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세계다.

소설 읽는 것만큼 좋아하는 건 ‘작가의 말’ 읽기다.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기발하고, 환상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 언어의 마술사가 내게 말을 건다. 평범하지만,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작가들의 말’이 난 좋다.

‘작가의 말’보다 더 좋아하는건, ‘수상소감’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 소설을 시작했는지,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방황했는지 작은 목소리,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수상작품’보다 ‘수상소감’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수상소감 쓰는 것도 연습하나.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야 만다. 특히 좋았던 건, 한겨레 문학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의 수상소감이다. 지금 한 번 더 읽고 싶은데, 책이 없구나.

2. 이미 ‘책머리에’서부터...

이 책은 누구에 대한 책인가. 니체의 책에 대한 책이다.

니체, 설명이 필요 없는 세기의 철학자.

그의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를 만나기 전에, 차라투스트라를 만나기 전에, 먼저 ‘고병권’을 만난다.

나는 “모든 사상가는 자기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기 먼 시대의 감옥에 갇힌 ‘할아버지들’과 어떻게 참된 대화를 펼칠 수 있는가. 시대를 뛰어넘는 우정의 커뮤니케이션은 그들이 자기 사상의 정점에 서 있던 그런 건강 상태로 다가올 때에야 가능하다. 그들이 우리와 동시대인으로서의 건강을 누릴 수 있을 때, 그들도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7쪽, 책머리에)

이건, 니체의 문장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이 아니다. 그를 설명하는, 그를 해체하고자 하는 고병권의 문장들이다. 한 문장, 한 문장 당당한 그의 문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그가 구사하는 문장들이 ‘철학자’의 문장이라는 것, 또 하나는 그가 구사하는 문장들이 너무나 ‘문학적’이라는 것. ‘책머리에’서 나는 직감하고 만다. 니체만큼, 차라투스트라만큼, 고병권도 내게 커다란 산으로 다가올 것임을 말이다.

3.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위대한 건강이란 하나의 건강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 하나의 진리, 하나의 이상을 찾는 고단한 수행의 과정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을 즐겁게 횡단하는 변모의 예술이다. 위대한 건강을 지닌 자는 자기 안에 수백 개의 힘들을 갖는, 이른바 ‘힘들의 과잉 상태’를 즐기는 사람이다. (55쪽)

니체의 생애를 살펴볼 때, 질병이 없었을 때보다 질병이 있었을 때가 더 일상적이었다. 니체의 전 생애는 질병과의 ‘원치 않는 동거’였다. 특히, 두통과 근시가 심했다고 하는데, 1888년 말부터는 정신장애가 아주 심해졌다고 한다.

의사 자크 로제는 저서 『니체 신드롬』에서 1880년을 기점으로 니체의 상태가 울증이 지배하는 조울증에서 조증이 지배하는 조울증의 만성적 단계로 변했다고 말했다(40쪽). 이는 니체의 성격, 행동, 표현, 문체, 작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고병권은 인생 후반기 니체의 변화에 있어서, 1877년부터 1881년까지 니체를 괴롭혔던 질병에 대한 니체 자신의 평가, 즉 “가장 건강한 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모험”이었다는 니체의 말을 조금 더 신뢰하는 것 같다. 질병과 치유의 체험을 통해 니체가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세계의 운명을 치유하는 철학적 원리들을 발전시켰다(58쪽)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한 ‘힘들의 과잉 상태’는 다양한 자아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힘들의 배치가 바뀌면서 자아가 달라져 다양한 자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즉, 니체는 스스로를 ‘힘들의 과잉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그 방안으로 질병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고병권도 지적했듯이 니체 같은 예술적 수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아 분열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다.

고병권의 자세하고 세밀한 설명과 분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분이 어려웠다. 물론, 무지의 소치겠지만, 다양한 자아를 갖는다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든 일인데, 니체는 어떻게 다양한 자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질병의 여러 변화 과정을 스스로 조절했을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인'과 ‘광인’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었을까. 이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상에 자기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마는 니체만큼 자기 작품과 그 속에 표현된 작가로서의 자신을 사랑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자기가 써 온 작품들을 쭉 리뷰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라는 낯 뜨거운 제목을 달았을까. 심지어 그는 자기 책을 읽는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내 책 중의 하나를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드문 존경의 하나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60쪽)

웬만해서는 이렇게 말하기 힘들지 싶다. 보통 글을 쓸 때는, 글을 엮어 책을 낼 때는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가 쓴 글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책으로 엮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내놓고는 말한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리뷰를 쓰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리뷰를 쓰는가> 아니다, 안 되겠다.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 사는 것을 보니, 그 삶이 완전히 ‘가상 현실 체험하기’였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뒤에 벌어질 일에 관한 이야기로 삶을 탕진하고, 대지에 발 붙인 자들은 대지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천국’ 이야기로 날밤을 세운다. (138쪽)

 

 

물론 고대 사회에도 노동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어떻게 노동 없는 사회가 가능하겠느냐’는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주장과 그것을 찬미해야 한다는 주장은 별개다.

이제 노예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로, 이른바 “만인의 동등한 권리” 또는 “인간의 기본권”,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권리, 또는 노동의 존엄과 같이, 예리한 시 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짓말로 하루 하루를 이어가야 한다. (「그리스 국가」, 175-6쪽)

 

 

국가는 가장 냉혹한 괴물이다. 국가의 모든 것이 가짜다. 잘 무는 버릇을 가진 국가의 이빨도 훔친 것이다. 그 내장도 가짜다. 너희가 국가라는 새로운 거짓 신을 숭배할 때 국가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가는 너희의 자랑스러운 두 눈을 매수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 181쪽)

 

당연하다. 강신주가 생각난다.

인문학자가 비판해야 하는 세 가지, 종교, 자본, 국가에 대해, 니체는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특별히, 현대 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찬미는 우리 모두를 ‘노예’보다 더 한 ‘노예’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고병권의 지적도 재미있다.

TV에 출현하지 않는 개미들, 즉 기적을 체험 못한 대부분의 개미들은 불행히도 우화 속 주인공과는 많이 다르다. 그들은 우화 속 개미와 똑같은 여름을 보내지만 똑같은 겨울을 맞이하지 못한다. 현실을 보면 개미와 베짱이 운명이 뒤바뀐 예가 휠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름철에 너무 많이 일한 개미는 겨우내 디스크에 걸려 누워 있고 보험 혜택도 못 받아 병원비 걱정으로 날을 세는데, 베짱이는 최신곡이 떠서 소위 잘 나가는 스타가 된다. (172쪽)

물론, 요즘은 사정이 조금 바뀌었다. 베짱이도 노력 없이는 ‘스타’가 될 수 없다. 언제 데뷔할지도 모른 채 고단한 연습생 시간을 견뎌내야 하고, 인기를 얻어 많이 알려졌다 해도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 없이는 스타의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연기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하고, 휴식기에는 얼굴도 좀 고쳐야 하고, 남녀불문 몸매 관리도 해야 한다. 그래도, 베짱이는 개미보다는 나은데, 개미는 한여름 땡볕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해도 남는 것이 없지만, 20대 초반의 아이돌들은 50억짜리 주택을, 아니 별장을 구입해서는, 서로 이웃사촌을 맺고는 사이좋게 행복하게 잘도 살더라. 역시, 개미보다는 베짱이. 요즘 대세는 베짱이다. 노래하자. 춤추자.

4. 예의상으로는

이 책을 읽었으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것이 예의겠지만서도, 비는 너무 많이 오고, 습도는 너무 높고, 그리고 곧 폭염이 몰려올 거다. 예의에 좀 어긋나더라도 이해해 주신다면, 이 책으로 도전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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