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페미니즘은 인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데, 페미니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면서 갈등을 만들잖아요? 여성주의가 인문학이 되려면, 앞으로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직 여성주의는 인문학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인문학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공부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고민할 때, 자신의 성별을 모르고 가능할까요? 여성주의는
성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인간과 사회를 공부합니다. 아, 참
그리고, 이게 가장 잘못
알려진 건데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사고 방식은 여성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제입니다.” (『낯선 시선』, 9-10쪽)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을 읽어가면서 얻게 된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과 여성혐오가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막연히 우리 나라의 전통 문화(라고
불리우며 여성과 여성의 능력을 억압하는 문화), 양반은 물론, 일반인들의
생활을 강력하게 지배했던 유교 지배 이데올로기가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했다고 생각했다. 유교
전통의 특수성이 우리나라 남녀 불평등의 토양이자 근본일 것이라 예상했다. 일정 정도 그건 사실일 것이고, 고려시대의 여성들이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의 여성들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던 점을 상기한다면, 한국 사회 속 남녀 불평등에 대해서는 유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을 가정의 테두리 속에
가두어 두고, 여성의 경제력을 제한하고,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여성을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 그런 생각, 그런 신념은 전 세계에 통용되었다. 가장이 강력한 지배권을 가지고
가족을 통솔하며, 아내와 자녀 등 가문 구성원에 대한 인신구속권을 가지는 제도, 남성만이 가장이 될 수 있는 가부장제의 창궐은(‘창궐’, 실수가 아니다. 나는 정확히 이 단어를 선택한다. 창.궐.) 가히 전 세계적이다.
가부장제는 거의 모든 농경 및 산업 사회에서 표준이었다. 가부장제는
정치적 격변에도, 사회적 혁명, 경제적 대변화에도 끈기 있게
버텨냈다. 예컨대 이집트는 수십 세기에 걸쳐 수없이 많이 정복당하여 아시리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아랍, 맘루크, 터키, 영국에게 점령당했지만, 이집트 사회는 늘 가부장제를 유지했다. 이집트는 파라오의 법, 그리스 법,
로마 법, 무슬림 법, 오토만 제국 법, 영국 법의 통치를 받았지만, 이 모든 법은 ‘진정한 남자’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차별했다. (『사피엔스』, 224쪽)
가부장제는 어떻게 거의 모든 농경 및 산업 사회에서 표준이 되었을까. 자유롭고
평등했던 여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왜 변하게 되었을까. 왜
남자가 더 중요한 존재라고 여겨졌을까. 이게 바로 페미니즘의 물음이다.
여성주의 시작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왜/어떻게
여성들은 억압받는가?
페미니즘 문헌들이 방대하고 다양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대략 세 가지 주요한 질문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질문은 페미니스트들의 공통된 관심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로 “왜/어떻게 여성들은 억압받는가?”이다. 여성과 남성의 권력차를 결정하는 구성원리에 대한 연구가 있어 왔다. ‘가부장제’ 관련 이론들(Eisenstein,
1979; Walby, 1990), 또는 성/젠더 체계(Rubin,
1975) 내지 ‘젠더 체제’ (Connell,
1987) – 이렇게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다 – 관련 이론들은 그 시작부터 페미니즘
이론의 중심에 있었다. (『젠더와
민족』, 21쪽)
『제2의 성』에서 시몬 드 보부와르는 말한다.
가부장제의 승리는 우연도 아니고 폭력적 혁명의 결과도 아니었다. 인류의 태초부터 남성은 생물학적 특권 때문에 자기들을 지배적 주체로 확립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런 특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06쪽)
농업 혁명, 사유재산의 시작과 함께 노예와 토지의 주인이 된 남자는 여자
또한 자신의 소유로 인식한다. 같이 사냥하며 함께 들판을 누비던 여자들은 이제 집 안에 갇혀 남자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남자의 생산 노동 앞에서 여자의 가내 노동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82쪽) 아버지의 권리가 어머니의 권리를 대치하고, 영지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상속되었다.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 농업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대되었고,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는 더 넓은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자신과 다르게 생긴 객체도 인간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이 보다 공통점에 조금 더 주목하게 되었다. 봉건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에 왕이나 먹었을 법한 귀한 음식들을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왕이나
가지고 있었을 법한 정보를,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정보들을 ‘스마트한’ 형태로 손 안에 쥘 수 있게 되었다. 1,000년전, 100년전 아니 30년 전의 삶이 아득하게 멀리 느껴질 만큼 인류의 삶은 이렇게 혁명적으로 변화되었지만, 인류가 처음 농사를 지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는 그대로이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고, 여자는 남자의 지배 아래 있다.
이성애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 사회가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했고, 그 구별의 권력이 성차별을 가능케 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근원적으로
그 구별(젠더)에 반대하지만, 그 구별이 만들어낸 효과(차별)로서
젠더가 작동하는 현실을 문제 삼는다. (『낯선 시선』, 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