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책이 육아서로 읽히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는 ‘읽고 있는’ 모든 책이 육아서로 읽히던 때였다. 아이는 작았고 눈망울은 초롱초롱했다. 나는 3살 아이의 엄마이자 엄마나이 3살의 초짜였고, 무슨 일을 해도 조바심만 앞섰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 엄마 같은 ‘어머니’가 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항상 나를 억눌렀고, 유행을 선도하는 세련되고 근사한 ‘요즘 엄마’도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세상 모든 책이 육아서로 읽히던 때였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이자 아들러 심리학의 대가 기시미 이치로는 말한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독자들도 느끼게 되겠지만, 아들러 심리학은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매우 유익한 통찰을 준다. 타인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가 삶에 자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는 데 있어서 아들러 심리학만큼 도움이 되는 이론도 드물다. (8쪽)
그렇다. 나는 잘못 읽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책을 육아서로 읽고 있는 게 아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아이를 교육시키는 데 매우 유익한 통찰을 준다고 하지 않나. 나는 그 지혜를 약간 빌리고자 한다.
다른 아이도 아니고 자기 속으로 낳은 자기 자식에 대한 폭력이 극에 달해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암울한 뉴스가 전해지는 요즈음,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법망 밖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 쪽이 아련하다.
아이를 유기하고 학대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 못지않게 아이-부모 관계에 치명적인 것은 아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생긴다. 우리 아이는 수학이 약해,가 아니라, 우리 아이는 ‘혼합 계산’에 약해, 우리 아이는 ‘분수’를 어려워해, 라고 말하는 시대다. 터닝메카드를 사기 위해 마트 앞에서 몇 시간 줄을 서는 것쯤이야 특별한 내 아이를 위한 일이기에 아주 작은 각오조차 필요하지 않은 당연한 일이다.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 아이의 스케쥴을 짠다. 돌리고 돌리고 돌린다. 이 모든 게 다 너를 위해서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종착역은 의외로 가까운데, 아이가 이 진실한(?) 사랑을 거부할 때, 그야말로 초신성 폭발과 같은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그러느냐. 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마인데, 네가 그걸 싫다고 하느냐.
그래서 여기에 밑줄을 긋는다.
사실, 문제는 사랑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지 않다. 보통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금방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있기에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태어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원활한 대인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97쪽)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아이와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내 사랑이 크다고 강요하지 말고, 내 말만 주장하지 말고, 내가 부모라는 걸 앞세우지 말고. 같은 언어로 말하자. 서로 통하는 말을 하자. 의사소통을 하자. 커뮤니케이션 하자.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부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의 부모가 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인지도 몰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사랑도 필요하다. 사랑의 도움 없이는... 오전 내내 일기 1.5편을 어찌 감당하랴. 아하...
벌주거나 꾸짖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행동에 주목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생각한다. 그러나 칭찬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 (아이가) 칭찬받는 동안에는 부모를 자신의 친구라고 느낄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으면 곧 부모는 자신의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부모의 칭찬이 꾸중으로 바뀔 테니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실패를 겪을 경우, 아이는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104쪽)
그러니까 여기 오전 내내 일기 1.5편을 쓰는 어린이가 있다고 하자. 이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 이를테면 일기를 쓰다말고 『이스라엘에서 보물찾기』를 넘겨본다거나, 샤프에서 샤프심을 뽑아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할 경우,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서는 일절 주목해서는 안 된다. 대신 아이의 적절한 행동에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은 ‘칭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칭찬은 좋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행동을 중지시키고, 칭찬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 나의 미션인데... 책과 현실은 왜 이렇게도 상이한가. 알라딘굿즈 배트맨 마그넷 이어폰 와인더를 손가락에 끼고 좌우로 돌리며 책장을 넘기는 저 어린이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왜 그런거니, 아이야.
왜 책과 현실은 다른거니.
도대체 왜 그런거니.
(사진출처 : 알라딘굿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