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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평점 :
남편의 폭력과 아내의 ‘폭력’을 같은 성격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남성 중심적 폭력 개념이다. (‘머리말’ 중에서)
『아주 친밀한 폭력』, 이 책은 석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쓴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2001)의 개정판이다.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에 대한 논의를 주로
하되, 가부장제의 축도인 ‘아내 폭력’, 여성의 눈으로 보는 ‘아내 폭력’,
폭력 남편이 인식하는 아내 폭력, 폭력을 수용하는 아내의 심리에 대해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물이다. 제3자로서만, 객관적인
관찰자로서만 존재해야 하는 연구자가 연구대상 혹은 관찰 대상에게 감정이입 되었을 때, 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때, 연구자는 당사자가 된다. ‘아내
폭력’의 연구자가 피해자가 되고, 원치 않게 당사자가 된다.
폭력에 대한 그녀의 해석은 특별하다. 저자는 폭력이란 권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 의식적인 인간 활동이자 계획된 실천이라고 말한다.
이성을 잃었을 때 폭력이 발생한다기보다는 폭력에 의해 이성이 실현된다는 것이다.(86쪽)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왔던 가정 폭력, 아내 폭력은 집안
문제, 가정 내부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으나, ‘아내 폭력’이 인권의 문제로 제기됨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으로서만 한정되었던
여성이 사회적 개인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96쪽)
가부장제 하에서 가족은 여성을 이성 간의 일부일처제에 묶어 두려 하고 여성의 성을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만
한정한다.(96쪽) 가족 안에서 여성은 자신과 동등한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구성체의 하나일 뿐이다. ‘대장’이며 ‘주인’인 남편은
아내를 교화와 교육의 대상으로 삼는다. 잘못된 행동은 폭력을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폭력 남편들은 ‘전치 20일간의 치료를 요하는 다발성 좌상의 상해를 가한’ 경우에도 자신은 아내를 ‘때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폭력은 가정 생활의 일부이다(107쪽). 아내의 가사 노동 소홀을 둘러싼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구타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이며, 시집에 대한 봉사와 시집 식구의 생일, 각종 기념일, 명절 챙기기 등 남편 친척 관리 역시 아내의 역할로
받아들여진다. 아내의 역할에 소홀히 할 때, 시집에 대한
봉사를 게을리 할 때, 며느리에 대한 처벌이 뒤따른다.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이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아내가 외도했을 때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나쁘지만, 아내가
외도했을 때는 예외라고 생각한다.(123쪽) 남성의 폭력과
섹슈얼리티는 남편이 아내에게 행사하는 권력의 근본이다.(124쪽) 폭력과
섹슈얼리티는 함께 간다. 구타 후 아내 강간이 이를 증명한다.(125쪽) 일부일처제 하에서 아내의 외도는 처벌의 대상이지만, 남편의 외도는
다른 여성과의 경쟁에서 ‘아내 지위’ 상실을 두려워하는 아내의
헌신과 복종을 가져온다. 아내가 되었을 때, 아내는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하고, 이는 정신적, 육체적 복종과 헌신을
요청한다. 그에 미치지 못 했을 때, 폭력 남편은 아내가
‘맞을 짓’을 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아내는 생명이 위협받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폭력 남편을 벗어나지 못 한다. 가정을 떠났을 때의 경제적 어려움, 문화적 처벌, 정체성의 혼란, 가족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강한 규범 의식이 피해
여성의 발목을 잡는다. 자녀에게 ‘이혼 가정’의 자녀라는 꼬리표를 남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 역시 그녀들을 붙잡는다. 아내는
자신이 당하는 폭력을 남들과 비교해 상대화, 사소화 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애써 축소시키고, 남편이 언젠가는 나아지리라는 학습된 희망으로 폭력 상황을 견딘다.(163쪽) ‘아내 폭력’을 이해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요소는 가정은 사랑의
공간이기 때문에 폭력이 존재할 리 없다는 인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이 발생할 경우, 남편의 폭력을 폭력이 아니라 아내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 믿는 경우도 있다. 폭력이 심할수록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라 믿어진다.(169쪽)
피해 여성들은 폭력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맞을 짓’을 했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그렇게 믿어야만 고통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폭력의
피해자들은 폭력의 이유를 가해자에게서 찾지만 ‘아내 폭력’의
피해자들은 많은 수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183쪽) 완벽한
아내 역할에 대한 집착, 원하는 성별의 자녀를 제때 낳는 것 등이 전통과 사회, 그리고 폭력 남편이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이다.(191쪽) 이에 더해 피해 여성은 폭력 남편을
변화시켜야 하는 책임까지 부여 받는다.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은 남자이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사람은
여자’ 따위의 사회적 언설이 남성을 만들어가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강조한다. 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린다.(192쪽) 인간은 누구나 자신 외에 타인의 행동을 책임질 수 없지만 부부 관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197쪽)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 수행이 여성의 인권보다 우선시되면서 어머니, 아내로서의 ‘도리’는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맞지 않을 권리’를 유보하거나 사소화하였다. (247쪽)
12월에는 이사를 했다. 이사
전후로 감기몸살을 앓았는데, 나는 원래 감기에는 약을 먹지 않는터라,
그냥 그렇게 며칠을 끙끙댔다. 첫 증상은 기침이었고, 그리고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는데, 그 다음에는 속이 울렁거렸다. 엉망진창의
몸 상태와 이 책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본 이상 멈출 수가 없어서 그렇게 책을 읽어갔다. 자꾸 속이 울렁거렸고, 그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변해 버리고, 온 맘을 다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기대고 의지했던 바로 그 사람에게 맞는다는 경험을 상상하는 것이 힘들었다. 눈에
밟히는 어린 아이,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 통증, 고통, 헛된 희망과 또 다른 아침을 상상하는 게 힘들었다.
자꾸 속이 울렁거렸고,
자꾸 토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