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명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부산특별시>가 선사하는 웃음의 핵심도 우리나라의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반항‘입니다. 이 코너는 부산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웃음으로 만듭니다. 방송국아나운서 면접시험에 서울 출신 지원자가 등장하여 자신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말하자 부산 출신 면접관들은 "에이! 이거 뭐꼬? 서울대 지방대 아이가?"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 사람들을 무시하는 현실이 이 코너에서는 완전히 뒤집힌것이죠. 여기서 커다란 웃음이 터집니다. 지역차별주의에 대한 반항이 <부산특별시>의 웃음 포인트입니다. 프로이트의 방대한 저작 중에서 직접적으로 유머와 농담을 다룬 글들이 있습니다. 그의 저서인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1905년)와 짧은 논문인 「유머」(1927년)가 그 대표작입니다. 프로이트는「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코미디(희극적인 것)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농담(조크), 코미디, 유머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다 우리가 잃어버린 쾌락을 다시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발달하면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억압에 의해 쾌락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웃기는 것은 잃어버린 쾌락을 다시 얻는 것입니다. 쾌락을 얻기 위해
그러나 초자아는 유머라는 방식에 의해 자아를 위로하고 고통을막아줍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이 유머러스한 태도를 지닐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드물고 귀한 재능입니다. 심지어유머를 즐길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머를 구사하는사람은 앞에서 예로 든 사형수의 사례처럼 숭고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프로이트 유머론을 이해하려면 그가 세 가지 관점에서 심리적인 삶(심리 기구)을 고찰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학적인 관점(충동론), 경제학적인 관점, 지형학적인 관점이 그것입니다. 첫째로, 역학적인 관점은 충동론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관점은심리적인 사건들을 외부 자극을 배제하고 심리적인 힘들의 놀이로 보는 관점이지요. 우선, ‘자아 충동‘과 ‘대상 충동‘이 있습니다. 이 배후에 더 기본적인 충동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에로스‘로서항상 합일을 추구하는 충동이며 다른 하나는 타나토스‘(죽음의충동)로서 살아 있는 것의 해체로 이끄는 충동입니다. 이중에서에로스적인 힘의 외화가 리비도라고 불립니다. 둘째로, 경제학적인 고찰에 따르면 충동들의 심리적인 대표자인 표상이나 감정에 특정한 양의 에너지가 투자(카텍시스)되어 고착됩니다. 심리적인 기구는 이러한 에너지의 정체나 고착을 예방
하고 그곳에 실린 자극의 총량을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갖습니다. 심리적인 사건의 과정은 쾌락 불쾌의 원칙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절됩니다. 이 경우 불쾌는 어떤 식으로든 자극의 증가와 관련되고 쾌락은 그것의 절약과 연결됩니다. 셋째로, 심리 기구에 대한 지형학적인 고찰에 의하면 심리 기구는 1) 이드(Es)라는 충동 자극의 담지자. 2) 이 이드가 외부 세계에 의해 변형되어 표면화된 자아(Ich), 3) 이드에서 생겨나 자아‘를 지배하고 인간의 특징적인 충동 억제를 대표하는 ‘자아‘ (Überich)로 나눠집니다. 특히 초자아는 대단히 잔인해서 내면화된 사회적 억압의 기관인 것입니다.
웃음은 경제적인 절약이다<큰 세계>와 <부산특별시>가 프로이트가 말한 반항의 웃음‘에대한 대략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면, 「개그콘서트」의 <힙합의 신>은 반항의 구체적인 기술‘을 보여줍니다. 프로이트에게는 그 기술‘이 무엇인가도 중요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꿈의작업이나 농담의 작업으로 나타나지요. 이를 통해 그동안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이 우리의 의식에 나타나게 되지요. 프로이트에 따르면 억압된 욕망이 가는 곳이 ‘무의식‘이라는우리 마음의 창고입니다. 무의식에 쌓인 생각과 감정들의 흔적이 꿈과 말실수, 농담(초크) 속에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농담은 뭔가 드러나지 않은 것 ‘숨겨진 것‘을 끌어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농담의 기술을 꿈의 작업과 연결시킵니다. 그래서 그가 이어서 "농담기술의 핵심으로 인식됐던 대체물을 갖는 압축의 흥미로운 과정은 꿈-형성 과정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동일한 심리적 과정이 꿈 형성 메커니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농담기술에는 자리바꿈, 사고 오류, 무의미, 간접직 표현, 반대를 통한 표현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꿈 작업에서도동일한 기술이 사용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것입니다. <힙합의 신>에서 개그맨 이세진 씨는 랩 배틀 도중에 자신의사업인 제과점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그와 관련된 단어들을 랩에 포함하려 합니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 사회자들로부터 빵을홍보하는 단어들을 말하지 말라는 제재를 받습니다. 이에 이세진
은 어떻게 하든 제과점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 실수를 가장하여랩 내용에 다양한 빵의 이름을 교묘하게 배치합니다.
내 성격 알잖아? 날 고로케 (그렇게) 몰라? 내가 아팠던 만큼 너도 와플(아플 거야. 사랑이 줄어든 만큼 너의 전화도 츄러스(줄었어). 아침이 돼 해가 창 바게뜨고(창 밖에 뜨고).
내 노랠 듣고 그녀는 말했지. 너 꼭 카스테라(가수 돼라),
우거지 좀 많이 넣어주세요.
이별 앞에 선 두 연인의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끼어드는 너무나 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낯설게 하기‘ 기법이 적용된 사례입니다. 이로써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매번 방해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심각한 이별에 처한 삶의 비정상적인 위기‘와 ‘식당에서 주문하는 행동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부딪힘으로인해 두 연인의 이별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이 중단됩니다. 이지점에서 웃음이 나옵니다. 몰입할 때는 심각하지만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우리 일상에서는 많이 벌어집니다. 이 간격의 여유가 웃음의 근원입니다. 이별과 상관없이 일상적인 삶은 지속되니까요. 이별 뒤에도 밥만 잘 먹더라는 유행가 가사처럼요.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에서도 낯설게 하기 기법이 대단히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 박성광 씨가 뜬금없이 「개그콘서트」의 연출자인 서수민 PD를 자꾸 거론합니다. 또는 출연자인 개그맨들이 연기 도중에 방청객들과 대화합니다. 또는 개그맨들이 개그 코너와 상관없는 출연자의 실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일종의 낯설게 하기‘ 입니다. 이로 인
해 그 코너를 보는 도중에 관객들은 그 극의 감정적인 분위기나이야기 구조에 몰입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란 관객이 감정적으로 연극에 빠져들지못하도록 연극이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춘향전」을 본다고 가정해 보죠. 춘향이가 옥에 갇혀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아리스토텔레스적인 연극 이론의 관점에서는 관객이 춘향이의감정에 빠져들어 함께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정의 카타르시스(정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이러한 드라마적인 극장 방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브레히트가 연출한 「춘향전」이라면 춘향 역의 배우는드라마적인 연기를 하다가도 중간 중간에 다른 연기를 섞어야 할것입니다. 즉, 관객이 춘향이의 입장에 감정적으로 빠져들지 못하도록 관객을 낯설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울다가도 갑자기 생뚱맞게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관객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연기뿐만 아니라 무대 세트, 소품, 조명 등 연극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관객이 연극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브레히트의 최종적인 목적은, 관객이 연극의 환상에 빠지지 않고 ‘이곳은 극장이다.‘라는 사실을 깨
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왜 관객이 연극에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 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남긴 말에 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하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익숙하면 익숙할수록 그익숙함에 빠져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을 때는 상대방의 결점 같은 것은 아예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사랑에 빠졌던 연인들도 사랑이 식고 서로를 낯설게 느끼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상대방을 더욱 객관적으로 본다면 사랑의 감정에 빠질 수 없습니다. 「개그콘서트」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에서 개그맨 정승환 씨는 박소라 씨에 대해사랑의 감정을 느껴서 오두방정을 떨다가도 감정이 바뀌면 정색을 하고 박소라 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반복합니다. 이때 정승환씨의 유행어 대사가 바로 너, 되게 낯설다.‘ 입니다. 결국 브레히트가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 이유는,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의식 변혁을 이루기를 바란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용감한 녀석들>에서 낯설게 하기‘ 기교에 의해 개그와 현실이 접속하면서 관객은 감정이입에서 벗어나 개그가 현실이 아닌 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생각하면 그 대표적인 떠돌이 캐릭터가 삶의 집착에서 벗어난 쇼펜하우어적인 인물이죠. 그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바보짓으로 고발하는 브레히트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낯설게 하기‘ 효과가 지닌 웃음의 미스터리는 프로이트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릴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웃음의 3가지 형태 중 ‘유머‘ 의 쾌락을 절약된 감정 비용‘이라고 말했습니다. 관객은 낯설게하기 덕분에, 뭔가에 감정을 지나치게 쏟거나 투자하는 행동이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 상태가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절약된 감정 비용‘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낯설게 하기‘로 인해슬픈 운명의 주인공에 지나치게 투자되어야 할 특정 감정의 비용이 절약됩니다. 그러면 이와 동시에 웃음이라는 생리적인 현상이일어나는 것입니다.
개그 철학 칼럼 1++ 지구는 여전히돌고 있다?
역사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심지어 반대파를 숙청하는 권력자나 권력기관은 언제나 존재했다. 최근에는 대표적으로 우파 정권인 독일의나치 정권이나 한국의 박정희 정권, 좌파 독재자인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김일성이 있었다. 과거에는 종교재판소로 악명 높은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성리학 외에는 사문난적으로 처단한 조선 왕조가 그러했다. 브레히트의 유명한 희곡인 ‘갈릴레이의 생애는 그러한 잔인한 권력 밑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비겁함을 그리고 있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진리를 향한 용기까지 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자기 예언적인 작품이기도하다. 1939년의 첫 판본은 갈릴레이를 종교 재판소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용기 있는 사람처럼 그린다.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다."라는 유명한 말처럼갈릴레이는 권력자에 굴복하고 진리에 관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연구를 계속 진행한다. 갈릴레이가 말하기를 "벨라로 추기경의 마부가 오늘 아침 선물로 여기에 갖다놓은 첼리니의시계를 좀 보시겠소? 여보시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의 선량한 부모님께 영혼의 평안을 드리는 값으로 교황청에서는 내게 포도주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것은 당신의 부모님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과 같은 형상대로 만들어진 고얼굴에 땀을 흘리며 짜낸 바로 그 포도주란 말이오. 혹시나 내가 침묵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천박한 용기 때문일 거요. 나 자신의 안락한생활, 박해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말이오."
주체적 인격성을 부조리와 그 부조리의 해소를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완성시킵니다. 다시 말해 코미디는 비극이 끝난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화해된 유쾌한 마음이 그것입니다. 코미디는 ‘모순의 즐거운 화해‘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인 만족이 핵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이 추구한 행위의결과가 좋지 않고 비극적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이 핵심인 것이지요.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가 대표하는옛 그리스 코미디의 특징입니다. 코미디의 주인공은 우선 그 자체로 우스운 면이 있어요. 그는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코미디의 주인공들은 더 고등하고 보편적인 관심을 갖지 않기에 실질적인 문제에서 이해관계의 갈등을 겪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과모습에 전혀 의문도 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코미디의주인공들은 대개 낮은 지위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거꾸로 결과의 희비극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렇게 절대적인 자유정신과 사적인 평온함의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러한 자유정신의 분위기 속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
도시국가의 신성한 신들과 동료 시민들을 풍자합니다. 특히 동료시민들의 우스꽝스러움. 다시 말하면 대중적인 어리석음, 정치가들의 정신없음과 전쟁의 부조리함 등을 폭로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빚쟁이에게 빚 갚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제의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지하세계로 내려와 비극 작가를 육성하겠다고 결심한디오니소스신 등,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바보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한 과업을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보인 자신과 그가 생각한 과업은모순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능해서 그 과업에 실패하더라도 자기 확신이 대단해서 절대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헤겔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냉담하고 악의적인 조소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그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동료 시민의 안녕에 관심이 있는 가장 재능이 뛰어나며가장 좋은 시민이라고 단정합니다. 반면에 앞에서 언급했듯이 플라톤은 이러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코미디를 심술궂은 시기심에의한 쾌감이라고 비판했지요. 근대 유럽의 코미디와 고대 그리스 코미디의 차이점은 다음과같습니다. 근대 코미디는 관객들에게 사적인 이해관계와 성격들
과 그와 연관된 일상적 부도덕함과 부조리함, 그리고 특이한 행동과 어리석음을 전부 제시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러한 음모에 담긴 온갖 모순을 보고 웃게 마련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리스토파네스적인 ‘영원한 화해로서의 솔직한 유쾌함‘이 근대의 코미디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근대적인 음모의 코미디에서는 노골적인 악, 즉 교활하고 기만적인 자들의 음모, 사기, 비열함이 승리합니다. 음모에 의해 정직하지만 무기력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늘 속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근대 유럽의코미디는 헤겔이 보기에 구토가 날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유럽은 진정으로 코믹하고 진정으로시적인 코미디의 유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한 코미디의 기조(基)는 그 모든 실패와 불운에도 불구하고 좋은 유머의 정신을보여줍니다. 좋은 유머 정신은 무관심의 확신적인 유쾌함, 그리고 기본적으로 행복한 광기와 어리석음, 마지막으로 개성의 풍부함과 대담함입니다. 이것을 헤겔은 "깊이 있고 성찰적인 유머"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셰익스피어의코미디 작품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겔의 이러한 좋은 코미디의 발전과 더불어 미학의 철학적 탐구가 진정한 종결(완성)에 이른다고 봅니다. 코미디
의 유머 속에서 자유로운 절대적 주체의 낭만주의 정신의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에서 코미디는 예술의 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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