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아도 시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정좌를 하게 된다. 하얀 책을 읽을 때 장갑 끼는 걸 고려하시는 분에 비할까 보냐마는(안녕하세요~~ 아름답고 섬세하신 님^^), 시를 읽을 때는 손을 씻고 바르게 앉아 시집을 펼친다. 웬만하면 시집은 들고 다니며 읽지 않는다. 구겨지면 안 된다. 시집은 항상, 새 시집 같아야 한다. 한 편, 한 편 정성 들여 읽는다. 물론 오래 걸린다. 서너 편을 읽은 후에는 쉬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를 대하는 내 마음이 변한 건 아닌데, 이 두 개의 시집은 빨리 읽었다. 빨리 읽을 수 있었다. 그게 싫기도 했고 또 좋기도 했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 중에서는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가 좋았다. 해설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섹스, 알코올 남용, 폭력에 대해서는 불쾌하다는 반응과 ‘마초이즘(Machoism)’의 풍자라는 정반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129쪽)
불편한 시가 있는 건 사실이다. 불편하다는 건 그의 작품 속 알콜과 폭력의 문제 뿐만 아니라, 여성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마초이즘의 풍자라는 해설도 이해되기는 하다. 미묘하게 두 지점을 오가는 것 같다. 내가 더 불편해야 하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이 한 개의 시에 대해서는, 나는 많이 불쾌하지 않았다. 팬레터를 쓰고 찾아오겠다고 하고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말하는 여자들, 젊은 여자들에게 ‘나’는 말한다.
부디 그대의
몸과 그대의
인생을
그것에
걸맞은
젊은 남자들에게
주세요
―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 부분 47쪽
나는 시를 잘 못 외우는데(사실, 나는 뭐든지 잘 못 외운다. 전화번호도, 계좌번호도, 우편번호도, 도로명 주소도. 모두 다 숫자들이군. 시도 더한다. 시도 잘 못 외운다.), 유진목의 시 중에, 몇 개는 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당신을 중얼거립니다 나와 당신 하나의 문장이었
으면 나는 당신과 하나의 문장에서 살고 싶습니다 몇 개의 간
단한 문장 부호로 수식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는 인용도 참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당신, 이라는 문장」 부분 76쪽
나와 하나의 문장 속에 살 수 있는 당신을 생각하고, 인용도 참조도 필요하지 않은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달콤하고 따뜻하다.
어디로 가야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모든 게 다 당신이야 나
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에게만 있는 것이 고맙습
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내가 그리로 가겠습
니다
― 「첩첩산중」 부분 80쪽
하루 종일 달린다. 물 고인 논을 지나 마을을 지난다. 건장한 사내 백발의 노인 발가벗은 아이를 지나, 첩첩산중 사내들은 소를 데리고 사라져 가고, 나는 당신도 없고 사랑도 없고 욕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달리고 달려간다. 남빛 하늘로부터 시작해 이렇게 달리고 또 달리는 이유는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서다. 고마운 당신, 당신에게만 있는 당신에게 가기 위해서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내가 그리로 가기 위해서다. 당신에게로 내가 가기 위해서다.
나는 일생을 다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을 겁니다 무엇이 나를 중요하게 여긴단 말
입니까 언제든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은 편안합니다 행복한
순간이 오면 죽고 싶습니다 그럭저럭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도
보면 우유분단해서일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입니다
― 「밝은 미래」 부분 34쪽
행복한 순간이 왔을 때,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지는 않다. 죽지 않고 살아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 누리고 싶다. 어쩌면 내가 그런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죽고 싶도록 만드는 행복, 이젠 죽어도 괜찮겠다고 느껴지는 행복, 나는 그런 행복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이 순간이 멈췄으면 하는 행복이다. 어느 때, 어느 순간, 찰나의 느낌이다. 그냥 지금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 말이다.
아침을 먹고, 자리에서 두 권, 소파에서 1권, 학습만화 와이를 정독하던 아롱이는 학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공기 연습을 시작한다. 요 근래에 학급에서 공기가 유행이라 요즘 부쩍 공기놀이에 열심이다. 공깃돌을 던지고 받고 또 던지고 받는다. 설거지를 하다가 공깃돌을 던지고 있는 아이 앞에 앉는다. 아이가 놀라며 “왜에?”하고 묻는다. 나는 그 ‘왜’가 어떤 ‘왜’인지 안다. 아롱이의 ‘왜?’는 “엄마도 같이 할 거야?”하고 묻는 ‘왜’이다. 고개를 저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공깃돌을 던지고 받는다. 던지고 또 받는다. 이번에는 손등에 올린 공깃돌을 공중으로 던져 움켜쥐는 연습을 한다. 다시 잡은 공깃돌 3개. 아리랑은 더블이니까 6연. 학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공기놀이에만 열중한다.
내가 말한다.
“아롱아, 우리나라 4학년 어린이 중에서 행복한 어린이 10명 추리면, 네가 10명 안에는 들 거야.”
아무 말 없이 공깃돌을 공중으로 날리던 아롱이가 잠시 틈을 내, 고개를 들고는 말한다.
“아마, 5명 안에는 들 걸?”
다시 공깃돌을 던진다. 이번에는 공깃돌 2개. 아리랑에 성공했으니까 4연이다.
2016년 6월 20일 오전 8시 25분.
멈추고 싶은 시간.
행복해서 잠깐 멈추고 싶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