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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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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20대,거기에 사회생활 초년병이라면 일달은 취업을 했으니 성공을 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박수를 쳐주고 싶다. 대학을 나온 고인력들이 백수로 넘쳐나는 사회에서 행정직 말단이면 어떻고 전공을 살리지 못했으면 어떠하랴 일단은 낙타가 통과하기도 힘든 바늘구멍인 '청년실업' 을 면했으니 천만다행이다. 청년실업자가 넘쳐나는 슬픈현실에서 나 또한 그런 조카를 곁에서 지켜보며 맘이 아프다. 대학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자신의 꿈이며 평생 직장될 직업을 손안에 쥔듯 열심히 하던 녀석은 아직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해 일년이 지나고 다시 또 새로운 일년을 맞아 이젠 부모의 눈치를 보다가 내게 손을 내민다. 맘속에 담고 있는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서라든가 읽고 싶은 책이 있을때 내게 먼저 SOS를 보낸다. 그런 녀석이 딱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맘을 헤아릴듯 했다. 삼년동안 주위 눈치를 보지 않는다해도 부모님들 또한 속으로 무척이나 그녀가 취업을 하길,자신이 길을 찾아 나서길,그리고 안정적인 길을 찾길 고대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이 자신의 월급으로 당당히 부모의 도움을 거절하고 싶었을만큼 부모 또한 그러했을것이다. 그것이 모든 부모의 맘이기도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냉혹하여 전공을 무시하는것은 그렇다해도 취업의 길이 보다 넓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카 또한 자신의 길을 찾겠다고 미래의 청사진을 내게는 제시했지만 부모에게 알린다면 극구 말릴듯 하다며 '절대비밀보장' 을 요구했다. 

그녀가 청년실업에서 벗어난것은 행운일까? 우연한 아픔으로 인한 종양제거와 그 시간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취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준비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행운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처럼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런 말단직 행운조차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을 끼고 다니는 신방과를 나왔다고 전공을 살린 직장이 아니라고 해도 몇 미리의 줄긋기와 씨름을 한다고 해도 그 자체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것이 대단한데 그 나름의 고초를 유머너스하게 정리해 놓은 글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좌절금지 청춘' 처럼 그녀의 20대는 '위풍당당' 이다. 제목에 개가 들어가고 그녀가 사무실에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일까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라는 말이 절로 생각이 나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늘 빡빡한 업무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행복' 한 20대 청춘이 좌절하지 않고 위풍당당하여 읽는 동안 기분이 좋다. 승자독식사회에서 '경쟁'을 먼저 배우기는 했지만 약자인 '을' 에 대한 애환이 잘 그려져 있고 출판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을 '기혼' 이라 당당하게 밝힌 점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암튼 우리사회의 20대의 애환과 고달픔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기도 했지만 그녀 혼자만의 애환이 아닌 '우리사회'의 편린을 들여다 본듯 하여 맘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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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망, 너무 사양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마망 너무 사양해 -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꼬마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한마디
이화열이 쓰고 현비와 함께 그리다 / 궁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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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라는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그 속에는 가감 없는 부모의 모습이 있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자식에게 절대적 환경인 부모가 자신의 결점을 도마에 올려 칼질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솔직한 자신과 대면하는 과정이다. 자신 속에 숨어 있는 부모님의 모습과, 아이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이 모습과 화해하면서 반쪽짜리 어른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한다.' 흔히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그말을 달고 사는데 이 옮겨온 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잘하면 내탓 못하면 남편 탓을 하며 아이들을 평가하기도 하는데 은근히 속으로는 나의 잘못을 들키지 않기를 바랄때도 있다.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잊고 있던 나의 옛모습과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아이들 교육엔 정답이 없다.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에서 우린 선행학습과 만점에 길들여져 하나라도 틀린 성적표를 받아 오면 분함을 참지 못해 아이의 시간을 좀더 쥐어짜며 스트레스를 준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남는다면 아니 자신이 원하거나 사회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고 사회원이 된다면 성공했다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도록 칭찬을 하지만 하나라도 오류가 발견되면 인정을 하지 못한다. 그사람을 낙오자라고 취급하기 일쑤이다. 그런 각박한 교실안 공부나 교실밖 공부에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을것 못 먹어가며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지만 '청년실업' 에 백수가 넘쳐나는 사회이다. 그런 교육에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존재하기란 드문일이다. 원하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는것이 현실일수도 있다.

그런점에서 '현비' 는 무척 사고가 개방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라 웃음 지으며 읽었다. 한참 개구진 나이이기도 하지만 때가 묻지 않은 현비만의 '우문현답' 은 틀에 얽매인 내 생각을 뒤집어 줄때가 많았다. 아이의 생각이 어른을 넘어서 있는 것처럼 아이에게서 배울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를 IQ로 점수를 메기듯 하듯 어른들을 생각을 꼬집는 녀석의 한마디에 뒤집어지고 '틀리면서도 배운다' 라는 현실적이면서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 주는 '현비의 생각 꼬집기' 는 철학자다운 말처럼 생각의 틀을 깨버린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놀라면서 '엄마는 거짓말쟁이' 라는 말을 듣고는 하지만 어느새 아이는 세상의 때가 묻어 그런 말을 했던가라는 것조차 잊고 살아간다. 아이에게서 새삼 다시 발견하는 '창의성' '고정관념 깨기' 는 일상의 잘잘한 일들이 부모들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동물을 좋아하고 잘 기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한국형 또순이 엄마와 이론적인 파리지엥 아빠 사이에서 아이는 어느 편에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너무 잘 표현하는 것 같아 귀엽기만 하다. 그런 나날들을 기억해주는 엄마의 글들은 따스하다. 

'엄마, 내가 사무엘의 답안지를 베끼는 것도 아닌데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알겠어?' 현비의 우문현답에 난 밑줄을 그어가며 웃으며 한가지 배워나간다. 뒤돌아 보면 나 또한 '엄마의 틀' 에 아이들을 가두어가며 키운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는데 아이들의 창의력은 학교나 부모가 억지로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읽었다. 그런면에서 개방적인 교육이 맘에 들기는 했지만 그동안 길들여진 교육관이 하루아침에 바꾸기엔 우린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승부욕과 경쟁심만 부추기는 우리네 교육이 아닌 '학교가 좋아' 하는 현비를 개방적이게 만든 교육이 부럽기도 하고 알콩달콩 아이들과의 일상을 엄마의 시선으로 정리한것도 무척이나 부럽다. 아이들에게는 큰 재산이 될 '엄마의 창고' 에서 현비와 단비가 쑥쑥 자라나는 모습이 보기 좋게 그려진 행복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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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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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강동원 두 남자의 진한 감동 - 의형제 2010 

 

감독/ 장훈
출연/ 송강호(한규), 강동원(지원), 고창석...

두 사나이의 인간적인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장훈 감독 정말 대단한 감독이다. 그의 전작 <영화는 영화다>도 정말 괜찮은 영화로 잘 보았다. 두 남자의 극렬하게 대비되던 모습이 잘 그려졌었는데 이 영화 역시 두 남자를 소재로 하여 남과 북 그리고 현실적인것과 인간적인 면을 너무 잘 대비를 시킨 영화이다. 송강호, 그는 정말 대단한 배우이다. 그의 연기는 실생활처럼 어쩌면 그렇게 인간적인지. 구수한 말솜씨 하며 음식을 먹는 것,정말 현실적이다. 거기에 팬티를 입은 에로틱함까지 덤으로 보여주시는 센스. 그에 반해 강동원의 겉모습은 정말 차가움 그 자체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도 따듯하고 정이 있다. 송강호의 연기에 묻힐까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둘의 조합이 깨나 잘 맞아 떨어진 영화이다. 거기에 장훈 감독 영화에 꼭 끼는 '고창석' 정말 재밌는 배우이다. 

강동원(지원)은 남파된 간첩이지만 실패를 해서 버려진 상황이다. 북에 아내와 딸이 있어 자수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송강호는 그를 잡기 위해 작전을 펼치다 실패를 하여 국정원 자리에서 명퇴를 당하고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사람찾아 주는 일' 을 한다. 주로 베트남 여자들을 찾아 주는 일을 하던 그는 지원을 우연히 현장에서 마주친다. 자신은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생각을 하고 그에게 접근을 하지만 지원을 그를 알고 있다. 지원의 위에는 '그림자' 라는 주동인물이 있고 지원은 그에게 늘 보고를 한다. 그런 어느날 지원은 한규에게 일을 함께 하겠다며 찾아온다. 북에서 가족을 빼내려면 돈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하지만 현 국제정세는 혼란스럽다. 북한이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가족을 빼내는 일이 어렵게 된것이다. 그는 한규와 함께 일을 하면서 그의 너무도 현실적인 면에 반기를 든다. 좀더 인간적으로 사람들을 대해줄것을 말하며 그 속에 잠자고 있는 '따듯함' 을 끄집어 낸다. 

한규는 지원을 잡아 한몫 챙기려 하다가 그가 버려진 상황이고 북에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인간적'으로 끌린다. 슬슬 그에게 동화되듯 그가 하자는 대로 따라 가지만 둘은 늘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그들의 '위험한 동거' 또한 웃기면서도 지원의 좀더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과연 그들이 이념의 벽을 넘어 현실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일에 치여 가정도 잃고 보고 싶은 딸아이의 얼굴도 못 보고 살면서 따듯한 밥한끼 제대로 챙겨먹지 않던 한규, 그가 딸을 만나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지원은 북에서 아내와 딸을 무사히 빼내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은 처음엔 적과 같은 존재였지만 서로의 벽을 허물고 점점 <하나> 가 되어 <소통> 을 하고 <치유>를 한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던 존재에서 마음의 병을 씻어 주는 존재로 거듭나면서 진한 <의형제애>를 과시한다. 

영화의 엔딩이 따듯해서 좋은 영화이다. 남과 북을 다르는 영화라 다소 무겁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도 않고 가끔 웃음도 주고 어딘지 모르게 허방한 경찰들의 모습과 감초들의 톡 터지는 웃음과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베트남 여자들의 이야기까지 끼어 있어 영화는 '폭 넓은 조화,어우러짐' 등을 말하기도 한다. 강동원의 차가운 '눈빛' 연기도 좋았지만 배우 송강호에게 더 주목하게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는 송강호를 위한 영화같다. <놈,놈,놈> 에서 익살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면서도 재주덩어리로 비추이던 모습은 이 영화로 좀더 진한 <인간적인면>을 보여주어 그의 연기는 정말 농익었다 할 수 있다. 살짝 엉덩이의 깊은 라인을 보여주시는 센스까지 발휘하면서 어벙하면서도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의 잘 빚어진 도자기 같은 연기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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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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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백 살까지는 시간이 있지. 소설도 주제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이야.' 
마치 소년처럼 보이는 사람이,곧바로 노인의 목소리로 말했다. "What! are you here?". 화자와 히카리가 산책길에 우연처럼 만난 친구 고모리 다모쓰, 그들은 친구이지만 가깝지 않았던 사이이다. 그런 그가 30년 전 갑자기 사쿠라 라는 여배우를 데리고 와서는 그녀를 위한 '시나리오'를 써줄것을 부탁한다. 도쿄 공습때 전쟁 고아였던 그녀를 폐허 속에서 자신들의 죄과를 치르는 단 한 사람의 미국인에 의해 영화배우가 되고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어린시절 찍은 <애너벨 리> 에 대한 마지막 부분이 그녀를 오랜동안 붙잡으며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사쿠라는 그녀가 찍은 <애너벨 리> 라는 작품때문에 고통에 시달리지만 그녀를 주인공으로 찍으려던 영화가 무산되면서 화자인 작가는 글 쓰기를 하지 않는다.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 이라며 그나름 고통의 나날을 보낸 것이다. 그런 그에게 30여년이 흐른후에 그 우여한 만남이 있었던 지난날처럼 고모리를 다시 길에서 만난다. 그는 30여년전에 시도하다 그만둔 작품을 다시 하자며 사쿠라가 지난날 그 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통으로 보냈으며 시간이 흐른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녀의 심한 우울증이 치유되어 다시금 영화에 도전하게 된 사실을 말해준다. 그 또한 전립선 암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재발을 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사쿠라라는 여배우가 하려는 배역은 화자인 작가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여 이 작품은 작품속에 또 다른 작품이 등장하는 격이다.

작품은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와 함께 한다. 포의 작품과 사쿠라가 연기한 <애너벨 리>는 작가에게도 사쿠라에게도 인생을 흔드는 작품이다. '흔들리는 것은 꽃이 아니라 사람이다' 라는 말처럼 사쿠라는 그 작품에서 무언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작가의 어머니나 할머니는 가부키로 전후의 어려운 시기를 살아온 여인들이기도 하다. 사쿠라가 기억하지 못하던 부분들을 고모리가 찾아 내어 무삭제판을 상영해줌으로 그녀가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받아 들이고 아픔을 치유해 더 강한 힘으로 다져저 '메이스케' 역을 당차게 소화를 해 내고 그녀의 노래 소리를 듣고 작가는 치유를 받는다.

이 작품은 50년 동안 소설 쓰기만 한 작가가 '문학에 대한 오마주' 이기도 하단다.그래서일까 등장하는 작품들과 작가들이 많다. 그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내가 알지 못하는 작품들과 작가들이 나오고 이야기의 앞부분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난감했다. 반정도 읽어 나가니 '아하' 하면서 내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오기를 갖고 읽어 내려갔다. 왜, 애너벨 리가 싸늘하게 죽었을까? 포의 시를 영화한 작품에서 그녀는 죽은 연기를 했고 그녀 자신 과거로 인해 죽은 인생처럼 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그녀가 원하던 작품을 다시 하는 치유의 소설이기도 하고 작가인 화자 또한 그녀로 인해 두번이나 치유의 도움을 받는다. 소설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사쿠라' 라는 배우가 '애너벨 리' 영화를 찍을때 마지막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여 인생을 허비하는 부분은 얼마전에 읽은 권지예 작가의 '4월의 물고기' 에서 서인이 몽유병이 걸려 남자를 만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모르는 부분과 닮아 있다. 그녀가 자신의 아픔을 보고 듣고 이겨내지 못했다면 이 소설은 어찌 되었을까. 사쿠라나 화자 또한 삼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지난날을 이겨내고 그 아픔까지 받아 들일 수 있는 '그릇' 이 되기도 하여 <희망> 적인 소설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의 답처럼 'Are you here?', 지금 여기가 아닌 '아직 여기' 라고 말해주는 소설이다.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 '히카리' 때문에 그의 작품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데 이 작품에도 그의 아들 이름이 등장을 하니 그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듯도 하고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 읽은 것이 없어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 힘들었기에 이 기회에 그를 주목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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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1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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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우리 문단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작가 이문열에 의해 재탄생한 <불멸>,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음'  이란 뜻을 지닌 '불멸' 이란 그가 서른해의 삶을 살았지만 지금까지 우리들 가슴에 살아 숨쉬는 듯 '불멸'의 생을 살고 있어 더 읽고 싶었던 책이다. 작가의 책인 <시인>을 얼마전에 읽었는데 그동안 다루어진 김삿갓 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다룬듯 하여 약간은 지루할 수 있었지만 재밌게 읽었었다. 이 작품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어쩌면 너무도 잘 안다고 하여 잘 모를듯한 '인간 안중근'을 다루고 있어 두권이라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양이 다소 무겁게 느껴지지 않나 싶은 생각도 가져보았다.

하지만 읽다 보니 작가가 인간 중근에게 다가가는 것이 급하지 않고 서서히 다가서면서 거대하게 비추어졌던 그 보다는 그도 한사람의 아들이며 가장이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국민이었음을 잘 다루었지 않았나 싶다. 좀더 세세하게 다루기 위해 자료들을 나열해 놓아 픽션보다는 논픽션에 가까운 면은 있다. 1권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중근보다는 그의 아버지 '안태훈'이란 인물을 다루면서 서서히 중근에게 옮겨 온다. 해주에서 살던 그들이 청계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는 글을 하는 선비보다는 상무정신에 더 치중을 한다. 맏아들이었음에도 아버지는 그런 그를 말리지 않는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단발령,아관파천등 소란스런 세상사와 맞물려 급변하는 외세에 급물살을 타기도 하는 그들, 아버지는 천주교의 힘을 빌기도 하면서 난관을 헤쳐나가며 가족들에게도 세례를 받기를 권한다. 맏형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례를 받지 않고 중근을 비롯하여 모두가 세례를 받기도 하고 지방 토호세력이었던 아버지에겐 '천주교' 는 다른 세상을 열어 주었다.

'꽃 한 송이에 목숨을 건 게 부끄러워 그리 말했으나 중근이 목숨까지 돌아보지 않고 다가가려 했던 것은 한 송이 꽃이 아니라 그것으로 표상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일로 중근이 드러내 보인 것은 경박이나 성급이 아니라,지고한 가치를 향한 자기투척의 용의였으며, 죽음조차 잊게 하는 아름다움에의 탐닉과 몰입이었다.'  한참 팔팔한 나이인 혈기 왕성할때 그가 만난 나라 안팍의 급변화는 물결은 그에겐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연어처럼 '자신만의 힘' 이 되어준것 같다.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던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을 책임져야만 하는 가장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업에 뛰어 들었다 망하기는 했지만 그가 펼친 교육사업등은 어쩌면 '아버지의 터전' 에서 갈고 닦은 밑바탕이었을지 모른다. 

청계동과 중근은 천주교가 열어 둔 길을 따라 근대사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조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단발령의 시행으로 상투를 자르고 양인들의 것이라 여기던 '천주교' 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지역민들을 교인으로 만드는데 발벗고 나서듯 했던 그들, 예배당을 짓고 그들의 말을 배우기도 했지만 하다가 입에 맞지 않으면 그들이 거꾸로 우리말을 배울것이라 믿었던 그, '한때 사람들은 대한제국을 이름만의 제국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그 눈물겨운 실체를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명을 앞둔 5백년 조선왕종의 마지막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 몸부림에 함께 요동치며 변하는 세상과 더불어 청계동과 안태훈 일가도 가늠되지 않는 시대로 떠밀려 나아갔다.' 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대의 급물살.조선왕조의 멸망과 함께 아버지 안태훈의 죽음은 그에겐 큰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싶다.

'아무래도 시절이 심상치 않다. 더는 청계동에 숨어 일문을 온전히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게 되었다. 세월과 함께 변화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아버지 안태훈은 숨어서 급물살을 탔다면 그는 세상과 맞서서 싸우며 변화에 적응해 가려 했던 인물같다. 을사늑약과 함께 나라를 구하는 길처럼 그에게 각인된 '이등방문' 은 그가 해결해야 할 당연시 받아 들여진 숙제였음을 말해준다. '적이 달라지면 싸우는 방식도 달려져야 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이제 더 이상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어찌보면 작가 이문열은 너무 사실적이고 세세하게 인물을 표현하려고 하여 지루함을 줄 수 있다. 역사소설이면서 재미를 더해주는 책들도 많은데 그는 재미보다는 <진실과 인간적인 면>에 더 촛점을 맞추어 그가 다루는 인물과 지금의 내가 동시대를 살고 있는것처럼 느끼게 한다. 너무 거대해서 '인간 안중근' 보다는 그의 후광에 더 열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이 책은 인간 안중근을 만나는 것 같아 좋았다. 안중근을 통해 그의 아버지 안태훈과 그리고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것 같아 관심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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