질과 최고선의 책, 도덕경》 1
|인류의 목적에 어울리는 사유_ 노자의 《최고 본질과 최고선의 책, 도덕경》 2
|낱말을 넘어 본질로_ 노자의 《최고 본질과 최고선의 책, 도덕경》 3
|뮌헨의 중국문헌에 대하여
|고대 중국의 섬세한 정신_ 열자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참된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책_ 포송령의 《중국의 유령 이야기, 사랑 이야기》1
|낮과 밤, 꿈과 환상_ 포송령의 《중국의 유령 이야기, 사랑 이야기》2
|인도의 지혜_ 《지혜의 마지막 결론》과 《바가바드기타》
|태곳적 시의 울림_ 《바가바드기타》
|자아 속의 참나를 찾아서_ 알프레트 힐레브란트의 《브라흐마나스와 우파니샤드》
|동양 문학의 걸작들_ 《메스네비》, 《중국 단편소설집》, 《수카삽타티》
|사유와 본질의 원천_ 《중국의 민속동화》
|인도의 동화_ 소마데바의 《동화 강들의 바다》
|태양 숭배의 찬가들_ 귄터 뢰더의 《고대 이집트인의 종교에 대하여》
|강력한 죽음의 노래_ 《길가메시》
|인간 영혼의 구조는 동일하다_ 《남아메리카 인디언 동화집》과 《코카서스 동화집》
|인도 정신의 파도_ 카를 오이겐 노이만의 《붓다의 말씀》
|과거의 종교, 미래의 종교_ 헤르만 올덴베르크의 《붓다의 말씀》
|유럽에 대한 경각심_ 오카쿠라 텐신의 《동양의 이상》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인도_ 헬무트 폰 글라제나프의 《힌두교. 현대 인도의 종교와 사회》 1
|진리는 모습에 있지 않다_ 헬무트 폰 글라제나프의 《힌두교. 현대 인도의 종교와 사회》 2
|영혼으로 인도를 여행한 사람에게_ 《순다. 수마트라 여행》과 《실론. 인도 문화 여행》
|혼인의 성립에 대하여_ 《얼음심장과 귀한 옥, 또는 어느 다행스런 혼인 이야기》
|18세기 중국의 얼굴_ 조설근의 《붉은 방의 꿈》

 

한 때 나의 꿈은 신문 기자, 그것도 문화면 기자였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책을 보고, 그 책에 대한 내 느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소박한 소망에 기초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 힘들 무렵에는, 도서관 사서가 가장 부러웠다. 늘 책에 가까이 있고, 여유로워 보이며, 남는 시간에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보여서. 지금은, 좀 더 다른 꿈을 꾼다. 물론 책도 좋지만, 책 말고도 좋은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는 책만을 바라보는 외바라기 삶은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열심히 일하고, 틈틈이 책을 읽는 것. 아니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꼭 책을 읽는 것.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그냥. 그냥 읽는 시간들을 놓치지 않는 것.

방금 깨어난 근원충동에 새로운 방향을 주어보라,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가치평가를 주어보라. 그러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질서, 새로운 도덕을 위한 뿌리가 이미 주어진 것이다. 모든 문화란 바로 이렇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짐승인 근원충동을 죽이지는 못한다. 그것들을 죽이면 우리 자신도 죽을 것이기에. 하지만 우리는 이런 근원충동들을 어느 정도 유도하고 어느 정도 다스리고, `좋은 것[선]`을 위해 일하게 할 수 있다. 성질 난폭한 말을 좋은 수레 앞에 묶어 수레를 끌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다만 이따금 이 `좋은 것`이 낡고 시들면, 충동들이 더는 선을 믿지 않으면, 그것들은 더는 거기 묶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문화는 붕괴된다. 대개는 아주 느리게, 우리가 `고대`라 부르는 문화가 수백 년에 걸쳐 죽어갔듯이 말이다.-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오래 기다려온 이 책은 실제로 기대했던 그대로이다. 곧 프로이트 이론을 체계적으로 쓴 것으로, 무의식의 심리학과 분석 기술을 서술했다. 그동안 제자와 추종자들이 내놓은 몇몇 작은 시도들과는 달리 프로이트 자신이 강한 책임감을 품고 내놓은 책으로,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고 개척한 사람의 진지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정신이 지닌 온갖 장점들이 이 책에 드러나 있다. 그의 명료함, 참을성 있는 결합의 재능, 정교한 표현력 그리고 위트까지도.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 각기 오류, 꿈, 노이로제 이론을 다룬다. 오류와 꿈에 대해서는 프로이트가 이미 《일상의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ie des Alltags》과 《꿈의 해석Traumdetung》에서 체계적으로 서술한 내용이지만, 그 자신이 쓴 완결된 형식의 전반적인 노이로제 이론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래서 특히 이 부분이 관심을 끄는데, 과연 뛰어난 가치를 지닌 역작임을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엄밀함과 조심성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결론을 이끌어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발견을 통해 표현의 확실성을 구하는 것을 관찰하는 일은 즐거움이다. 아직 추측과 더듬기, 탐색 단계의 영역에서 보이는 조심성과 겸손함이 여기 있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특히 의사들에게 정신분석의 기원, 목적, 기술 등을 제대로 안내해준다.

정신분석학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여전히 뜨겁지만, 조용한 가운데 이미 이 학문은 소년기를 벗어나 미래의 학문이 되고 있다. 이로써 정신분석학은 학문으로서의 토대를 놓았고, 심리적인 사건들의 법칙에 대한 최초의 중요한 통찰이 이미 이루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학문의 변두리에 좋여 있던 이 영역에서 최초의 진지한 탐색이 시작된 셈이다. 심리적 사건의 확실함, 인과법칙의 적용, 그로써 심리학 영역에서 학문적 탐구의 가능성이 오늘날에는 이미 자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불과 얼만 전까지만 해도 많은 위원회에서 놀람과 조롱을 만들어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학자들과 일반인들은 어린아이에게 성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이런 투쟁은 이미 이루어졌고, 정신분석의 기본적 진실은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논란을 만들어내고는 있어도 더는 뒤집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확장되고 더욱 깊어진 새로운 세계관의 기반으로서 정신분석학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 무의식의 심리학이 그런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스승과 갈라선 지점을 보게 된다. 프로이트 자신은 철저히 신체를 다루는 의학자로 남아 심리적 과정의 기계적 측면들을 탐색하면서, 이것을 세계관과 연관시키려 하지 않고 온갖 형이상학적 주장을 조심스럽게 피한다. 다른 여러 방향으로 나아간 제자들은 이와는 다르다. 일부는 매우 딜레탕트 방식으로나마 정신분석을 일종의 종교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했다. 실제로 이런 노력들 중 일부는 아주 천박해서 그런 제자들에 대한 프로이트의 거부감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융Carl Gustav Jung은 정신분석의 관점을 의학을 넘어 철학의 기반으로 만들려는 극히 주목할 만한 최초의 시도를 했다. 물론 구체적인 표현은 아직 없지만.

정신분석학의 원래 창시자를 거부하면서 프로이트 심리학의 온화하게 중개하는 관점만 받아들인다면 부당한 일이다. 이 학문의 창시자는 분명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개별적인 점에서 그를 비판하거나 수정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거대한 업적을 (특이하게도 어둠 속에 남은 브로이어 Josef Breuer와 나란히) 마침내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비보스 보코>, 베른과 라이프치히, 1920년 6월

삶이 견디기 힘든 시절에는 추상적인 사상의 문제보다 더 나은 피난처가 없다. 거기서는 그 어떤 싸구려 위안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한 가치들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생각하는 젊은이에게는 그런 시간에 이 책 《모름의 앎에 대하여》의 번역본을 탐색해보라고 친절하게 충고한다. 플로티노스Plotinos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수학을 공부한 위대한 쿠사누스는 이 책(그의 가장 초기 작품의 하나)의 제목에서 짐작되는 바처럼 우리를 체념적인 회의주의로 안내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고의 사실성이 깃듯 사유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쿠사누스가 자기 시대에, 온갖 종교의 신앙들 사이에서 평화로운 화해를 최종 목적으로 삼고 여러모로 노력했다는 사실은 그를 우리 시대로 더한층 가까이 데려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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