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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백설공주를 죽이려했던 왕비는 새엄마가 아니라 친엄마일거라 확신한다. 경험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매번 질투하지는 않지만 부러울 때가 많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 내가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얼마 되지도 않는 모성을 압도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금발이 거의 초자연적인 선물이라고 여겼다. 당신이 금발이 아니므로 나 역시 금발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오랫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불행한 방식으로 나의 머리를 길들이려 했다. (38쪽)
시작은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딸이 가진 금발을 질투하는 어머니, 딸의 둥근 눈썹을 시기하는 어머니. 아들이 잘생겼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딸도 그런대로 봐줄만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자신의 병을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지만 자신의 시중을 드는 딸에게는 불평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길을 잃어버리고, 열쇠를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어머니가 행복했는가 아니면 불행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주 잘 다듬어진, 꽃들이 만개한 평원에서 어머니를 만났던 반면(이것이 가짜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어머니의 불행이라는 진짜 늪에 머물렀던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의 정신이라는 풍경의 또 다른 부분에 아주 멀찍이 자리 잡고 있던, 어머니 본인도 애써 알려 하지 않던 그 불행의 늪에 말이다. (45쪽)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를 옹호하려 든다. 거짓말은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사람, 오랫동안 어머니에게서 사랑 대신 미움을, 안전에 대한 약속 대신 뜻모를 불안감만을 전달받았던 그녀가, 스스로를 잃어버린 어머니를 돌보는 모습은 마음에 큰 감동을 준다. 그녀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불행의 늪으로만 보였던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의 감정을 같이 느끼고, 그리고 같은 고통 속에 침잠하고, 그리고 같이 쉬려 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잃어버린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말이다.
어머니의 집을 처분하기 전, 남동생은 집 앞 살구나무의 살구를 모두 따서 그녀에게 보내온다. 100파운드, 40킬로그램이 넘는 살구가 세 개의 커다란 상자에 담겨온다. 무게에 짓눌리거나 좁은 곳에서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침실의 평평한 바닥에 종이를 펼치고 살구를 넓게 깐다. 온 집안 가득한 달콤한 살구 냄새, 여기저기 썩어가며 진물을 내는 살구. 살구 때문에, 침대 바닥에 놓인 그 과일 덕분에 그녀는 다시 동화를 읽기 시작한다. (26쪽)
‘백조왕자’ 이야기. 계모의 미움을 받아 낮에는 백조로 밤에만 사람이 되는 열한명의 오빠들을 위해 맨손으로 쐐기풀 윗도리 열한 개를 지은 공주. 모두 완성될 때까지 말을 할 수 없는 공주는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위험천만한 바로 그 순간, 윗도리가 완성되고 백조들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날아오른다. 백조왕자들은 공주가 던져준 윗도리를 입고 사람의 모습을 되찾지만, 막내오빠는 한쪽 팔이 완성되지 않은 윗도리를 입는 바람에 한쪽 팔은 여전히 백조의 날개인 채로, 그렇게 영원히 백조 인간으로 살게 된다.
남자들의 마법을 푸는 데 무덤가에서 손에 피를 묻혀 가며 모은 쐐기풀과 침묵으로 지은 윗도리가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 이야기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는 그저 추방과 외로움, 애정과 변신에 대한 이미지, 자신의 이야기를 입 밖에 낼 수 없어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설득력 있게 전해 줄 뿐이다. (30쪽)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상태를, 그녀는 동화 속 저주를 받아들이듯 그렇게 받아들인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에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어머니의 동화,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신데렐라 이야기, 신혼 첫날밤이 지나기 전 신부를 죽여 배신을 피하려는 술탄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셰에라자드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보다 더 극적인 메리 셸리와 울스턴크래프트 모녀의 인생 이야기, 그림 속에 작은 동굴을 하나 그리고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는 당나라의 화가 우다오쯔의 이야기,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옷장이 나오는 ‘나니아 연대기’,
그녀는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는 하나의 이야기, 바로 변신 이야기의 조각들이다. 자신을 안으려는 아폴로를 피해 월계수로 변해 버린 다프네처럼 그 운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도 있고, 자신의 남은 생을 극저온 상태로 보존하려고 애쓰는 부자들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도 있지만, 수용이냐 저항이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 변신 자체는 피할 수 없다. 위험으로부터 누군가를 구해 낼 수는 있지만, 변화나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그 후엔 다른 사람, 다른 무언가, 다른 장소가 된다. 전쟁은 잠잠해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국가도 사라지고, 가장 근본적인 구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썩어 간다. 한때 서로 전쟁을 벌이던, 육체들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이제는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연인이 되고, 새가 된다. 모든 훈장은 낯선 이의 장난감이 된다. 대포를 녹여 만든 교회의 종이, 다시 녹아 대포가 되어 다른 전쟁에서 사용된다. (122쪽)
어제의 저녁 하늘, 사랑의 밤, 산속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내 정신에 불을 댕겼던 어떤 깨달음, 춤, 조화로웠던 어느 날, 근사한 구름이 있었던 수천의 나날, 결국 사라져 버릴, 다시 볼 수 없을 그 순간들을 후손을 위해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아둘 수 있으면 좋겠다. ... 하지만 역사가로서 나는 이 모든 것이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사실이 쓸쓸하다. (126쪽)
그녀의 이 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사라짐’에 대한 것이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무엇인가가 다른 그 무엇이 된다는 것, 그렇게 변하고 없어지고 사라져 간다는 건 너무 두려운 일이라 여겨지면서 동시에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라지기에, 사라질 것이기에 더 소중하다는 생각,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기에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 아주 많이 늙어버릴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더 느낄 수 있다는 생각, 또는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감각을 잃어버린 나병 환자들의 이야기, 체 게바라의 전설적인 이야기 또한 아주 흥미로웠다. 그녀에 따르면,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수축시키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161쪽)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슬픔을 먹고 산다. 그것이 아름다운 서정시와 대중가요의 본질이며, 슬픔과 상심이 그렇게 달콤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감정,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과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173쪽)
아슈바고샤의 『불소행찬』 속 싯다르타의 이야기,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린, 변화를 강요하는 위기에 대한 이야기.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걸작 동화 『눈의 여왕』, 대상을 왜곡하는 거울 이야기. 얼어 죽은 남편과 아이들의 사체를 먹고 살아난 이누이트 여인 아타구타룩의 이야기, 프로이켄의 『북극 모험』. 블루스 음악가 찰리 머슬화이트가 알콜 중독으로 죽음의 위기에 몰렸다가 ‘아이가 우물에 빠진 사고 소식’을 듣고 술을 끊은 이야기, 아이를 성공적으로 구해낸 소방대원이 자살한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다. 다른 세계에서 온, 다른 이야기.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적었다.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글을 쓰다가 무엇이 무엇에 속하는지를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도 그렇다. 여기서 나는 내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도달한다. 어찌되었든, 원단의 뒷면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우리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그 패턴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 세계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 말이다.” (350쪽)
아직 3월밖에 되지 않았고, 사실 올해에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다. 책 소개 그대로다. 읽는다는 것, 쓴다는 것, 변해가는 것에 맞선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 질투하는 어머니로 산다는 것, 어머니를 돌보는 딸로 산다는 것, 그리고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이 책만큼 진솔하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책이 있을까 싶다. 내게는 그렇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실타래를 풀어가며 내내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무엇일까. 내 인생의 유리병 속, 절인 살구는 어떤 맛을 낼까.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어떤 냄새를 품고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녀가 다시 묻는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경계심과 의무감의 목소리,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는, 세상은 위험하고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목소리, 즐거움과 위험을 종종 혼동하는 목소리. 내가 처음 도시로 이사를 하자 그 도시에서 강간, 살해당한 젊은 여성들의 기사를 오려서 보내 주었던 어머니의 목소리, 본인에게 평생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막연한 시련과 손해를 늘 생각하던 어머니,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실수 자체를 두려워했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설거지를 마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천국으로 가니? 지전분한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가 천국의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면 어떡하니? (57쪽)
어린 시절의 나는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회의했고 무시당하거나 벌을 받을까 봐, 무언가를 들킬까 봐 늘 두려워했다. 이해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확신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만한 걸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많은 양의 글을 쓸어 담았다. 어린이용 이야기책을 읽고, 나중엔 소설을, 하루에 한 권씩 일주일에 일곱 권을 읽었다. 게걸스럽게 책을 파고들고, 말을 줄이고, 도서관에서 빌친 책 꾸러미를 집으로 날랐다. (100쪽)
우리는 습기와 건조함 자체가 신앙심을 형성하는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습도가 높은 지역 대부분에서는 윤회, 즉 삶과 세상의 끊임없는 재생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는 물론 끊임없는 죽음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습한 지역에서는 모든 것이 분해되고 다시 태어나며, 다시 세워져야만 한다. ... 건조한 세계에서는 변하지 않는 영속성이나 영원에대해 적어도 환상은 가질 수 있다. 사체를 미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건조시켜 보관할 수도 있다. (136쪽)
우리가 보기에 다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걷기에 필요한 기술과 확신, 그리고 걸으려는 의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천천히 알려지지 않는 존재로,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기술이나 사실들을 잃어버렸음에도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기능을 잃어버린 자아의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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