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해의 시작은 3월 4일이다.
일년의 시작은 1월 1일이 아니다.
학교 다닐 때는 한 해의 시작이 3월 4일이다. (가끔 3월 3일이 되는 경우도 있고, 2일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올해는 3월 4일이다. 텔레비전에서 아무리 새해가 시작되었다느니, 올해가 계사년이라느니 떠들어대도 소용없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 4일이 곧 1월 1일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그렇다. 그러다 회사에 들어가서 보니, 일년의 시작은 3월 4일이 아니라, 1월 1일이었다. 1월 2일, 하루 쉬고 회사에 나가면 1월 2일자 서신이 속속히 들어와 책상 위에 착착 올려진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1월 2일인데, 일하는구나.
그러다 퇴사를 하고 아이들 시간표에 내 시간표를 맞추다 보니, 다시 새해의 시작은 3월 4일이 되었다. 그제는 3월 4일, 아롱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딸롱이는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했다.
2. 작년 3월인가, 4월부터 딸롱이가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난 학원의 논술 수업이나 족집게 고액 과외가 아니라, 문화센터에서 발레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 한 명, 언니 한 명과 함께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가는 모임이다. 이제 4, 5학년이 되는 세 명의 아이들은 수영이나 발레, 미술 같은 예체능을 제외하고는 ‘학업’ 관련 수업을 듣지 않는, 이른바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들이다. 요즘엔 학원 안 다니는 얘들을 찾기 어렵다. 그건 엄마가 직장맘이냐, 전업주부냐와 별로 상관이 없는 듯하다. 학과 공부가 조금씩 어려워질 때, 엄마와 아이들은 학원을 택한다. 우리, 학원에 다니지 않는 엄마와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책 한권씩을 추천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읽을 책을 중심으로 간단한 독후감을 한 쪽씩 쓴다. 모임이 가능했던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제일 중요한 요소는 엄마들이 서로를 ‘좋아한데’ 있었다. (*^^*) 아래는 최근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들이다.
엄마들이 ‘읽히고 싶은’ 책들이 있고, 아이들이 ‘읽고 싶어하는’ 책들이 있다. 엄마들은 ‘고전’을 좋아하고, 아이들은 ‘만화책’을 좋아한다. 엄마들은 ‘성의 있고 정제된 독후감’을 원하고, 아이들은 ‘다시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다.“로 독후감을 마친다. (’빨간 머리 앤’과 ’동물농장’이 아쉽게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
3.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읽는 자율독서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읽는 ‘자율 독서(Free Voluntary Reading)’란 원해서 읽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자율 독서‘란, 독후감을 쓸 필요가 없고, 한 장(chapter)이 끝난 다음에 퀴즈에 답하지 않아도 되며, 단어의 뜻을 모두 사전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 독서는 좋아하지 않는 책은 그만 읽고,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읽기와 쓰기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늘 이런 식으로 읽는다. (15-6쪽)
이 부분을 읽다가 ‘아!’하고 탄식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독서 모임은 읽기와 쓰기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자율 독서’에 반하는가? 우리 (엄마들은) 도서 목록에 (엄마들이) 좋아하는 책을 넣으려 애쓰는데, 이것은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하는 ‘자율 독서’에 반하는게 아닌가?
사실, 아이들은 '만화책‘을 독서목록에 넣어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번번이 엄마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 했다. 그러다 결국엔 두 명의 아이들이 더 이상 모임을 하지 않겠다고 반기를 들었고, 그래서 얻게 된 대안이 “아이들이 선택한 책 한 권, 엄마가 추천한 책 한 권, 그리고 만화책”을 번갈아 읽기로 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만화책이 독서능력 향상에 미치는 긍정적인 요인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즉, 만화책이 독서에 있어 교량 역할을 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여러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128쪽)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는 “토론 및 문학 서클”이 있다. 제1장에서 지적했듯이 학생들은 읽은 내용에 대해 짝이나 모둠원과 토론을 하면서 성취도가 높아졌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교사와 학생이 일대일로 만나 학생이 읽은 내용에 대해서 토론하고 앞으로 읽을 책을 계획하는 활동은 그다지 성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106쪽)
그렇다면 우리 독서 모임은 “아이들이 책 읽는 것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걸까. 토론을 하면서 성취도가 높아진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러할까.
매주 월요일, 아이들은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독후감을 발표하고, 그 후에 엄마들의 간단한 코멘트를 듣는다. 엄마들의 설명이 길어질 때, 엄마들의 질문이 길어질 때, 아이들은 싫어하지만 다음 시간이 간식시간이라 억지로 듣는 척 한다. 그리곤 즐거운 간식시간을 갖는다. 간식 시간이야말로 우리 모임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추진체이자, 중심체이다.
책 선택이 고민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읽게 하는 것과 엄마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게 하는 것. 어떤 것이 좋은 걸까. 아이들이 엄마가 추천한 책을 보고 ‘엄마, 이 책 정말 재미있어!“ 하는 경우도 사실 많은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쌍둥이 바꿔치기 대작전>이 이런 평가를 받았다.)
정답은 없는 것 같고, 내 고민은 점점 길어진다. 이따 내가 좋아하는 언니들을 만나 다시 한 번 상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