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들은 빠지세요
매달 마지막 주엔 엄마들 발표 시간이 있다. 처음에 아이들이 '이게 어디 쉬운거냐, 엄마들도 한 번 해 보라'더니, 엄마들이 책을 준비해와 성심성의껏 발표를 했더니만, 자기들 간식 시간이 줄었다며 목소리 높여 '엄마들은 빠지세요. 저희끼리 할께요'를 외쳐댄다. 그래서, 나온 타협안이 한 달에 한 번씩 한 명의 엄마만 발표하는 시간을 갖자,이다.
2. 피천득의 [인연]
저번달에 J언니는 피천득의 [인연]을 준비하셨다. 다양한 글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설명을 들은 후에는 [인연]을 함께 읽었다. 요즘 수필같은 신선함은 좀 덜 한듯 해도, 나름의 운치와 멋이 있었다.
3. 김용택의 [콩, 너는 죽었다]
이번 달에는 내 순서다. 김용택 시인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초등교사이자 시인이었던 그 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명도 알려주고, '섬진강' 시들도 보여주었다.
이 시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를 하나씩 적어와 낭독하기로 했는데, 아래의 시가 아롱이를 포함, 무려 2명에게 선택받은 오늘의 시다.
달
누나
올
추석에 꼭
와
4. 밭
이 시집에서 내가 고른 시 하나를 읽어주며 '엄마 시간'을 마치기로 했다. 내가 읽으면 자꾸 코믹버전이 되서, 전공자이신 H언니에게 낭독을 부탁했다.
밭
아가
새며늘아가
내 시집와서 보니
식구가 열셋이더라
바가지만한 뚝배기에 밥을
퍼담아놨다가
낮밥 먹을 때
이 그릇 저 그릇 퍼주고 나면
수수밥티 하나 안 남더라
부엌바닥에 쭈그려앉아
뚝배기에 맹물을 부어
김치 한번 집어먹고
맹물 한 모금 마시고
김치 한번 집어먹고
물 한 모금 마시다 보면
맹물로도 어느덧 배가 부르더라
긴긴 여름낮
얼매나 식은땀이 흐르고
얼매나 해가 길었었는지
서산을 골백번도 더 바라보며
콩밭을 맸단다
시어머니 손윗동서
시동생에 시누이들
여름에는 삼베빨래
언 강 깨고 무명빨래
손이 쩍쩍 째지면
모자란 젖을 짜서
쩍쩍 갈라진 생살 틈에 흘려넣으면
얼마나 쓰리고 아렸는지
제금 나와 살면서
허기진 배 움켜쥐고
풋보리 잡아 절구질
풋나락 잡아 절구질
허리띠를 졸라매고
무릎이 벗겨지더락
밤을 새워 삼품앗이
어치게어치게
밭을 장만했느니라
저 밭을 장만했을 때는
세상이 내 세상 같고
훨훨 날 것 같고
몇날 며칠 밤을 설쳤단다
아가
새아가
강 건너 저 밭을 봐라
저게 저렇게 하찮게 생겼어도
저게 나다
저 밭이 내 평생이니라
저 밭에
내 피와 땀과 눈물과 한숨과
곡식 무성함의 기쁨과 설레임과
내 손톱 발톱이 범벅되어 있느니라
곡식이라고 어디 그냥 자라겠느냐
콩 하나 심으면
콩은 서른 개도 더 넘게 달리지만
이날 이때까지
요모양 요꼴이구나
하지만 새아가
저 밭을 이제 누구에게 물려주고
손톱을 기르며 늙겠느냐
내 곁을 곧 떠나갈
새며늘아가.
낭독을 마친 후, 엄마들 세 명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는데, 우리의 촉촉한 감상은 '간식을 빨리 먹자'는 아이들의 원성에 묻혀 버렸다. 얼음빨래에 손이 텄는데, 왜 젖을 바르냐, 로션을 발라야지, 하는 딸롱이의 말에, 나는 그냥 '카스타드'를 한 입 베어먹었다.
5.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이 시집이 김용택 시인의 최근간 시집같다. 제목이 김용택 시인답지 않아서 은근 기대가 된다. 사실, 이 두 시집도 읽고 싶다.
폼으로 사 두고 다 읽지 못한 시집들이 많은데, 아, 항상 그렇지만, 시는 어렵다. 지난 주던가, '빨간 책방'에서 이동진씨가 '남들이 좋다는 시도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이동진씨도,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그렇다는구나. 히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