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곧 무언가를 하기 위한 도구를 얻는 것이라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외국어 공부도 얼마든지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가 될 수 있다.(103쪽)
지금처럼 외국어가 실용적인 도구로만 인식되어 인문 교육에서 과거에 차지하던 자리에서 밀려나는 상황에서는 번역 또한 자기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사실 인간의 일상생활의 핵심을 이룬다는 면에서 언어만큼 실용적인 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의 도구인 동시에 인간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언어가 인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107쪽)
즉 두 개의 언어가 서로 맞닿는 순간 두 언어 사이의 본질적 유사성과 흥미로운 차이들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인간들의 본질과 차이와 관계, 그리고 둘을 넘어선 새로운 제3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번역은 이 과정을 관장하는 작업이고 그 자체로 인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작업이며, 그렇기에 인문학적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다. (107쪽)
다음 주에 있을 딸롱이 교내 독서 토론회 관련 책인데, 대출해 와서는 내가 먼저 읽었다. 여러 명이 작업하는 공저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저자의 이름을 보고 골라 읽게 된다. 정영목님의 <번역의 자리>를 제일 먼저 읽었고, 김고연주의 <청소년 성매매 6문 6답>과 김태권의 <영웅은 왜 모두 망했는가>를 읽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동의하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라 자꾸 잊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 시험을 앞두고, 외국어 점수가 필요해서, 여행을 앞두고 외국어를 공부한다. 해야 할 필요 때문에 공부한다. 의무감이 배우는 즐거움을 압도할 경우, 외국어 공부는 고역이다.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라...
개학을 하루 앞두고 숙제에 여념이 없는 한 어린이는 예약 후 상호대차로 집 앞 도서관에 도착한 이 책을 보고는 숙제를 미뤄두고 허겁지겁 읽기 시작한다. 얼른 숙제해라 잔소리 해야 하고, 저녁도 준비해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나도, 나도”를 외친다. 억지로 하는 공부는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를 이길 수 없다. 하기 싫은 숙제는 읽고 싶었던 만화책을 이길 수 없다.
개학,이라 쓰고
만세,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