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여름더위를 쫒을 공포영화 

국지성 호우가 내리고 요즘 늦더위가 주춤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덥다는 말이 익숙하다. 그 마지막 공포를 담당할 영화가 개봉했다, <피라냐>. 아직 보지 않았지만 예고편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돋으며 꼭 봐야할것만 같은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이다.주말에 시간이 나면 아마도 <피라냐>를 보러 극정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한다. 바다와 바닷속 생명으로 인한 공포에 관한 영화를 모아볼까 한다.

 

 이런 영화는 보고 나면 한동안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게 된다. 왜 안그렇겠는가. 어떤 알 수 없는 존재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식인고기' 라면 내 생명을 단보로 바닷물에 들어가 유희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더위도 막바지인듯 하다. 이런 공포영화 한 편 보아 준다면 더위도 쏙 들어갈 것이다.  

 

 

 

 

 예전에 여름공포영화 하면 <조스> 였는데, 아마도 여름공포영화 고전쯤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도 이젠 뒤로 많이 밀려 나갔다.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고 관객들은 더욱 무서운것을 원하기도 하고 왠만한 것으로는 '공포' 를 떨쳐버릴 수 없는 경지에 온 듯 나오는 영화마다 '더 더 더' 라고 왜치고 있는 듯 하다. 여름밤 영화관이 아닌 티비에서 '조스' 한편이라면 밤이 무서웠다. 이젠 그 말도 먼 추억이 되고 만 것일까 

 

 

 

 

 <노인과 바다>, 조스의 할아버지격 영화라고 할까. 영화보다 원작소설로 더 가깝지만 영화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영화속 커다란 고기는 상어가 아닌 '청세치' 하지만 그 또한 무시무시하다. 노인과 거대한 고기와의 싸움에서 마지막 남은 앙상한 고기의 뼈... 참 좋았던 영화인데 요즘은 이런 사실감보다는 컴퓨터의 그래픽으로 그려져 무서움이 거대하게 그려질뿐 그 여운이 오래남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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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28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라냐...저거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제일 처음 만든 영화인데...그영화 맞는지 궁금합니다. 제임스 카메룬이 시나리오 작가 시절 자기가 직접 쓰고 감독한 작품인데, 망해서 이후 투자자를 구하기 매우 힘들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혹시 그 영화의 리메이크 버전인지 몹시 궁금한 1인 입니다..ㅎㅎ
 
폴 아당의 리우데자네이루 작가가 사랑한 도시 8
폴 아당 지음, 이승신 옮김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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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작가들의 여행기를 읽는 다는 것은 기쁨이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작가 폴 아당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처음 발을 디디면서부터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풍경 그리고 포로투갈의 식민지에 오래도록 있던 그곳의 문화가 프랑스의 작가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자신이 바라보는 리우의 모든것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기록하려 했던 조금은 여행에 들뜬 듯 하면서 처음 보았던 황홀한 풍경에 압도되어 그 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아름다우면서도 유럽문화와 인디오문화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활기차면서도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 낸 그곳을 실감나게 그려낸 짧은 서정적 여행서이다.

이 책은 <그린비> 출판사 이벤트로 받은 것인데 지금은 여행이 보편적이 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편하게 여행을 즐기지만 백여년전에는 교통도 그리 발달하지 못하고 문화가 다른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심이 있어야 할 듯 하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에 머무르게 된 것도 '탐험' 이고 자국이 이익을 위하여지 원주민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그들을 위해서인 여행은 아니었기에 이 여행기에도 조금은 우월적인 것이 들어 있다.

밤에는 가로등으로 빛나고, 낮에는 태양빛으로 반짝거리는,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보석을 연상시키는 브라질의 옛 수도 리우데자네이루. 태양빛으로도 아름다운 그곳이 해안을 따라 설치된 가로등마다 밝은 빛을 발하고 있으니 얼마나 그 풍경이 아름다웠을까.지금이라면 사진으로 간단하게 담아 내어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련만 글로 모든것을 담아 표현하려고 하니 조금은 숨차게 읽어나가야 할 정도로 빡빡하기도 하지만 재밌다. 걸어가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것들을 숨차게 전해주는 리포터의 모습처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세탁부의 표정이나 인디오들의 모습까지 담아내는 글이 흡사 무성영화를 보고 전해주는 변사의 말같기도 하지만 좀더 리우데자네이루의 아름다움을 담으려 했던 작가의 진실이 보여 글이 마치 사진인양 읽었다.

'유리제품 제조 공장을 가지고 있어서 샤르모 감독 같은 사람들이 작업을 지시하고 있으며 캄피나스 근처 농업연구소는 커피농장 소유주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고, 또 상파울루에서는 종마사육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유럽문화가 정착하여 그곳에서 또 다른 문화를 싹틔워 놓았으니 그 자부심은 대단했을 것이다. 신세계를 보듯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자부심과 함께 프랑스에서는 저렴하게 손쉽게 먹고 하던 일들이 이곳으로 전해지면서 무척이나 값이 비싸지고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여행자 모두가 느끼는 현지에서 부딫히는 물가이고 일들일 것이다. 아름다운 인디오 여인들을 보면서 그녀들의 강인함에 반한듯이 세세하게 표현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들이 그가 리우에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자연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느꼈음을 그리고 이 모든것들이 브라질이 희망적이라는 것을 전해주는 서정적인 짧은 여행기에서 예나 지금이나 여행이란 설레임이면서 희망이란 것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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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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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사랑에도 답은 없는 듯 하다. 그 사랑이 또한 어떤 사랑이듯 기쁨도 있지만 아픔과 영원한 상처가 되는 사랑도 있다. 전작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 로 깊게 각인된 작가는 <더 리더> 와는 또 다른 여섯가지의 사랑을 쏟아냈다. '더 리더' 는 무랄까 충격이면서도 아쉽고 안타까움이 많이 남았던 그런 사랑이었다. 짧은 사랑이지만 인생을 흔들어 놓았던 사랑이고 인생을 변하게 했던 사랑이었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 또한 '사랑의 상채기' 같은 인상을 남겨준다.

소녀와 도마뱀, 소년이 낮잠을 자곤 하던 아버지의 서재에 걸려 있던 '의미' 를 모르겠던 그림 한 점.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나 그외 모든것은 밖으로 세어 나가면 안된다. 왜 일까? 하지만 소년은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그 그림에 대한 사랑이 점점 커져만 간다. 아버자가 돌아 가신 후, 그림의 비밀을 캐기 시작하여 그동안 비밀에 쌓여 있던 열쇠를 풀 듯 하지만 아버지가 그 그림을 어떻게 소장하게 되었는지 누가 진짜 소유주였는지 그가 세상에 내놓으면 '진실' 이 밝혀질듯 하여 그는 세상에 단 한 점 밖에 없는 그 그림을 감정하기 보다는 자신안에서 불태우고 만다. 하지만 그 그림이 가지고 있던 진짜 진실은 불타면서 아주 짧은 순간에 만질 수도 없는 '재' 와 같은 상태에서 짧게 보여지다 사라진다. 진짜 그림위에 덧칠한 가짜 그림. 그림을 불태우고 자신안에 있던 그림속 소녀가, 아니 여인이 사라지고 나서 비로소 자유를 얻는 그, 소설의 배경이 50년대에서 60년대 경이라 그런지 유대인과 관련된 소설이라 '더 리더' 와 겹쳐 생각해 볼 만 하다.

외도, 내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외도라고 혹은 불륜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은 독일이 통일되고 서독과 동독이 하나로 되어 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오해와 어긋남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겉으론 자유를 부르짖는 남편이 아내와 친구들의 정보를 비밀경찰에 팔아 넘기고 그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면서 부부는 갈등을 겪게 된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념이 다르고 소통의 방법이 달라 싸움과 서로에게 등을 돌리지만 어린 딸은 세대가 달라서일까 어른들이 어렵게 여기는 이념도 필요없이 모두를 하나로 '소통' 하게 한다. 생일초대에 어린이 친구나 그외 어른 친구를 초대하면서 어른들이 이루지 못한 소통을 원할하게 단한번에 해치우는 꼬마소녀, 어른들이 만들어 놓았던 이념의 잣대처럼 걸쳐 있던 장벽도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벽이 될 수 없다는 것. 모든것은 손바닥 안과 겉처럼 생각하기 나름인데 그 백지한장 차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우린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세월이 지나면 그 모든것들은 스르르 흐려지고 말 문제이겠지만 구시대의 골수에 박혀 있던 이념을 단번에 바꾸기엔 어려울 것이다. 그런면에서 만약에 우리가 통일이 된다면 우리에겐 어떤 문제가 나타나게 될까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다른 남자, 아내가 갑자기 암으로 죽었다. 그런 아내에게 들어보지도 못하고 전혀 알지도 못하던 '숨겨 놓은 남자' 가 있다면 혼자 남겨진 남편은 혹은 아내라면 어떻까? 아내가 죽은지 모르고 예전의 주소지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남자, 그녀가 암으로 죽었다고 편지를 썼지만 믿지 않고 답장을 주어서 너무 고맙다며 자꾸만 편지를 보내오는 남자를 찾아 나서는 남편. 대체 그녀에게 언제부터 '다른 남자' 가 존재했던 것일까? 아내의 비밀서랍을 열어 오래전 편지와 사진을 보고는 '다른 남자' 의 정체를 확인한 후 그를 찾아가 우연인듯 그를 캐는 남편, 하지만 아내의 '다른 남자' 는 허풍쟁이에 별 볼일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아내를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용서할까 말까? 그는 아내가 죽은지도 모르고 그녀를 자신이 베풀수 있는 범위에서 잔치를 벌이기 위해 '초대' 를 한다. 그 경비마져 남편에게 꾸는 남자, 언제 자신이 그녀의 남편이란 것을 밝혀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복수를 했다고 하고 한발 물러서려던 남자는 경비를 꾸어주고 자신의 존재를 밝힌 후 집에 돌아오지만 그의 잔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여 다시 다른 남자의 잔치날에 찾아가 현장을 보게 된다. 다른 남자는 그만의 방식으로 아내를 추모하고 그녀를 마지막 축제처럼 보내고 있었던 것. 사랑의 복수라 했지만 그 또한 죽은 아내에게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길이 되었던 '다른 남자의 초대' , 이런 사랑을 알게 된다면 정말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을 해보니 답이 없다. 어떻게든 복수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있겠지만 죽은 아내에게도 무언가 '진실' 이 있었을 듯 하다.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결혼생활중에 이야기를 했다면 그들의 사랑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었을까. 그 또한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아내의 상' 을 반듯하게 담을 수 있었을까. 진실을 밝히는 것이 좋은 것도 있지만 비밀로 간직해서 얻는 것이 더 많다면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아내의 선택은 가정을 지키고 남편과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비밀이나 남편이 비밀경찰에게 아내와 친구들의 정보를 팔아 넘기는 것이며 아내가 죽은 후에 밝혀지는 '아내의 진실' 이 밝혀지게 되는 사랑이나 그외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사랑은 하는 것보다 사랑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버지의 진실을 지켜내기 위하여 청년은 그림을 불태우고 아내의 불륜을 어쩌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남편, 그들은 그 후에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만 살고 있다. 아내가 죽었지만 죽으면서까지 말하지 않았던 과거 속 사랑, 그것을 비밀에 부치며 끝까지 지켜낸 가정과 사랑, 슐링크는 '더 리더' 에서도 한나가 자신의 문맹을 평생을 함구하고 사랑을 지켰듯이 사랑을 하거나 사랑의 그 모든 단계보다는 '지키는 것' 에 더 중점을 둔다. 그래서 그가 더 기억에 남을까. 쉽게 포기하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랑이 그에게 오면 말뚝에 박히듯 그 자리에서 단단해진다. 외도나 불륜을 했어도 현재의 사랑을 잘 감싸주고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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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느껴지는 목백일홍과 열매들











아파트 화단에서 만난 목백일홍








맥문동...뿌리를 잘 말려 물을 끓여 마시면 구수하고 좋죠.


산수유 열매








대추가 벌써 이렇게 컸어요


아파트 오솔길







아파트 앞에 있는 은행에 잠깐 나가는 길,
어제 언니가 암에 좋고 신장에도 좋다는 <비단초>를 알려 주었기에
아파트 화단에서도 많이 본 듯 하여 디카를 들고 나갔다.

바로 앞에 있는 은행에 가는 길,
가로수 밑을 보니 우우~~ '비단초' 가 많다. 
아파트 담장에도 조금 있고..
횡재를 맞은것 같아 은행에 들러 오는 길에 뜯어야지 하면서
언니에게 확인을 할까 하다가 
은행 볼 일을 마치고 '나의 디카놀이' 와 함께 비단초를 뜯었다.

아파트 화단엔 목백일홍나무에서 색색의 꽃이 피고 지고
8월엔 상사화와 목백일홍을 보아야 제맛인데
아파트 화단보다는 절에서 만나는 목백일홍이 더 운치있고 멋진데 
그 기회를 올 해는 갖지 못하는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아파트 화단에서 만나는 것이 어디인가.

비단초를 찾아 아파트 화단을 한바퀴 도는데 
가로수 밑에서도 비단초를 뜯었지만 아파트 화단에서 
쪼그리고 앉아 비단초를 뜯다보니 지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래도 내게 좋고 혹시 많이 뜯는다면 시골에서 드리려 열심 열심...

아파트 화단에 가을이 느껴질 만큼 열매들이 영글어 가고 있다.
노란 산수유는 봄엔 이쁜 꽃으로 가을엔 열매를 맺고 있고
애기사과나무에도 능금이 주렁주렁
대추나무에도 일년에 세번 꽃이 피어서인지 대추가 주렁주렁,
하지만 대추나무는 익기도 전에 늘 아파트 개구장이들에게 
모두 적선을 하고 만다. 녀석들이 긴 장대를 들고 대추나무를 털기 때문이다.
아직 대추가 익지 않아서일까 많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푸른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오늘 아파트 화단의 수목에 약을 준다고 했는데 
이곳 중부지방은 비가 많이 내려 취소되었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한바퀴 아파트를 돈 것만으로 만족한 가을느낌...
그리고 더 좋은 것이 내 손안에...


20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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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2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삭아삭한 대추~ 아직 더 커야겠죠^^
저 보라색 삐죽삐죽 올라오는 아이들이 맥문동이군요^^ 엊그제 봤는데 이름도 몰랐네요~

서란 2010-08-27 15:43   좋아요 0 | URL
좀더 있어야 제맛이 들텐데 그래도 보는 즐거움이 있네요. 가을도 느끼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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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머물면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강 이편으로 건네주었지만 너보다 더 무거운 사람을 실어나른 적이 없구나.’....’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전작 <엄마를 부탁해> 는 독자들에게 ’엄마’ 라는 추억과 되새김질에 마음 아프게 하였는데 이 작품은 지난 사랑의 순간을 되돌아 보게 하듯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의 터널을 건넌 느낌이랄까, 정 윤과 명서의 눈물겨운 사랑이 참으로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엄마’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병이 깊으다는,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이유로 사촌언니의 집에서 떨어져 지내야 했던 그녀에겐 엄마의 죽음과 이별이 아직 미완의 그것으로 자리를 하여 언제고 아프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아픈 명서와 함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미루’ 의 상실의 병은 윤보다 더 깊고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거리라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그녀의 엄마가 좀더 따듯하게 감싸안아 주었다면,큰딸의 죽음을 동생인 미루탓이 아닌 그녀의 선택이었다고 했다면 엄마가 좀더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 미루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이 소설을 읽다보니 김형경의 <좋은 이별> 이 생각났다. 윤도 그렇고 윤교수도 그렇고 미루도 그렇고 모두가 ’좋은 이별’ 을 한 후라면 이 소설은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다.좀더 밝고 어쩌면 제2의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좋은 이별’ 을 강조했던 그녀의 말들이 떠 올랐다. 이별후의 상실감, 깊은 협곡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던 미루, 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겨 거식증을 앓았던 그녀가 선택한 마지막 길, 그 길을 막을수만 있었다면 소설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언니가 죽음에 이르게 되던 그 순간들을 윤에게 이야기 하는 동안 그 공간을 가르듯 계속 울려 되던 ’전화벨’ , 누군가 받았다면 미루언니의 죽음은 모든 전말이 밝혀졌을까, 미루의 숨겨진 아픔과 손등의 화상은 밝혀졌을까. 상실감을 간직한 사람들이 그리는 동선과 감정이 작가가 ’새벽 세시에 깨어나 아침 아홉시까지’ 글을 썼다고 해서일까 잘 그려졌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 들이지 못했던 윤은 미루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손등에 나 있는 화상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 자신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씻어 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상처와 함께 미루의 아픔도 함께 안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간직하게 된 윤. 그래서였을까 명서의 사랑을 받아 들이기에 몹시도 망설였던 그녀가 ’오.늘.을.잊.지.말.자..... 내.가.그.쪽.으.로.갈.께...’ 라는 말로 ’언.젠.가.는.정.윤.과.함.께.늙.고.싶.다..’ 라는 말에 회답하듯 써 넣을때 비로소 갑옷처럼 자신의 옭아맨 동아줄을 스스로 풀게 되었을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좀더 일찍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 들였다면 사랑과 슬픔과 상실감에 가슴아파하지 않았을텐데, 그들의 사랑은 윤교수와 함께 뒷산에 올라 눈 덮힌 노송의 가지를 흔들듯 모든 눈 들이 스스로 녹아 없어진 후에 서로를 발견하듯 비로소 '그들 자신' 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긴 터널을 지나는 과정이듯 암흑의 시간들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날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을 기록하는 미루, 그 하나하나가 그녀에겐 생명의 연장을 위한 링거줄처럼 그녀를 연결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아픔 때문에 그녀의 아픔을 감싸기엔 조금 시간이 더 필요했는데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일찍 자신의 생명줄을 놓아 버린 미루, 그녀를 잃고 나서 그녀의 엄마도 윤도 명서도 원래 자신의 자리를 찾듯 길을 찾아 가야만 하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의 삶이 애처로웠다.

'우.리.는.언.제.나.괜.찮.아.질.까?' 그들이 괜찮아질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그 자리에 없었던 내가 이 지경인데 불타고 있는 미래 누나를 눈앞에서 봤던 미루는 어떠할지. 미래 누나는 미루의 삶 속에서 늘 불타고 있을 것이다.' 라고 했던 명서의 말처럼 그들이 상실의 아픔을 늘 간직하고 있어 '어.나.벨.' 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다. 서로의 터널에서 헤매이던 명서와 윤, 마지막까지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윤이 그를 찾아 나서려했기에 소설은 그나마 희망을 가지며 손에서 놓여지게 되었다. <엄마를 부탁해> 도 잃어버린 엄마가 어찌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더니만 작가의 날카로움이 지난 사랑에,사랑의 시간 가슴 아팠던 순간에 잠시 숨을 고르게 만드는 미묘함이 소설속에 잠재되어 있는 듯 그들의 사랑속에서 유영을 하고 나온 후엔 미루가 옆에 있다면 화상의 상처가 있는 손을 한번 꼭 잡아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 소설을 읽은 후엔 '전화벨' 이 예사로 들리지 않을것 같다. 누군가의 '간절함' 이 베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애타게 찾고 부르고 있을 것 같아 빨리 받아야만 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주인공들을 '토닥토닥' 토닥여 주는 작가만의 손짓이 소설속에서는 여기저기 녹아나 있다.명서는 미루의 방앞에 '백합' 을 심어주고 윤교수는 뜰에 '애기사과' 를 심었으며 명서와 윤에게는 아픔을 툴툴 털어내면 털어져나갈것처럼 노송의 눈을 털게 만들었다. 윤을 사랑했던 단의 짧은 삶을 안듯 '거대거미' 의 자국을 마음에 들여 놓은 윤,서로의 아픔을 감싸기도 했지만 그들의 아픔을 그냥 바라보지 않고 토닥여 잠재우듯 했던 작가, '내.가.그.쪽.으.로.갈.까?... 내.가.그.쪽.으.로. 갈.께..' 윤과 명서의 사랑이 이어지고 소설이 끝났지만 작가는 아직 펜을 놓치 못했다고 했다. 그들의 사랑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랑의 아픔을 겪은 이는 다시 사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운다. 윤의 엄마나 단의 짦은 삶과 미루의 언니의 죽음과 미루의 죽음 그리고 윤교수의 죽음에 윤과 명서는 그들의 사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 나가며 아픔을 이겨 낼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긴 터널을 지나왔을뿐 그들에게도 환한 희망이 이제 손짓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 이후로 '어.나.벨' 신드롬을 몰고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이번 소설은 다시 후편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펼쳐질까.작가의 <사인본>을 예약구매를 하여 받고 나니 그녀의 손글씨 한 자 한 자가 윤교수의 마지막 남긴 말들처럼 가슴에 박힌다.'나의 크리스토프들,함께해주어 고마웠네.슬퍼하지 말게,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하늘을 올려다보게.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대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바꾸어 말하면 이외수의 '아불류 시불류' 가 될까. 상실도 죽음도 사랑도 모든것은 인생의 한부분일 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것은 빛이 흐려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흐려짐 가운데 또렷한 '별 하나' 를 그들은 간직했고 소설을 함께 한 나 또한 간직하게 되었으니 여운은 길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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