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가치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담긴 책은 박웅현의 [여덟개의 단어]이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2권 중반에서 중단해버린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겠다고 굳게 결심을, (작년에 하고 아직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결심을 했다.
이 책을 펴서 제일 먼저 읽은 챕터도 당연히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것이었다.
안나는 스스로가 놀랄 만큼 브론스키를 사랑합니다. 그만큼 브론스키가 완벽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안나가 모든 걸 브론스키에게 쏟아부었다는 의미겠죠. 브론스키는 늘 같은 브론스키인데 안나가 달라지는 겁니다. 이런 사랑을 브론스키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과잉된 생기와 열정을 가진 안나의 사랑은 두 몫의 사랑이거든요. 이것이 세료자와 브론스키에게로 나뉘었다가 브론스키에게만 흘러가요. 그건 브론스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입니다. (263쪽)
과잉된 생기와 열정, 두 사람의 몫의 사랑을 가지고 있던 안나의 사랑이 브론스키에게로만 흘러갈 때, 브론스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브론스키가 안나를 외면하려 했던 이유가 그녀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집착 때문임은 확실하니까.
이런 제안도 재미있었다.
가끔 강의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는데요. 만약 고골이 『안나 카레니나』를 썼다면 누가 주인공일까요? 스치바가 주인공입니다. 대표적인 생리학적 인간이죠. 잘 먹기만 하면 모든 게 해소됩니다. 도덕적인 문제도 생리학적 문제로 해소되는 인간형이죠. 고골의 소설에 등장하는 속물적 인간의 전형입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썼다면 누가 주인공일까요?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인물은 카레닌입니다. 오쟁이 진 남편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는 뭔가 굴욕적인 대우를 받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254쪽)
러시아 문학사 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의 두 거장,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교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는 유럽이라는 타자에 대한 대타의식으로서의 러시아(자아)라는 민족의식을 강조합니다. 그에게는 ‘나’와 ‘타자’를 어떻게 구획할 것인지가 『가난한 사람들』 이후 줄곧 이어진 문제의식이었고, 그것이 나중에 러시아 대 유럽이라는 대립으로 확장됩니다. (중략) 하지만 톨스토이는 타자보다 ‘나’의 세계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니힐리즘과 대결했다면, 톨스토이는 에고이즘과 싸웠다고 생각되는데, 톨스토이의 경우 데뷔작부터가 자전 3부작이죠. 자기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이게 확장되면 러시아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통일성의 문제가 됩니다. (243-4쪽)
대중의 눈높에 맞춘 강의로 엮어진 책이라 그런지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읽고 있다. 러시아가 그렇게나 오랜 기간동안 몽골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걸 몰랐던 1인으로서, 책 앞부분에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개관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넘어 푸슈킨과 투르게네프의 작품으로도 손뻗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