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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평점 :

이 책이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 『총, 균, 쇠』보다, 바로 이전 저서인 『어제까지의 세계』보다 더 나은 점을 딱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쉬운 내용과 짧은 분량 때문이라고 말해야겠다. 200쪽이 조금 넘은 분량에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편안하게 기술되어 있다. 물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책의 문제의식이나 그에 대한 해답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관심 가는 몇 개의 챕터에 대해서만, 중학교 중간고사 사회 시험 준비하는 심정으로 대강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부유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있게 하고,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가 되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은 지리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이다(25쪽). 지리적 요인에 대해 살펴보자면, 적도에 가까울수록 토양의 비옥토가 낮은 박토이며, 유기물이 많아 농업 생산성이 매우 낮다. 공중 보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열대 지방에는 병원균이 많아 병에 걸리기가 쉽고, 또 열대성 질병 대부분이 ‘재발성 질병’이기 때문에 높은 사망률과 이환율(일정기간 내에서 이환자수의 특정인구에 대한 비율, 이병률 혹은 발병률이라고도 한다)을 보인다(31쪽). 가난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지리적 요인은 육지에 둘러싸인 입지 조건이며(37쪽), 마지막 지리적 이유는 ‘천연 자원의 저주’라는 패러독스이다(38쪽).
2. 제도적 요인이 국가의 빈부에 미치는 영향
살기 좋은 사회란 좋은 제도를 가진 사회를 말한다. 그렇다면 좋은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역사학과 고고학 등 사회과학의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복잡한 제도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정주사회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편 정주사회는 농업의 출현으로 잉여 식량을 생산해 저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복잡한 제도의 최종적인 궁극인은 농업이며, 다음의 궁극인으로는 저장할 수 있는 잉여식량을 확보하며 인구밀도가 높아진 정주사회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63쪽)
길들일 수 있는 야생식물, 야생동물이 집중된 지역 → 농업 발달 → 잉여 식량 발생, 높은 인구 밀도, 정주사회 → 왕족, 관료집단, 상인, 발명가등의 특수 계급 탄생 → 군장사회, 국가(중앙정부)
3. 중국은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가?
중국이 이런 선두적 위치를 상실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중국인이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가 세계를 정복하지 않고, 유럽인이 먼저 세계 곳곳으로 진출해 세계를 정복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물론 그 이유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여러 이론이 있기는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른바 ‘보물함대’ (treasure fleet)라 불리는 중국의 탐험대에 닥친 사건이 이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인 듯합니다. (93쪽)
통일된 제국의 단 한 명의 황제가 해외 원정에 필요한 결정을 독점한 중국과 달리, 여러 정치적 단위로 쪼개져 있던 유럽에서는 해양 원정대의 파견을 지시할 수 있는 황제, 왕과 대공 같은 명령권자가 다수였다.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쉽게 통일을 이룬 중국과 달리, 역시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통일 상태를 이루지 못한 유럽에서는 수십 개의 나라로 분할된 까닭에 수많은 군주가 수많은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단 한 명의 결정으로 이미 선두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중국의 해양 원정은 중단되었고,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는 이탈리아의 군주와 프랑스 공작, 포르투갈 왕, 스페인 백작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 부부를 설득한 끝에 범선을 지원받고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94쪽).
6. 건강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법,에서는 이 문단이 기억에 남는다.
이탈리아인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올리브유와 생선과 채소가 주원료인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식단은 인류의 전통적인 식단과 무척 유사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입니다.(177쪽)
우리나라 전통식도 인류의 전통 식단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면서...
건강을 원한다면, 이탈리아식으로! 건강을 원한다면, 한식으로!
7.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에서는 이미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심각한 기후변화를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활동을 줄이면 기후변화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인간 활동을 줄이자는 것은 화석연료를 덜 태우고, 핵에너지(여기에서, 조금 엥?했는데, 일단은 넘어간다)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얻자는 뜻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만이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한 쌍무협정을 맺어도 현재 배출량의 41퍼센트를 줄일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인도와 일본이 다자간협정을 맺으면 현재 배출량의 60퍼센트를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주된 장애물은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190쪽).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나는 이 문장을 꼽는다.
당신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미국인과 한국인은 언제 어디에서나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아이티나 르완다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티인과 르완다인, 그 밖에도 수많은 국민이 한국인과 미국인만큼 똑똑하고 똑같은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만 넉넉한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가용이나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고, 일터까지 걸어갑니다. 또한 자기가 직접 지은 주택이나 오두막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먹을 식량을 직접 재배합니다. 옷도 직접 지어 입거나, 아예 입고 지내지 않습니다. 건강관리와 치아관리는 꿈도 꾸지 못하고,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대중오락물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22쪽)
나는 1970년대, 서울에서, 여자로 태어났다.
1남 1녀의 장녀이고, 지금은 1녀 1남의 엄마다. 책을 좋아한다. 책읽기를 좋아한다. 커피를 좋아하고, 하이힐을 좋아한다. 짧은 치마를 즐겨 입고, 롱원피스를 자주 입는다. 백화점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좋아하면서도, 가능하면 시장 골목 할머니의 물건을 사려고 자꾸 들여다본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사회의 불균형이 어떤 방식으로 해소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으로 인한, 교육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교복을 입고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세월호 생각에 고개를 숙인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의식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분단 조국’에서 태어나, 끈질기고 오래된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밤에도 낮처럼 밝다는 강남 한복판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살인이 발생하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그 사건은 여혐에 근거해 일어난 일이다’라고 주장해도 살해의 위협은 느끼지 않을 정도의 사회에서 산다.
이러한 생각과 판단조차도, 정확히는 이러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조차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가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을 수 있는 건 그 책이 거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도서를 찾아 읽을 수 있는 시대, 환경, 조건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늦게 태어났고, 그리고 여러 가지 혜택을 무료로, 무상으로 누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실제의 내 삶은 그러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 때문에 부끄럽다. 내가 받은 축복과 행운에 걸맞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을 때 말이다. 지금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 나는 항상 할 말을 찾지 못한다.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