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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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머물면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강 이편으로 건네주었지만 너보다 더 무거운 사람을 실어나른 적이 없구나.’....’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전작 <엄마를 부탁해> 는 독자들에게 ’엄마’ 라는 추억과 되새김질에 마음 아프게 하였는데 이 작품은 지난 사랑의 순간을 되돌아 보게 하듯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의 터널을 건넌 느낌이랄까, 정 윤과 명서의 눈물겨운 사랑이 참으로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엄마’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병이 깊으다는,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이유로 사촌언니의 집에서 떨어져 지내야 했던 그녀에겐 엄마의 죽음과 이별이 아직 미완의 그것으로 자리를 하여 언제고 아프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아픈 명서와 함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미루’ 의 상실의 병은 윤보다 더 깊고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거리라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그녀의 엄마가 좀더 따듯하게 감싸안아 주었다면,큰딸의 죽음을 동생인 미루탓이 아닌 그녀의 선택이었다고 했다면 엄마가 좀더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 미루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이 소설을 읽다보니 김형경의 <좋은 이별> 이 생각났다. 윤도 그렇고 윤교수도 그렇고 미루도 그렇고 모두가 ’좋은 이별’ 을 한 후라면 이 소설은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다.좀더 밝고 어쩌면 제2의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좋은 이별’ 을 강조했던 그녀의 말들이 떠 올랐다. 이별후의 상실감, 깊은 협곡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던 미루, 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겨 거식증을 앓았던 그녀가 선택한 마지막 길, 그 길을 막을수만 있었다면 소설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언니가 죽음에 이르게 되던 그 순간들을 윤에게 이야기 하는 동안 그 공간을 가르듯 계속 울려 되던 ’전화벨’ , 누군가 받았다면 미루언니의 죽음은 모든 전말이 밝혀졌을까, 미루의 숨겨진 아픔과 손등의 화상은 밝혀졌을까. 상실감을 간직한 사람들이 그리는 동선과 감정이 작가가 ’새벽 세시에 깨어나 아침 아홉시까지’ 글을 썼다고 해서일까 잘 그려졌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 들이지 못했던 윤은 미루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손등에 나 있는 화상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 자신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씻어 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상처와 함께 미루의 아픔도 함께 안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간직하게 된 윤. 그래서였을까 명서의 사랑을 받아 들이기에 몹시도 망설였던 그녀가 ’오.늘.을.잊.지.말.자..... 내.가.그.쪽.으.로.갈.께...’ 라는 말로 ’언.젠.가.는.정.윤.과.함.께.늙.고.싶.다..’ 라는 말에 회답하듯 써 넣을때 비로소 갑옷처럼 자신의 옭아맨 동아줄을 스스로 풀게 되었을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좀더 일찍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 들였다면 사랑과 슬픔과 상실감에 가슴아파하지 않았을텐데, 그들의 사랑은 윤교수와 함께 뒷산에 올라 눈 덮힌 노송의 가지를 흔들듯 모든 눈 들이 스스로 녹아 없어진 후에 서로를 발견하듯 비로소 '그들 자신' 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긴 터널을 지나는 과정이듯 암흑의 시간들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날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을 기록하는 미루, 그 하나하나가 그녀에겐 생명의 연장을 위한 링거줄처럼 그녀를 연결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아픔 때문에 그녀의 아픔을 감싸기엔 조금 시간이 더 필요했는데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일찍 자신의 생명줄을 놓아 버린 미루, 그녀를 잃고 나서 그녀의 엄마도 윤도 명서도 원래 자신의 자리를 찾듯 길을 찾아 가야만 하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의 삶이 애처로웠다.

'우.리.는.언.제.나.괜.찮.아.질.까?' 그들이 괜찮아질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그 자리에 없었던 내가 이 지경인데 불타고 있는 미래 누나를 눈앞에서 봤던 미루는 어떠할지. 미래 누나는 미루의 삶 속에서 늘 불타고 있을 것이다.' 라고 했던 명서의 말처럼 그들이 상실의 아픔을 늘 간직하고 있어 '어.나.벨.' 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다. 서로의 터널에서 헤매이던 명서와 윤, 마지막까지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윤이 그를 찾아 나서려했기에 소설은 그나마 희망을 가지며 손에서 놓여지게 되었다. <엄마를 부탁해> 도 잃어버린 엄마가 어찌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더니만 작가의 날카로움이 지난 사랑에,사랑의 시간 가슴 아팠던 순간에 잠시 숨을 고르게 만드는 미묘함이 소설속에 잠재되어 있는 듯 그들의 사랑속에서 유영을 하고 나온 후엔 미루가 옆에 있다면 화상의 상처가 있는 손을 한번 꼭 잡아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 소설을 읽은 후엔 '전화벨' 이 예사로 들리지 않을것 같다. 누군가의 '간절함' 이 베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애타게 찾고 부르고 있을 것 같아 빨리 받아야만 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주인공들을 '토닥토닥' 토닥여 주는 작가만의 손짓이 소설속에서는 여기저기 녹아나 있다.명서는 미루의 방앞에 '백합' 을 심어주고 윤교수는 뜰에 '애기사과' 를 심었으며 명서와 윤에게는 아픔을 툴툴 털어내면 털어져나갈것처럼 노송의 눈을 털게 만들었다. 윤을 사랑했던 단의 짧은 삶을 안듯 '거대거미' 의 자국을 마음에 들여 놓은 윤,서로의 아픔을 감싸기도 했지만 그들의 아픔을 그냥 바라보지 않고 토닥여 잠재우듯 했던 작가, '내.가.그.쪽.으.로.갈.까?... 내.가.그.쪽.으.로. 갈.께..' 윤과 명서의 사랑이 이어지고 소설이 끝났지만 작가는 아직 펜을 놓치 못했다고 했다. 그들의 사랑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랑의 아픔을 겪은 이는 다시 사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운다. 윤의 엄마나 단의 짦은 삶과 미루의 언니의 죽음과 미루의 죽음 그리고 윤교수의 죽음에 윤과 명서는 그들의 사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 나가며 아픔을 이겨 낼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긴 터널을 지나왔을뿐 그들에게도 환한 희망이 이제 손짓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 이후로 '어.나.벨' 신드롬을 몰고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이번 소설은 다시 후편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펼쳐질까.작가의 <사인본>을 예약구매를 하여 받고 나니 그녀의 손글씨 한 자 한 자가 윤교수의 마지막 남긴 말들처럼 가슴에 박힌다.'나의 크리스토프들,함께해주어 고마웠네.슬퍼하지 말게,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하늘을 올려다보게.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대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바꾸어 말하면 이외수의 '아불류 시불류' 가 될까. 상실도 죽음도 사랑도 모든것은 인생의 한부분일 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것은 빛이 흐려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흐려짐 가운데 또렷한 '별 하나' 를 그들은 간직했고 소설을 함께 한 나 또한 간직하게 되었으니 여운은 길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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