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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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한 친구는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내적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올리고 싶은 사진이 많은데, 인스타그램에는 가장 좋은 이미지를 최소한으로 선별해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글도 짧을수록 좋았다. 댓글도 구구절절 쓰는 대신, 작고 깜찍한 이모티콘으로 대신했다.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콘셉트였다. 간결함, 명료함, 분명함. 하지만 '싸이 감성'인 그녀에겐 하고 싶은 말과 나누고 싶은 사진이 너무 많았다. 여전히 우리는 멈춰야 할 때, 그만 둬야 할 때를 잘 몰랐다. 

싸이월드는 그 시절의 분위기와 많이 닮은 매체였다. 절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업로드를 멈추거나 분량을 줄일 이유가 없었다. 여행을 하거나 행사가 있었던 날이면 하루에 백 장 넘는 사진도 올렸다. 게시판 글은 길수록 좋았다. 싸이월드에서 가장 부족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절제미였다.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나는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한 곡 더"라고 앵콜을 외치는 사람이었고, 떠난 버스를 괴력으로 쫓아가 마침내 얻어 타고 마는 '집념과 진상 사이'의 승객이었다. 때로는 굴욕적으로, 때로는 자기합리화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세상과 혼연일체가 돼 살아왔다. 그게 좋았다거나 나빴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그땐 그랬고, 그렇게 버텨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 싸이월드의 몰락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었던 어떤 노래의 진짜 끝처럼 느껴진다.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저 멀리로 사라지는 느낌, 이제는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온 것처럼 말이다.


작가분 내 나이 또래 맞다. 그리고 내 나이 또래라면 이 작가분 글 읽으면서 공감 많이 할 테지. 싸이월드는 이제 우리 세대에는 추억이 된 걸까. 


철 지난 싸이월드에 유독 오늘따라 꽂힌 이유는 뭘까.


아마도 특별히 힘들고 지친 날 내 감정을 토로하고 싶을 때 인스타그램으로는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 밝고 화사한 세계에는 이런 감정 자체가 걸리적거리게 느껴진다. 인스타에 감정 토로 안 해봐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렇다.

조용한 밤의 세계. 침묵과 고독의 세계. 혼자만의 생각으로 일기를 쓰는 시간과 싸이월드는 어울린다.


힘든 감정을 한 두개의 단어로 축약해버리면 그 감정이 너무 가벼워지고, 또 그만큼 내가 가벼워지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아닌다.

이러한 감정을 토로하기에는 싸이월드가 딱이다.

그 매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이러한 감정을 토로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 뿐 아니라, 시대가 그만큼 바뀌었고 이 감정을 수용해 줄 수 있는지, 눈치를 봐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가는 것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진지충이라는 말을 왜 쓰나 했는데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에는 동떨어진 걸까?


어쩌면 싸이월드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설레면서도 싸이월드 백업은 죽어라하지 않는 우리 세대의 모순이 여기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한 때 존재했던 추억이 아름답게 박제되어 있기를 바라면서도, 싸이월드에 매달리는 철 지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싫다고, 아직 우리 나이에 옛날을 그리워하는 어른으로 규정되는 것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양면의 마음이 다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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