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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
에머 오툴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6년 8월
평점 :
젠더는 리허설을 거친 연기이고, 그것을 써먹는 특정 연기자들보다
더 오래 존속하는 각본으로서, 다시 한 번 현실에 실현되고 재생산되
기 위해 연기자들을 필요로 한다.
―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아, 엉덩이 몇 번 두드리고 휘파람 좀 불었다고 불평하는 애들은 그냥 징징대는 거예요. 진짜로 관심을 거두면 걔들도 내심 아쉬울 걸요?” 오, 그래그래, 그럴 거야. 청중이 그리스 연극의 관객들처럼 웅성댄다. “저는 시선 받는 걸 좋아해요. 아무도 감상해주지 않는다면 애써 예쁘게 꾸밀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즐기면 될 걸! 그것도 일종의 칭찬 아닌가요?“ 아하, 그럼그럼, 그렇고말고.
이 시점에 예의 뮤지션이 끼어든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당신도 나이가 들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경험을 좀더 하고, 세상이 언제나 공평한 곳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말예요.” 나는 모르는 게 없는 열여덟살이므로, 깔보는 말투로 곧장 아는 체를 한다. “저는 어떤 차별도 겪어본 적이 없는데요. 단 한번도요. 지금이 1950년대는 아니잖아요! 성차별 같은 건 이제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항상 남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어요. 이제는 누구나 남녀가 평등하다는 걸 알죠.” (70쪽)
어른들의 외모 칭찬에 길들여져 그들의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된 에머 오툴은 자신에게 만족하기 위해서 외모에 대한 칭찬이 계속 필요했다. 그녀는 칭찬을 얻어낼 수 있는 행동에 착수했는데, 그것은 패션, 화장, 다이어트, 몸치장에 관련된 것이었다.(38쪽) 몸치장을 중심으로 한 10대로서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그녀는 상당한 에너지를 외모에 투자했다.(63쪽) 그런 그녀가 말한다.
“저는 어떤 차별도 겪어본 적이 없는데요. 단 한번도요. 지금이 1950년대는 아니잖아요! 성차별 같은 건 이제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항상 남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어요. 이제는 누구나 남녀가 평등하다는 걸 알죠.” (70쪽)
열여덟의 그녀는, 현재 여성들의 삶이 ‘스스로의 선택’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힘있는 지위에 여성이 적은 이유, 여성이 외모에 시간과 돈과 정신적 에너지를 그렇게나 많이 소비하는 이유,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이유, 여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라는 타격을 받는 이유 ― 그 모든 것이 선택이다. (71쪽)
그녀가 말하는 선택이란, 어떤 선택일까. 그 선택은 정말 그녀들의 ‘선택‘이었을까. 선택의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그녀는 구조structure와 행위주체agency사이의 긴장에 대해 설명한다. 행위주체는 개인, 즉 개인의 선택을 말하며, 구조는 사회, 즉 개인이 형성되고 행동하는 배경이 되는 맥락이다.
만약 당신이 행위주체가 우선이라고 열렬히 주장한다면, 즉 개인이 그가 하는 행동을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또한 당신이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문제를 그들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행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믿기 때문이다. 보수적·자본주의적 세계관은 개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이처럼 행위주체에 무게를 싣는 경향이 있다. ...
반대로 구조가 우선이라고 열렬히 주장한다면, 개인의 행동이 언제나 사회적 상황의 결과라고 믿는다면 개인의 성취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할 수 있다. 진보적·사회주의적 세계관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구조를 우선시한다. (73쪽)
구조와 행위주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데, 나이키 운동화를 훔친 가난한 10대 소녀와 국가가 지급하는 수당을 받아 생활하는 씽글맘에 대해 생각해볼 때, 더욱 그렇다. 소녀를 분에 넘치는 물건을 원하는 탐욕스러운 도둑으로, 씽글맘을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체제 전체를 고찰하는 것보다 쉬운 일(75쪽)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행위주체, 즉 선택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행위주체가 안고 있는 불리함을 무시하게 된다. 이러한 맹목은 젠더, 성, 인종, 계급, 능력, 그 외 무엇으로든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유리하지만 평등의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여성에게도 불리하다. (79쪽)
선택의 중요성을 강요할 때, 유리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이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불리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다른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무언가를 현재에는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노력의 결과라고 주장할 것이다.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에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면? 노동의 결과물이 아니라면? 그 사람을 유리하게 해준 조건이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불리한 사람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고, 도달할 수 없고, 나란히 설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경우라면, ‘선택’은 가진 자의 말이다. 가진 자가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남자, 백인, 이성애자, 유럽인, 도시인, 비장애인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자들에게만 유리한 단어다. ‘선택’은 여성에게 불리한 단어다.
그렇다면, 이 ‘선택’이라는 단어는 여성에게 어떻게 교육되는가.
(당시) 내가 탐독하던 도스또옙스키, 케루악, 오웰 ― 내가 속한 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남성 작가들 ― 의 작품을 전부 읽었을 때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성이 우월하다는 믿음을 내면화했다. (82쪽)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의 모든 주인공, 청소년기에 소비한 책의 작가와 영화의 감독들은 대부분이 남자다. 거의 다 남자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에서 여성의 선택은 무엇인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남성들의 관심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건 남성들이 찬성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인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자발적으로 성차별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83쪽)
그렇다면 성차별적 사회, 명확히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이 ‘페미니즘이라는 못된 사상’에 오염되는 때는 언제인가. 언제 여자는 성차별적 사회 속 성차별적 문화와 관습, 언어와 행동에 반항하는가.
벨 훅스는 『행복한 페미니즘』에서 여성은 자신의 성차별적 사고를 자각하고, 성·인종·계급을 근거로 한 여성들 간의 억압을 직면한 뒤에야 다른 여성과 연대하여 불평등에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97쪽)
결국엔 경험이다. 경험하고 자각해야한다.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옷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우리 생활 가까이에 스며있는 성차별적 요소에 노출되었을 때, 성차별적 사건과 사고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여성들은 ‘성차별’에 반대한다. 말할 수 있게 된다. 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다.
부제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으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그녀의 ‘몸’을 이용한 실험의 과정과 결과가 자세히 서술된다.
모자와 손으로 그린 수염, 품이 큰 옷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남장으로 19살 할로윈 파티에서 오래된 친구들과 새로 만나 인디클럽 동지까지 그녀를 남자로 오인하게 했던 남장 실험을 시작으로, 더블린에서의 대규모 도시 누드 사진전 참여, 삭발과 체모 면도 중지 등의 실험을 통해, 외모의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그녀를 오해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삭발한 그녀의 머리를 보고 그녀가 공격적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라면, 긴 머리의 그녀를 수동적일 것이라고 추측했을거라 예상할 수 있다. 젠더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불행하고 불안한 사람으로 추측한다면, 관습에 따라 여성성에 순응한 것을 사회적응과 정신건강의 징표(133쪽)라 추측한다는 것이다. 저항의 의미로 ‘가슴 내놓기’ 실험은 조금 복잡한 문제인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유를 주장함과 동시에 대상화되고 눈요깃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 방송에서 “남자들에게 겨드랑이를 보여줘!“라고 말하며,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그녀는 전 세계 유명세를 치루게 되었다.
<사진 출처 : http://m.cafe.daum.net/dmdfl/HFuM/114?q=D_BW52w5gGNbw0>
그녀는 체모 관리를 중지했다. 자신의 몸에 난 털을 정기적으로 면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는 목 아래 털을 깨끗이 밀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과 관리된 여성의 몸이 더 아름답다는 이야기, 여성의 체모는 역겹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 운동에 반대해 체모 면도를 중지했노라 선언했다. 털 난 아가씨로 살기로 선언했다. 그랬을 때, 단지 몸에 자라는 털을 밀지 않았을 때,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의 불편한 혐오의 시선. 급기야 그녀는 이런 이메일까지 받게 되었다.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어, 사진으로 대신한다.
여자가, 고정된 성역할과 범위를 벗어나겠다고 했을 때, 그녀가 받게 되는 분노와 모욕, 저주의 모습이다. 놀랍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성차별의 벽은 이렇게 견고하다. 이렇게나 강고하다. 단지 그의 미용철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241쪽)
여자도 사람이다(이게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생각이라는 것, 나도 안다). 여자도 털이 난다. 여자도 땀이 난다. 여기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잘못된 것은 우리가 타고나 신체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도록 길들여졌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공격받고 있다는 것이다. (212쪽)
그 다음으로 그녀가 관심을 가진 영역은 여성, 흑인, 성소수자, 장애인 차별의 수단이 되고 있는 언어의 수행적 효과에 대한 것이다. 조앤 롤링J. K. Rowling이 원고를 보내는 족족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뒤, 현재 출판사에서 필명을 J. K.로 바꾸라는 조언을 받고 성공가도에 올랐다는 이야기, 조지 엘리엇Geroge Eliot(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Mary Ann Evans)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모든 개인 서류와 계좌에서 이름에 붙는 직함을 ‘미스’에서 ‘박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여성이라는 사실, 미혼 여성인지 기혼 여성인지를 적시하는 게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249쪽) 그녀가 제안하는 젠더 중립적인 3인칭 대명사 ‘they’가 젠더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별화된 대명사에 대한 인식이 재확인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베드신’은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일으킨다. '베드' 위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서술되어 있고, 여성으로서 불편한 면이 적지 않아 이 부분은 패쓰한다. 저자가 솔직한 사람이었기에 쓸 수 있는 글이고, 여성이기에 쓸 수 있는 내용이다. 직접 확인하시길.
그녀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10대 소녀로서 남자가 되었던 그녀는, 삭발의 젊은이가 되었고, 털복숭이 아가씨가 되었다. 털을 다 밀고 나서 금발의 어여쁜 아가씨로 나타났고, 그리고는 다시 겨털을 기르고 있다. 그 중 하나도 그녀가 아닌 것이 없다.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마야 앤절루Maya Angelou는 말한다. “한 여성이 자기 자신을 옹호할 때, 그는 사실 자기도 모르게, 어떤 주장도 펼치지 않으면서, 모든 여성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시하라고 사회화된 사람으로서, 나는 이 말에 큰 도움을 받았다. 백인 중산층인 내 문제가 다른 수많은 여성들의 문제에 비하면 극히 사소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들은 똑같이 성차별적이다. 성차별이 발견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공적 행동으로써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로써 그것에 맞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쓰고 어디서 행진하든 상관없이 구조는 자가복제를 계속할 것이다. (353쪽)
제3의 성 아줌마이고, 전업주부로서 내가 겪는 문제는 다른 수많은 여성들의 문제에 비하면 극히 사소하다. 성차별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를 제기하고 공적 행동으로써 맞서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머의 책을 읽고 큰 도움을 받았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게 바로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파란색 뇌, 분홍색 뇌』, 『젠더, 만들어진 성』, 『아름다움의 미신』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를 가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한 행위들이 있다. 출산, 정자 생산, 모유 수유, 특정 수준의 경쟁적 스포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행위는 남녀 양쪽에 열려 있다. 기저귀 갈기, 등산, 선반 설치, 봉춤, 영양가 높은 4인분 식사 조리, 자동차 엔진 수리, 빗속에서 춤추기 등이 모두. (170쪽)
아직도 재생산 기능이 있는 신체를 지닌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전문용어로 멍청이라고 부른다. (171쪽)
페미니스트들에게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해야 한다고, 보다 상냥하게 굴어서 남자들도 이 운동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건 헛소리다. 우리의 의도는 남성의 특권을 해체하는 것이며, 여기에 설탕옷을 입힌다는 건 불가능하다.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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