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이야기 하나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소유하고 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성한 것들이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피부색이 붉은 사람, 즉 인디언)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여기가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 품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종족들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들이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 주는 피와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거미줄을 짜는 것이아니라 다만 그 거미줄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

우리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당신네가 약속한 보호 구역을 가질 수 있어야 할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짧은 여생을 이어갈 것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의 기억이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될 때도 이 기슭과 숲들은여전히 내 종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당신들의 아이를 위해 이 땅을 지키고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아메리카 인디언 수쿠아미쉬족 추장의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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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부산특별시>가 선사하는 웃음의 핵심도 우리나라의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반항‘입니다. 이 코너는 부산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웃음으로 만듭니다. 방송국아나운서 면접시험에 서울 출신 지원자가 등장하여 자신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말하자 부산 출신 면접관들은 "에이! 이거 뭐꼬? 서울대 지방대 아이가?"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 사람들을 무시하는 현실이 이 코너에서는 완전히 뒤집힌것이죠. 여기서 커다란 웃음이 터집니다. 지역차별주의에 대한 반항이 <부산특별시>의 웃음 포인트입니다.
프로이트의 방대한 저작 중에서 직접적으로 유머와 농담을 다룬 글들이 있습니다. 그의 저서인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1905년)와 짧은 논문인 「유머」(1927년)가 그 대표작입니다. 프로이트는「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코미디(희극적인 것)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농담(조크), 코미디, 유머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다 우리가 잃어버린 쾌락을 다시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발달하면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억압에 의해 쾌락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웃기는 것은 잃어버린 쾌락을 다시 얻는 것입니다. 쾌락을 얻기 위해

그러나 초자아는 유머라는 방식에 의해 자아를 위로하고 고통을막아줍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이 유머러스한 태도를 지닐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드물고 귀한 재능입니다. 심지어유머를 즐길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머를 구사하는사람은 앞에서 예로 든 사형수의 사례처럼 숭고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프로이트 유머론을 이해하려면 그가 세 가지 관점에서 심리적인 삶(심리 기구)을 고찰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학적인 관점(충동론), 경제학적인 관점, 지형학적인 관점이 그것입니다.
첫째로, 역학적인 관점은 충동론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관점은심리적인 사건들을 외부 자극을 배제하고 심리적인 힘들의 놀이로 보는 관점이지요. 우선, ‘자아 충동‘과 ‘대상 충동‘이 있습니다.
이 배후에 더 기본적인 충동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로스‘로서항상 합일을 추구하는 충동이며 다른 하나는 타나토스‘(죽음의충동)로서 살아 있는 것의 해체로 이끄는 충동입니다. 이중에서에로스적인 힘의 외화가 리비도라고 불립니다.
둘째로, 경제학적인 고찰에 따르면 충동들의 심리적인 대표자인 표상이나 감정에 특정한 양의 에너지가 투자(카텍시스)되어 고착됩니다. 심리적인 기구는 이러한 에너지의 정체나 고착을 예방

하고 그곳에 실린 자극의 총량을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갖습니다. 심리적인 사건의 과정은 쾌락 불쾌의 원칙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절됩니다. 이 경우 불쾌는 어떤 식으로든 자극의 증가와 관련되고 쾌락은 그것의 절약과 연결됩니다.
셋째로, 심리 기구에 대한 지형학적인 고찰에 의하면 심리 기구는 1) 이드(Es)라는 충동 자극의 담지자. 2) 이 이드가 외부 세계에 의해 변형되어 표면화된 자아(Ich), 3) 이드에서 생겨나 자아‘를 지배하고 인간의 특징적인 충동 억제를 대표하는 ‘자아‘
(Überich)로 나눠집니다. 특히 초자아는 대단히 잔인해서 내면화된 사회적 억압의 기관인 것입니다.

웃음은 경제적인 절약이다<큰 세계>와 <부산특별시>가 프로이트가 말한 반항의 웃음‘에대한 대략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면, 「개그콘서트」의 <힙합의 신>은 반항의 구체적인 기술‘을 보여줍니다. 프로이트에게는 그 기술‘이 무엇인가도 중요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꿈의작업이나 농담의 작업으로 나타나지요. 이를 통해 그동안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이 우리의 의식에 나타나게 되지요.
프로이트에 따르면 억압된 욕망이 가는 곳이 ‘무의식‘이라는우리 마음의 창고입니다. 무의식에 쌓인 생각과 감정들의 흔적이 꿈과 말실수, 농담(초크) 속에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농담은 뭔가 드러나지 않은 것
‘숨겨진 것‘을 끌어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농담의 기술을 꿈의 작업과 연결시킵니다. 그래서 그가 이어서 "농담기술의 핵심으로 인식됐던 대체물을 갖는 압축의 흥미로운 과정은 꿈-형성 과정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동일한 심리적 과정이 꿈 형성 메커니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농담기술에는 자리바꿈, 사고 오류, 무의미, 간접직 표현, 반대를 통한 표현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꿈 작업에서도동일한 기술이 사용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것입니다.
<힙합의 신>에서 개그맨 이세진 씨는 랩 배틀 도중에 자신의사업인 제과점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그와 관련된 단어들을 랩에 포함하려 합니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 사회자들로부터 빵을홍보하는 단어들을 말하지 말라는 제재를 받습니다. 이에 이세진

은 어떻게 하든 제과점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실수를 가장하여랩 내용에 다양한 빵의 이름을 교묘하게 배치합니다.

내 성격 알잖아? 날 고로케 (그렇게) 몰라?
내가 아팠던 만큼 너도 와플(아플 거야.
사랑이 줄어든 만큼 너의 전화도 츄러스(줄었어).
아침이 돼 해가 창 바게뜨고(창 밖에 뜨고).

내 노랠 듣고 그녀는 말했지. 너 꼭 카스테라(가수 돼라),

우거지 좀 많이 넣어주세요.

이별 앞에 선 두 연인의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끼어드는 너무나 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낯설게 하기‘ 기법이 적용된 사례입니다. 이로써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매번 방해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심각한 이별에 처한 삶의 비정상적인 위기‘와 ‘식당에서 주문하는 행동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부딪힘으로인해 두 연인의 이별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이 중단됩니다. 이지점에서 웃음이 나옵니다. 몰입할 때는 심각하지만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우리 일상에서는 많이 벌어집니다. 이 간격의 여유가 웃음의 근원입니다. 이별과 상관없이 일상적인 삶은 지속되니까요. 이별 뒤에도 밥만 잘 먹더라는 유행가 가사처럼요.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에서도 낯설게 하기 기법이 대단히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 박성광 씨가 뜬금없이 「개그콘서트」의 연출자인 서수민 PD를 자꾸 거론합니다. 또는 출연자인 개그맨들이 연기 도중에 방청객들과 대화합니다. 또는 개그맨들이 개그 코너와 상관없는 출연자의 실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일종의 낯설게 하기‘ 입니다. 이로 인

해 그 코너를 보는 도중에 관객들은 그 극의 감정적인 분위기나이야기 구조에 몰입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란 관객이 감정적으로 연극에 빠져들지못하도록 연극이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춘향전」을 본다고 가정해 보죠. 춘향이가 옥에 갇혀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아리스토텔레스적인 연극 이론의 관점에서는 관객이 춘향이의감정에 빠져들어 함께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정의 카타르시스(정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이러한 드라마적인 극장 방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브레히트가 연출한 「춘향전」이라면 춘향 역의 배우는드라마적인 연기를 하다가도 중간 중간에 다른 연기를 섞어야 할것입니다. 즉, 관객이 춘향이의 입장에 감정적으로 빠져들지 못하도록 관객을 낯설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울다가도 갑자기 생뚱맞게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관객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세트, 소품, 조명 등 연극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관객이 연극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브레히트의 최종적인 목적은, 관객이 연극의 환상에 빠지지 않고 ‘이곳은 극장이다.‘라는 사실을 깨

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왜 관객이 연극에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 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남긴 말에 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하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익숙하면 익숙할수록 그익숙함에 빠져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을 때는 상대방의 결점 같은 것은 아예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사랑에 빠졌던 연인들도 사랑이 식고 서로를 낯설게 느끼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상대방을 더욱 객관적으로 본다면 사랑의 감정에 빠질 수 없습니다. 
「개그콘서트」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에서 개그맨 정승환 씨는 박소라 씨에 대해사랑의 감정을 느껴서 오두방정을 떨다가도 감정이 바뀌면 정색을 하고 박소라 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반복합니다. 이때 정승환씨의 유행어 대사가 바로 너, 되게 낯설다.‘ 입니다.
결국 브레히트가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 이유는,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의식 변혁을 이루기를 바란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용감한 녀석들>에서 낯설게 하기‘ 기교에 의해 개그와 현실이 접속하면서 관객은 감정이입에서 벗어나 개그가 현실이 아닌 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생각하면 그 대표적인 떠돌이 캐릭터가 삶의 집착에서 벗어난 쇼펜하우어적인 인물이죠. 그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바보짓으로 고발하는 브레히트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낯설게 하기‘ 효과가 지닌 웃음의 미스터리는 프로이트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릴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웃음의 3가지 형태 중 ‘유머‘
의 쾌락을 절약된 감정 비용‘이라고 말했습니다. 관객은 낯설게하기 덕분에, 뭔가에 감정을 지나치게 쏟거나 투자하는 행동이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 상태가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절약된 감정 비용‘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낯설게 하기‘로 인해슬픈 운명의 주인공에 지나치게 투자되어야 할 특정 감정의 비용이 절약됩니다. 그러면 이와 동시에 웃음이라는 생리적인 현상이일어나는 것입니다.

개그 철학 칼럼 1++
지구는 여전히돌고 있다?

역사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심지어 반대파를 숙청하는 권력자나 권력기관은 언제나 존재했다. 최근에는 대표적으로 우파 정권인 독일의나치 정권이나 한국의 박정희 정권, 좌파 독재자인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김일성이 있었다. 과거에는 종교재판소로 악명 높은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성리학 외에는 사문난적으로 처단한 조선 왕조가 그러했다.
브레히트의 유명한 희곡인 ‘갈릴레이의 생애는 그러한 잔인한 권력 밑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비겁함을 그리고 있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진리를 향한 용기까지 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자기 예언적인 작품이기도하다. 1939년의 첫 판본은 갈릴레이를 종교 재판소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용기 있는 사람처럼 그린다.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다."라는 유명한 말처럼갈릴레이는 권력자에 굴복하고 진리에 관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연구를 계속 진행한다.
갈릴레이가 말하기를
"벨라로 추기경의 마부가 오늘 아침 선물로 여기에 갖다놓은 첼리니의시계를 좀 보시겠소? 여보시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의 선량한 부모님께 영혼의 평안을 드리는 값으로 교황청에서는 내게 포도주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것은 당신의 부모님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과 같은 형상대로 만들어진 고얼굴에 땀을 흘리며 짜낸 바로 그 포도주란 말이오. 혹시나 내가 침묵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천박한 용기 때문일 거요. 나 자신의 안락한생활, 박해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말이오."

주체적 인격성을 부조리와 그 부조리의 해소를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완성시킵니다. 다시 말해 코미디는 비극이 끝난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화해된 유쾌한 마음이 그것입니다.
코미디는 ‘모순의 즐거운 화해‘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인 만족이 핵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이 추구한 행위의결과가 좋지 않고 비극적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이 핵심인 것이지요.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가 대표하는옛 그리스 코미디의 특징입니다.
코미디의 주인공은 우선 그 자체로 우스운 면이 있어요. 그는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코미디의 주인공들은 더 고등하고 보편적인 관심을 갖지 않기에 실질적인 문제에서 이해관계의 갈등을 겪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과모습에 전혀 의문도 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코미디의주인공들은 대개 낮은 지위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거꾸로 결과의 희비극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렇게 절대적인 자유정신과 사적인 평온함의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러한 자유정신의 분위기 속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

도시국가의 신성한 신들과 동료 시민들을 풍자합니다. 특히 동료시민들의 우스꽝스러움. 다시 말하면 대중적인 어리석음, 정치가들의 정신없음과 전쟁의 부조리함 등을 폭로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빚쟁이에게 빚 갚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제의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지하세계로 내려와 비극 작가를 육성하겠다고 결심한디오니소스신 등,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바보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한 과업을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보인 자신과 그가 생각한 과업은모순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능해서 그 과업에 실패하더라도 자기 확신이 대단해서 절대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헤겔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냉담하고 악의적인 조소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그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동료 시민의 안녕에 관심이 있는 가장 재능이 뛰어나며가장 좋은 시민이라고 단정합니다. 반면에 앞에서 언급했듯이 플라톤은 이러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코미디를 심술궂은 시기심에의한 쾌감이라고 비판했지요.
근대 유럽의 코미디와 고대 그리스 코미디의 차이점은 다음과같습니다. 근대 코미디는 관객들에게 사적인 이해관계와 성격들

과 그와 연관된 일상적 부도덕함과 부조리함, 그리고 특이한 행동과 어리석음을 전부 제시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러한 음모에 담긴 온갖 모순을 보고 웃게 마련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리스토파네스적인 ‘영원한 화해로서의 솔직한 유쾌함‘이 근대의 코미디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근대적인 음모의 코미디에서는 노골적인 악, 즉 교활하고 기만적인 자들의 음모, 사기, 비열함이 승리합니다. 음모에 의해 정직하지만 무기력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늘 속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근대 유럽의코미디는 헤겔이 보기에 구토가 날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유럽은 진정으로 코믹하고 진정으로시적인 코미디의 유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한 코미디의 기조(基)는 그 모든 실패와 불운에도 불구하고 좋은 유머의 정신을보여줍니다. 좋은 유머 정신은 무관심의 확신적인 유쾌함, 그리고 기본적으로 행복한 광기와 어리석음, 마지막으로 개성의 풍부함과 대담함입니다. 이것을 헤겔은 "깊이 있고 성찰적인 유머"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셰익스피어의코미디 작품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겔의 이러한 좋은 코미디의 발전과 더불어 미학의 철학적 탐구가 진정한 종결(완성)에 이른다고 봅니다. 코미디

의 유머 속에서 자유로운 절대적 주체의 낭만주의 정신의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에서 코미디는 예술의 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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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웃음은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 기원한 것입니다. 이를 계보학적으로 잘 분석하여 망치와 다이너마이트로 뒤집힌 가치를 다시뒤집으려고 시도한 철학자가 니체입니다. 가치의 전도라는 말 자체가 그가 유행시킨 구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동시대의 유럽을거대한 정신병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이상(異常)이 아니라 비정상을 조작하는 정상이 이상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유럽이 일종의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질병에 대한 진단으로 니체는 도덕이 삶을 부정한다고 단언합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도덕에 대한 도전이 질병을 치유하는방식입니다. 이는 자신이 사는 시대를 그 시대 안에서 반(反)시대적인 것으로 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시대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가치의 전도를 위해 다이아몬드와 같은 단단함으로 부수는망치로 표현될 수 있어요.
니체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인 이 사람을 보라」에서 위대한 인식의 이중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명제를 제시합니다. "도덕적인간은 생리적인 인간보다 본체계에 더 근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체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체계라는사물 자체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도덕과 종교가 제시한 참된 세계는 허구라는 뜻이지요. 이런 이유로 도덕적

는 친구가 넘어지면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우리는 자신이 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면 커다란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순수하게 지성적인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더 큰 웃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극도로 정서가민감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웃음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렇듯이 감정이입을 할 경우 비극적으로 보이는 드라마도 무관심한 관찰자의 눈으로 보면 코미디로 바뀔 것입니다. 비극의 주인공은 인간적 개성이 드러나는 고유명사라면코미디의 주인공은 추상화된 보통명사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웃음은 비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비정함을 베르그송은 순간적인 마음의 마취 (anesthesia)‘
라고 불렀습니다. 넘어지고 맞고 뒹구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주로하는 개그맨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그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봤을 때는 가슴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마음의 마취를 한 관객은 그 개그맨이 더 가혹한 고통과 더 지독한 수모를 당할수록 더 큰 웃음을 터트릴 것입니다.
그래서 웃음은 순전히 지성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웃음은 지

성에 어필하게 마련입니다.
웃음은 분리되고 원자화된 존재들 사이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웃음이 나오려면 하나의 지성이 다른 지성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웃음은 모방을 통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웃음은 고독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비밀스러운 공모입니다. 베르그송이 말하기를, 극장이 가득 찰수록 관객의 웃음은 더욱더 폭발적이 됩니다. 그래서웃음은 언제나 사회적인 의미나 역할을 지닙니다.
웃음은 사회적이다웃음의 사회적인 기능은 사회 구성원들이 지니는 반(反)사회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성향이나 태도 및 행동들을 교정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다움이라는 궤도를 벗어난 사람들이 본 궤도를 찾도록바로 잡아주는 장치가 웃음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 사람을 비웃거나 웃음의 대상으로 만드는 이유는 그가 다시 인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오도록 자극하는 데 있습니다. 베르그송은이를 ‘웃음의 교정적인 또는 징벌적인 효과‘라고 부릅니다.

베르그송이 웃음을 통해서 유지하려고 했던 인간다움은 개별적인 인간다움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다움입니다. 생명은 기계와 달리 부드럽게 연결된 존재방식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존재방식은 더불어 있음입니다. 기계가 원자적이고 형식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생명은 연관적이며 사회적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삶의 움직임에는 긴장과 유연성(탄력성)의 두

가지 힘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긴장과 유연성의두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 다시 말해서 ‘기계적인 경직성이 몸을 지배하게 되면 몸이 아프게 되고,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마음이 혼란해집니다.
이런 이유로 베르그송이 바라보는 웃음의 기본적인 유발 요소는 ‘기계적인 경직성이나 비탄력성(비유연성, 고집불통, 반복성, 논리적인 필연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것에서 기계적인 것이 출현하는 것을 쳐다보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딸꾹질, 구두쇠의 돈에 관한 무조건적인 집착, 긴장한몸과 마음이 만드는 어색한 태도,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경우에형식적인 규칙을 고집하는 공무원의 어리석음 등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반복성과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잘 살린 코미디의 고전이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웃음 유발 요인인 기계적인 경직성은 반사회적이고 분리주의적인 것입니다. 베르그송의 말처럼 "이러한 경직성이 코미디라면 웃음은 교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습관이나반복처럼 경직성이 사회적 삶을 저해하고 그 구성원들의 사회적연대감을 떨어뜨리는 반면에, 웃음은 다시 이를 회복하게 하는치료제라는 뜻입니다.

김용옥 선생님은 그의 저서 「아름다움과 추함』에서 베르그송이 역설한 ‘웃음의 사회적 기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웃음의 효과는 따라서 한 인간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가는것을 막는 작용이며, 인간은 웃음으로써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항상 재적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인습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다 긴장과 구속이 이완되는 삶으로 나아기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베르그송의 생철학의 체계가 규정하고 있는 탁견이다."
<누려>의 웃음 코드에도 이러한 경직성의 반사회적인 요소와웃음의 치료적 기능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서 베르그송의 웃음론이 <누려>를 잘 이해시켜 줍니다. 주인공들은 과거의 고생스러운 기억을 잊고 이제는 경제적 풍족함을 ‘누리고‘ 싶어 하지만 과거 고생하면서 몸에 밴 습관들은 마치 조건 반사처럼 특정한 조건이 되면 일종의 강박증과도 비슷하게 ‘기계적 메커니즘처럼튀어나옵니다. 이 경직성으로 인해 그들이 풍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이 잘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과거 역사는 풍족한 삶에 대한 학습이 전혀 없었다는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잘 살게 된 그들이 과거의 코드를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경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반복하기 때문에 웃음이 터

개그 철학 칼럼 ①+②베르그송의 웃음이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실현되다베르그송의 웃음론은 생명과 삶이 기계나 부품이 되어 버린 기계문명과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찰리 채플린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사회 비판의 영향 속에서 「모던 타임즈를 제작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베르그송의 웃음을 실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거대한 공장의 기계부품으로 전락한 노동자로 등장한다. 그는 인간이 마치 기계처럼 행동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컨베이어 벨트의 너트 조이는 일을 계속 반복한다. 그러다 그는 너트 모양으로 생긴 것은뭐든 조이려는 강박반복증세를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여자들의 옷에 달린단추를 너트로 오해하여 공구를 들고 여자들에게 달려든다. 그래서 치한으로오해받아 감옥 신세를 지기도 한다.
이처럼, 모던 타임즈」는 영화의 소재와 배경으로 기계를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이미 ‘생명 속에 깃든 기계‘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베르그송의 웃음의 핵심인 ‘기계적 경직성이 채플린의 꼭두각시 주인공에서 실현된다. 이처럼 베르그송에게 기계는 생명의 약동과 자유스러움에 대한풍자인 것이다.
물론 채플린이 40여 년에 걸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전체 읽기를 3번이나 시도했노라고 밝히고 있지만, 베르그송의 웃음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규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매우 열정적인 독학자였다. 그의 드레싱룸에는 언제나 라틴어-영어 사전이 있었으며, 에머슨, 호손, 포와 같은 영문학의 대가들의 저작과 플루타크 영웅전, 게다가 플라톤, 로크, 칸트, 프로이트와 같은 철학자의 고전들과 물론 베르그송의「웃음도 있었다.
채플린 특유의 걸음걸이, 표정, 몸짓, 그리고 필름을 정상 속도보다 빠르게돌리면서 연출되는 독특한 기계적 정서는 채플린이 베르그송의 웃음을 애독(愛)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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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부조리에서 기인한 불일치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유명한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 농부의 일화가 있습니다. 왕이 매서운 추위의 한겨울에 그의 유일한 의상인 얇은 여름옷을 입고 있는 농부를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러자그는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죠. "폐하께서 소인이 입고 있는옷을 입으신다면 훨씬 따뜻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그에게 무얼 입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소인의 의상 전부요!" 농부가 말한 그의 ‘의상 전부‘라는 말은 실제로는 얇은 옷 한 벌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왕의 엄청나게 많은 의상과 대조되어 그의얼어가는 몸과 불일치합니다. 이러한 부조리한 지점에서 웃음이터져 나오는 것이지요.
그는 웃음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위트입니다.
여기에는 통상 우리가 농담이나 조크로 말하는 것과 개그도 포함됩니다. 이 위트는 보통 프로이트가 의도적인 농담이라고 말한것과 같습니다. 우월한 관점에서 재치와 기지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웃기는 것을 말합니다. 앞선 언급한 가스코뉴 지방 농부의일화가 이러한 위트의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둘째는 바보스러움입니다. 보통 우리나라 개그계에서는 바보

짓이라고 불리는 웃음 코드이지요. 바보가 나타내는 불일치는 전혀 비자발적이고 비의도적인 것입니다. 영구와 맹구와 같은 바보캐릭터가 언제나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바보들은 바보가 아닌 것처럼 행동해도 결국 바보임이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그 바보들을 보며 웃는 우리 자신 스스로도 바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쇼펜하우어의 독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논증의 오류를 공부할 때 <깐죽거리 잔혹사>를 예로 들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 코너에서 개그맨 조윤호 씨는 자기의 생각과 불일치하는 세상 때문에 곤란을 겪습니다. 머릿속으로 고안해 낸 필살기는 모두 거부되고 오히려 매번 역습을 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윤호 씨의 바보짓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쇼펜하우어는 그가 미국의 한 해방된 흑인에 관하여 언급한 바있습니다. 그 흑인은 모든 면에서 백인을 모방하려고 애를 썼지요. 그래서 자신의 죽은 아이에 관한 묘비명에 다음과 같이 썼다죠. "나의 사랑하는 일찍 저버린 백합." 하얀 꽃을 대표하는 백합과 죽은 흑인 아이는 기묘한 불일치를 자아냅니다. 여기서 웃음코드가 있지요. 하지만 이 농담은 쇼펜하우어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열등감에 의해 유색인종이 백인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려는 바보 같은

개그 철학 칼럼 1+1
너무나 인간적인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인간성과 행동에 대한 주류 학자들의 평가는 쇼펜하우어 못지않게 독설적이고 풍자적이다. 바이셰델의 ‘철학의 뒤안길에 기록된 쇼펜하우어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다. 이런 부정적인 평가 덕분에 쇼펜하우어철학은 제대로 이해될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그의 철학까지 버리면 ‘목욕물과 더불어 아이까지 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래도 바이셰델과 같은 전기 작가 덕분에 쇼펜하우어의 이면을 볼 수 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사악한 통찰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불만을 터트린 대로, 그 자신은 성인군자가 아닌 인간이다. 그럼, 바이셰델의 말을 빌려 그 인간적인 모습을 한번 보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스스로를 ‘인간혐오자‘라고 불렀다. 한때 유명한 여류 작가였던 그의 어머니 요하나 쇼펜하우어는 아들의 ‘비뚤어진 심성‘을 매우 한탄하였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동료들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함상 의심스런 눈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그는 침실에 항상 무기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해도 그는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얌전한 여자가 수다를 떨어 그를방해한다고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평생 불구로 지내게 되었고, 쇼펜하우어 자신도 평생 보상의 의무를 지게 되어두고두고 자책감과 경제적인 부담으로 괴로워했다.
함께 생활한 유일한존재는 그가 아꼈던 충실한 푸들 강아지뿐이었다"

"오해하지 마라, 이래 봬도, 나, 양상국보다 인기 많고 출연료 비싸다!"
"오해하지 마라, 이래 봬도, 마음만은 턱별시다! (특별시의 경상도 발음)"
"오해하지 마라. 이래봬도, 키는 작아도 이 정도 생겼으면 되잖아!"
보통, 뚱뚱하고 인기 없고 촌스럽고 키 작은 남자는 실패자(루저)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유머를 통해 이러한 가치 판단에 저항하고 이를 전복하려고 합니다. 이런 가치 전도에 의해 기존 가치 평가가 거꾸로 문제임이 드러납니다. 뚱뚱한 것이문제가 아니라 뚱뚱함을 죄악시하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촌스러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촌스러움을 비웃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키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키 작음을 조소하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인기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기 없음을 비정상으로 모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비정상을 이상으로 내모는 것이 잘못된 가치 평가의 메커니즘입니다. 이러한 기성 가치관에 물든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규정된 자들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이를 통해그들은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쾌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길을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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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청소년 교양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거짓말‘을 한다고?

거짓말도 알아야 ‘100% 경제학‘이 보인다!
경제 영재들만 다닌다는 K중학교. 올해 3학년이 된 근진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경제학 교과서인「맨큐의 경제학으로 공부하게 되어 잔뜩 들었다.

유명한 경제학 교수인 한경제 교수님으로부터
‘경제학의 10명 기본 원리‘를 배우고, 친구들과
‘경제 드림팀‘을 결성해서 함께 스터디를 하며 경제학의 재미에 푹 빠져드는 근진이.

그런데 삼촌이며 역시 꽤 유명한 경제학 교수인 마경제가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수업 내용이 ‘거짓말‘이라며 초목조목 반론을 펴는데..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구경이 싸움 구경이라 했던가?!

차례.

첫 번째 강의
6머리말
12두근두근, 새 학기
16 선택과 대가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VS 만약 선택의 여지가없다면?
36 경제 드림팀의 조별 노트 1

두 번째 강의
38 기회비용
기회비용을 따져 봐야 VS 정말 일일이합리적인 선택이다
따져 보고 선택하나?
54 경제 드림팀의 조별 노트 2

세 번째 강의
56 경제적 유인
누구나 이득을 늘리고VS자원봉사나비용을 줄인다기부는?
80 경제 드림팀의 조별 노트 3

네 번째 강의
84 시장과 정부
추구해도 균형을 모두가 자신의 이득을 VS 뭘 믿고 가게 주인에게돈을 낼까?

이룰 수 있다116
 경제 드림팀의 조별 노트 4

다섯 번째 강의
120 생산 능력과결국 중요한 것은 VS 생산성이 같다고생산성이다삶의 만족도도 같을까?
생활 수준150 
경제 드림팀의 조별 노트 5

여섯 번째 강의
154 인플레이션과정부가 돈의 양을 VS 정부는 왜 알면서도
늘리면 물가가 오른다
돈을 풀었을까?

실업180 
경제 드림팀의 조별 노트 6

184 시원한 여름 방학
198 교과 연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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