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설을 연애소설로만 읽기’던가 아무튼 비슷한 제목의 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모든 책을 ‘연애 소설’로, ‘연애 소설’의 틀로 읽겠다는 건데,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책을 읽을 때가 많다. 연애소설로 읽을 때, 연애 소설의 틀로 읽을 때, 제일 재미있고 제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인간의 이중성’을 발칙한 하녀 셀레스틴의 눈으로 고발한다. 셀레스틴의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의 앞부분은 셀레스틴에게 쏟아지는 남자들의 추파와 여자들의 질투가 주를 이루고, 그 다음으로는 셀레스틴의 불우한 가정환경 이야기가 나와 앞부분을 읽으며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녀의 심정이나 행동을 동정하게 됐다. 그녀가 모시는 고상하고 우아한 마님과 위엄의 나리들의 실제의 삶이 얼마나 추한지,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민낯으로 만나는 그들의 참모습, 감출 수 없는 욕망, 그리고 위선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다. 그건 그렇고, ‘연애 소설 프레임’으로 읽을 때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셀레스틴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젊은 청년 조르주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다.
“조르주 씨, 조르주 씨! 제가 당신을 힘들게 했군요. 오! 불쌍해라!”
그러나 그는 마치 보호받으려는 것처럼 내 곁에서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그리고 황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지금 행복해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200쪽)
큰 병에 걸려 요양 와 있던 조르주씨는 그의 할머니의 소개로 셀레스틴의 간호를 받게 된다. 그녀의 젊음이,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를 회복시키고 동시에 그를 파멸로 이끄는데, 조르주도 셀레스틴도 말 그대로 활활 불붙은 사랑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셀레스틴의 생명력에 이끌려 그녀를 사랑하게 된 조르주. 그녀를 사랑해 그는 좀 더 살 수 있었는데, 그녀를 너무 사랑해 병이 악화되어 결국엔 죽고 만다. 그는 마지막까지 사랑을 불태우다 그렇게 사그라들고 마는데, 그 사랑이 너무나 애절하다. 그 사랑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데도 조르주는 포기하지 않는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조르주의 선택은 그렇다. 조르주는 더 사랑함으로 자신을 죽이고, 그래서 영원히 산다. 영원히 살기 위해, 그녀를 완벽하게 사랑하기 위해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에 서둘러 들어선다. 그 길에 들어서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 지금 행복해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아, 사랑...
나는 한 노래에 꽂히면 그 노래만 듣는다. 하루에 20번씩 10일 정도는 똑같은 노래만 연속해서 듣는다. 200번 정도 듣고 나서야 다른 노래로 넘어간다. 근래에 꽂힌 노래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이다. 처음에는 복면가왕 캣츠걸(차지연)의 노래,라고 알고 있었는데, 곧 원곡이 이승환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
<차분한 차지연 버전>
<강렬한 이승환 버전>
이승환의 노래, 이승환이 작사한 노래라는 걸 알고 들었을 때, 나한테는 노래 속의 ‘너’가 자꾸 ‘채림’이라고 생각되는 거다.
우리 어떻게든,
무엇이 되어 있건
다시 만나 사랑해야 해요
그 때까지 다른 이를
사랑하지 마요
안 돼요 안 돼요
그대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
간절한 그리움
행복한 거짓말
은밀한 그 약속
그 약속을 지켜줄
내 사랑
우린 어떻게든, 무엇이 되어 있건 다시 만나 사랑해야 해요,라는 가사를 듣는데,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그게 너란 말야,하는데 가슴이 메어지면서 또 너무 좋다. 그렇게 한참이나 빠져서 아, 좋다, 좋아, 하고 있는데, 마지막쯤에 이승환의 애드립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애드립이 사자후 같으면서 예상과 다른 감정을 불러온다. 나만을 사랑한다,해서 그래, 나도 좋아,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저런 식으로 사자후를 하면서 덤빈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무서워지는거다.
네, 알겠어요. 그런데.... 네네, 알겠어요. 근데, 그만. 그냥 그만큼만 해주세요, 아, 네, 됐어요, 하고 싶은거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위키백과가 알려주기를,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는 이승환이 2006년에 발표한 9집 《Hwantastic》의 타이틀곡이다. 이 곡은 이승환이 2006년 5월에 MBC에서 방영된 《휴먼다큐 사랑》 - 〈너는 내 운명〉편을 본 것에서 모티브를 따온 노래로 이후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은 어려운 사랑, 힘겨운 사랑의 결실, 불치의 병으로 인한 원치 않은 이별,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그들의 애절한 사랑. 그들의 피끓는 사랑. 그렇게 이해하고 하니,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하고. 기분도 그럭저럭,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네, 좋아요. 계속 사랑해주세요.
우리의 몸은 결국엔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고, 최근에 읽었던 겁나게 두꺼운 과학책에서 본 것처럼 ‘나’라는 의식 자체도 뇌의 속임이라고 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결국에 그렇게 될 거라면, 몸은 늙고, 사랑은 식고, 사랑하던 사람들은 헤어지고, 먼저 간 사람은 두고 가는 사람 때문에 눈물 흘리고, 남겨진 사람은 외로움에 눈물 짓게 된다면, 결국에 모두 그렇게 되고, 그렇게 끝난다면, 그게 끝이고, 그 이후 ‘나’라는 의식은 없어지고, 내 육체의 흔적이 별의 일부가 된다면, 정말 그렇다면.
왜 나는,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계속해서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지 모르겠다.
100년도 못 사는 내가,
왜 사랑을,
그것도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을,
끝없이 이어지는 사랑을,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지,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