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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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자가 사는 집’, ‘닮다’, ‘김대중주의자’, ‘인화하지 못한 사진’, ‘연학이 형 생각’, ‘아, 김근태’, ‘걸식’, ‘징병검사장에서’. 

가을이라 시를 읽게 된건 아니었지만, 가을에 읽기 좋은 시를 많이 만났다. 다 옮기고 싶지만, 전문을 실어야 하기에 간신히 두 개를 골랐다.

 

영산포 장날

 

광식이네 소 팔러 가는 날입니다

서둘러서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광식이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두 야단이었습니다

마당에서 광식이 엄마가

소의 고삐를 붙잡고

소에게 억지로 여물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소는 더 먹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물을 다 먹은 소는 마치 새끼를 밴 것처럼

배가 부풀어올랐습니다

이제 광식이 아버지가 소를 이끌고 문을 나서는데

광식이 엄마가 소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고생했다 잘 가거라

길에는 아카시아꽃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소는 오줌을 싸며 걷고

우리는 그 길을 뒤따라 걸었습니다

읍내에 이르러 광식이 아버지와 소는 우시장으로 가고

우리는 학교로 갔습니다

그날 광식이 아버지는

술에 취했습니다

우리는 아카시아꽃 향에 취했습니다

모두 흔들렸습니다                                   (‘영산포 장날‘ 전문-윤희상)

 

 

김승재

 

김승재는 나의 친구이다. 서울 장충초등학교 6학년 2반 담

임 선생님이다. 2008년 4월 10일, 집에서 잠을 자다가 갑

자기 죽었다. 오매, 우리집 대들보가 무너져부렀네. 고향

에서 오신 어머니가 영안실에서 밤이 새도록 통곡했다. 장

례를 치르는 동안 내가 죽은 친구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

다. 어린 제자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죽은 친구를 강진

의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몰래, 죽은 친

구에게 읽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유림이에요.

좋은 나라 가셔서

행복하게 사시고

다음 생에는 꼭 오래 사세요.                      (‘김승재’ 전문 - 윤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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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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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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