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이다.

다음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예정.

 

 

 

 

 

앨리스는 에릭이 언제 분통을 터뜨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149쪽)

그러니까, 앨리스는 에릭이 언제 화낼지 알 수가 없었다는 거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버럭 화를 내던 에릭은 금방 세상에 다시 없는 부드럽고 다정한 남자가 되기도 했다. 앨리스는 자신이 그 남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에릭은 초조한 앨리스가 점퍼 소매를 잡아당기는 일은 도저히 참아낼 수 없어했지만, 그의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일에 대해서는 앨리스를 위로하고, 상황을 해결해줬다.

공개석상에서는 앨리스를 우연히 알게 된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그녀와의 저녁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물론, 에릭도 일면 이해가 된다. 휴가지에서도 “우리 둘의 관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하고 새초롬한 얼굴을 들이대며 물어대는 여자는 별로다. 그래도, 나는 앨리스에게 말하고 싶다.

바보야, 갠 그냥 나쁜 남자야.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176-7쪽)

어느 누구와의 사랑이든, 어느 때의 사랑이든, 이 말은 맞는 것 같다. 슬프게도,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말은 맞는 말이다.

집에서 통조림 토마토 수프를 혼자 먹으며 앨리스가 꿈꿔왔던 사랑은 “당신이 ... 하면 정말 좋아.”하고 말해주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거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그 사랑이, 그 마음이, 그 태도가 계속되리라는 믿음을 가져선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내 마음의 방향과 흐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나와 함께 하는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일지 아닐지 알 수 없을테니까.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상상하고는 다르리란 말을 하는 거라구. 그건 힘든 일이야.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가계부를 맞추고, 두 사람 다 고단하고 짜증날 때도 감수해야 하고. 거기에 매혹 따위는 없어. 남녀가 관계 맺는 게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키스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면, 꿈이나 꿔. (23쪽)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이 계속될 수 있는 사랑인가.

짝사랑. 짝사랑이 능사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