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가지 다 믿는 편이다.
나는 인간의 결심과 노력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환경 자체의 변화라기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환경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감사하면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더라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고, 그래서 더더욱 오늘의 삶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 꼭 그만큼, 세상은 ‘마음 먹은 대로’ 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냥 성공한 사람일 뿐이다. 저성장과 고용불안의 시대에, 개인이 가늠하기 어려운 더 큰 역사의
수레바퀴, 시대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덧씌우는 건 무책임한 ‘어른들’의 말이라 믿는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내가
부자라면 그것은 내가 명민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난 속에서 허우적댄다면 내 실수 때문일 것이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자유주의자 치료사는 내 부모를 탓하며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라고 나를 격려할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하고 있고, 현 사회제도에서는 내 목표를 실현할 기회가 없어서 우울한 것 같다고 말하면,
그 치료사는 내가 자신의 내적문제를 ‘사회제도’에
투사하고 있으며, 어머니와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자본주의자들’에게 투사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내 어머니, 내 감정, 내 컴플렉스를 말하는 데
수년을 보내는 대신, 내가 사는 나라의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라고 한다. 내 나라의 주요 수출품과 수입품이 무엇인가? 여당 정치인들과 국제금융의
관계는 어떠한가? (349쪽)
『매일 아침 써봤니?』의
김민식 PD는 공대를 졸업하고 영업사원으로 일했고, 통역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드라마 PD가 되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와 열정으로 자신 앞의 난관을 돌파했다.
원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때, 자신이
원하던 바로 그 위치에서, MBC 파업으로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 하게 되었을 때, 그의 태도가 인상깊다.
역사적 소명, 사회적 대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회사를 위해, 회사를 정상화하는데
기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맡았을 뿐인데, 저자는 회사로부터 징계 3종 세트, 국가로부터 국립 호텔 초대권을 받게 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 부담을 겪었을 것이다. 구속 영장은 기각되고, 구속되는 일은 피했지만, 결국 드라마 부서에서 쫓겨나 편성국 주조정실에서
송출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일할 수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다시 드라마를 연출할 기회가 오리라고 예상할 수 없는 답답한 시간이
끝없이 펼쳐졌다. 다시는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 그 암담함 속에서 그는 선택한다. 그 순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말이다.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면 지난 몇 년간 제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겠지요. 매일
아침 글을 한 편씩 쓰면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되새겼어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그 순간 가장 쓰고 싶은
글을 그냥 썼습니다. (10쪽)
글쓰기의 효능 및 효과에 대해서라면, 더할 말이 없다. 공개하든, 공개하지
않든, 일기이든, 소설이든,
나를 떠나 세상으로 뛰쳐나온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단들은 달아나고 뛰어가고 움직이고 활동한다. 글쓴이를 치유한다. 글쓴이를 억눌렀던 생각에서 그녀를 자유롭게 하며, 전혀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그를 이끌어 간다.
글쓰기를 통해 절망과 낙담의
시간을 극복했다는 이 평범하고 뻔한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파일명도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단어와 문장이더라도, 내 안에서 나와
형태를 갖추었을 때, 단어는, 문장은 그리고 문단과 문단은, 의미가 있다. 움직이고 활동해 또 다른 세계에 이른다. 이르고야 만다.
식탁을 치우지 못하고 김치냉장고
위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