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0년 11월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1980년 1월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는데, 국어 교사이자 젊은 소설가였던 아버지가 수도에서 글만 쓰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며 직장을 그만둔 것이 계기였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 검푸른 기와를 올리고 문과 창문에는 유리 대신 하얀 종이가 발라진 정든 한옥을 떠나, 서울 외곽의 수유리 언덕에 있는 양옥집으로 옮겨갔다. 가족 모두가 새로운 삶에 차츰 적응해 가던 5월 17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 전해인 1979년 10월, 십팔 년 동안의 군부 독재를 이끌었던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서울의 봄‘이라고 불린 그 시기를 틈타 또 한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마침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불과 4개월 전, 사소하고 다소 즉흥적인 이유로 나의 가족이 떠나온 도시, 내가 태어나 유
년을 보낸 바로 그곳, 그때까지 그저 작고 평범한 교육 도시였을뿐인 그곳에서 계엄에 불복종하는 항쟁이 일어난 것은 그다음날인 5월 18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오후 한시, 수많은 시위 군중들이 모인 도청 앞 광장에서 군대는 집단발포를 했고, 이후 생존을 위해 시민들이 무장하며 ‘광주 공동체‘가 태어났다. 짧고 평화로웠던 시민 자치가 이루어지던 도청으로, 탱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되돌아온 것은 5월 27일 새벽이었다.
신군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를 제외한 다른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을 폭동이자 내란으로 이해했다. 그리나 나의 가족은 광주에 친지와 친척, 친구들을 두고 왔기 때문에 그 일의 의미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학살이자 항쟁이었던 그 열흘의 시간. 평범한 사람들이 총상자들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서 헌혈을 하고, 시장에서 음식을 나누고, 무고하게 살해된 자들을 위한 장례를 날마다 함께 치르며 버텼던 절대공동체
어른들은 우리 남매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절대로 그린 말을 하면 안 된다. 광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서는 안 돼." 그렇게 그 일은 나에게 영영 숨겨야 할지도 모를 무거운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내가 문득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 곧 이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여름으로조차 끝내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것은 어떤 정치적 각성이라기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후 이 년이 흐른 1982년, 아버지가 광주에서 사진집 한 권을 가져왔다. 증언을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만들어 유동시켰던 책이었다. 이때의 기억을 나는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그 사진을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이 넌 뒤 여름이었다.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가 터미널에서 구했다고 했다. () 어른들끼리 사진을 돌려본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렸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므여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밭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지, 검으로 깊게 내리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나의 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난 서울의 여름, 이상한 열정으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있는 열두 살의 내가 있다.
그건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서는 놀랍
게도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엌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픈 소년 칼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 요나탄이 말한다.
네가 죽으면 하얀 새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거야 나는 너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얼마 뒤 집에 불이 나고, 칼을 입고 뛰어내린 요나탄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과연 하얀 새가 되어 창가로 날아온 요나탄이 들려준 말대로 뒤이어 빵으로 숨을 거둔 칼은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그곳은 아름답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들장미 골짜기의 일이라는 무자비한 독재자가 괴물 카틀라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사람들을 지배하고 핍박한다. 이웃한 벚나무 골짜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에게 맞서는데, 요나탄은 ‘사자왕‘이라는그곳에서의 별명대로 용감하고 순정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싸움의 과정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칼이 서서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사자왕 칼‘이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일인칭 화자인 칼이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으므로, 처음부터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를 이해했다. 형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까지.
거기에 더해, 칼이 관찰하는 독재자 일의 모습.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카라,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
이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결국 승리하기는 하지만, 그 싸움의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반군의 지도자 오르바르만은 옳지 않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기억한다. 그 어두운 감과 폭력의 기억으로 그늘진 그러나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세계, 낭기얼라에서 소년들이 다시 죽음의 형식으로 함께 떠나가는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그후 삼십여 년이 흘러, 오슬로의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다시 완독한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왜 연도를 착각해왔는지 깨달았다.
나의 내면에서 이 책이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1980년 아홉 살의 내가 문득 생각했던 그 여름을 이미 건너지 못했으므로 가을로도 영영 함께 들어갈 수 없게 된 그 도시의 소년들의 넋이 그로부터 삼 년 뒤 읽은 이 책에서 두 번의 죽음과 재생을 겪는 소년들에게로 연결되어 내 몸속 어딘가에 새겨졌다는 것을
마치 운명의 실에 묶인 듯.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의불투명한 벽을 단번에 관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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