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세상엔 책도 많지만 책에 대한 책도 참 많다. 보통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에 대해 소개하는 스타일이다. 이다혜 기자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분야를 망라하고 풍부한 지식과 폭넓은 독서에 감탄하다가, 그녀가 썼다는 책에 대한 책이 궁금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굳이 해당 책을 읽지 않아도 수많은 꼭지글들은 재미있고, 따뜻하고, 깊이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여기 나와 있는 책을 읽고 내 나름의 감상을 비교해보는 것이겠지.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 중이던 요즘,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프롤로그: 나는 어쩌다 책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당신, 살아 있나요?

 

"책은 죽지 않는 능력을 준다."_움베르트 에코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내가 만난 술꾼》 임범 지음|자음과모음

동화와 멀어진 어른들《피로 물든 방》 앤절라 카터 지음|문학동네

나의 십대는 무엇으로 남았나《17세의 나레이션》 강경옥 지음|시공코믹스

‘마음만 청춘’인 인생《스트라토!》 나카가와 이사미 지음|미우

당신만의 헤밍웨이를 만나라《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시공사

맛있게 자라나서 고마워《내 농장은 28번가에 있다》 노벨라 카펜터 지음|푸른숲

야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향》 안도 다다오 지음|오픈하우스

돈이 돈을 부른다《인상파 그림은 왜 비쌀까》 필립 후크 지음|현암사

떨어지면 다시 뛰어오르면 돼《큰 늑대 파랑》 윤이형 지음|창비

아직 오지 않은 일들《좀비들》 김중혁 지음|창비

세상이 싫어 산으로 갔네《행인》 나쓰메 소세끼 지음|문학과지성사

죽어서도 의미 있고 위대하게《인체재활용》 메리 로치 지음|세계사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줄까《가난한 이의 살림집》 노익상 지음|청어람미디어

처절한 삶의 현장 속으로《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한겨레출판

나 아직 죽지 않았거든《잠자는 미녀》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현대문학

내일이 두렵지 않은 마음《내가 사랑하는 시》 최영미 지음|해냄출판사

맛있는 건 언제나 옳다《굿바이, 스바루》 덕 파인 지음|사계절

총잡이 철학자들의 축제《폴링 엔젤》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문학동네

고독은 언제나 나의 편《국경을 넘어》 코맥 매카시 지음|민음사 

 


긍정이 뒤통수 칠 때

 

"내가 인생을 안 것은 사람과 접촉했기 때문이 아니라 책과 접촉했기 때문이다."_아나톨 프랑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을 권리《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문학동네

사이코패스의 마음속으로《좀비》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포레

영감을 주는 피로《피로사회》 한병철 지음|문학과지성사

예쁜 건 지루한 거야《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지음|돌베개

나르시시트의 최후《의지력의 재발견》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존 티어니 지음|에코리브르

철학적인 인간이란《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강신주 지음|동녘

싼 게 비지떡《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지음|민음사

행복은 언덕 위에 있을 때 가장 예쁘다《행복할 권리》 마이클 폴리 지음|어크로스

가정이 지옥 같을 때《개로 길러진 아이》 브루스 D. 페리,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민음인

긍정이 뒤통수 칠 때《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부키

낯선 이가 내 방에 침입했다《나가사키》 에릭 파이 지음|21세기북스

우선 살부터 빼고 패션을 논하라《스타일 나라의 앨리스》 심정희 지음|씨네21북스

병명 찾아 삼만리《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 리사 샌더스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뛰는 작가위에 나는 독자《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재인

말이 길어 슬픈 그대에게《손바닥 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문학과지성사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석영중 지음|예담

마녀의 정원에서《워너비 윈투어》 제리 오펜하이머 지음|웅진윙스

보르헤스가 권하다《아폴로의 눈》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지음|바다출판사 《마이더스의 노예들》 잭 런던 지음|바다출판사

트릭은 진화되어야한다《쌍두의 악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시공사

 


매끄러운 사회생활을 위하여

 

"독서는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_헤르만 헤세

 

삶에서 한 걸음 물러서기《유린되고 타버린 모든 것》 웰스 타워 지음|현대문학

너무나 불친절한 당신을 위하여《만남》 밀란 쿤데라 지음|민음사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어떻게 살 것인가》 사라 베이크웰 지음|책읽는수요일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때《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카레 지음|열린책들

매끄러운 사회생활을 위하여《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위르겐 슈미더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웃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웅진지식하우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웃기기《밀레니엄1: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티그 라르손 지음|뿔

육아에도 밀고 당기기는 필요해《아빠는 경제학자》 조슈아 갠즈 지음|이음

우리 진심같은 거 끼얹지 말아요《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문학동네

복지와 안전 사이《가난을 엄벌하다》 로익 바캉 지음|시사IN북

사랑의 불장난《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살림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경계에서 춤추다》 서경식, 타와다 요오꼬 지음|창비

평범을 평범하게 원하는 것《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서커스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문학동네

절대 버릴 수 없는 세 가지 《인내의 돌》아티크 라히미 지음|현대문학

어두운 사람이 무서워요《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김영사

마신다, 안 마신다? 마신다, 안 마신다!《오늘 밤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리모 지음|북스피어

야구 언제부터 봤어요?《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황금가지

타는 듯한 목마름《유럽 맥주 견문록》 이기중 지음|즐거운상상 

 


슬픈 날에는 슬픈 음악을

 

"한 시간 정도 독서를 하면 어떠한 고통도 진정된다."_몽테스키외

 

세상이 비록 어두워보일지라도…《완벽주의의 함정》 클라우스 베를레 지음|소담출판사

어김없이 다음 계절은 온다《문》 나쓰메 소세키 지음|비채

슬픔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회《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청미래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밤에《작가가 작가에게》 제임스 스콧 벨 지음|정은문고

패배감에 젖어 잠들지라도《아Q정전》 루쉰 지음|문학동네

한없이 가벼운 무거움《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문학동네

출구 없는 소설《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마음산책

고통을 사랑하는 방법《달리기》 장 에슈노즈 지음|열린책들

슬픈 날에는 슬픈 음악을 듣자《호모 무지쿠스》 대니얼 J. 레비틴 지음|마티

패배자를 위한 찬가《밴버드의 어리석음》 폴 콜린스 지음|양철북

아프니까 문학이다《황홀한 글감옥》 조정래 지음|시사IN북

충동구매의 해피엔드《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지음|뿌리와이파리

모든 작별은 작은 죽음이다《아버지의 책》 우르스 비트머 지음|문학과지성사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박후기 지음|창비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을유문화사

행운 없는 서울살이《비행운》 김애란 지음|문학과지성사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_랄프 에머슨

 

시 낭송회에 열심히 나가야 하는 이유《사각형의 신비》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뮤진트리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지음|현대문학

섹시한 여자와 섹스하는 여자《로즈 가든》 기리노 나쓰오 지음|비채

먼저 전화하는 남자가 좋다《그는 왜 전화하지 않았을까?》 레이첼 그린월드 지음|민음인

전망 없는 밤의 독서《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지음|열린책들

같이 잘 살아봅시다!《스님의 주례사》 법륜 지음|김점선 그림|휴 

착한 사람이 더 아프게 할 때《바닷마을 다이어리》 요시다 아키미 지음|애니북스

머나먼 땅에서 온 엽서《너의 시베리아》 리처드 와이릭 지음|마음산책

대기만성형인 당신에게《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말콤 글래드웰 지음|김영사

사랑한다면서, 왜 한 번도 때려주지 않았나요?《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 지음|소담출판사

배가 고플 때는 읽지 마세요《라이프: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이이지마 나미 지음|시드페이퍼

직접 찾아가 보여드립니다《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지음|씨네21북스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침대 밑에 사는 여자》 마쿠스 오르츠 지음|살림

대작을 낳은 집 훔쳐보기《작가의 집》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윌북

무너질 듯 매력적인 남자란《핫 키드》 엘모어 레너드 지음|사람과책

즐거운 나와 당신의 도시《뉴요커, 뉴욕을 읽다》 애덤 고프닉 지음|즐거운상상

유혹하는 서문에 대하여《시인》 마이클 코넬리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上》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북스피어

우주의 스케일로 서로를 그리다《이십억 광년의 고독》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문학과지성사

기어코 찡하게 만드는《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장은진 지음|문학동네 


 

오늘 밤도 분홍분홍해

 

"낡고 오래된 코트를 입을지언정, 새 책을 사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_오스틴 펠프스

 

어쩌다 짐승남을 사랑하게 됐을까《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문학동네

약속 없는 주말에《너에게 닿기를》 사이나 카루호 지음|대원씨아이

야구 없인 못 살아《괴짜 야구 경제학》 J. C. 브래드버리 지음|한스미디어

너에게 닿고 싶었다《짜릿하고 따뜻하게》 이시은 지음|달

마음이 달달해지고 싶은 날《고래 남친》 아리카와 히로 지음|북홀릭

향수와 기억의 장난질《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에코리브르

홍콩 좀 보내줘요, 오빠《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주성철 지음|달

연애소설 읽기의 즐거움《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솔뮤직 러버스 온리》 야마다 에이미 지음|민음사 

와인은 눈으로 마시는 것《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가장 오래된 우울에의 처방전《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민음사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D. H. 로렌스 지음|창비

파고들 듯 덤벼들 듯《글렌 굴드-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지음|동문선

평생 웃음은 내가 책임질게《너한테 꽃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아?》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학고재

제발 부탁이니 지루한 책은 내려놓도록《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청어람미디어

‘뱀파이어 남친’에 대한 상상《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 샬레인 해리스 지음|열린책들

오늘 밤도 분홍분홍해《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노블마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작가정신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라틴 소울》 박창학 지음|바다출판사

발걸음은 가볍게, 엉덩이는 씰룩쌜룩《춘향전》 송성욱 풀어옮김|민음사 《나무의 신화》 자크 브로스 지음|이학사 

그 많던 단골집들은 다 어디 갔을까《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미우

멋지기 때문에 읽어보았지《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성석졔 엮음|창비

서른이 되기 전인 여자들에게《풍장의 교실》 야마다 에이미 지음|민음사 


에필로그: 여전히, 취미는 독서
부록: 좌충우돌 독서가 다혜리의 책 정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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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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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은 좋으나, 내용은 살짝 아쉽다.

 

이런 류의 책은 보통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재를 이용해서 작가 개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과,

 

소재를 잘 설명하기 위해서 작가 개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명백히 이 책은 전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쉽다는 것이다.

 

 

만약 소재가 영화나, 음악이나, 여행이나, 그림이라면, 반드시 감상자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고 명확한 정답이 없으며 향유하는 사람마다 느낌이 달라질 수 있는 분야라면, 전자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게 맞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 자세하게 쓰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고 아쉽게 느껴진다. 작가의 생각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재를 돋보이게 하는 데에 작가의 주관을 집어넣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최소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소개된 공장들에 대해서, 그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 책을 읽기 전이나 후를 비교해보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바뀐 게 없다. 즉, 직접 발로 뛴 공장 탐방기라면, 최소한 내가 '체험 삶의 현장'이나 '체험의 달인' 등 TV 프로그램을 봤을 때보다는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이 더 많아야 하는데, 그보다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글과, 영상은 사실의 전달이라는 점에서 비교가 되지는 않지만, 영상이 못하는, 글로만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시각이나 청각 뿐 아니라, 어떤 냄새가 났는지, 당시의 공기는 어떠했는지, 주관적으로 느끼는 습도나 온도는 어떘는지 등 내가 직접 작가의 옆에서 공장을 함께 다니는 듯한 느낌이 주는 서술을 기대했다면 내가 너무 많이 바란 것일까.

 

또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으면 했는데, 아쉬웠다. 왜 이 길을 택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처음 일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지, 언제까지 이 길을 갈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무엇보다 이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만족하는지.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좋았던 글은 대장간에 관한 글이었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대장간과 큰 인연이 있는데, 탄생 설화(?)로 시작해서, 사실상 공장이 아니라 실제로 공장이라는 작가의 표현, 그리고 이어지는 공장의 모습과,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미 소멸했어야 할 것 같은데 사극 등으로 인해서 생기는 수익,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꼭 이곳으로 와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는 젊은이를 기다리는 공장장님의 이야기까지. 만약 모든 부분을 전부 스킵하고 단 한편만 읽겠다면 그 부분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모든 조각글들이 전부 대장간에 관한 이야기 정도였더라면 이 책은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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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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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이 굉장히 낯이 익었는데 알고 보니 만화가 현태준의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톰 라비가 쓴 원서에는 없는, 이 책만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마 원서를 보게 된다면 느낌이 사뭇 다를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이 책을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점 때문에 이 책이 좋아진 사람이다. 일단 그 전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 현태준의 삽화가 좋았고, 중간 중간 한 페이지를 전부 차지하는 이 책에서의 그의 삽화 또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번째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일화를 소개한다. 엄청난 장서가인 그에게 여자 친구가 디킨스와 자신 중 선택하라는 말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하자, 화가 난 여자 친구는 뛰쳐나가고, 그녀의 뒤에 대고 작가는 그래도 앤서니 트롤럽보다, 앤 브론테보다 더 사랑한다고 소리쳤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어낸 일화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 작가는 정말 정상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을 무렵, 3장에서 테스트가 등장한다. 너도 책 중독자인지 확인해보라고. 이미 작가를 통해 바닥을 확인한 지라, 아마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가볍게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나의 결과는 책중독자가 맞다. 맙소사. 이어서 중독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체크하는 테스트가 등장한다. 나는 중간 등급.

 

1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2 중독의 해부

신체 증상 | 생활 환경 | 삶의 질 | 말기 단계
책중독: 도덕적 결함인가, 질병인가?

3 테스트: 당신은 책중독자입니까?
테스트①: 당신은 책중독자인가? | 테스트②: 당신은 얼마나 심각한 책중독자인가?

4 책의 역사

5 장서광과 애서가

6 수집광
수집광은 ‘희귀성’에 환호한다 | 수집광은 책의 ‘상태’에 집착한다 | 수집광은 ‘초판본’에 완전 열광한다 | 수집광은 ‘서명, 기명, 증정본’을 강렬히 원한다 | 수집광은 ‘오자’를 사랑한다

7 돌연변이들
다독가 | 책 지름신 강림자 | 학자 | 책 매장자 | 책 파괴자 | 식서가

8 책 도취증
책 도취증자처럼 말하기 | 책 도취증자처럼 책방 둘러보기

9 우리가 사는 책이 우리를 말해준다
구입액을 한정하는 유형 | ‘만 원짜리 이상은 안 돼’ 유형 | ‘단돈 몇 푼 때문에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유형 | 율리시스 유형 | 미치너류에 열광하는 유형 | 사람들의 관심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유형 | 레밍형: 대세가 운명인 유형 | 발굴형: ‘나는 영화화되기 전에 그 책을 알았어’ 유형 | 자기계발주의자들
집으로 무사히 책 들여가기

10 상상 속의 책방
전반적인 분위기 | 책 목록 | 책방 직원 | 헌책 코너

11 책 읽기
식당에서 책 읽기 | 화장실에서 책 읽기 | 잠자리에서 책 읽기 | 여행 중의 책 읽기 | 직장에서 책 읽기 | 책중독자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책 읽기

12 정리와 보관
탁월한 게으름뱅이 책 중독자 존슨 박사

13 빌려주기
최후의 행동

14 치유하기
완전한 금욕 | 사랑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기 | 결혼 | 책 벌레 | 곤란을 겪을 때까지 책을 사들여라

이 책의 목차만 흁어보아도 알 수 있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책에 중독된 사람들을 유형화하고, 거기에 대한 작가의 언급이 덧붙여지며, 마지막에 나름대로의 결론도 내어놓고 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처음에 보았을 때의 그 참신함이 뒤로 갈수록 점점 동력이 약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본문 뿐만 아니라 현태준의 삽화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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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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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은 굉장히 많다. 최소한 그런 책들은 어떤 의미에서 확실히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일단 요즘 같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서도 고집스럽게 책을 읽는 사람들은 존재하며, 책에 관련한 팟캐스트도 인기가 높고, 온라인 서점은 여전히 성행하며,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책들을 한 번은 꼭 읽어볼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책을 몇 번 읽었었는데, <서재 결혼시키기>도 좋았고, <책여행책>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전자는 작가가 소녀 시절부터 어떻게 애서가의 기질을 보였으며, 역시 나중에 애서가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평생 책을 사랑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따뜻한 문체로 쓴 책이며, 후자는 '책여행'과 '여행책'이라는 두 파트로 나누어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바탕으로 여행하고, 여행한 기록을 모아 책으로 만든, 기발하고 멋진 책이다.

 

책에 대한 책이 사실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위에 언급한 두 책도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최근에 읽은 <베스트셀러의 역사>라는 책은, '베스트셀러'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 상 베스트셀러가 어떤 것들이 있고, 그 뒷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명사들이 추천하고 싶은, 혹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에 대한 글을 모은 책도 꽤 많으며, 거꾸로 한 작가가 여러 책에 대한 글을 쓴 책도 있다.

 

이 책 <장서의 괴로움>은 일본 작가의 책인데,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국어교사로 근무했다가 책에 대한 라디오방송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신문에 책 서평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일본 문학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낸 것 같다. 이 책은 무엇보다 표지가 정말 압권인데,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은 물론이거니와 바닥과 소파 위에 어지럽게 책이 널려 있는 가운데 발 디딜 틈이 없어 책을 밟고 서 있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다. 그 역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는데, 색이 칠해진 부분은 그림에서 오로지 책을 제외한 부분, 그러니까 아마도 작가 자신일 중년 남자와, 고양이와, 소파와, 높은 곳에서 책을 꺼낼 수 있게 놓여져 있는 사다리 뿐으로, 바탕색인 황토색이 그대로 책 색이라서 그런지 이 어지러운 광경 속에서도 왠지 눈이 편안해지는, 묘한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또 재생종이를 써서 그런지, 본문을 읽으면서도 하얀색으로 번들거리는 책들과 다르게 온화하게 느껴진다. 매 장마다 끝에 붙어 있는 교훈도 그렇고, 각주도 그렇고, 글자체도 그렇고, 왠지 구수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독서가와 장서가는 미묘하게 다를 수 있는데, 단어 그대로 독서가는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일 것이고, 장서가는 많은 양의 책을 보유한 사람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SNS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칼 라커펠트의 서재. 그는 독서가이면서 장서가인데 사진 속에 보이는 엄청난 책의 양에 압도당한 적이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그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정도였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 명품을 즐기는 사람 중 상당수가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명품을 만들어내는 사람 또한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는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모두가 갈망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정도의 사람이라면, 엄청난 독서로 키워진 지성과 감성이 그를 뒷받침했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발상인데 말이다.

 

한편으로 어릴 때 나의 꿈도 이런 서재를 갖는 것이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씨들> 속에서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조가 로리의 집에 찾아가 서재에 감명받는 장면은 아직까지 생생하고, 어릴 때 보았던 디즈니 만화 영화 <미녀와 야수>의 벨이 책이 빽뺵한 서점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책을 고르고 노래를 부르던 그 장면도 떠올랐다.

 

장서가는 어떤 괴로움을 가지고 있을까. 최소한 이 책의 장서가들은 권 수로는 1만권은 다 넘는 것 같고, 책장으로는 모자라 온 집안을 책으로 다 뒤덮어 결국 같이 사는 가족의 원성을 듣거나, 혹은 책 무게 떄문에 집이 내려앉는 경험도 해 본 사람들이다. 하도 책이 많아 이 책이 자기에게 있는지도 모르고 또 사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극적인 것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 때 온 집안의 책들이 전부 와르르 무너지고, 망가진 경험이 기점이 되어 책을 처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독서광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자부할수 있는데 장서가는 아니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아직 책 한 권을 살 때 상당한 고민을 하는 편이고, 내 거주지 근처의 도서관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에게 어떤 책이 있는지도 몰라서 똑같은 책을 또 살 정도라면 좀 병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떄도 있다. 사놓고 읽지 않을 정도로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라면, 그의 어마어마한 장서 또한 일종의 과시욕이 아닐까 싶은, 약간의 삐딱한 마음도 드는게 사실이다. 이 책의 11장은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은 목표가 눈앞에 보이면 도전한다. 끝없는 수집은 대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수집하려는 사람은 없다. 장르나 특정 작가 혹은 짧은 기간에 활약한 출판사나 시리즈물 등 제한 영역 안에서 목표를 세운다.

 

자신에게 분명히 그 책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결국 찾지 못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나, 끝끝내 전자책을 거부하며 기꺼이 '장서의 괴로움'을 감내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나로서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지향하고 싶은 삶도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데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한결 친근감이 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4장에서 결국 저자는 자신의 장서 중 일부를 처분하기로 하는데 이른바 '오카자키 다케시 1인 헌책시장'으로, 헌책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자신이 장소도 빌리고, 홍보도 하여 3천 권 정도의 책을 판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던 책의 10퍼센트도 줄지 않았지만. 후기에서 저자는 말한다.

 

한 인터넷 리서치 회사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이 한 달에 읽거나 사들이는 책의 양은 이렇다. 한 달 독서량은 잡지를 포함해 "한 권에서 두 권"이 40.42퍼센트, "세 권에서 다섯 권"이 28.39퍼센트다. 이런 마당에 '장서의 괴로움'으로 책 한 권을 쓰다니 속세와 거리가 먼 이야기긴 하다. 하지만 시대의 정중앙을 돌파해가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파'다. 나는 앞으로 억지를 부려서라도 내 신념을 밀고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괴로워'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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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2015-05-2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쓰시네요! 감탄했습니다. 눈여겨보던 책인데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어요^^

마고할미 2015-05-23 23: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이 워낙 좋은 책이라 리뷰도 잘 써졌나 봅니다. 한번 읽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일본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몰라도 크게 문제는 없는 것 같거든요. 내용이 집중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내용이 아니고, 장서가인 작가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필처럼 쓴 글이어서 가볍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두번째 이야기 아주 사적인, 긴 만남 2
마종기.루시드 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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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말없이 노래만 하는 공연이다보니 서운하다거나 심지어 이거 불친절한 거 아니냐는 반응도 아주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상태가 가장 편하고 좋아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왜 친절해야 하는지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친절은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몫이지요.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마음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하면 그만입니다.

 

그래, 우리의 생은 비록 아무의 박수를 받지 못했을지라도 정성을 다한 생애였고 보람찬 생애였다. 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살아낸 삶, 남의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뜬눈으로 밤샘을 한 그 숱한 날들이 그 순간 주마등같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비록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낯선 곳에서 서로 외로워하며 생을 마칠지라도 우리 모두는 마지막 순간에 만족한 얼굴에 미소를 환하게 보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치든 무엇이든 '극'을 싫어합니다. 극좌도 극우도 말이지요. 아무리 명분이 설득력이 있다고 해도 극단이 세상에 가져다주는 미덕은 없다고 믿으니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얼마 전에 어떤 번역가의 인터뷰를 아주 인상 깊게 보았답니다. 두 가지 대목이 기억나는데, 하나는 "번역이 어렵지 않으세요?"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가 이렇게 대답했지요. "아니요, 어렵지 않습니다.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해내는 일을 보면, 예를 들어 빵을 만드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대단하다 싶지요. 하지만 각자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내는 것뿐입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이 번역을 그냥 할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머릿속의 생각을 나누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전달하는 것도, 아니 내가 감각하는 것을 내 자아가 느끼게 되는 과정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모든 encoding(부호화)decoding(해독)도, 심지어 디지털 아날로그의 converting(전환)도 모든 게 '번역'이지요. 그렇다면 예술가들도 그런 것일까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그것이 심상이든 정서든)를 각자의 방법으로 '번역'해서 내놓는 것. 어떤 방식의 번역에 능숙한가에 따라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곡을 지을 테고요.

 

그런데 카프카는 독일어로 작품을 썼기 떄문에 정작 체코인들은 그를 '국민작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사실 독일어권 국가들의 지배를 받아온 체코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소설가 카프카가 <몰다우(블타바) 강>의 스메타나만큼은 체코인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요. 생의 반 정도를 타의에 의해 외국에서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런 것에 비하면 카프카는 어차피 유대인이고 그가 프라하에 살던 때에도 한정된 주거지인 유대인 동네를 마음대로 떠나서 살 수 없는 형국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카프카는 그가 태어나 대학까지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고 생전에는 발표하지도 못한 많은 소설과 산문을 쓴 곳이 바로 프라하이지요. 빈에서 폐결핵으로 고생하다 죽은 후에는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유대인 공동묘지에 묻힌 것을 생각하면 비록 40세의 짧은 생애를 살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그를 프라하 사람으로 칭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카프카를 말하다보니 그 30년 정도 후에, 비슷한 곳에 살면서 카프카와 비슷한 운명의 길을 간 유명한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이 생각납니다. 그는 체코 출신은 아니고 그 주변국인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그리고 1970년, 50세 나이에 프랑스의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지요. 버림받으면서 늘 위험한 생을 살아야 했던 유대인 문학가. 원수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독일을 싫어하면서도 그 독일 언어를 사랑하여 독일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시인 첼란과 작가 카프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이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파울 첼란도, 프란츠 카프카도 여러 언어의 경계에 서 있던 작가들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프카가 태어났을 땐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기 이전이었으니 그의 제 1 언어는 자연스레 독일어였겠네요. 하지만 프라하의 아니 유럽의 유대인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나 체코어 화자들 가운데에서 살았을 테니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살았겠지요. 독일어와 체코어, 이디시어가 뒤섞인 언어적 혼란이기도 했을까요. 그리고 그런 혼란스런 경계에서 파생된 에너지가 그들의 문학작품으로 고스란히 남겨진 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요즘 부쩍 그 '경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경계에 서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불안과, 그 불안이 가져다주는 커다란 에너지 말이지요. 조금 우스운 비유일진 몰라도, 농사를 짓는 어떤 분께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는데요. 한 품종을 한 밭에 심는 경우보다 섞어심기를 했을 때 작물이 훨씬 잘 자라더라는 겁니다. 심지어 밭을 반으로 나누어 두 작물을 양쪽에 반반 심었는데 한 가운데 경계에 맞물린 작물이 다른 작물보다 유독 더 잘 자라더라는 얘기도 해주셨지요. 그분도 그 이유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그 경계에서 나오는 작물들의 경쟁과 투쟁의 에너지가 아니었겠느냐는 추측만 하셨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하려는 사람은 떄떄로 고아처럼 외로워야만 한답니다. 오죽하면 작곡가 베토벤은 외로움이 자신의 종교라고까지 고백했겠습니까. 미국의 의사 시인으로 미국 현대시의 문을 연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외로움을 자주 느끼지 않는 자는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고아처럼 느끼게 하는 이 비 오는 우중충한 시간을 아파하면서도 고마워하고, 고국을 멀리 떠나 살고 있는 내 신세를 힘들어하면서도 또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죽은 내 동생의 이름을 부르다가 너무 외로워져서 눈물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뜨거운 눈물은 시인이 되고 싶은 내 꿈의 다른 표징이라 생각하고 온몸을 아파하며 받아들입니다.

 

윤석군이 바리톤기타 솔로곡을 새로 만들어 피앙세에게 들려주었더니 '편안하다'고만 말했다고, 멜로디와 진행, 코드가 얼마나 독특하고 새롭고 의미 깊은 곡인데 그냥 편안하다고만 할까 하고 좀 섭섭했다는 말이 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제일 가까운 피앙세가 작품의 의도뿐 아니라 작품의 앞뒤 구석구석을 다 이해해주고 감동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어느 예술가에게는 없겠습니까. 나도 한떄는 문학이나 시를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 아내에게 그런 욕심을 가진 적이 있었지요. 가끔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동서양 예술가들의 평전을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면 상대방의 예술을 완전히 이해하고 늘 격려해가면서 평생을 산 부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정반대의 부부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스토옙스키같이 부인의 절대적이고 전폭적인 존경과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글을 썼던 소설가나 동시대의 문호인 톨스토이같이 아내로부터 소설가로서의 존경심이나 경외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글을 써왔던 이가 모두 다 같이 좋은 작품을 썼다는 것입니다.

 

다른 면에서 내가 또 보로딘의 음악에 경도되고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세인트피터스버그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학자 겸 화학자였다는 점입니다. 특히 평생을 의과대학에서 생화학을 가르친 교수였고 알데하이드나 벤젠의 연구에도 세꼐적으로 상당한 업적을 쌓은 과학자라는 것입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그의 음악이 스케일로 보아서 러시아 음악을 대표한다고도 하지요. 차이콥스키보다 보로딘의 음악,특히나 교향곡 2번을 들어야 러시아 음악의 정수를 접한다고 말하는 이가 많지요. 어쩄든 보로딘 교수에게는 평생 '주말 음악가'라는 별명이 훈장같이 붙어다녔답니다. 그렇게 그는 의대에서 교수와 연구원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고 평생 아픈 아내를 간호도 해야 했다는군요. 언뜻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나는 엉터리 '주말 시인'이 아닐까 부끄러워했던 이곳에서의 내 의사생활이 기억나기도 하네요.

 

주말 음악가라...... 그것도 참 재미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꼬는 의도로 사람들이 만든 단어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한 때 주말 음악가였지요. 아니, 연말 음악가였다고 해야 하나요. 유학 시절, 연말에만 한국에 들어와 공연이나 녹음을 하고 돌아가곤 했으니까요. 저는 사람이 살면서 하나에 온 삶을 바치는 것도 의미 있고 숭고한 일이지만, 새로운 일에 두려움 없이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든 후회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사랑이든, 일이든, 배움이든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는 선생님이 온전한 의사이면서도 온전한 시인이시라고 굳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항상 옳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의사일수록 초심을 잃은 분이 많고 진심이 많이 흩어져 환자를 다르게 보는 의사들이 많지요. 그런 분에게야말로 또다른 시야의 눈을 주고, 한계를 넓혀주는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어야 좋은 의사의 직분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중략) 잘난 척하는 의사들은 단세포적인 과학 일변도의 사고이기 쉽습니다. 의사는 자신의 환자 진료나 진단에 단 하나의 오진이나 오판이 없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차가운 과학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과학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의학의 발전을 험담하자는 게 아닙니다. 의사는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지만 언제나 감성을 가진 환자의 도우미가 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과학으로 무장된 의학의 오진도 훨씬 줄어든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젊은 시인 한 분이 메일을 보내면서 요즘은 너무 외로워서 괴롭다고 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내가 답신을 보내면서 그렇게도 사는 게 실망스러울 때는젊었던 날의 나를 좀 상상해봐달라고 했습니다. 고국의 산천과 그곳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리만리 헤어져서 매일 언어도 안 통하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야 했던 20대의 내가 안고 살았던 긴장감과 불안과 절망 그리고 그 안에 숨은 깊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겠느냐고요. 그렇게 온몸을 조이는 외로움으로 몸을 떨면서 그래도 악착같이 모국어로 시를 쓰려고 안간힘을 쓰던 내 초라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냐고요. (중략) 그러고 보면 내가 오래전 한일회담 반대 서명으로 영창에 감금되고 평생 처음 받은 심문과 고문에 혼쭐이 나고 그 후유증이 오래갔던 일이나, 또 내가 2년 금고형을 받고 의사면허증을 빼앗길 것이라는 소문에 괴로워하시면서 내 구속중에 매일 소주를 한 되씩 드시고 급기야 얼마 안 가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내 아버지. 또 일간신문사 민완기자로 활동하다 이북에 사는 아들에게 쪽지 편지 한 장 전해달라는 큰아버지의 애걸을 거절하지 못하고 남북회담 취재 때 북쪽 기자에게 전했다가 그 당장 직장에서 쫓겨나 미국에 살던 내게 와서 고생만 하다가 갑작스런 참변으로 죽은 내동생. 동생의 죽음 후에 일부러인 듯 갑자기 치매 증세를 보이시다가 외로이 이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그 모두가 사랑하는 고국과 연결이 된 부끄럽고 불미스러운 일들이네요. 그러나 한마디로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합니다. 내 부모님도 내 동생도 물론 그럴 것입니다.

 

시는 내가 살아온 역사 속에서 내 삶의 지주 역할을 해주었지요. 헛된 욕망에 시달리고 떄로 절망하며 중심과 균형이 흔들릴 때 내 문학은 그런 것을 버틸 수 있는 대들보의 역할을 해주었어요. 윤석군도 그런 믿음을 당신의 음악에서 찾아서 움켜가져야 합니다. 그런 결심과 믿음이 없이는 좋은 음악을 찾아 헤매는 고통과 번민의 와중에서 지쳐갈 때 깃발을 놓아버리기 쉽습니다. 언젠가도 말한 적이 있지만 문학이란 자유를 찾아가는 생의 한 과정이라고 나는 믿어왔습니다. 아마도 내가 살아온 세상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나는 평생을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고 확실하게 헤아릴 수 있는 것에만 의지해 살아온 의사였지만 누구에게라도 언제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아마도 내가 어쩔 수 없이 삶과 죽음의 가교에 서서 오래 살아온 떄문인지 모르겠지만요. 그중 하나는 주위의 착한 이웃을 위해 정성을 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바치라는 말입니다. 옳고 그른 것에도 늘 엄격해야겠지만, 그래서 강직한 사람도 되어야겠지만 그보다는 착하고 힘없는 것에 더 마음을 주고 그 편이 되어주는 따뜻한 시간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한 사람이 정성을 다해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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