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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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리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도 생각했다.
 
개밥바라기별이란 제목에서 그게 어떤 별일까 했는데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별이다. 샛별, 초승달과 함께 서쪽하늘에 나타나면 '개밥바라기' 작가의 성장기,자신을 찾기 위하여 좌충우돌하며 보낸 시간들은 우연히 만난 막노동꾼에게서 '개밥바라기'라는 말을 들으며 지금은 개밥바라기지만 언젠가는 반짝반짝 빛나는 샛별이 되리라 하는 희망이 있음을 암시해주는 가슴이 따듯한 소설.
 
성장기는 성장통이 있는가보다. 더 큰 그릇이 되기 위하여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고개를 넘는 아픔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법,나 또한 지금 두 딸들이 사춘기를 맞아 날마다 싸움아닌 싸움으로 일관되는 삶이라 더욱 이 소설이 와 닿았는지 모른다. 문지방에 발을 딛고 선 아이처럼 실바람에도 흔들릴 듯한 그 시간속에서 자신안에 숨겨진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이 지금의 작가를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한달만에 집에 돌아오자 이제 다시는 소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ㅡ183p
소설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 전,서울에 올라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며 지난 시절을 회상하듯 사춘기부터 베트남전에 가기 위하여 열차에 올라타는 시선으로 이어지며 소설은 끝나는데 구성이 약간 피천득의 <인연>을 닮은 듯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화자는 늘 1인칭 '나'이다. 하지만 그 나는 똑같은 이가 아닌 준,인호,정수,선이,미아로 이동하면서 다각도로 보여지는듯 하지만 그들은 친구로 한데 어우러져 작가를 자화상처럼 그려낸 인물 '유준'이라는 인물의 촛점으로 연결지어진다. 그의 친구들 속에서 공부보다는 글쓰기를 택하고 틀에 얽매인 삶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기 위하여 학교를 벗어나 무전여행을 하며 성장통을 거치고 이겨내어 청년이 되는 과정을 거치듯 하는 준과 그의 친구들 그러면서 한 여자를 알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는듯 하였지만 그녀 옆의 친구인 '미아'를 더 닮았던 준.
 
'나는 채 자라나지 못한 중닭이나 어중간하게 커버린 강아지의 껑충하고 볼품없던 꼬락서니를 문득 떠올리고 픽 웃었다.' ㅡ118p
격동의 시간을 삶면서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막노동꾼 아저씨,그를 따라 전국을 돌며 막노동으로 단련되는 정신과 육체에서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낼 자신으로 거듭난 유준, 어느 순간 삶을 버리려 수면제를 삼겨도 보지만 운명의 끈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더 단단하게 살게 만든다. 오랜 수감생활이 빚어낸 작품들 '오래된 정원' '심청' '손님' '바리데기', '바리데기'를 통해 어린 독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는 작가는 <개밥바라기별>이 자신의 문화적 연대기의 기술에서 새로운 표지석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나 권투 좋아해요. 사각 링에 딱 갇히면 각자 무지하게 외로울거야.온 세상에 바로 코앞의 적뿐이니까.' -205p
어찌보면 '오래된 정원'의 전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 '장길산'과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를 읽었는데 이 소설은 작가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기도 하고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나는 개밥바라기별의 이미지가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의 가슴 위에 물기 어린 채로 달려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하는 것처럼 아픔이지만 아픔이 승화되어 좋은 작품들로 나타남이 지금의 '황석영'을 만들어준 자신의 실체를 찾은 시간이라 본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맑고 흐린 세상풍파를 다 받아들이는 거야.' ㅡ243p
꼭꼭 숨겨둔 작가 자신의 내면의 비밀창고를 열고나니 무척 빨리 읽어 내려가진다. 막힘없이 읽다보니 내 자신의 지난날도 생각나고 작가가 지난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마구마구 지나치듯 표지의 그림처럼 머무르기도 한다. 희미하면서도 무언가 응시하고 있는 듯한 소년, 그 소년이 바라보던 개밥바라기는 샛별이 되어 빛나는 듯 하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이야기꾼'인것 같다. 무언가 마력이 숨겨져 있는 듯한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것을 보면.
 
'뭘 하러 흐리멍텅하게 살겄냐? 죽지 못해 일하고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며 살 바엔, 고생두 신나게 해야 사는 보람이 있잖어.' ㅡ259p
갑자기 그 이야기속의 등장인물들이 궁금해졌다. 선이,미아,정수,인호 막노동 아저씨.. 지금은 모두 잘 살고 있겠지. 그들도 작가처럼 지난날을 그리며 개밥바라기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장기 단편소설로 황순원의 '소나기'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이 읽어도 괜찮은 '개밥바라기별'이 성장기 소설의 으뜸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순간일듯 하다. 그의 성장통에 편승하여 오전내내 미소를 살며시 지으며 읽었던 개밥바라기별이 이제 저녁하늘을 바라보면 '개밥바라기' 라고 외칠것 같은 그런 존재로 거듭남과 함께 작가의 혼란의 시간을 아름답게 그려주어 작가에게 고마울뿐,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별을 그려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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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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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쏟아진 찬사에 감히 책을 집어 들기가 망설여졌다.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1위, 그리고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이라 하여 묵직함에 늦게서야 책을 접하게 되었다. 코맥 매카시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접하는 작가라 검색을 먼저 해보고 작가를 좀더 가깝게 느끼고 소설을 읽는것이 더 빨리 이해할듯 하여 알아보니 '은둔작가'이다. 70세의 은둔작가로 어린 아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쓰게 되었으며 그의 은둔생활이 이 소설에 많이 묻어난다는 것.
 
많은 리뷰들을 보니 소감도 반반이다.대단하다는 평과 넘 이해하기 힘들고 평보다는 떨어진다는 평들,난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하며 읽다보니 나도 처음엔 평보다는 좋지 않은것 같은데 대단한 상도 받고 성서에 비교가 될까 고개가 저어졌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며 이래서 그랬나 보다 하며 작은 감흥이 일기 시작이다.
 
소설은 대재앙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지구에 아빠라 불리는 남자와 어린 아들이 지독한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희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재뿐인 곳에서 먹을 것과 잠자리와 입을 것을 겨우 겨우 찾아 연명하며 길을 따라 무언가 희망을 찾아 가는 이야기다.끊임없이 둘은 짧은 대화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어 가고 그리고 그 대화로 인하여 살아 있음을 느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들이 끌고 다니는 바퀴가 불안정한 카트엔 재로 쑥대밭이 되어 사람이라곤 죽은 시체밖에 없는 곳에서 그래도 남겨진 양식과 그외 생활에 필요한 것들 몇가지를 싣고 길을 따라 이동을 하다가 잠은 인간사냥꾼들을 피하여 숲에서 자거나 숨어서 잔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도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며 또는 사람을 잡아 먹는 사냥꾼들 뿐이다. 어느것 하나 생물이라고는 없는 척박함에서 우연히 만난 개마져 반갑지만 그것 또한 거둘수가 없다.자신들의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기에.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두 발의 총알,한 발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사냥꾼을 쏘아 어린 아들앞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고 그리고 자신들이 비록 살인을 하였지만 좋은 사람들임을 한번더 되새기며 남은 빈총알자리를 나무총알로 채우는 남자,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아들도 남자도 힘겹고 아침을 맞는다는 것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그들의 시간엔 희망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남자는 '불을 운반하는 자' 라며 자신들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한 최면을 걸듯 한다. '불' 과연 그들이 불을 운반하였을까..
 
남자는 아들을 지키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것과 옷가지등을 구하기 위하여 회색의 바다에 있는 움직이지 않는 배에까지 가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 나오기도 하지만 그들보다 더한 사람이 그들이 구한것들을 훔쳐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카트를 찾고 상대의 마지막 옷가지들을 벗겨 자신들이 처했던 상황과 똑같게 만드는 남자,어린 아들은 아빠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만 남자는 점점 병들어 가고 급기야 죽음에 이른다.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된 아들,그 앞에 나타난 좋은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인육을 먹지 않으며 아버지를 숲에 남겨두고 소년을 데리고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이 소설은 아주 먼 미래에 우리가 만날 어떤 시간들일수도 있다. 그런면에서 성서와 비견되었나보다.노아의 방주처럼 마지막에서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처럼 남자의 죽음은 절망이었지만 다시 희망으로 이어지는 그래도 살만한 지구,작가가 말하려 했던 핵심은 무엇일까.. '길에는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었다.어디에도 살아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남자와 아들은 그 길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속에 작가의 질문이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작가의 견해일까...아무것도,생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그들은 오직 지난 세월속에 묻혀 버린 것들속에서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취했다. '전에는 우리도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하곤 했어.하지만 이젠 안 해.왜 그럴까? 모르겠어. 죽음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지.이야기할 게 남지 않은 거야.' 생명이 존재하던 시대에는 죽음이 먼 미래의 얘기였다면 지금 그들이 처한 현실은 죽음속에 있다. 생명이 사라진 시간과 길...
 
성경과 비견된다고 하여서일까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두통이 온다. 작가가 은둔생활을 하며 지낸 시간들이 녹아 있어서인지 작가를 생각해서일까 맘이 아려오며 그가 살아온 길을 따라 나도 함께 여행을 하듯 느릿느릿 걸었다.반복되는 이야기에 지처가다  어느 순간부터 그 걸음에 속도가 붙으며 빨라진다. 그가 죽음으로 치달으니 그를 구하고 싶어진다. 어린 아들을 위해. '행운이란 이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남자는 거의 매일 밤 어둠 속에 누워 죽은 자들을 부러워했다.' -260p 다른자의 죽음이 행운처럼 느껴지는 현실, 길은 끝이 없다. '매일매일이 거짓말이야.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넌 죽어가고 있어.그건 거짓말이 아니야.' -269p 남자의 삶은 촛불과도 같다.자신을 태워 불밝히며 죽어가지만 희망을 아들에게 전해주는 희생적인 삶.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길을 따라가다보면 뭐가 나올지 몰라.그렇지만 우리는 늘 운이 좋았어. 너도 운이 좋을 거야. 가보면 알아. 그냥 가.괜찮을 거야..' -313p 남자는 죽는 순간에도 소년에게 길을 가다보면 희망이 있을것이라면서 길을 계속 가기를 원한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그들이 지금까지 희망을 찾아왔기에.. 어쩌면 이 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이란 소설의 전대목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책을 손에서 놓고나니 괜히 걱정이 된다. 소년이 희망을 찾았을까... 그 소년이 대재앙 반대편의 희망의 나라에서 잘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소설책을 내려 놓았다.하지만 잔영은 오래가 눈을 감으면 검은 길이 쭉 이어져 나타난다. 내겐 작가가 화두를 던진 소설처럼 읽은만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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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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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오, 나의 연인이여,빗방울처럼
슬퍼하지 마
내일 네가 여행에서 돌아온다면
내일 내 가슴에 있는 돌이 꽃을 피운다면
내일 나는 너를 위해 달을
오전의 별을
꽃 정원을 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혼자다.
오,빗방울처럼 흔들리는 나의 연인이요
 
- <비엔나에서 온 까씨다들>. 압둘 와합 알바야티
 
제목이 참 매력있는 책이다. 시가 어우러진 공지영의 산문집이다. 누군가 편지를 쓰듯 써내려간 글들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작가를 좀더 가까이 만나는 것 같아 좋았던 책이다.소설로 만날때도 좋지만 가끔 그 작가의 산문집이나 시집을 읽다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것 같아 참 좋을때가 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우리는 한참을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ㅡ87p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 잘 들어나 있는 부분인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쩌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자신만의 최선책이라는 그 말에 공감도 가고 몇번이나 이 문장을 읽었다. 내 마음처럼...
 
산문집은 간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 마음의 무장을 풀면 그사람의 내면을 둘러보다가 만것처럼 뭔가 찜찜하다. 읽는 순간,마지막까지 작가와 함께 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간다면 참 괜찮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산문만 있으면 약간 재미가 덜할것 같은데 괜찮은 시들이,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들이 어우러져 더 읽을 맛이 났던 책.
 
눈물로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이
뒤척이는 밤들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울며 보낸 적이 없는 이
천국의 힘을 알지 못하니
 
너희 천국의 힘 우리들 삶 한가운데로 인도하고
가련한 사람들 죄 짓게 만들어
고통 가운데 그를 버려두나니
모든 죄업 지상에서 갚게 함이라
 
ㅡ<현금 타는 사람의 노래> 요한 볼프강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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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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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명의 사형수,그들이 나눈 하룻밤의 '데카메론'
 
 
이 책의 수식어가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 스트레가 상 수상작, <라쇼몽>에 비견할만한 책'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을 읽었던가 안읽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다이제스트로 학창시절에 읽은것 같기도 하여 궁금증에 펼쳐 들은 책 '그날 밤의 거짓말' 제목에서 풍기듯이 다음날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네명의 사형수들이 나눈 하룻밤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라는 명제가 붙었다.
 
그들은 국왕암살 혐의라는 같은 죄목으로 다음날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인가푸 남작, 시인 살림베니, 병사 아제실라오, 학생 나르시스로 그들이 믿고 따르던 '불멸의 신'이 누구인지 진실로 적어 상자에 넣으면 살려주겠다는 사령관의 말을 듣고 마지막 밤을 보낼 방에 모인다.그 방에는 치릴로 라는 수도사가 미리 와 있어 그들과 함께 하며 진실인지 아닌지 가려낸다.
 
하룻밤의 '데카메론' ...
옛날에 토레아르사 성, 화염 속에서 책 한 권을 구해낸 적이 있었네.음란한 내용이었지만 결국 무서운 책이었어.책 이름은 <데카메론>이었네. ㅡ59p
먼저 학생인 나르시스가 먼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의 이야기를 한다. ' 사랑은 부싯돌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불꽃이 아니라,영혼의 자연스런 연소입니다. 날름거리던 영혼의 불꽃이 확 타올라 자신 밖에 있는 존재를 찾아서 불을 붙이는 것이죠.' 그는 '에우니체'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미와 정신의 이데아, 불꽃과 육체의 승리,감각 즉 관능을 넘어 황홀한 감각으로 떨어진 천상의 피조물'이라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하는 인가푸남작,그는 쌍둥이로 자신 보다 30분 늦게 태어난 동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가 동생의 죽음을 통하여 양면성을 지닌 사람으로 어두운세상과 환한 세상을 오가는 있다고 자신을 표현한다. 동생 새콘디노는 행동하는 하는 사람으로 이었기에 인가푸 자신속에 감추어져 있던 동생이 성격부분을 그가 죽음으로 인하여 재발견하듯 했다는 내용이다.
 
병사 아제실라오는 수도원에서 자랐다.그의 태어남부터가 부모가 원하여 태어난것이 아니라 어느 병사가 집시엄마를 겁탈하여 생긴 아이이기에 수도운에 버려지듯 하여 자라고 수도원을 탈출하여 군인이 되어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그를 죽임으로 인하여 자신의 원죄를 값았다는 그의 말.
 
마지막으로 시인 살림베니는 알 듯 모를 듯 한 사람,그도 한 여인 공작부인을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하여 미필적 고의의 살인처럼 일어난 아이의 죽음을 이야기 한다.그들이 이야기 하는 중간에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망나니 스미릴리오가 나타나 그들이 죽음을 맞이할 단두대를 보며 '오, 우아한 장난감이여..' 라든가 죽는 순간을 '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같을 거야..' 라고 표현을 한다.
 
네명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치릴로 수도사는 그들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임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내며 거짓을 밝혀낸다.네명중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은것, '우리가 지금 서로 얘기하고 있는 이 시련, 환상적인 얘기일수도 있고 그럼직한 얘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실일 수도 있는 이 얘기를 구실 삼아 혹은 거기서 어떤 암시를 받아 항복하기가 쉬워질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나 혼자만 떨고 있던 게 아니었군요..' -222p  모두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었겠지만 환상적인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감춘다. 그들이 진실을 들어내지 않자 치릴로는 자신의 얼굴에 감고 있던 붕대를 풀며 자신을 노출시키는데 모두는 놀란다.
 
이 소설은 치밀하게 짜맞추어진 소설이며 복선이 이곳 저곳에 깔려 있지만 감지하기에 약간은 아이러니 하다.처음부터 그들이 국왕 암살 혐의가 있는지부터 아이러니다. 그들의 죄목도 그들이 따르던 '불멸의 신'이라는 자도 모든것들이 확실하게 들어나 있지 않기에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한다. 하지만 가끔씩 고서의 말들을 인용한다든가 망나니의 말처럼 유머도 있어 죽음앞에서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 결론은 콘살보의 편지에서 밝혀지는데 약간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죽음을 앞두고 그들이 나눈 이야기에서 그들은 죽음이란것을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정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이라 믿는 여인과 그 사랑에 대한 감정들을 이야기 하는데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그럴 수 있을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우리 가운데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걸세. 누가 옳으니 틀리니 들어봐야 소용없을 거야. 난 죽음이 슬프지 않네. 삶에 호기심을 느꼈듯 난 죽음도 궁금해.'  ㅡ182p  수도사의 말처럼 이미 결말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독자들을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도록 소설은 이끌고 간다. 언제 시간난다면 다시 한번 차근차근 다시 읽어봐야 겠다. 데카메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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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쿠 살인사건
다카하시 가츠히코 지음, 안소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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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샤라쿠,그는 누구인가?
2천명이 넘는 우키요에 화가들중 가장 널리 알려졌으며 화법은 독창적이고 겨우 10개월 동안 140여점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진 인물,그의 독창성을 인정해준것은 오히려 유럽이었다. 1910년 독일의 우키요에 연구가인 율리우스 쿠르트박사가 그의 저서 <SHARAKU>에서 샤라쿠를 렘브란트,벨라스케스와 더불어 삼대 초상화가로 극찬하자 비로소 일본에서 유명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의 특징이나 역사적 정황들을 추리해 볼때 그가 조선의 ’김홍도’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당시 정조는 일본 정벌을 위해 간자를 보내기도 하였고 김홍도는 대마도로 건너가 일본의 지도까지 그려 정조에게 바쳤기에 그를 김홍도라고 하지만 김재희의 소설 ’색 샤라쿠’에서는 김홍도의 나이를 고려해 그의 제자인 ’신윤복’을 샤라쿠 가정하여 썼으며 이 소설에서는 그는 일본인이며 아마도 ’샤라쿠 별인설’ 처럼 다른 화가가 샤라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하여 쓴 소설인데 샤라쿠라는 인물보다는 그를 놓고 벌어지는 야욕때문에 빚어지는 살인사건이라 할 수 있다.
 
도쿄거주 서예가 ’사가’씨의 죽음
바다에 표류중인 남자의 시체를 오징어잡이 어선이 발견하였는데 다름아닌 서예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미술전에도 여러번 특선을 하였고 우키요에 연구자로 유명한 사가시였다.그의 처남 미즈노는 그가 요즘 암울하였다고 한다. 츠다 료헤이는 스승 니시지마 대신 장례식장에 왔다가 고쿠후를 만난다. 그는 츠다의 10년 선배이며 니시지마 교수가 개설한 <에도 미술사>의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고쿠후와 만나고 일주일후 츠다는 고서전에 가서 사가의 처남 미즈노로 부터 화집을 하나 싼값에 건네받게 된다. <아키타 난화>라는..난화집을 살펴보던 츠다는 ’치키마트 쇼에이’와 ’도슈샤이 샤라쿠’ 라는 두 이름을 발견하고는 쇼에이가 혹시 샤라쿠인가..? 샤라쿠 별인설인가 하여 쇼에이라는 인물을 조사하러 그가 살았고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조사를 떠나려 하는데 고쿠후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하니 그의 여동생 사다코는 동행하기를 원한다. 둘은 그림이 그려진곳, 쇼에이가 살았던 곳을 조사하며 쇼에이가 샤라쿠라는 것을 증명해 나간다. 이 엄청난 발견을 츠다는 고쿠후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니시지마 교수에게 논문을 넘기는 니시지마 교수와 그의 제자 요시무라는 이 대단한 업적에서 그를 빼려한다. 회의를 느낀 츠다는 고향집으로 떠나 마음을 추스르다 니시지마 교수가 발표하는날 돌아와 잠시 접수를 받아 준다.
 
샤라쿠 별인설..정말 쇼에이가 샤라쿠일까
니시지마 교수는 고미술학계에 이슈가 될 샤라쿠 별인설을 발표하고 그의 이름과 명망은 단시간에 대단해지고 츠다는 한편으로 움츠러 든다. 하지만 다음날 날아든 비보,니시지마 교수가 그의 집에서 난 화재로 인하여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사가씨의 죽음과 니시지마 교수의 죽음사이에 우키요에,샤라쿠 라는 인물이 무언가 작용을 했음을 직감한다.니시지마 교수의 집에 화재로 인하여 ’아키타 난화’ 화집은 불에 타 없어지고 복사본만 그가 소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런던의 쇼더비 경매에서 샤라쿠 그림이 대단한 가격에 팔려 나갔다는 사실.런던으로 떠난 가토를 의심하며 츠다는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드는데...
 
니시지마 교수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동안 소설의 반정도를 차지하던 ’샤라쿠 별인설’을 추적하는 장황하고 지루한 고개를 넘어 소설은 반전을 거듭하며 속도를 가해 달려 나간다.둘의 죽음이 자살이라 오노데라 형사는 그들의 죽음이 연관이 있고 타살이라는 것을 츠다의 말을 듣고는 증명해 나간다. 한편 화집에 끼워 있던 그림엽서를 이상하게 여겨 고쿠후에게 조사를 해달라고 부탁한 츠다,낡은 그림엽서를 조사하던 고쿠후도 먼가 알아 내는데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고 만다.
 
고쿠후 죽음 이후 밝혀지는 사실들....
’아키타 난화집’은 진본일까... 사가가 교묘하게 만들은 가짜였던것,하지만 그 화집뒤에 숨은 더 큰 음모와 살인 그리고 또 다른 죽음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진실들... 진실은 ’고쿠후의 유서’ 에서 모든것들이 들어난다. 인간의 섣부른 욕망이 부른 살인과 거짓들....어쩌면 이것은 우키요에를 연구하는 ’에도 미술 협회’ 와 ’우키요에 애호회’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협회가 하나로 뭉치거나 아님 동조하면서 참신한 연구를 하였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터인데 두 협회간의 야욕다툼처럼 인간의 욕심은 자신을 채우기에 늘 바쁘다.처음에 흘리듯 거론된 ’군자는 위험한 것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처럼 위험한 것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면... 하지만 샤라쿠라는 인물은 역시 역사속에 모호한 상태로 남는다. 김재희 소설 색 샤라쿠에서 샤라쿠의 뜻은 ’즐거움을 그리다’ 라고 하였지만 이 소설에서는 ’사생화를 즐겨 그리는 사람’ 으로 해석해 놓았다.
 
이 소설은 280여 페이지까지는 장황하기도 하고 약간은 지루함도 있다. 쇼에이라는 인물을 찾아 떠나며 장황하게 샤라쿠가 일본인임을 애써 증명하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지루함에 빠져들지만 ’니시지마 교수의 죽음’이후 부터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빠르게 전개되기도 하고 반전에 재미를 더하여 속도가 붙는다. 구성도 탄탄하고 치밀하며 심리묘사도 잘 되어 있고 반전 또한 놀라움을 주니 ’에도가와 란포상’ 답다. 83년에 쓰여진 작품이 이제서 번역된것은 요즘 샤라쿠라는 인물이 오르내리는 통에 빛을 보게 된것 같은데 작가의 다른 작품인 <호쿠사이 살인사건> <히로시게 살인사건>도 읽고 싶어졌다.샤라쿠라는 인물이 일본에서는 이 소설로 한국에서는 <색 샤라쿠>로 등장하였으니 김재희 소설도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을듯 하다. 다른 리뷰들에서 어렵다고 하여 약간 걱정하였는데 읽는데 별 무리가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정말 아xm 미스테리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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