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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가끔은 '아무런 열정도 설렘도 없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경우가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음악, 미술, 춤, 게임 같은 것들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다 보니 그저 책상 앞에 안장 공부만 하는 그 지루한 시간을 비교적 덤덤히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불러내는 친구도 없고 별다른 유혹거리도 없이 나는 그냥 입시를 위해 공부를 해나갈 수 있었다.
훗날 사회에 나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공부만' 잘했던 사람이 꽤 많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 하는지도 모른 채 고속열차처럼 학창시절을 내다리다가 어느 날 '툭'하고 세상에 내던져진 그런 사람들 말이다.
얼마나 황당한지 모른다. 학교에서야 정말 잘나갔지만 사회는 공부와는 전혀 다른 것드로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사회에서 필요한 것, 예컨대 '관계의 기술' 같은 것들은 책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어릴 대 친구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 '몸의 습관'과도 같은 것들이다.
그것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사회에 나가서야 비로소 학교 때는 보이지 않던 '의지의 인간'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버릇처럼 '난 기필코 이 일을 꼭 해내고야 말 테야!'라고 외치며 살아간다.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절실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교 3학년, 그저 오빠가 다녔던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공부를 했던 나에게 그런 '가슴 떨리는 꿈'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아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죄일 것이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면 그건 '사람은 결국 혼자'라는 거야. 낮 동안에는 그걸 인식할 겨를이 없지만, 밤이 되면 절실히 와 닿게 마련이지. 미녀들의 웃음이나 고급스러운 분위기, 값비싼 양주는 소품에 불과해. 능숙한 서비스도 역시 소품이야. 정말 중요한 건 마음의 메아리인 것 같아."
"가족이란 건 말이야,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질긴 끈 같은 걸로 단단히 연결돼 있어야 해. 안 그러면 엉망이 돼 버리거든. 가족이든 친구든 자기 주변 사람들을 소홀히 여기면 결국 인생이란 게 비극으로 치닫게 돼."
호스티스들은 저마다 화려하게 살기 위해,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해외 유학을 가기 위해, 혹은 자기 가게를 열기 위해 대부분 투잡으로 일을 한다. 나 역시 낮엔 파견사원, 밤엔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지만, 치카처럼 목적과 수단을 동시에 수행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는 두 가지 일 모두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화려한 마지막'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솔직히 라스베이거스 행 역시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한시적이다. 나에게 그 다음은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1년짜리 시한부 에너지인 셈이다.
하지만 치카는 그렇지 않다. 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의 힘은 연극이라는 인생의 목적과 호스티스라는 수단을 동시에 추구하는 데에서 나오고 있다. 바닷가의 아름다운 음악 카페를 꿈꾸는 레이나의 힘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무대'를 가진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지속적인 당당함,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없다.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사람들은 긴 학창시절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없이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올리고 많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도 대부분 인생의 수단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 다음'은 가르쳐 주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란 건 어쩌면 투명한 막에 가려진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 투명 막을 뚫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치도록 무섭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또 하나의 평범한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불과 15분 전만 해도 내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건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놀라우리만치 급속도로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어떤 포즈는 15분 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하기란 너무 괴로운 일이다. 휴식 시간이 끝나도 다시 포즈를 취했을 때도 여전히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구나.'
'같은 시간, 같은 포즈, 같은 표정의 나를 보고 있는데 그리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하나뿐이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천차만별이었다. 사실 그림 속의 나는 '나'이면서 또한 내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나와 남이 느끼는 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늘 내가 알고 있는 느낌과 나의 기준대로 이해받길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왜 아무도 날 이해해 주지 않을까?'하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생각과 느낌은 십인십색, 사람의 숫자만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나와 똑같은 느낌을 요구하거나 이해해 달라는 것은 무리이고 어리광이며, 오만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나에 대한 남들의 느낌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뭐든 그렇겠지만 일류니 고급이니 하는 말은 늘 조심해야 해. 본질을 꿰뚫기가 어려워지거든.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그게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아마 클럽 사와의 마담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뭐든지 곧이곧대로 흡수할 수 밖에 없는 신출내기였기에 일일이 호스티스의 마음가짐과 교양 있는 태도를 가르쳐 주고 또 귀엽게 봐주었겠지.
나는 사람들한테는 '가르쳐 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무지'가 의외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난 늘 혼자였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어. 혼자서 그림 그리고 생각에 잠기는 그 시간이 좋았거든. 늙어 죽을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싶었어. 하지만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오히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뱡향이 뿌옇게 흐려지곤 했어. 그래서 자꾸 나도 모르게 무리에서 떨어져 지내게 되더라. 적어도 혼자서 나를 만나는 그 시간만큼은 내 믿음을 확신할 수 있었거든. 뭐랄까, 인생의 목적은 늘 분명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 뭘 해야 할지, 그런 목표는 약간 희미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네가 라스베이거스라는 선명한 목표를 가진 것처럼 이제 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목표를 정해야 할 것 같아."
삶의 목적을 알고 있는 미나코는 방향을 잃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발걸음이 너무 더디다고 했다.반대로 나는 눈앞의 목표는 너무도 선명하지만 삶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 이후의 시간을 상상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인생이란 바다는 목적이나 목표 하나만으로는 불완전한 항해를 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신대륙을 찾아가는 범선은 타륜으로써 방향을 잡지만, 돛과 노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결국 미나코와 나는 각각 하나씩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여자애들은 서른만 넘으면 나이 들었다고 한숨을 푹푹 쉰다며? 웃기지 말라고 해. 인생은 더러게 길어. 꽤 살았구나, 해도 아직 한창 남은 게 인생이야. 이 일 저 일 다 해보고 남편 자식 다 떠나보낸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만큼 길지. 100미터 경주인 줄 알고 전력질주하다 보면 큰코다쳐. 아직 달려야 할 거리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남았는데, 시작부터 힘 다 쏟으면 어쩔 거야? 내가 너희들한테 딱 한마디만 해줄게. 60 넘어서고 자기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잘 찾아봐. 그걸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란 말이야."
"샴, 이 정도 실력이면 직접 가게를 차려도 되겠는 걸? 청소나 주방보조로 남기엔 너무 아까운 실력이야."
"사실 처음엔 그런 꿈으로 일본에 왔어.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인도에 있을 때보다 훨씬 보수를 많이 받거든. 그러다 보니 자꾸 나 스스로 계획을 미루게 되더란 말이지. 고향에 있을 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그래서 오늘 이 만찬을 계기로 다시 나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
스물아홉 살이 될 때까지 끝없이 안정적인 생활만을 추구하며 살다가 결국 자멸해 버린 나로서는 샴의 이야기가 쓰디쓴 약처럼 느껴졌다.
"초보 카레이서들은 매순간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으려고만 한대. 하지만 노련한 카레이서는 가속페달보다는 브레이크를 더 잘 쓴다는 거야. 브레이크를 안 쓰면 차가 커브 길에서 전복되거나 엔진 과열로 폭발할 수 있어. 너를 결승선까지 데려다 주는 건 네 몸뿐이야. 몸을 홀대하면 결국 몸이 너를 거부하게 될 거야."
나는 꼬깃꼬깃한 5달러 지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지폐 속 링컨의 얼굴도 꼬깃꼬깃 주름져 있었다. 갑자기 그가 내게 말을 건넬 것만 같다.
"승리를 축하한다, 아마리!"
무수히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왔을 이 5달러짜리 지폐가 갑자기 나를 뭉클하게 했다. 1년이라는 치열한 시간을 환전해서 여기까지 날아와 인생을 건 도박 끝에 5달러를 번 것이다.
'......그래, 이긴 거야. 달랑 5달러지만 난 이긴 거야!'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겼다! 인생 최대의 승부에서 승리한 거야!'
예정대로라면 나는 지금 통에 든 알약을 모조리 입 안으로 털어 넣어야 한다. 그럴 각오로 오늘 이 순간까지 내쳐 달려온 것이다. '기꺼이 죽겠다'라는 각오가 없었으면, 나는 지난 1년 중 단 하루도 온전히 살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계획했던 모든 일들을 완수했고, 목표했던 결승선까지 완주한 지금, 나에겐 최후의 선택만이 남았다.
'어째서 5달러를 땄을까?'
날고 긴다는 카지노의 딜러와 대결해서 몽땅 털리기는커녕 5달러를 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솔직히 나는 완전히 잃거나 대박을 터뜨리는 것, 그 두 가지 경우의 수만 생각했었다.
불현듯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은 비긴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5달러를 남겨 준다. 그러니 이제 다시 너의 게임을 시작하라.'
나는 그 5달러를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500달러도 아니고 5천 달러도 아니다. 달랑 5달러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큰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1년이 흘렀다. 서른 한 살.
나는 지금 오다이바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인텔리전트 빌딩 창가에 서 있다. 그 사이 나는 파이낸셜클래너 자격을 취득했고, 세상 물정 어두운 엄마까지도 이름을알고 있는 글로벌 회사에서 정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6일을 떠올리곤 한다.
기나긴 인생에서 6일이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방바닥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볼 수도 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릴 수도 있으며,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자포자기하며 지낼 수도 있다. 예전의 나는 수많은 세월을 그렇게 휴지조각처럼 살았엇다. 남은 인생마저 계속 그럴 거라면 그냥 죽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낌없이 불태우고 죽으리라'는 주문을 걸었고, 매일매일 디데이를 향해 카운트다운을 가동했다. 그리고 그 마법은 통했다. 이제 나는 마법을 믿는다.
인생에서의 마법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끝'을 의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기만 했었다. 하지만 D-365, D-364, D-363......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치열하게 내달릴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난폭한 방식의 자기개혁이었지만,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했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막의 판타지 공간에서 보냈던 20대의 마지막 6일이 나를 바꿔 버렸다.
나는 단 6일을 위해 1년을 살았고, 삶을 끝내기 위해 6일을 불태웠다. 그 끄트머리에서 '20대의 나'는 죽고 30대의 내가 다시 살아났다. 이제부터 맞이하게 될 수많은 '오늘들'은 나에게 늘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내일'이란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천금 같은 오늘의 연속일 테니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키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