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사랑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5살 어린이의 뽀뽀같던 첫키스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공지영의 책이었던가. 소설 속 ‘나’의 딸이 말했다. 엄마 나이의 다른 아줌마들을 보면 눈에 빛이 없다고. ‘인생, 뭐 새로운 게 있겠어?’하는 눈빛이라고. 그 글을 읽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나 역시 그런 눈빛으로 세상을 사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직 내게 ‘처음’이라 할 만한 책들이 많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것.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처음이다. 11살 연상의 여인을 사랑해 결혼하고, 그녀의 아들을 위해 소설 구상을 했다는 그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2. 한 사람 안에 두 사람
만사에는 종말이 있다. 아무리 넓은 그릇도 결국엔 채워지게 되어 있다. 결국 이렇게 잠깐 악에 순종하게 된 것이 내 영혼의 균형을 파괴하고 말았다. (96쪽)
지킬과 하이드. 하나의 영혼 안에 공존하는 두 개의 자아. 지킬과 하이드는 외적인 면에서부터 완벽하게 구별된다. 올해 오십 줄에 접어든, 부드러운 표정에 크고 건장한 체격의 지킬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른바 ‘호감형’ 인간이다. 이에 반해 하이드는 핼쑥하고 왜소하다. 기형의 느낌이 들기는 했으되 딱히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외모, 그를 본 모든 사람들은 기이한 혐오와 반감, 두려움을 느낀다. (25쪽)
사회 속에서 명망을 쌓은 지킬,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 명예와 영광. 하지만, 스스로 정한 고귀한 원칙 때문에 부정한 삶을 감추고 살아가던 지킬은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에 의거해, 인간이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82쪽)을 갖게 된다.
완전히 다른 모습의 두 사람이 사실은 한 사람이라는 것. 두 개의 자아가 하나의 육체 가운데 공존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킬이 계속해서 하이드가 되려 하는 것은 하이드로 변했을 때의 쾌감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유일하게 순수 악의 존재인 하이드로 변했을 때, 그는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고, 젊어진 것을 느꼈다.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던 지킬은 결국엔 약물 없이도 하이드로 변하고 마는데, ‘잠깐 악에 순종했을 때’ 종국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떨리는 손으로 유서를 작성하는 지킬. 하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하이드다.
3. 이번주는 휴가철이라 그런지
아이들 방과후 수업에도 빠진 아이들이 많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짐 챙기는 게 귀찮다고,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햇살이 너무 좋다. 아니면, 너무 뜨겁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