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저 가는 거야, 또 가는 거야.'
이 책을 읽기전에 '산티아고 가는 길' 에 대한 다른 책을 한 권 읽었고 스페인 순례자 길에 대한 여행다큐나 그외 다른 책들에서 접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까 처음 그 길에서 받은 느낌보다는 약간 덜한 감동이었다. 그 길을 따라 볼 수 있는 중세의 건물들이나 곳곳의 문화 혹은 생활 등을 언젠가는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삶이 나이를 먹고 떠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삼십일 혹은 사십일 어떤 이는 오십일을 이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더 빨리 단기로 혹은 속성으로 길을 걷는다면 시간이야 자신이 조절하기 나름이겠지만 '걷는다' 는 의미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 를 만난다면 속성 보다는 '느림' 으로 맘껏 시간의 여유를 가져보며 '노란 화살표' 만 따라가기 보다는 알베르게나 주변의 풍광도 함께 즐기며 걷고 싶어졌다. 그런 여유를 갖는 다는것도 어쩌면 큰 행복이겠지만 긴 시간동안 '자신과의 싸움' 에서 걷는다는 의미는 어쩌면 '시간의 단축'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산티아고 가는 길' 에서 믿음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자신속에 있는 '하느님' 을 만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타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던가 아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접하기에 약간은 껄꺼로울듯도 하지만 이 길이 워낙에 '순례자들의 길' 이었고 '자아찾기' 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정도는 이해해 주어야 할 듯 하다. 

그녀 나이 65세,20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하루 20km 씩 몇 시간씩 길을 걷는 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 또한 지금 그렇게 행하라고 하라면 자신없어 포기하고 말 것이다. 가까운 산행을 가도 난 무거운 배낭을 메지 못한다.내가 메고 가는 가방의 무게는 '삶의 무게' 처럼 내 어깨를 누리고 나를 잠식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과 건강과 용기도 물론 아직은 없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대단한 용기이고 시작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누렸던 모든것을 벗어 버리고, 유서까지 남기면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 여행이었으니 혼자가 아닌 둘이서 떠난 여행이고 자신은 첫번째 길이지만 동행자에겐 세번째 길이라 경험이 풍부하다면 당연히 불만이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내가 주체가 되어야 할 여행에 누군가의 힘에 의해 타동사처럼 끌려 가는 여행은 진정한 자신의 목적이 아니기에 자신에게 더 화가 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자주 동행자에게 거론 되는 '불만' 은 어쩌면 자신에게 보내는 불만처럼 처음엔 거슬렸지만 어느순간, 하느님과 마주하고 자신만의 여행으로 삼아 동행자를 점점 좋아하게 되는 여행이 인생은 긴 마라톤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앞질러 가던 동행자가 어느순간 그녀의 뒤로 쳐지고 모든 것을 내버리듯 한 자신은 가뿐함으로 앞질러 갈 수 있음이 진정한 '자아찾기 성공' 처럼 작가가 찾은 희망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오랜시간동안 걷다가 보면 정말 자신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으리라. 긴 산행에도 너무 힘들거나 지치고 내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이 될 때 그자리에서 모든것을 포기하고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미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모든것은 '내 탓이요.' 처럼 모든것이 '사랑이고 희망이고 내 세상' 처럼 내게 안겨들때가 있다. 그런 맘에 나도 가끔 걷기의 일부분으로 산행을 한다. 그 순간 힘들었지만 돌이켜 생각을 해 보면 정말 값진 시간이었음을 앞으로 살아갈 날의 에너지처럼 그날들이 전부 내 삶의 앙금이 될 때가 있다. 그런 시간을,인생에서 너무도 값진 시간을 경험하고 오시지 않았을까 한다. 

그 길에선 내가 전에 무엇을 했건 어느 지위에 있었건 필요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방안에 든것조차 무거워 하나하나 비워 나가고 버리는데 내가 전에 지녔던 지위와 성공등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앞으로 살아갈 삶의 가방의 무게는 어느정도여야 살아갈 수 있을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 주는듯 하다. 그동안 줄기차게 쫓아 왔던 자신의 성공가도도 그 길에선 필요없다. 절실히 필요하다면 배고픔과 잠자리와 아픈 상처를 소독할 수 있는 약정도일터 우린 어쩌면 삶에 필요없는 사치품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식, 극도로 간소해요. 옷차림, 옛날 순례자들은 단벌이었어요. 잠자리,물론 불편하죠. 그나마도 얻지 못하면 노천에서도 잘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을 고생스럽다고 여기면 이 길을 걸을 필요가 없어요.'  '순례자의 길' 을 걷는데 더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자신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 와 내가 있는데. '산티아고는 길이며, 숲이고, 낙엽이며,바람이다. 길과 숲과 낙엽과 바람이 성당이다.' 조금 아쉬운점은 인용구처럼 풍부한 볼거리가 있는데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 들이 가득찬 사진이 아쉬웠다. 함께 했던 자연경관이나 그외 주변의 풍경이나 성당등 좀더 풍부한 볼거리가 있는 사진이 있었다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 길에서 하느님을 만난것도 좋았고 자신을 찾은것도 좋지만 독자를 위한 볼거리가 약간은 부족한것 같아 아쉬웠지만 이런 값진 여행을 떠나는데는 '나이도 필요없다' 는 것을 알려주는 용기를 주는 책으로 보여진다. 타지에서 아프다는 것은 정말 서러운 일이다. 강골이 아닌듯 하신데 그 긴 걷기여행을 무리없이 잘 마무리 하시고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삶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아직 그 길에 서보지 못했지만 여행기를 읽는 것만으로 충분한 간접경험을 한듯 하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순례여행을 떠나고 싶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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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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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특한 소설이다. 그녀의 전작들을 만나지 못해서 처음에는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읽다보니 재밌다. 그녀의 표현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사를 사물에 빗대어 정말 잘 표현해 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엄마는 '물' 로 아버지는 '불' 로 장녀이자 15분차로 나온 그녀들은 각기 소금과 금으로 표현되고 마지막은 '공기' 로 표현을 했다. 가만히 읽다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다. '물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물이다.' 라고 했듯이 물인 엄마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들이 사는 집은 본래는 저수지가 있던 곳이었으나 삼백여톤을 물을 없애고 불인 아버지가 집을 지었다. 그들의 집을 얼기설기 감고 있는 수도관, 하지만 물이 나오는 수도관은 열아홉개중 세개밖에 없는데 엄마가 수족관에 들어관 후, 아니 엄마의 존재가 사라진후 그들에게 물은 정말 귀한 존재로 거듭난다.

아버지인 불과 소금인 그녀는 같은 날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녀는 이혼이 이유였지만 아버진 어찌보면 엄마와도 가족 그 누구와도 융합이 되지 않는다. 다시 집에 들어와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독자적으로 행동을 한다. 모든것을 포용하던 엄마인 물이 죽으면서 그집은 정말 '물' 이 귀한 존재로 거듭난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겨우 받아 녹물을 여과하고 마시는 물인데 수도검침원인 난장이 여자가 오면 수도계량기의 숫자는 뱅글뱅글 돌아 무척 많은 수도요금이 나오지만 그들은 몇 달 동안 수도요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장녀이며 집안의 기둥처럼 된 소금, 소금은 물에 녹아 자신의 결정체를 잃을 수도 있지만 햇빛을 쏘이면 다시 자신의 각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존재로 집안 살림을 맡아 하는 소금, 하지만 자신과 쌍둥이로 태어난 금은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금이라는 존재만으로 그녀를 우러려 본다. 아버지 역시 그녀에게 연금술로 인하여 또다른 금을 얻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나온것은 '납' 대단한 표현이다. 금이라고 해서 금속에서 모두 금이 나올수는 없는 것이다. 

공기인 막내, 그녀는 있는듯 없는듯 종교에 매달린다.  삼백여톤의 물이 휩쓸고간 집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꼭 필요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기가 없다면 우리가 숨을 쉬고 살 수가 있을까. 그녀의 표현에 등장하는 것들은 모두가 우리에게 필요하면서도 그 존재가치가 어떻게 평가되는 것처럼 인간사,한 가정을 들여다 보아도 그 가족 개개인의 존재가 다 다르듯이 물,불,소금,금,공기,납 등은 모두가 다른 존재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한가정이 탄생하고 혼자서는 살 수 없음을 말해준다. <물>이란 존재는 한가정을 파괴하기도 하고 구성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독특한 소설속에서 얼마의 시간동안 '물'이란 존재와 함께 하다보니 한방울의 물이 다시 보여진다. 단수가 되어 한방울의 물이 절실히 필요할때 '똑 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던 물이 이 소설로 인하여 더욱 각인될 듯 하다. 한방울의 물도 다시 보여지게 만들었던 정말 독특하면서도 새로웠던 소설과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그녀의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움에 칼로 베인듯한 느낌이 들던 소설로 인하여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불은 상승을 도모하고 꿈꾸면서, 상승하려는 다른 대상들은 가차 없이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린다. 다른 대상들은 태워 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불은 비로소 상승을 실천한다.'

'나로 인해 물인 어머니의 고유성과 순수성이 훼손되고 불순해진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그녀에게 나 소금은 물을 짜고 탁하게 변질시키는 불순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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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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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아......, 고난은 행복의 시작이요, 행복은 고난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으니라.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좌절할 필요 없으며, 바랄 나위 없이 행복한 때일수록 고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잊지 말고 이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알았지?'  상인이던 아버지를 바다가 빼앗아 가고 어머니마져 호열자로 12살에 잃은 그녀 만던, 오빠 둘은 큰아버지댁에 머슴이나 마차가지 신세로 팔려가듯 가고 그녀는 혼자 집에 남아 있을수도 어머니처럼 물질을 하여 연명할 수도 없어 관기이며 이제 물러나 앉은 월중선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가 호열자에 걸렸을때 우연히 길에서 만난 도형과 을산 아저씨, 을산 아저씨의 도움에도 어머니를 잃은 만덕은 그녀의 인생에 큰 힘이 될 도형을 가슴에 간직하게 된다.

큰아버지댁으로 머슴살이를 하러 간 오빠들은 4년만 떨어져 살다가 만나서 함께 살가고 했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에 그들의 집을 돌보지 못하고 겨우 살아가던 그들에겐 4년이 지나도 만덕은 그에게 짐이나 마찬가지이며 그들 또한 여유롭지 못한 삶을 보고 그녀는 관기가 될 것을 결심하고 월중선에게 춤과 노래등을 지도 받지만 관에 들어가는 날은 하루하루 뒤로 미루었다. 월중선의 집에 들어서기 전 그녀는 제주의 거상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세웠기에 양민이었던 그녀에게 관기란 받아들여지지 않아 장사밑천으로 삼을 돈을 절약을 하며 모으기 시작한다.그런 어느날, 자신의 신분이 관기가 아님을 사또앞에 나가 고하고는 관기에서 양민으로 자유를 얻는다.

월중선이 죽으며 남긴 재산과 관기를 하며 모은 재산으로 포구앞에 마땅한 객주집을 얻어 성산 어멈과 함께 했지만 그녀가 바라는 도형과 작은 오빠인 만재가 필요했다. 그녀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그들이 찾아오고 객주는 번성하게 되고 많은 이윤을 남기지 않고 소매상과 제주민을 위한 장사는 잘 되어갔지만 그녀가 넘어야 할 산은 바로 옆에 있는 고병기의 그집 차인 최대식세력과 그리고 여자는 섬을 벗어나지 못하는 제도이다. 섬이란 특성상 쌀부족도 심하고 소금도 나지 않는 곳, 그녀는 여러사람들의 도움과 자신이 장사에 '정도' 를 지키며 모두를 위한 장사를 펼쳐 나갔기에 거상이 될 수 있었지만 그녀를 빗겨가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환난을 돕기 위하여 육지로 보냈던 그녀의 전재산과 첫사랑 도형과 작은오빠 만재를 바다가 삼켜 버리고 포기 하고자 했던 삶을 자신보다 못한 주민들을 보고 이어 나가기로 하는 그녀는 백성이 굶주리는 것을 더이상 보지 못하고 모든 재산을 털어 규휼미로 바꾸어 배고픔을 덜어주고자 한다. 그녀의 거상다운 면모,노블레스 오블리주. 있다고 있는 척이 아닌 돈이 꼭 필요한곳에 적절하게 사용을 한 그녀의 공을 임금 정조는 크게 상을 내리려 하지만 섬에 묻혀 조선의 여자로 갇혀 살던 그녀의 소망은 육지여행,임금이 계신 한양과 금강간 여행. 이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 부귀영화와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어디서 무얼 하든 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그녀의 굴곡진 삶에는 어디 거상으로 맑은 날만 있었던가. 12살이 부모를 여의고 오빠들과 떨어져 기생집에 혼자 머무르게 된 것이며 양민이었으나 관기로 들어가 원하지 않는 삶도 살아야 했고 다시 양민으로 자유로운 삶은 부여 받아 객주를 열었지만 여자가 그것도 전직이 관기였기 때문에 그녀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먼저 그녀를 여자이며 관기라는 것으로 깔보았지만 그녀에겐 그 어떤 것도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바다의 거친 물살도 헤치고 당당히 육지를 향해 노저어 갔을 것 같은 그녀의 강건함과 혼자가 아닌 모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녀를 거상으로 거듭나게 한 것 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깊이 빠져들기만 할 뿐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늪,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늪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두려움 없이 발을 내딛는 것이리라.' 관기로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좋은 옷 다 버리고 자신의 삶이며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 나가려 포부를 펼쳤던 그녀, 어느 남자 못지 않은 그녀의 당대함이 대단하다. '아암, 그래야지. 상인은 이득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을 팔아야 되는 거여.' 그녀의 말처럼 상인뿐만이 아니라 제주도민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던 그녀의 삶이 녹아난 소설은 어렵다거나 복잡함 보다는 그녀의 삶을 누군가 전설을 들려주듯 하여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다.섬과 조선이라는 특성상 여자인 그녀에겐 벗어나지 못한 <벽> 같은 존재들이었지만 그녀의 원대한 꿈앞에서는 모든 것들은 한낱 물거품처럼 부서져 내렸다. 자신의 이익보다 모두의 희망을 원했던 그녀의 삶이 오늘날, 자신이 주머니를 부풀리기에 바쁜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 제주 해녀의 거친 숨소리 '숨비소리' 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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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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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한때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그렇단 말인가?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삶다운 것인지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것으로 얼마나 많은,값진 것들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지 월든에서 몸소 체험을 하듯 이년여간의 오두막 생활로 모두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누군가에는 ’로망’ 이고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는 전원생활’ 이 될지 모른다. 도시에 길들여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땅을 밟고 땅을 일구며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모두 도시에 있는듯 하면서도 요즘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종종 들려주는 도시에서 얻지 못하는 여유나 자연은 내겐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직은 아이들을 핑계로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나면 늘 자연과 함께 하려 뒷산이라도 오르는 생활을 하려 하지만 한시간여 하루에 내게 여유를 부린다는 것도 어찌보면 사치로 보여질때가 있다. 자연이란 것이 눈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고 가만히 귀 기울여야 비로소 내게 온다. 

눈을 낮추어야 보이는 꽃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뒷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겐 그냥 뒷산이던 것이 눈을 낮추고 자연을 들여다 보면서 ’새로운 세상’ 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뿐만이 아니라 철마다 피는 야생화와 나무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들이 보고 싶어 시간이 나면 혼자서라도 뒷산을 오르거나 들길을 걷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들을 모두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 감상하다 보면 자연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동안 보고 자란 삭막한 시간들은 모두 덧없이 느껴져 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런 나를 ’가지 않는 길’ 로 인도하기엔 아직 멀었다.

이 소설은 프루스트의 ’가지 않는 길’ 처럼 누구나 그런 생활을 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정말 인생에서 한번 정도는 도전하고  체험해 보고 싶은 아주 값지고 멋진 생활을 누리지 않았나 싶다. 나무와 야생화가 무성하고 새들이 많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손수 짓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문명과 경작으로도 그는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값진 것들을 누리며 자연을 즐겼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밤마다 들려오는 부엉이소리 개구리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동물들과 야생적인 생활이지만 그 어느때보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준 혜택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철마다 변하는 오두막 주변의 풍경과 동물 식물들에 대한 표현도 정말 세세하면서도 풍성한 감성이 녹아 있어 대단하다. 많은 독서량과 풍부한 자연이 준 혜택이 아닐까 하면서 마치 월든의 호숫가 오두막에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문명과는 떨어져 조금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한달이라도 그렇게 살아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자리 낀듯한 느낌을 받으며 읽다보니 봄비가 내린 후 초록이 짙어진 숲으로 들어가 봄비를 머금은 후 피어난 야생화와 나무들 그리고 바람과 새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은 자연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일 터, ’내가 2년 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첫째로는 이처럼 높은 위도에서도 사람이 필요한 식량을 얻는 데에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노력밖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둘째로는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식사를 하더라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이기심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속에 있는 것만으로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요즘은 암등 큰 병을 가진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듣고 매체를 통해 보았다. 숲은 자연치유를 자신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넉넉하게 나누어 주어 더불어 사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 하다. 뒷산이라도 산행을 다녀온날은 맑은 공기에 샤워를 하고 나온것처럼 개운하다. 야생화나 들꽃 이름모를 버섯하나를 발견하고 나온날은 정말 기분이 좋다. 소로우만큼은 아니어도. 그가 21세기적 삶과 생각을 가지고 살지 않았나싶다. 그는 로빈후드적 삶을 살면서 월든의 자연을 세세하게 묘사한 것은 에세이라기 보다는 환경다큐를 연상케 하면서도 독서와 자신의 철학에 대한 생각들이 깃들어져 있어 사색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이다. ’내 모든 살림도구가 풀밭 위에 나와 집시의 봇짐처럼 한 무더기로 쌓이고, 내 삼각 탁자가 책과 펜과 잉크가 그냥 놓인 채로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마루 청소를 하기 위해 얼마안되는 가재도구를 햇빛을 쏘이기 위해 밖에 내 놓은 것을 보며 미소가 절로 나왔다. 참 여유로운 풍경이다. 어느 누가 자신이 모든것을 버리고 이런 생활에 당당히 발을 벗고 나설 수 있겠는가.

숲과 자연 야생화와 나무 호수 새소리 바람소리등을 좋아하는 난 언제일지 모르지만 먼 미래의 삶을 19세기 소로우의 삶에서 찾듯 대리만족을 하며 읽었다. ’ 나의 집은 언덕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커다란 숲이 바로 거기에서 끝나고 있었으며, 집 주위에는 한창때의 리기다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호수까지의 거리는 30미터쯤 되었으며 집에서 호수로 가는 길은 언덕을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로 되어 있었다. 집 앞의 뜰에는 딸기와 검은딸기, 보릿대국화, 물레나물,미역취, 떡갈나무의 관목, 샌드벚나무,월귤나무와 감자콩등이 자라고 있었다.’ 정말 그가 그려 놓은 대로 보면 ’그림 속 언덕위의 집’ 이다. 자연을 내 안에 들여 놓기 위해서는 자주 자연과 함께 하며 그 속에 머물러야 한다. 그런 시간이 늘어나다보면 자연은 내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무엇으로도 얻지 못하는 값진 것을 얻은것처럼 행복감을 그 속에 느낄 수도 있고 그런 생활이 삶이 될 수도 있다. 돈이 많아서 부자보다는 자연을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담은 사람이 정말 부럽다. 그 속에 있으면 사람은 모두가 평등해지고 자연앞에 평범해진다. 그가 누린 ’혼자만의 세상’ 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나무들처럼 빽빽한 글자들과 표현, 그리고 그의 생각들이 말해준다. 19세기에 21세기적 철학을 지닌 그의 2년여간의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의 삶은 환경과 자연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큰 공감을 줄 책이며 내겐 감동이었다. 그로인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꿈의 로망이 ’월든’ 에 고스란히 담겨진듯 내 안에 담겨지게 되어 기쁘다. 지금보다 십여년 더 내 삶이 깊어지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빽빽한 글자와 딱딱해서 조금 읽다 지칠 수 있는데 참고 읽다보면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어찌보면 잇속을 따지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자연은 개발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누릴때 비로소 우리것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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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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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죽어야 할지 스스로 '인간 교과서' 가 되기로 자처한 모리 교수, 그에게 육체란 그저 맑은 영혼을 감싸고 있는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단단한 것일까.루게릭 병,흔하지 않은 병이지만 최근의 영화에서도 보여지고 매체를 통해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나오며 생소하던 병은 낯설지는 않지만 그사람의 최후를 그저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최근 주위의 친근했던 사람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이 곁을 떠나는 일이 종종 발생을 하여 슬픔에 잠긴 일이 다른때보다 많았다. 그들중에는 스스로 삶을 비관하여 죽음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얼마전에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처럼 자신이 나서는 길이 마지막 길인지도 모르고 나섰다고 뜻하지 않게 선택된 사람도 있고 자신안에 숨어 있는 병을 발견하지 못하여 갑자기 병에 지고 만 사람도 있다. 슬픔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였기에 갑자기 닥친 유와 무의 사이에서 한동안 방황을 하기도 하고 무의 존재를 믿지 못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준비하지는 못한다. 그런 반면에 어쩌면 자신의 남은 시간들을 자로 재듯 하루하루 지워 나가며 자신의 육체에서 영혼이 서서히 빠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무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또 그런 일을 옆에서 지켜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며 안타까움일지 내 아버지가 큰 병을 얻고 나니 새삼스러워졌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 한사람이 한동안 차지한 공간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한다. 그런면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록하듯 제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한 모리 교수의 죽음에 대한 의연함은 가슴을 적신다. 하루하루 앞만 보고 달리던 미치에게 서서히 몸이 굳어가면서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모리교수와의 만남은 그 자신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암과의 사투에도 가족과 함께 하지 않고 멀리하고 있는 동생과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그가 모리교수와는 어떻게 작별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점점 자신의 육체를 병에게 점멸당하면서도 '영혼' 을 잃지 않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모리교수는 그랬다. 자신이 육체가 서서히 굳어가면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인정해 나감으로 좀더 자신의 마지막을 편하게 보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면서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모두를 용서하고 동생과 화해를 하라는 충고를 해준 모리, '너무 늦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를 바랬던 노교수 모리는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같다.비록 병에 육체를 빼앗기기기는 했지만 그의 정신은 마지막까지 온전히 지킨듯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최후에 남길 수 있는 말들이 무엇이 있을까. 거창한 것이 아닌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 그보다 더한 것들이 있겠지만 사소한 것들도 하지 못하고 마음에 쌓아두고 우린 어쩌면 스스로 벽을 만들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벽을 허물기에는 한평생이 걸릴수도 있고 단시간에 허물어지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만든 벽에 갇혀 나약하게 살기 보다는 '자기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라는 말처럼 그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베풀며 산다는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왜 그 마지막 순간에 깨달아야 하나. 마지막까지도 깨달지 못하는 이도 있겠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선 모리교수가 전해주는 말들은 모두가 주옥같다. 자신에게 진정으로 만족을 주는 것 또한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이라며 베품을 강조한 노교수, 인간은 늙고 병들고 쇠락해지면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듯 보살핌을 원한다. 그런 그의 곁에서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깨우친 미치는 노교수의 말을 빌어 '사랑은 살아있는 방법.' 이라고 전해준다.

'테드. 이 병이 내 영혼을 두드려대고 있어요.하지만 내 영혼을 잡아먹진 못할 거예요. 내 몸은 잡아먹겠지만, 내 영혼은 '절대로' 잡아먹지 못해요.' 병이 서서히 발끝부터 가슴까지 그리고 언어까지 잠식해 들어와도 그의 영혼은 결코 지배하질 못했다. 강인한 정신력,영혼을 보여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 놓치고 있다면 지금 뒤돌아 보고 자신안에 있는 사랑을 베풀라는 노교수의 말이 가슴에 맺힌다. 사랑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마음을 쓸 때가 진정한 사랑이라 말한 노교수의 울림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버지 때문일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보면 제일 험한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모르는 그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 안에서 춤을 추었던 노교수는 어찌보면 자신안에 있던 마지막 '사랑의 알맹이' 까지 모두 빼내어 이 책에 고스란히 남겨 놓지 않았나싶다. 삶이 힘들때 슬픔이 모두 나의 것처럼 느껴질때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과연 바른 길인가 의문이 들 때 읽는 다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죽음은 내겐 더 열심히 살아가라는, 삶의 길목에 등불을 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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