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영장 의자, 옆자리의 엄마가 꺼낸 책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딸롱이가 6살 때 수영을 시작했다. 그 때도 9월이었으니까, 벌써 5년이 되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오리발 사는 데까지가 목표였는데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네 가지 영법을 한 번 쭉 훝었을때, 오리발을 산다. 오리발을 사서, 오리발을 끼고, 자유형부터 다시 배운다. 보통 7개월 길게는 9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 정도는 해야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수영을 해도 영법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들을 한다.), 하다보니 이렇게 오래 하게 되었다. 여자아이가 할 만한 운동이 몇 가지 없다는 것도 이유였고, 검도를 시키기에는 나이가 좀 어렸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앉아 기다리는 걸 싫어했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이유 중의 이유였다. 모래 놀이터가 마음에 안 들기도 했지만, 놀이터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는 게 조금 힘들었다. 아이들끼리 나가 놀라고 하고 안 나가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면야, 아, 세상이 험해서라고 말해야 하나. 

아무튼, 이렇게 수영을 오래 하다보니 제법 큰 대회에 나가 금메달, 은메달도 따오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다보니,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듯 하다. 다른 집 엄마들은 이제 고학년인데,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냐고 하는데, 우리 애들은 학원을 안 다니다 보니, 남는 게 시간, 치이는 게 시간이다. 올초부터 아롱이도 시작하게 되서, 둘 다 어푸어푸 수영을 한다. 

5년차면 대리. 나도 수영계에서 이골이 났다. (흐흐, 이골이 났다.) 처음에는 아이들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지만, 내가 쳐다본다고 아이들 수영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자세가 틀렸다고 내가 교정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이들 모습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닌데, 이런데, 예를 들면 수영장에 나와서까지 책을 읽어야하나 싶지만, 사실 그 시간이 내가 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책 읽을 수 있는 시간. 신경이 쓰이는 건 옆에 앉은 엄마들이다. 대부분 아는 엄마들인데, 혼자 책을 쫘악! 펴기가 좀 그렇다. 다른 층에서 몇 줄 읽다 오기도 하고, 매점에 들어가서 읽기도 하는데, 요즘은 자꾸 매점 주인 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시고. 나는 어쩌나 하다가. 

여기까지 써놓은 걸 읽어보니 나, 좀 이상한 사람같다. 아니, 책을 읽으면 얼마나 읽는다고. 한 달에 고작 몇 권씩, 그것도 쉬운 책으로만 읽는데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어야 하나. 하필 그 시간에, 다른 엄마들은 도란도란, 시댁, 친정, 교육, 아이들, 드라마 이야기꽃을 만발하게 피우건만 거기에서 책을 쫙! 펼친단 말이냐. 하지만, 난 수영계 입문 5년차 대리급이다. 그렇게 월수금 1시간씩 5년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다. 딸롱이가 어렸을 때는, 언니들과 얘기하고 노는게 재미있었지만서도, 이젠 아... 오늘은 여기까지.

월요일에 (할려고 했던 이야기가 이제 나온다.^^) 수영장 로비에 들어섰더니, 저 안쪽 두 번째 의자에 DH 엄마가 책을 읽고 있는 거다. 앗싸~ 하면서 나도 옆에 앉아 책을 펼쳤다. 열심히, 뚫어져라 책을 읽다가 옆을 바라보니, 책표지가 A4 종이로 가려져 있다. DH 엄마에게 물었다. 무슨 책인데, 책을 쌌어요? DH 엄마가 말했다. 버릇이라고, 자기가 읽는 책을 남들이 보는게 싫다고. 내가 또 물었다. 그래요? 무슨 책인데요? DH 엄마가 들고 있던 책을 보여주었다. 


 

 

 

 

 

 

 

 

 

 

 

 

 

내가 읽고 있던 책 <살인자의 기억법>. 

둘 다 김영하 작가님 책이다. 이렇게 되기 참 힘든데. 엄마들 이야기 꽃이 만발한 수영장에 나란히 앉아,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보고 있다. 하하 이런. 수영장에서 생긴 일이다. 

 

2. 살인자의 기억을 말하는 리뷰

좋은 리뷰란 어떤 리뷰일까. 짧은 내 생각엔, 리뷰를 읽은 사람이 그 책을 읽고 싶다고 느끼게 해 주는 리뷰가 좋은 리뷰인것 같다. (더 좋은 리뷰는 리뷰를 읽은 사람이 그 책을 꼭 사서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해 주는 리뷰다.ㅋ) 리뷰를 쓴다고 하면 좋은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다. 눈부시게 하얀 컴퓨터 화면에 한 자, 한 자 글자를 찍어나갈 때, 의미없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 다시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좋은 리뷰를 쓸 수 있나. 어떤 리뷰가 좋은 리뷰인가. 

예를 들어, 내가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그 줄거리를 요약해, 이를 테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건데, 알고 보니 이게 이거라서, 저게 저렇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해준다면, 우연찮게 내 리뷰를 읽게 된 어떤 사람은, 내가 읽었던 박진감 넘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김영하의 이 책, 재미있으면서도 통찰력 있는 이 책, 굉장한 파괴력, 단숨에 읽히지만 긴 후유증을 남기는 (가수 이적) 이 책, 시야가 좁아질 정도의 질주를 스키드 마크도 없이 일시에 끝내버린 급정거, 폭발하는 굉음들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같은 체험을 주는(문학평론가 권희철) 이 책을, 결국엔 읽지 못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이다. 줄거리를 아는 것이 중요한가. 핵심 사건의 시작과 끝, 주인공의 등장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가.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설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김영하의 책에서 그의 '힘'을 발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손을 잡고 (손을 잡고? 좋다~) 그와 함께, 그가 보여주는 세상으로 같이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책은 한글로 씌여 있다.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57쪽)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 가다가 이 구절에서 멈짓하고 말았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 진정한 친구. 그런 친구가 지금 내게는 있는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잘못 하는 경우에라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나를 지지해줄 사람. 그런 사람들. 아, 다행이다. 내일, 그들을 만난다.  

은희가 평소답지 않게 말꼬리를 올린다. 저리 발끈하는 걸 보면 그놈과 같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제는 변명조차 하지 않는 은희. 어차피 내가 다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내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기억을 붙잡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놈은 푸른 수염이다."
"무슨 수염? 그 사람 수염 안 길러." 
은희는 교양이 부족하다. (100쪽)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70대 노인이 자신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살인범과 싸우고,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기억과 싸우고,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는 딸과 싸우면서, 그들간의 갈등과 긴장을 다루면서도 아하, 김영하 작가는 잊지 않는다. 숨가쁘게 그를 쫓아가고 있는 나를. 그의 글을 읽고 있는 나를. 그가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건지, 내가 그의 이런 수작(?)에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건지 모르겠다. 푸른 수염이라니, 아.. 교양이 부족한 은희라니.   

 

3. '작가의 말'에서 또 울컥. 

난 요즘 왜 이렇게 주제파악이 잘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테다. 물론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작가는 말하고 싶은게 있을테다. 하지만, 난 항상 '작가의 말'에서 울컥한다.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던 시절, 나는 부모에게 얹혀살았다. 오밤중에야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야 일어나는 게으른 아들과 달리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어나 집 안팎을 돌보셨다. 항상 어지러운 내 책상이 보기 싫었을 텐데 용케 잘 참으셨다. 하루는 내가 "누가 아침마다 내 책상만 치워줘도 꽤 괜찮은 작가가 될 텐데"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이층 내 방에 올라와 책상을 말끔히 치운 후,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비우고 물로 말끔히 씻어 다시 갖다놓으셨다. (172-3쪽)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오밤중에야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야 일어난다. 뭔가 하는 것 같기는 하고, 뭔가 쓰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런 글들이 도대체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돈은 많이 못 벌어온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 그리고 일년, 이년, 삼년, 사년이 지난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녀 교육에 가정 경제력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환경에서, 학교를 졸업한, 말 그대로 공부를 마친 아들이 집에서 이러고 있는 것을 태연히 볼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은 그렇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교를 졸업했으면 자기의 몫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의 아버지는 그 분이 아들의 일을 얼마나 이해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들을,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는 아들을 그렇게 지켜보고, 기다려 주셨던 것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대단한데, 물로 말끔히 씻어진 재떨이라니. 아들을 사랑하고, 만개할 아들을 기다려주는 아버지의 깊은 정이 느껴진다. 

결국 이렇게 멋진 일들이란, 이렇게 멋진 소설이란, 기다려준 아버지, 작가의 아버지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마운 이들이 많지만, 이 소설은 작가 지망생 아들의 재떨이를 매일 비워주신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다. 내가 해외에 모무는 동안 큰 병을 앓으신 후 아직도 투병중이시다. 건강히 오래 사셔서 언젠가 아들이 '꽤 괜찮은 작가'가 되는 날을 보셨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172-3쪽) 

겸손히 말해서 그렇지, 이미 김영하 작가는 '꽤 괜찮은' 작품을 여럿 출간한 "꽤 괜찮은 작가'이다. 

 

갑자기 그의 작품에 만족할거라는데에 알사탕 1만개를 걸으셨던 야클님이 생각난다. 그의 작품이 무척이나 괜찮으니, 알사탕 1만개는 내가 야클님에게 드려야 하는건지.....

 

김영하의 작품은 단편 <옥수수와 나>만 읽어봤는데,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영하 컬렉션>에 눈이 간다. 차근히 읽어봐야겠다. 갈길은 멀고, 시간은 많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을 하다가 이런 좋은 책을 찾았다. <글쓰기의 최소원칙>. 

기쁘다. 상호대차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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