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같이 아름다운 문장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굳이, 과감히, 후회 없이 이 문장을 대표문장으로 꼽는다. 나는 이 문장이 그렇게도 좋다. 주옥같이 아름다운 문장이라면 다음과 같다.
* 남의 숨겨진 야심을 잘 찾아내는 사람은 대개 그 자신이 동일한 야심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유난히 남의 욕망이 눈에 잘 들어올 때는 먼저 자기 내면을 조용히 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인생의 슬픔과 묘미가 있습니다.
*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꼼짝 못하셨듯이 저도 아내에게는 꼼짝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가 제일 마음에 든다. 어떻게 하면, 이들 부자는 ‘아내에게 꼼짝 못’ 하는가. 어떻게 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남편을 꼼짝 못 하게’ 하는가. 그 비결은 무엇일까.
원래는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하고 누린 다음에야 어른이 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훌륭한 어른’이 됩니다. 그저 ‘어른 행세’하는 법만 배운 소년들이 ‘훌륭한 어른’ 타이틀을 거머쥐는 셈이죠. 인간이 평생 써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볼 때, 지랄이라는 실탄을 거의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90쪽)
지당한 말씀이다. 지랄을 사용하지 않고, 차분히 도서관과 학교, 학원을 오간 사람들만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사람만이 ‘사회의 지도층’이 될 수 있다. 범생으로 살아온 3, 40년, 이젠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인정받는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사용해보지 않은 ‘지랄 실탄’이 살아서 꿈틀꿈틀 요동치고 있으니.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가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내면의 힘 같은 거죠. ...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기 위치를 확보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 용기 또는 에너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관계를 유연하게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원칙은 거의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120쪽)
관계를 끝장낼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관계를 유연하게 지속시킬 수 있다. 이 명제가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관계를 끝장낼 용기라. 관계를 끝장낼 용기, 관계를 끝장낼 용기라. 모범생 김교수님의 말씀이 과격하다 못해 가히 혁명적이다.
본인의 트위터에서 밝히셨듯이, 이 책에 대한 고신 신원하 교수님의 서평은 참 적절하다.
“김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는 신학생들과 의식있는 교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만, 등급을 매기자면 PG다. Under Pastor's Guidance, 목사 신학자의 안내 때론 필요.”
왼편 뺨을 돌려대는 것은 나약하게 “나를 한 대 더 때려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왼편 뺨을 때리려면 주인은 오른편 손바닥을 이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른편 손바닥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것은 대등한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노예가 주인에게 왼편 뺨을 돌려대는 것은 때릴 때 때리더라도 나를 더 이상 노예로 보지 말고 평등한 인간으로 인정해달라는 반항입니다.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은 역시 목숨을 건 결기입니다. (123-4쪽)
그렇다면 이 구절은 너무나 많이, 너무나 오랫동안 잘못 해석되어 왔다. “왼쪽 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돌려내라.” 누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나의 왼쪽 뺨을 때렸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오른쪽 뺨을 돌려대십시오.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십시오. 아, 이게 아니었단 말이지.
그럼 이렇게.
왼쪽 뺨을 때린다.
왜요? 왜 때려요? 어디 한 번 맞짱 떠 볼까요? 에?
아.....
써놓고 보니, 은근 시원하네.
결국 그날 밤 책상에 앉아 제 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저입니다. ...“네 책을 왜 또 사니?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하니? 밀어내기하니?” (144쪽)
이 구절은 너무 웃겨서, 너무 웃겨서, 올려본다. 저자 → 어머니 → 아내 → 저자. 공포의 먹이사슬? ㅋㅎㅎ
계층이 고착화되는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한 두가지 특이한 성공 사례를 들어 "더 큰 꿈과 비전을 가져라" "열심히 하면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메시지는 자칫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만 살찌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195쪽)
절대 찬성이다. 현 상황에서 계층 고착화는 출신 대학을 통해 공고해진다. 하지만, ‘좋은’ 대학은 모두가 가고 싶어하니 무엇을 근거로 대학 입학을 결정해야 하나. 그게 수능이다. 비행기도 안 띠우고, 출근 시간도 늦춰서, 듣기 평가에 방해 안 되도록 전 국가가 지원하는 시험, 수능.
그런데, 어찌 보면 학원금지, 과외금지되었던 이전의 학력고사 시대가 오히려 ‘학습 능력’, 정확히는 ‘암기능력’을 평가하는 측면에서는 더 공평했던 것 같다는 저자의 의견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입학사정관제, 반대한다. 부모의 도움으로, 때마다 세계여행 다녀오고, 여기저기 기관에서 인증받고, 그 스펙으로 유수한 대학에 들어가는 것,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 반대한다. 차라리, 그냥 점수로, 점수로 승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농촌지역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은 EBS 동영상 강의를 통해 수준 높은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고,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교재를 공급하고,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를 개발해서, 실제 수능에 출제하고. 그리고, 나머지 변별력은 논술을 통해 해결하도록 한다. 쓸데없이 어려운 문제들, 교수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 문제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어려운 문제 말고, 각 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문제들을 출제하고, 학원에서 외운 ‘모범 답안’ 말고, 독창적인 답안에 좋은 점수를 준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만약 제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삼남매 모두 대학교수가 되어, 한국사회에서 나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결국 자신들은 진정한 ‘사자’가 아니라,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당나귀’일 뿐이라는, 저자 형님의 통찰은 정확하다.
특별한 당나귀를 추종하면서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게 사자가 만든 규범인 것도 모른 채, 그 규범을 손에 들고 끊임없이 다른 당나귀를 사냥합니다. (164쪽)
그들 가족도 어디까지나 성공한 ‘중산층’일 뿐이다. 진짜 부자동네 아이들은 동네 싸움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중산층동네 아이들과 산동네 아이들만 서로를 미워하며, 싸울 뿐이다. 그렇다면, 그 싸움, 중산층 아이들과 산동네 아이들의 싸움, 이제는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싸움의 가장 큰 조종자이자 수혜자인 진짜 부자동네 아이들은 저 쪽에서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서, 시원한 얼음동동 레몬에이드 마시며, 그 싸움 보고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