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은 사람을 떠나게 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이든 바로 그런 상황을 발판으로 삼아 딛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고독이라면 고독 그 자체를 스탠드 포인트(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신의 입지)로 여기고, 거기서부터 재미있겠다고 생각되는 일을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스탠드 포인트가 불량이어서 발판이 비틀거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득 깨닫고 보면 옆에 붙잡을 수 있는 난간이 있고, 손을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타인이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 심리는 불만을 쌓아나갈 뿐입니다. 나도 모르게 푸념이 늘어납니다. 

노인의 푸념은 듣는 사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나쁜 버릇입니다.
그리고 푸념만 늘어놓는 노인 곁에 다가와 줄 사람은 없습니다. 푸념은 주위 공기를 음지처럼 차갑게 물들입니다. 반대로 - P-1

만사를 즐거워하는 노인 곁에서는 양지의 냄새가 풍겨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간혹 무슨 일을 겪든 초조해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는 노인들과 만납니다. 그분들 주위의 10미터 안팎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살아오면서 덕을 쌓아 올렸기 때문입니다. 덕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말로써 정의하기가 어렵겠지만 한 가지 기준을 세워보자면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고, 그렇게 찾아낸 의미를 인생에 끌어들여 즐기려고 하는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본질적인 이유를 추리하는 능력이 발달합니다. 그런 능력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분노에서 점점더 멀어집니다. 
그런데 요즘은 분별력을 갖춰야 할 중년과 세상물정에 통달한 노년들마저 금방 화를 내기 일쑤입니다. 
자기 입장과 견해에 집착하는 유아성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군가의 신경을 자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마다살아가는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이렇게까지 다를 수있을까, 하고 놀람과 충격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다행히 내 친구들은 그들과 너무 다른 나를 보고도 "그런 거야?" 하고 웃어줍니다. 내 앞에서 "당신이 옳아." "실은 - P-1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같은 빈말은 절대로 입에 담지 않습니다. 그들과 다른 나를 보며 놀라워하고 그래서 즐거워합니다.

자신만의 생활 방식과 취미를 확립하고, 남들과 다름에 머뭇거리지 않고, 나와 다름에 거부하지 않고, 그가 누구든, 어떻게 살고 있든 그의 시간들에서 운명과 의미를 발견한다면그 사람은 이미 예술가입니다. - P-1

버릇처럼 "여러분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장담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완벽하게 안전한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안전 제일의 인생을 꿈꾼다면 집 안에 틀어박혀 외출하지 않는 생활이 정답입니다. 나는 재수가 좋으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지금도 재미난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멋진 경험입니다. 

위험한 곳에 가더라도 어차피 머지않아 죽게 될 나이이므로 자유롭고 평온합니다. 
어린 자녀가 기다리고 있다면 위험은 피하는 편이 좋겠지요. 
장년이더라도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는모험은 피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대학생이라든가, 대학은 졸업했어도 결혼할 때까지는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장년도 그리 자유로운 시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노년이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모든 족쇄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처지입니다. 아껴두었던 모험에 나설 시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모험이야말로 청년과 장년이 아닌 노년기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 P-1


내가 죽은 후에는 무엇 하나 바라는 게 없습니다. 좋게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도 없습니다. 
육체의 사라짐과 더불어 나의 존재 전부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깨끗하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이 세상에 대한 죽은 자의 예의라고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어머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꽤 오랫동안 몸이 불편하셨는데 외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곤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옷과 반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유품은 짚신 두 켤레와 옷 두 벌이 고작입니다. 옷 두 벌은 내가 오키나와에서 사온 전통 명주로 "이건 나중에 내가 입을 거니까 누구주지 말아요." 라면서 어머니에게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83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는 다다미 여섯 장에 반 칸짜리 반침, 조그마한 주방, 화장실이 붙어 있는 별채에 장롱 - P-1

하나만 두고 생활하셨습니다. 유품 정리에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연인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쯤에는 어머니 명의로 된 저금도 바닥이 났습니다.
약간의 재산이라도 남겼다간 재산 처리 때문에 유족이 힘겨워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자식을 위한 마지막 베풂입니다.
유산 문제로 싸우는 것보다 비참한 광경은 없습니다. 유산이 적다고, 많다고 해서 옥신각신하는 세상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유언장이 의무처럼 느껴집니다. 자녀가 많은 집에서는부모가 남긴 오시마쓰무기(大島紬, 아마미오 섬의 전통 공예품으로 고급 견직물) 한 장 때문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건 큰딸, 이건 둘째딸, 하고 생전에 유품을 나눠주거나, 버리거나,
혹은 팔아서 상속인 수에 맞게 현금을 나누는 등 화근의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 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본 것을 부려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인 향기로운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H마트 식당가에서,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첫 장을 찾아 헤맨다. 

어느 한국 어머니와 아들이 앉은 테이블 옆에 앉아서, 두 사람은 무심코 급수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충실하게 계산대 앞으로 가서 수저를 가져다가 제 어머니와 제 앞에 깔아놓은 종이 냅킨 위에 올려놓는다.
 아들은 볶음밥을, 어머니는 설렁탕이라고 부르는 사골 수프를먹는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먹는 법을 가르친다. 꼭 우리 엄마처럼. "양파를 여기에 찍어 먹어봐."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녀가 그렇게 된 것은 상당 부분은 부모의 책임이며, 나머지는 당사자의 타고난 천성입니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는말할 수 없습니다.

불평하더라도, 원망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깝습니다. 

자녀의 불효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때그때 밝고 즐거운 기분이 드는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므로 일일이 놀라서는 안 됩니다. 
다만 증오심을 최대한 억제하고, 되도록 잊고 사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겠지요. 

이 세상은 조금 체념하고, 깊게 고민하지 말고,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바꿔 보는 것만으로 환한 빛과 시원한 바람을 아낌없이 베풀어 줍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녀가 좋은 소식을 알려왔을 때는 잘됐구나, 하고 기뻐해 줍니다. 
만에 하나 자녀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면 출소한 날 저녁에 대문을 열어 맞아주고,
목욕물을 데워주고, 밥을 지어 먹입니다.
 자녀가 어떻게 행동하든 이를 받아주는 게 부모의 책임입니다. - P-1

관혼상제는 ‘우리식‘ 대로

돈의 사용 방법도, 관혼상제도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알리지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어머니와 시부모님 장례식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이야기했다간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까지 소노 씨네 문상엔 가봐야 되는 거 아닐까, 하고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일곱 시부터 당시 총리였던 나카소네 씨와 대담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녹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침 일찍 총리관저로 출발한 사이에 남편과 아들이 화장터로 관을 옮겼습니다. 녹화를 마치고 총리 관저 입구의 경비실에서 상복으로 - P-1

갈아입은 후 화장터로 달려갔습니다. 
남편에게 "집에서 관이 나올 때 누가 보지 않았죠? 하고 묻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완전 범죄도 가능하겠지."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에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하고 둘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외가쪽 사촌 형제들과 임종까지 시중해준 가정부 등 20명이 우리 집에 모여 오후 네 시부터 장례식을 시작했습니다.

 밤샘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촌들이 "이모님이 돌아가셔서."라는 사유로 회사에 조퇴계를 제출하기에는 그 정도시간이 딱 알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복은 일절 거절했습니다. 사촌 여동생과는 이런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까만 옷을 입고 오면 안 돼. 우린 비밀 장례식을 할 거니까."
"그럼 뭘 입고 가요?"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무슨 옷을 입고 우리 집에 올 거야?"
"지난번 세일 때 산 와인색 슈트를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이번에 보여드려."
조의금도, 화환도 모두 거절하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이 신경 쓰이는 눈치여서 학급 회의 때처럼 전원에게서 2000엔씩 거둬 꽃을 준비했습니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근처 중국 음식점에서 성대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험담을 서로 질세라 떠들면서 먹고 마셨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내년에도 또 모였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도 무척 기쁘셨을 겁니다. - P-1

시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의리 때문에 문상하러 오는분이 없도록 외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팔십, 구십까지 장수하시고 집에서 노환으로 편히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사회적으로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쓰기보다는 고인이 생전에 마음으로부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더없이 따뜻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 모든 게 ‘우리식‘ 대로 밀고 나갔기에 가능했습니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 본 것을 부려 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인 향기로운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H마트 식당가에서,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첫 장을 찾아 헤맨다. 어느 한국 어머니와 아들이 앉은 테이블 옆에 앉아서. 
두 사람은 무심코 급수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충실하게 계산대 앞으로 가서 수저를 가져다가 제 어머니와 제 앞에 깔아 놓은 종이 냅킨 위에 올려 놓는다. 아들은 볶음밥을, 어머니는 설렁탕이라고 부르는 사골 수프를 먹는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먹는 법을 가르친다. 꼭 우리 엄마처럼. "양파를 여기에 찍어 먹어봐."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녀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이 힘들다면 한 달에 한 번, 그마저도 힘들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마다 한 번, 그조차 무리라면 1년에 한 번은 의무로써 부모님을 찾습니다.
부모는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말쑥한 옷을 입고 남아 있는 체력과 수중의 돈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도착하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전에 저지른 실수를 지적하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을 기회로여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조심성과 위로와 예절이 필요합니다. 데면데면 서먹하게 지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쁜데 여기까지 오느라 혼났겠구나."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라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서로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이 자녀와 부모의 성숙된 관계입니다.

부모님이니까 내버려둬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P-1


환자 중에 생활 보조금을 아껴서 적지 않은 돈을 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조카에게 모두 줘버리곤 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간호사들을 위해 과자 한 봉지를 사서 "같이들 먹어요."라는 말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그 사람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내 생활에서 이웃 사람들은 매우 소중합니다. 여러 가지 일로 자주 신세지고 있는 분들에겐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큰며느리에게 부모님을 맡겨놓고는 "뭘 잡숫게하는 거예요." "더 다정하게 해드려요." 라고 쓸데없이 참견하는 시누이도 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매일 보살펴주는 큰며느리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고 그 마음을 표현한다면 시누이의 말도 얄밉게 들리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면 어쩌다 찾아오는 딸이나 조카에게 주느니 함께 사는 며느리나 신세지고 있는 양로원 직원들에게 베푸는 편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