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광주는 2002년의 광주다.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도입된 새천년민주당 국민 참여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광주에서 1위를 차지한다. 지지율 2%의 꼴찌 후보가 2위 이인제 후보와 100표 이상의 차이로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노무현 대안론이 노무현 대세론으로 바뀌었고, 광주의 선택으로 탄력을 받은 노무현 후보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러니까, 내게 광주는 ‘선택’의 도시다. 광주의 위대한 선택 또는 위대한 광주의 선택. 광주 시민들은 아는 사람, 광주를 자기집 안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모든 후보가 자신이 김대중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할 때, 광주 시민들은 알았다. 김대중 정신을 이어갈 진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영남 사람이었다 해도 괴이치 않았다. 김대중 정신을 이어갈 만한 인생 역정을 확인했다. 노무현은 그렇게 광주의 선택을 받았다.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광주는 ‘한’의 도시다. 아버지가, 오빠가, 삼촌이, 옆집 아저씨가, 엄마가, 누나가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군인들의 집중 사격에 눈앞에서 쓰러져 가는 것을 지켜 봐야했다. 왜 이러는지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군인들 앞에 픽픽 쓰러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아니라, 광주 전체가 그랬다. 언론이 통제되고, 외부와 완전히 유리된 채, 광주 사람들은 그렇게 지옥을 살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봐야 했던,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맞서 싸워야 했던 광주는 ‘한’의 광주다.
눈물 콧물을 닦아내며 영화관을 나서는데 딸애가 묻는다. 정말 저런 걸 쏘느냐고. 최루탄을 사람을 향해 쏘느냐고. 그랬다고, 그 땐 그랬다고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리에 나섰던 날에도 경찰은 최루탄을 쏘았다. 한참 뒤쪽에 있어서 사람을 향해 쏘았는지, 공중을 향해 쏘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날 밤에도, 서울 한복판에서 시위 중에 사람이 죽었다. 대학생이 죽었다. 그렇게 말을 잇는다. 그러게, 정말 세상 바꿨네. 박근혜 탄핵 시위 때는 최루탄이 없었잖아.
읽기도 전에 손사레를 쳤던 작품(택시 운전사)을 읽게 된 후, 작품이 가지는 감동과 뜨거움을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열망들이 (블랙리스트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다,고 말하는 송강호씨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감독과 제작자, 출연자들 덕분에 광주의 기억이 오늘에 다시 살아났다.
저번 주말에는 다른 가족들과 잠실 야구장에 갔다. LG와 삼성의 경기였는데, 삼성 쪽에 앉아 (좋아하지 않는) LG를 응원했다. 그 날 경기에 ‘이승엽’이 나온다고 했다. 그 이승엽이, 내가 아는 이승엽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그 이승엽이라고 했다. 초반에 점수를 내던 삼성은 뒷심이 부족했던지 엘지에게 역전패했다. 미안해하면서도 얼굴 한가득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어떤 사람은 무표정해졌고, long face 삐져 있던 다른 사람은 금세 환해졌다.
바이, 바이를 하며 헤어지는데, 전에 만났을 때 이 모임을 마치고 광화문에 갔던 기억이 났다. 교회오빠들이자 동네오빠들이 ‘다른 건 몰라도 니 신랑은 네가 잘 지켜라!’ 말하며 웃었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지난 겨울의 일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지 전혀 모르고 사람들은 모이고,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다. 그렇게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청와대 앞에서 함성을 지르고는 평화롭게 집으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토요일에 다시 모일 때는, 또 다시 핫팩을 준비하고, 장갑을 챙겨서는 그렇게 모이고 또 모였다. 정권교체를 이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타석에 선 이승엽을 보며
응원가를 부르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 평범한 시간들이 좋았다.
다시 거리로 나가야한다면,
행진해야 한다면,
야구를 보고, 바이바이를 하고,
또 다시 거리로 나서겠지만,
하여튼 이승엽을 본 날에는,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밤이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