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여자가 서른 살 여자에게 - 여자의 인생을 위로하는 47가지 조언
데버러 콜린스 스티븐슨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웅진윙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책 속의 몇 몇 인상깊은 구절을 적어둔다. 마흔 살 여자가 서른 살 여자에게, 라는 제목은 분명히 매혹적인 제목이지만, 솔직히 제목만큼 책이 임팩트 있지는 않다. 4명의 여자들은 워킹맘으로, 각자의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고 있고, 그 것을 나름대로 헤쳐나왔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4명의 이야기가 섞여 있어서 정신이 없고, 전체적으로 뚜렷한 줄기가 없어서 그 가지도 명확하지 않다. 또한 중간중간 나오는 조언들은 사실 다른 자기 계발서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며, 마흔 살 여자, 서른 살 여자, 라는 키워드도 미국 사회와는 분위기가 다른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정말 힘들다면, 읽으면서 기분 전환이 될 수는 있겠다.

 

그 마지막 며칠 동안 나는 내가 그 학대당하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깨달았다. 오래던에 나를 숨기기로 작정하고 어른이 된 뒤에도 숨바꼭질을 고집하면서 '내가 나를' 학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병마와 싸우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이제는 그런 행동들로 인해 내가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는 그 사건이 내 정체성이나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지를 규정할 수 없었다. 그 분명한 꺠달음의 숰간, 나는 과거와의 사슬을 끊고 아무 두려움 없이 내 인생 속으로 풍덩 뛰어들 수 있었다.

 

우리가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몫은, 나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과 정확히 비례한다. 그 근원이 당신 자신이건 다른 사람이건, 불신 때문에 비틀거리지는 말자.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다.

 

보니다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우울해하며 남은 인생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살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한 걸음씩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자신과 가족들이 그 고통을 겪은 데에도 깊은 뜻이 있을 거라고 믿는 쪽을 택했다.

 

'장애물'을 주제로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가 두려움, 현실부정, 자기파괴다. 두려움은 손에서 땀이 나는 증상에서부터 엄청난 불안과 발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형태로 표출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경우에는 버팀목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사람 떄문에 무서워.""우리 아이는 내가 없으면 안 돼." "내가 더 돈을 많이 벌면 그이가 날 떠날 거야." "다들 나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아."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두려움으로 표출되고, 그런 두려움을 방패 삼아 그 뒤로 숨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면 버림받은 느낌이나 상실감을 피할 수 있다. 오래 입다 보니 내 몸에 꼭 맞게 된 목욕가운처럼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 편안함에 속아넘어가면 거짓인생을 살게 된다. 많은 여자가 보이는 또 한 가지 패턴이 자기파괴다. 이는 여자들이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동원하는 비열한 짓이다. 간단하게는 칭찬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자기파괴고, 복잡하게는 '안 뽑힐 게 뻔해서' 회사 면접을 펑크내는 것도 자기파괴다.

 

당신의 시련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으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을 때는 어떤 단어를 쓸 것인지 좀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미친 듯이 연못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물고기가 된 심정이라면, 그 불편한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 미리 생각해보고 준비를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우아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답변을 생각해놓아야 한다. 이런 과도기 때 헤매지 않으려면 집 밖으로 나가서 우리를 새로운 미래로 인도할 만한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그러려면 불안한 마음을 감추는 동시에, 원하는 목적과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적절하게 표현할 말을 찾아야 했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낸 여러 기회와 관심사를 탐색하는 중이에요.

쉬면서 재충전하려고요. 3개월이나 6개월쯤 다른 일을 해본 다음 다시 일을 시작할까 해요.

지금은 과도기라 다음 행보를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당신도 지금 과도기를 겪고 있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묻는 말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할 말을 잃거나 헤매지 않고,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더 이상 끔찍하지 않도록 대답을 미리 준비하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거울을 보고 연습하자.

 

어느 쌀쌀한 겨울날 아침, 눈을 뜬 재키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손을 내민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항상 강한 모습을 보이는 데 익숙했고, 늘 도움을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이었던 그녀였기에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서 생긴 엄청난 문제들을 적절하게 처리할 방법이 필요했다. 도움은 '치료'라는 이름으로 찾아올 때도 있다. 우리를 아끼는 사람들을 통해 찾아올 때도 있다. 뜻밖의 방식으로 우리 인생에 뛰어든 전혀 낯선 사람의 이름을 찾아올 떄도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건 우리가 도움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된다. 어떤 사람이 '뭐, 도울 일 없냐?'고 뻔한 질문을 하거든 '있다'고 대답하고, 그게 무엇인지 말하면 된다. 앞으로는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뿌듯함이라는 선물을 주기로 약속하자.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 잰은 여성진행자가 거의 없던 시절에 라디오와 TV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비서로 출발했지만 결국 자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스스로 과연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의심했던 재키는 변호사인 동시에 상원의원이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미셸린은 미국 재계에서 성공을 거둔 뒤, 정장 대신 청바지를 입고 대본 쓰는 법을 배워 대본, 제작, 감독을 맡은 첫 다큐멘터리로 데뷔했다. 데버러는 예전부터 리더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현재 컨설턴트로 여러 리더와 일을 하고 있다. 네 명은 말한다. 인생에서 확신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성공이 미꾸라지처럼 느껴지고, 실패하는 일이 생기고, 앞에 놓인 길이 끝이 없어 보이더라도, 똑똑한 여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꿈으로 향하는 길에는 꼭 비관론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러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그러는 사람도 있다. 심술이 나서 우리의 꿈을 짓밟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비관론자가 모두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막강한 비관론자가 자기 자신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행스러운 이야기지만, 자기 자신을 구박하는 습관은 버릴 수 있다.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마틴 셀리그먼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프로그램의 방향을 바꾸는 심리치료사가 많다고 한다. 의뢰인의 과거 속으로 파고들어가 어렸을 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지기보다 현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 "인간에게 어떤 것이 상처가 되는지에 집중하다가 무엇이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지 이해하는 쪽으로 바뀐, 심리학계의 조류 변화"라고 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나온다. 그 중에는 내가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아마 미국민들에게는 알려진 여성들이 아닐까 한다. 참 인상깊은 것은, 오로지 '여자'에 방점을 찍은 자기계발서는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20대, 혹은 30대 여성들에 그쳐 있다. 이 책에서처럼 국회의원, 기업의 CEO, 방송인, 고위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의 40대~50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10여년 정도 세월이 흐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많은 예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한 때 시련을 겪어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활발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을 돕는 것도 인상적이다. 컨설턴트인 데버러는 지구촌 곳곳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바람이 있고, 미셸린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사 '위민스 인디펜던트 시네마'의 대변인이라고 한다. 잰은 이사회와 여러 기업에 여성들을 앉히는 헤드 헌터가 꿈이다. 변화와 재창조의 연속인 여성의 삶을 살면서, 후배 여성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일,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예전에 본 기사에서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늘었으나, 정작 그 여성 국회의원들은 남성 보좌관을 선호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은 늘어가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끼리의 연대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외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은데, 아마도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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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 대한민국 2030 여자들의 직장생활백서
임경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임경선 이라는 저자의 이름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일간지의 한 칼럼이었다. 평소에 읽으면서 아~ 톡톡 튀는 저자의 글솜씨에 매력을 느끼던 도중,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각인하게 된 것은 의외의 계기였다. 지금은 내용이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어떤 독자의 고민 상담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답을 내어 놓은 글이었는데, 다 읽고 난 후 가장 첫번째로 떠오른 느낌은 '불쾌함' 이었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 내용이 얼토당토하지 않아서? 전혀 아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고민이라서? 그것도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당시 그 독자의 고민은, 그 당시에 나도 가지고 있던 고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독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내가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이입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임경선의 글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썩 유쾌하지 못했던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임경선의 조언은, 옳았다. 그것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수긍은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왜일까?

 

얼마 전에 유명한 스타 강사가 논문 표절 의혹으로 한동안 홍역을 치룬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의 전후를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는 한 동안 그 일 때문에 쉴 수 밖에 없었고, 얼마 전 복귀하면서 한 인터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본인 나름대로 억울한 면도, 속상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무심히 읽어나가던 도중, 내 눈이 멈춘 부분이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쉬다 보니 아무래도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졌는데, 자신이 강연을 한참 하고 다닐 무렵, 자신에 대해 누군가가 SNS에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고. '김미경 강신주 법륜스님 이 세사람은 나에게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어른 흉내를 내며 꾸짖기만 한다고, 나다운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고.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싸잡았구나, 또 다른 숲을 보는 충격에 며칠간 고민했다고. 법정 스님 말대로 글쓰고 말하는 일 모두 업보를 쌓는 일이라며 앞으로 자신은 소수의 생각과 상처를 존중하는 법을 찾겠다고. 그 대목을 보고 알았다. 아, 공감이 실려 있지 않은(혹은, 듣는 이가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충고는 마음만 다치게 하는구나. 나 또한 이런 실수를 누군가에게 했을 것이고, 내가 이유도 모르게 누군가의 충고를 듣고 머리로는 그게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반발을 했던 것이 이 때문이로구나.

 

아마도 나는 칼럼을 읽으면서 아무런 애정이나 공감없(다고 내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조언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제는 작가가 아니라 그 당시 나에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게 여러모로 망설여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기쁘게도(?) 작가에 대한 내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칼럼과 이 책 사이,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며 아마도 작가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었던 걸까. 날카롭게 충고를 하면서도, 그 충고의 사이사이에 따뜻한 조언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비슷한 자기 계발서류에 상처받았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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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다 보면 '괜찮은 워킹우먼+나쁜 아내'의 시기가 있을 수도 있고 '보통 워킹우먼+보통 엄마+불량 아내'로 조합된 시기도 있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 및 살림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일하는 여자들은 '일이냐, 결혼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양쪽의 가치를 다 가질 수 있다. 단, 완벽주의자 기질만 과감히 버린다면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라고 푸념하지만, 가격대비 양질의 호텔을 비교하고 현지에서의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과제처럼 연구하는 그녀들은 이미 아무 생각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일을 한다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그 모진 상사의 말대로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 모두가  '커리어 관리'의 불가결한 일부다. 남이 나를 챙겨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챙겨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는 거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단, 그 상황에서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상황을 '삼키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신의 야속한 장난처럼 보이는 사건에 맞닥뜨릴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다. 불안감과 초조함을 이겨낸 뒤 찾아오는 변화된 인생의 항로에는 새로운 발견과 선물이 있다는 것을 믿어도 좋다.

남자들은 선의로든 악의로든 주변의 워킹우먼을 직장에서의 딸, 아내, 누이, 여동생으로 보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여자를 자신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약자로 생각하는 우월적 사고가, 약자인 여자들과의 경쟁을 거부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여성성이 가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독립적이고 능력 있는 워킹우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그들에 맞추어 역할설정을 하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의 위치를 독창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남녀간 연애처럼 때로는 적당히 둔감해지는 것이 회사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자들은 연애에도 직장일에도 너무 예민하게 올인하는 탓에 스스로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우를 범한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은 인간성을 평가받는 것과 다르다. 부하직원에게는 인간성 좋은 상사보다 유능한 상사가 필요하다. 상사가 조직 내에서 파워를 가지고 있어서 타 부서에 지지 않는 것이 싫은 소리 안 하는 상사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부하직원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지시하기가 계면쩍어서 본인이 그냥 알아서 해치우는 것도 이런 착한 여자 상사들의 공통된 습성이다. 과거 사원 시절에 혼자 일을 다 끌어안고 끙끙대던 습성이 남아 있어서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과감히 맡기는 것이 무척 서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더욱 잘해내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부하직원들이 가진 저마다의 능력을 주저없이 적시에 빌리고,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협조를 뽑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과감히 일을 맡겨야 한다.

 

피고용자 마인드란 '어차피 내가 노력해봤자 남 잘되게 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습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아껴봤자 잠시 몸만 편할 뿐 긴 안목에서 보면 자기능력을 계발할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셈이다. 당장은 하찮아 보이더라도 자신이 낸 실적 하나가 회사의 목표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더욱 일할 맛이 날 것이고 부과된 업무 외에도 추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서 효과를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민의 근원은 그녀가 자신의 출근복을 '패션'으로 간주한다는 데에 있다. 패션은 자기 표현이며 성인인 이상 남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기 힘든 사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몸담고 있는 회사가 패션의 독창성과 자유를 독려하는 패션관련 회사가 아닌 바에야 그것은 패션이 아니라 '차림새'의 문제가 된다. 기본적으로 스타일의 80퍼센트는 그 직장과 업종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이 좋다. 80퍼센트는 조직 내 조화를 고려하고 20퍼센트는 그 조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창의적인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남녀 막론하고 옷차림새와 외모는 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다. 즉, '일을 잘할 것처럼 보이는 외모'도 필요한 것이다.

 

조직생활은 이렇게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것 말고는 거의 공통점이 없을 법한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만 하는 엄청난 감정노동을 동반한다.

첫째,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생각은 애당초 접어라. 눈 질끈 감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할 생각도 하지 말고 사랑받을 생각도 하지 말자. 피를 나눈 가족이나 십년지기 친구들과도 오해와 갈등을 겪는데 하물며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여러 사람들과 서로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기가 어디 쉬울까?

둘째, 회사 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 대한 대가도 월급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라. 인간관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고 직급이 올라간다고 해서 반드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 직급과 환경에 맞는 새로운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무방하다.

셋째, 회사라는 조직체는 자선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이기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기적이라 함은 그로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이성적인 행동임을 뜻하기도 한다. 고로 권선징악의 단순한 룰에 따라 증오해야 할 대상을 정해놓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소모시키는 것은 괜한 낭비다. 차라리 무관심하자.

넷째, 미운 사람은 잊으려고 애써야 하지만, 반대로 나를 도와준 사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결국엔 평생에 걸쳐 나를 지속적으로 도와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사내정치는 상사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상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동료나 후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도 쉬울 것이다. 상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사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부하 직원에게 자신이 어떤 상사로 비춰질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상사보다 낫다고 확신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상사의 한 가지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만으로 상사의 모든 점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약한' 특정 업무에 우연히 내가 '강하면' 자신이 그렇게 잘나 보일 수가 없다. 그런 일이 몇 번 생기면 그때부터는 아예 상사를 무능력자로 낙인 찍어버리는 것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여자들 중에는 일이 다 끝나고 나중에 가서야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뒷북치는 둔감한 이들도 있는데, 일일이 주변 사람들 신경 썼다가는 본인이 못 견딘다. 자신의 행동이 공정하고 떳떳하다면 이제는 유능해서 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목의 집중을 받는 만큼 부담도 커서 괴롭겠지만 앞서 나가는 사람은 늘 외롭고 고된 법이다. 다만 가끔은 자신의 언동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다른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았는지 객관적으로 반추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에 한동안은 괜스레 졌다는 패배의식과 창피함 때문에 고통을 느낄 것이다. 한 가지라도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뭐든지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결시키는 습관이 들면 곤란하다. 콤플렉스 타령이 현실을 위로하기 위한 진통제처럼 쓰이면 정작 자신이 제대로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가 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보다 긴 안목으로 커리어플랜을 바라본다면 자학적인 비교가 의미 없을 뿐만 아니라 이왕 승진했다면 그것이 내가 친하게 지내던 동료인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느덧 당신이 더 높은 직급에 올라 있을 수도 있고 한 때 질투 대상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선택해 경주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더 높은 직급의 명함을 가진 사람이 이겼다거나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수직적인 평가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한 번이라도 윗사람이 돼본 경험이 있으면 알 것이다. 아랫사람이 내게 싫은소리 하는 것을 듣는 심정을. 그리고 그게 맞는 말일수록 더욱 못마땅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윗사람들에게는 일이 조금 서툴더라도 자신의 가르침에 순순히 수긍하는 직원들이 훨씬 예쁜 법이다. 특히 3~5년차 대리쯤 되면 회사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또 회사 어른들의 '구린' 것이 하나둘 눈에 띄는 시기라 '정의감'에 불타오르기 쉽다. 또한 부하직원을 처음 거느린 팀장이 되었을 땐 마찬가지로 내 밑의 직원들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하에 자칫 이성적이고 전략적으로 팀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소영웅처럼 감정적인 선택과 행동을 함으로써 그 팀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여자 상사는 아직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그만큼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 그러다 보니 여자 상사들의 어깨엔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기 십상이다.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정면 돌진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일로 부딪치는 기회를 최소화하고 일 얘기만 한다든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포함시켜 일을 진행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싫은 사람과의 교제로 마음고생 하느니 좋아하는 사람,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책상정리를 잘하는 것처럼 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중간 중간 정리를 해나가며 살아간다. 어차피 포기해야 할 인간관계라면 눈 딱 감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자. 최소한 인간관계에 관한 한 완전한 회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20대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경험해보아햐 한다고 생각하는데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본 경험이 있어야 30대에 할 수 있는 일의 용량이 커지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의 치열했던 경험이 자신감으로 연결되어 경력이 쌓이면서 훨씬 더 나은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소한 20대 중반 무렵까지는 쉽게 현재의 일을 포기한 채 바로 전직에 눈을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정도 비중 있고 치열한 일을 나한테 맡겨줄 때까지 전직하지 않고 일단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30대 전직의 키포인트는 장기적 커리어 목표에 도움이 되는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같은 직종이라도 개개인의 책임과 권한이 더 커지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를 선택해서 도전해본다거나, 여태까지 일해온 분야에 좀더 깊이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능동적인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로의 전직이라면 생각해봄직하다. 20대의 전직은 자신을 맹렬하게 하드 트레이닝시켜 줄 수 있는 곳으로 일부러 뛰어들어가는 것이어야 하고, 30대의 전직은 장차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비전에 따라 빠진 퍼즐조각을 끼워맞춰 완성해가는 것이어야 한다.

 

 

직장에서 작든 크든 성취해낸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혼자서 자축해보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기쁜 일이 있을 때 귀갓길에 탐스러운 장미 한 다발을 사서 집에 장식해놓곤 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보다 금방 없어지는 물건은 그 순간을 향유하는 정취가 있고, 또 꽃만큼 감정이 사치스러워지는 것도 없다. 

 

 

긍정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우울증은 우리가 일해온 방식이나 살아온 방식을 재검토하고 궤도수정할 기회를 주는 선물과도 같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무리를 해왔다는 증거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사 밑에서 스트레스를 쌓아가면서 소모품처럼 일해왔다면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은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정말 이 일인지, 신중히 심사숙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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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친절하지만 나는 행복하겠다 - 영국을 들끓게 한 버밍엄대 화제의 행복학 특강
자일스 브랜드리스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의 본능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전 세계에서 행복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는 매번 인터넷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도 많이 봐서 외울 정도이다. 이제는 요약이 가능할 정도.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 등

이 책은 꽤 얇은데, 등장하는 내용들은 판에 박힌 내용이 아니라 더 인상깊었다.

예를 들면, 친구가 행복의 요소이기는 해도 언젠가 돌아설 수 있으며, 최근의 모든 연구 결과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만족스러운 성관계는 꼭 충족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등.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7가지 비밀(원제가 그렇다.)은 다음과 같다.

 

1.열정을 키워라ㅡ대처와 엘리자베스 2세 이야기를 통해 평생을 정치에 올인한 대처가 정계 은퇴 후 삶이 얼마나 단조롭고 무료해졌는지, 평생 승마에 몰입한 엘리자베스 2세와 비교해서 보여줌으로써 끊임없이 열정을 줄 대상을 찾으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2.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이 되어라ㅡ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은 잠시 동안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도 결국에는 말라죽어버리는 것처럼, 아무리 개인의 행복이라고 할 지라도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3.거울을 깨라ㅡ한 마디로 자기인식은 하되, 자아도취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대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

4.변화에 저항하지 마라ㅡ저자 자신도 솔직히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가 힘들지만, 모든 연구 결과가 유연하게 삶의 변화에 대처할 수록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노력하라고 한다.

5.행복을 점검하라ㅡ통근 시간이 길수록 행복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나 또한 통근 시간이 길어서 불행하다면 과감하게 이사를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라는 반론이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저자의 의미는 경제적 지출이나 다른 불편 사항을 감수해서라도 실행할 정도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6.순간을 살라ㅡ아무리 듣기 싫고 무의미한 연설이라도, 어차피 들어야 할 내용이라면 나름대로 비평하면서 듣거나, 그 연설에서 한 가지라도 건질려고 노력한다고, 그 편이 멍하니 무시하는 것보다 낫다는 덴마크 여왕의 이야기가 인상깊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과 상통한다고 생각된다.

7.행복하라ㅡ행복한 행동을 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라. 즉 의식적으로 행복해지라는 것이겠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경제력, 건강, 우정, 사랑, 여유 등은 물론 우리가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며, 가지고있다 하더라도 나중에 어떻게 잃게 될 지는 모르는 것이다. 즉, 저자의 저 7가지 원칙을 전제로 한다면, 비록 현재 나의 객관적 조건의 정도와, 그 변화에도 불구하고 늘 행복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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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 - 우리 시대 명사 50인이 지난날에 보내는 솔직한 연서
김정운.엄홍길.안성기.박경철.공병호.조영남.김창완.정민.승효상.김형경.이지성.김홍신.조수미 / 위즈덤경향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프리드리히 니체

아버지의 건강검진_박경철
'그때 만약 병원에 모시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당시 의술로는 어차피 진단이나 치료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변명은 값싼 위로에 불과한 것이다. 가족에겐 가족의 안위가 걸린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일이고, 나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헌신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말 걸지 못한 것_이윤택
지금 환갑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그때 그 순간을 되새기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후회가 된다. 그래도 내 첫사랑인데 어떻게 말 한 번 걸어보지도 못한 채 그냥 흐르는 시간 속에 떠나보내야 했단 말인가.

왜 깨끗한 껌을 골랐을까_김운경
왜 나는 그 청년이 펼쳐놓았던 더러운 껌들 중에서 가장 깨끗한 껌을 골랐을까. 찢겨져 안 팔리는 껌을 고를 생각은 왜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못나고 어리석게 살아온 나였다. 나는 갑자기 울적해지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다시 내게 삶이 주어진다면 꼭 더러운 껌을 고르리라.

단풍 든 암자의 그 모시잎떡_구효서
검거선풍이 일던 때라 색출 대상 스님들은 대부분 미리 잠적해버리고 없었다. 높은 산을 오르내렸으나 번번이 허탕을 쳤고 아침을 맞았다. 피로한 병사의 눈에도 가을 단풍은 눈부셨다. 법당을 수색하고 밖으로 나서는 우리에게 공양주 보살이 모시잎떡을 내밀었다.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좀."
밥솥에 쪘는지 갈매빛 떡에 밥알이 듬성듬성 묻어 있었다. 스님 잡으러 온 군인한테 떡이라니! 외면하고 돌아서면 그만일 것을, 나는 보살에게 면박을 주고 말았다.
후회한다. 사과는커녕 이제껏 후회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나는 인정했다. 이제껏 후회하지 않은 게 아니라, 후회를 억눌러왔다는 것을. 그때는 군인의 신분이었고 나 개인에게 허용된 자유가 없었으며 따라서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치스 친위대 장교 아이히만과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변명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인류와 평화에 대해 사유하지 않은 게 그들의 죄라면, 나의 죄는 후회하지 못한 것이다.

이혼_조영남
그 당시 가정을 박차고 나온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까지 저버릴 정도로 그 당시 내 사랑은 그리 절절하지 않았다. 용서를 빌고 다시 가정을 지키겠다는 맹약을 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나의 치기와 자만이 너무 컸다.
지난 수십 년간 나는 그날에 맞춰 케이크를 사들고 일찍 귀가해본 적이 없다. 삼십 대의 한가운데를 보내고 있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 조영남은 빵점짜리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내 주변의 선후배들이 수십 년 동안 가족을 건사하면서 아들딸을 결혼시키고, 부부가 해외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부럽고 화가 난다. '네가 가정을 버리고 이룬 것이 도대체 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셰르파 도르지의 죽음_엄홍길
2008년 5월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한 뒤 산에서 숨진 셰르파들과 그들의 남겨진 가족 그리고 오지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있다. 히말라야 자락에 사는 네팔 아이들이 공부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셰르파 도르지의 죽음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후회가 나의 삶을 바꿔놓았다.

스물한 살의 결혼_손숙
결혼은 꿈이 아니었다. 혹독한 현실이었으며 그 현실을 이겨나갈 아무런 준비 없이 나는 덜컥 결혼을 해버린 것이다. 그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나이에 덜컥 결혼이라니......너무 일찍 어른이 되는 바람에 아름다운 시절을 놓쳐버린 것만 같다.
결혼은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다음, 그 나이에 할 일들을 어느 정도 이룬 다음, 죽도록 사랑하는 남다 말고(그 남자는 그냥 가슴속에 남겨두고), 친구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남자 만나서 인생을 걸 만큼 큰 기대는 하지 말고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삶이 무엇인지는 삶의 뒤편에서 봐야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삶은 반드시 앞을 향해 살아나가야 한다.
키르케고르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조지 버나드 쇼

고려대로 가주세요_김정운
"어디로 갈까요?" 택시기사는 내게 물었다. 택시 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결정하지 못했다. 어디든 말해야 했다. "안암동 고려대학교로 가주세요."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한마디다.
재수를 했던 나는 두 군데에 지원했다. 연세대학교 공과대학과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원래 난 이과였다. 건축과에 가고 싶었다. 그런 내가 고려대 문과대학을 지원할 생각이 든 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였다.
그리고 겨우 1년 다니고 제적당했다. 기세등등하던 전두환 정권은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제적시켰다. 가까운 친구들은 다 노동운동을 한다고 했다. 난 죽어도 그쪽 체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제국주의'에 유학갈 수도 없고, '매판자본'의 대기업에 취직할 수도 없었다. 결국 마르크스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진보적 학자들이 몰려 있던 베를린 자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받고, 너무나 자존심 상하던 '보따리장사' 시절을 거쳐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체질이 아니었듯, 교수도 내 체질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한 번도 누구에게 배울 마음도 없었고,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던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후회'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에는 반드시 후회가 따르기 때문이다. '후회 없는 삶'은 평생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노예에게나 가능한 삶이다.
난 격조 있는 건축가가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격정적으로 살았던 내 젊은 날을 무척 사랑한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날들도 너무나 기대가 된다. 그러나 그날, 그 택시 안에서 어디로 갈 거냐고 다시 묻는다면 숨도 안 쉬고 '신촌'으로 간다고 할 것이다.

저울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놓고
다른 한쪽 편에 나의 어머니를 실어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
랑구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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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와사키 나쓰미 지음, 권일영 옮김 / 동아일보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발행된 것이 2011년 5월 1일이다. 같은 해 23일까지 6번을 더 찍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7번을 찍어냈다는 것이다. 요즘 책을 볼때마다 책 맨 뒤를 펼쳐서 몇 판 몇 쇄를 꼭 꼭 확인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처음 나왔을 때 집에서 구독하던 신문의 북 섹션에서 대대적인 칭찬을 했었고 제목의 특이함 때문에 기억이 많이 남았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러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집었다.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알기 쉽게 고등학교 야구부로 치환한 구성은 참신한 것 같다. 어차피 전문 지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원저를 볼 것 아닌가. 마케팅, 인사, 이노베이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야구부에 하나하나 접목시켜 나가는 부분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고, 깊이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다. 아이디어는 굉장히 좋은데, 내용의 전문성이 따라잡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지은이는 전공이 건축이고 방송작가와 아이돌 그룹의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며 이 책은 그의 첫 책이다. 비전문가의 첫번째 작품으로는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이 책의 이상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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