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시

이별하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은 시월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병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는 단풍잎. 영혼이 빠져나가 파삭거리기만 하는 풀밭, 초속 오센티미터로 떨어지는 마지막 열매들, 죽은 새끼들을 낙엽에 묻고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흙장난하는 아이들 이마에 불어오는 사연 많은 바람. 시월엔 가득 찼던 것들과 뜨거워졌던 것들이 저만치 떠날 짐을 꾸린다. 그걸 알아챈 추억들도 남쪽으로 가고, 시월엔 이별이 전부다. 시월은 이별밖에 할 줄 모른다. 시월에 무릎을 꿇는 이유다. 세상엔 만남의 몫이 있는 만큼 헤어짐의 몫도 있어서 이토록 서늘하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제목. - P-1

강물의 개인사

강은 자기 자식들을 만들면서 흘러간다

반쯤 강에 발을 걸친 미루나무를 낳기도 하고검은 조약돌을 낳기도 하고

물고기들의 혼잣말 같은
외로운 알을 낳기도 한다
하루살이의 생애와
물새의 날개를 낳고
잠겼다가 떠오르는 길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무너지는 인간과 그 인간의 이야기를 낳는다

아픈 마을을 낳고
검은 도시를 낳는다

굴뚝과 네온 불빛과 고무풍선 어지러운 유역을 낳고 - P-1

어부의 탄식과
전설 같은 노래를 낳는다

강이 만들어낸 자식들
누가 이들을 기억해줄까

훌륭한 순간들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하구 끝
밤하늘이 밝게 빛나는 건

강에서 태어나 강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P-1

빗나가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을 증언하고 싶었다

시는 그랬다. 
모든 시는 불온해야 하고 
모든 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불온한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다.

내 모든 시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바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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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다. 나는처치실에서 임종을 맞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한다. 커다란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바로 옆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편되었지만, 그는 골방과 다를 바 없는 처치실에서 눈을 감았다.
저렇게 죽을 순 없다. 
당시 스무 살도 되지 않던 나에게 각인된 생각이었다. 

‘처치실‘에서의 죽음이 흔하디 흔한 것임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나의 죽음은 내가 정하겠다는 의지가 커졌다. 
살리고 죽이는 힘을 가진 이들 국가자본·의료 체계에서 벗어나 나의 죽음을 결정하고 싶다. 그건 나의 일생을 휘어잡는 권력에 더는 나를 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마지막까지 해보는 발버둥이라고 할까.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단식 존엄사라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한 사람이 아니기에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농담삼아 이런 말을 덧붙이곤 했다.
"그런데 며칠 굶다가, 안 되겠다 하면서 라면 한 봉지 끓여 먹을수도 있어."
이에 한 친구가 진지함을 가장해 말했다.
"그때가 되면 집에 라면 한 봉지도 없을 수 있어."
단식 존엄사가 아니라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진 않았다.  - P-1

병원에 입원하여 마지막을 보내고 처치실 골방에서 죽는 삶이 두려웠던 내게는 1인 재택사라는 발상의 전환이 반가웠다. 

그런데 1인 재택사가 성립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장기요양보험 같은 노년·간병 보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 죽겠다는 나를 비난하거나 뜬눈으로 염려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있더라도 설득과 협상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이해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복지망과 관계망이 존재해야 한다는 소리다. 어떻게 죽기를 원하건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집에서 죽지 않으면 객사라고 슬퍼했고,
오늘날엔 집에서 죽으면 잘못된 죽음처럼 여긴다. 그러더니 새로이 ‘홀로 집에서 죽기를 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객사의 개념을 널리 받아들인 건 데파코트가 쓴 〈죽음의 위계화에 저항하며>를 본 이후였다. 단정적이고 간결한 문장으로 쓰인 선언문은 ‘집을 떠나 맞는 죽음‘을 이리 말했다.
"집이 없는 존재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장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장소에서 죽음을 맞아야 한다."

집이 없는 존재들이 존재한다. 세상이 그들의 ‘집‘이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장소에서 죽음을 맞아야 한다. 이들의 죽음은 집이라는 물질성과 무관하게
‘객사‘다. 그렇다면 객사는, 내가 원하고 선택한 곳이 아닌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다.
장소는 시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험과 기억, 가치와 관계등 유·무형의 상호작용으로 장소성이 만들어진다. 우에노 지즈코가 말한 집은 주택이라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내가 주체적으로 꾸려온, 안전하고 편안하고 일상적인 공간의 상징이 집이다. - P-1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닐까. 삶은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분투의 연속이다. 열심히 싸웠고, 이제 고요하게 떠나면 되는 일인가. 산뜻하다. 산뜻하긴 한데 좀 헛헛하다. 시끌벅적한 것이 인생인데 너무 고요해서일까.

편하고 고요한 1인실을 두고 6인실 병실에 입원하는 이유는 단지 비용 때문만이 아니다. 가족이나 간병인이 상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6인실 병실에서 돌봄은 순환한다. 옆자리 빙상의 가족이나 그쪽 간병인이 내 침대를 올려주기도 하고, 환자인 내가 옆자리 환자를 위해 간호사를 불러오기도 한다. 사람이 있는 곳엔 어디든 돌봄이 있다. 주검이 들어가는 관은 ‘1인실‘일 수 있어도 삶은 1인실이 아니다. 1인실에 머물 수 없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돌봄은 끊임없이 확장된다. 그리고 돌봄은 죽음의 순간에도, 그 시간을 넘어서도 계속된다. 우리의 안온한 집은, 여럿의 확장된 돌봄이 없다면 마련되지 않는다. 그러니 혼자 죽지만 혼자 죽는일 같은 건 없다.

시민 조문단 혼자 죽지 않는 사람은 혼자 떠나지 않는다.

 사람 속에서 내 뜻대로 죽는 일을 찾아다니던 내가 당도한 곳은 ‘부산반빈곤센터‘다.
빈곤한 죽음을 보러 왔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아니긴 한데 반빈곤센터가 기획한 강의에서 처음 접한 내용은 이주노동자 홈리스이야기였다. 체류 기간을 넘겨 미등록 신분이 된 이주노동자가 머물 곳이 없어 노숙을 했다. 그렇게 홈리스가 된다. 있을 법한 상황인데, 외국인 노숙자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다. 내가 언제 홈리 - P-1

우아하게, 불온하게, 나답게 죽을 수 있을까?
마지막은 똑같다는 말이 가린
죽음과 애도의 위계에 관하여

죽음과 장례에 관한 혁신적이고 탁월한 시선이 버려낸 사유와 기록은 죽음과 애도라는 흔한 현장 속까지 ‘사회적 성원권‘이라는 의제를 붙들고 들어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돌봄과 사회가 어떤 것인지에 관한 독자들의 질문을 확장하게 한다. 죽은 자와는 이미 무관해져 버린
‘죽은 다음‘에 관한 희정 작가의 
치밀하고 냉철한 기록이 
산 자들 사이에서 거듭 읽히고 토론되며 
참고가 이어지기를 뜨겁게 권한다.
_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죽음에 관한 말들이 범람하는 시대다. 
하나하나의 죽음과 한사람 한 사람의 삶은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장례지도사, 의전관리사, 수의 제작자 등 죽음 곁에서 일하는 이들의 노동 현장을 비추고, 이 시대의 죽음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죽음까지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삶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역설에 도달한다. 
죽음의 불평등으로부터 삶의 불평등을 샅샅이 살피는 작업은 삶과 죽음이 모두 존중받는사회를 꿈꾸게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입말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산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묵직한 질문으로 변모한다.
오은 시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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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이 오지 않아도 온 거고, 
오면 더 좋고,
꿈은 마음속에 이미 이룩한 것을
미래에 단지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겠는가?
수많은 원자로 인간이라는 물질이 이루어졌다.
인간의 꿈은 원자들의 패턴이고 작용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꿈을 꾼다.
아니 우주가 꿈을 꾼다.
꿈이 물질로 변하기도 하고
물질이 꿈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는 이미 꿈을 이룩하였다.
방방곡곡 그리운 건 언제나 상처에서 오고,
꽃은 너무도 불안하여 그만 예뻐져 버렸다.
김주대(시인) - P-1

남편과 자식들의 밥을 밥상 위에 차려주고
여자는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언제나 밥상 아래 자신의 밥그릇을 놓습니다정성껏 만든 반찬들 그릇마다 따로 담아
밥상 위에 올려주고
대부분 전날 먹다 남은 것들인 자신의 반찬은바가지나 쭈그러진 양은그릇에 쓸어 담아
밥상 아래 놓습니다
가끔 올리는 생선은 가사를 발라내어
남편 밥그릇에도 놓아주고 자식들 입에도 넣어줍니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여자는 가시만 남은 생선을 이리저리 몇 번 할아 봅니다
즐거운 식사 시간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반찬을 다 먹고도 여자의 젓가락은
밥상 위의 반찬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 P-1

감히 가지 않습니다
밥만 남은 자신의 그릇 이곳저곳을 짚어볼 뿐입니다
남편의 다섯 아이를 낳아주는 동안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의 사랑을 받는 동안
자식을 입히고 먹여 시집 장가 보내는 동안
여자는 숟가락 젓가락도 밥상 위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열여덟에 시집와 아내로 어머니로 산 지 40년
장성한 자식들이 모두 객지로 떠나고
사랑하는 남편이 죽고
여자는 혼자가 되어 밥을 먹습니다
살아온 버릇으로
바닥에 밥그릇을 놓고 먹습니다
여자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병원에 다녀온 어느 따스한 봄날
여자는
부엌 한쪽에 놓아둔 먼지 앉은 밥상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지난날을 바라보듯 바라봅니다
죽은 남편과 객지로 떠난 자식들을 바라보듯밥상을 바라보던 여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밥상을 빛나게 닦아
방 한가운데 놓습니다 - P-1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밥상 위에 차립니다
숟가락 하나 젓가락 한 별도 밥상 위에 차립니다
밥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여자는 자식들 대신이라는 듯
죽은 남편 대신이라는 듯
밥상 앞에 정좌하고 천천히 수저를 듭니다
밥상의 높이 30센티미터
여자의 밥그릇과 수저가
그 높이를 오르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여자는 지난날을 씹듯 밥을 오물오물 씹어 먹습니다
우리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자, 전문 - P155

옛날에 길가에 코스모스 피고
잠자리 노랗게 날던 가을이 있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나는 늙고 있다
귀향 의지, 전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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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재능으로 이길 수 없다면, 그저 끈기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뛰어난 사람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면 
최소한그들과 같은 위치에 닿을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무조건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유일한 전략이었다.

피곤해도 그냥 한다.
재미없어도 그냥 한다.
하기 싫어도 그냥 한다.

사실 성공의 본질은 굉장히 단순하다. 
누구나 시작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포기할 때 혼자서라도 계속하면, 
재능이 없어도 언젠가는 사람들 눈에 띄게 된다.
끝까지 하면 결국 재능 있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을 이기지는 못할지 몰라도, 최소한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지지는 않는다.
- P-1

그 말 듣고 시간을 흘려보내다가는 어느 순간들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린다.

내 인생이 정말 망가지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와보면 알게 된다. 그렇게 쉬라고 말했던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것을 
오히려 그들은 철저히 자기 인생만 챙기고, 내인생이 망가져도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남에게 해주는 말은 그냥 편안하고, 듣기 좋게 만들어진 말일뿐이다.

정말 중요한 건 내 현실이다. 

내 상황이 절박하고 급하다면 절대 편한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주변에서 아무리 괜찮다고 위로하며 쉬라고 말해도 결국 내 현실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뿐이다.

남들의 괜찮다는 말에 마음 놓았다가는 어느 순간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추락하게 된다.
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상황이 급하면 급한 대로 살아야 한다. 
힘들어도 지금은 견뎌야 한다. - P44

회사에서 무시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저 사람은어차피 여기서 나갈 용기도 없고, 능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준비가 철저한사람의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지면, 더 이상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조직에서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회사를 떠날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무작정 그만두지 말고, 치밀하게 자신을 준비한 뒤에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 P-1

나는 예전에 사업을 접고, 인생이 크게 흔들렸을때 누워서 악플 4만 개를 찾아다니며 다 읽었다. 무시하려 해도 결국은 다 보게 됐다. 자책감, 무력감,
불안함이 한 덩어리처럼 얽혔다.

그때 알았다. 감정은 무시할수록 커진다는 걸. 감정은 없애야 할 게 아니라, 내 상태를 점검하게 해주는 신호였다. 

감정을 가이드로 활용할 때는 세 가지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관찰하고 말을 걸 - P-1

어라. 그 감정이 더 커지는 행동은 멈추고, 줄어드는행동은 계속해야 한다. 나는 그때 수영을 했다. 물속에 있는 동안은 휴대폰도 없고, 소리도 끊겼다. 그시간만큼은 불안도, 자책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생각도 멈췄다.
핵심은 내 마음에 잠깐 정지를 걸 수 있는 시간을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감정은 점점 작아지고, 결국은 나를 돕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둘째,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감정 속에서 진짜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분리해 보는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실제로 모든 걸 하기 싫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 안에는 단순히 기운이 없거나, 설명할 의욕이 없는 상태가 섞여있다.
그래서 이 감정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말고, 분해해서 봐야 한다. 분명 해야 할 것도 있고, 하고 싶은것도 있다. 단지 지금 그걸 구분하지 않고 있을 뿐 - P-1

이다.

셋째, ‘작은 확실함‘을 쌓는 것이다. 당장 회사 그만두고, 한순간에 아는 인연 다 끊겠다는 소리 하지마라. 지금 당신이 해야 할 건 인생을 뒤집는 결심이아니다. 천만원을 벌겠다는 목표도 아니다.
작고, 확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 씻는 게 힘들면 욕실까지 가는 것이라도해야 한다.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 안의 선택을 해야한다. 욕구와 현실의 방향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사소해 보여도, 하고 싶은 일을 잠깐이라도 하면 감정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다. 욕구와 현실이 충돌하면 피로와 무기력만 쌓인다.
욕구와 현실을 일치시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것은 맞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해야 한다. 내가 진짜로 할 수 있는 것부터. 그걸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 P-1

오히려 부자가 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그런 아침이 찾아왔다.

중요한 건 여유 자체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였다. 

30억 원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나 스스로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깎고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모든 족쇄는 내가 스스로 채운것이었다.

돈이 생기고 나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었다.

실험을 통해 내 최적의 출근 시간이 10시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에 맞춰 내 일정을 조정했다. 

전화를 받는 대신 전화를 거는 사람이 되었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는단순히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모든 결정과 행동을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 P-1

부자들이 아침 운동을 하고 명상하고 커피를 마시고 여유를 가지는 것은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패턴에 맞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새벽형인간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부자들도 많았다. 인간은 각자의 생체 리듬이다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 생체 리듬, 내 패턴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남이 정한 시간표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고 내게맞는 시간과 리듬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진짜 여유를 만들어주는 힘이었다.

남이 짜준 시간표를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자신만의 시간표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표를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자신의 리듬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내가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진짜 성장이고 성공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 P-1

귀찮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게으름이 올라와도 일단 그곳으로 가야 했다.


중요한 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로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간다. 거기 가서 생각하자"
이렇게 결정했더니 미루는 습관이 놀라울 정도로 사라졌다.

결국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복잡한 과정을최소화해야 한다. 

시작이 복잡할수록 핑계가 많아지고, 
핑계가 많아질수록 습관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핑계가 피어날 틈조차 없도록 완벽하게 단순한환경을 만들어라.


단 하나의 선택지만 남겨라. 

미루고 싶을 때, 그공간으로 떠나는 것 외에는 어떤 핑계도 남겨두지말라. 
핑계가 자라나기 전에 무조건 그곳으로 떠나는 습관이 생기면, 더 이상 미루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1

신뢰의 요소
1. 약속의 빈도
2. 전문성
3. 이익의 일치
4. 일관성
5. 경청 - P-1

값싼 물건이 결국가장 비싼 소비가 된다

소비를 줄이려고 무작정 값싼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대부분 실패한다. 싼물건을 산다고 해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산 물건은 오래 쓰지 못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또 다른 값싼 물건을 사게 된다. 이런 식으로 소비가 계속 중복되어 결국에는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진짜 소비를 줄이고 싶다면, 다음의 다섯 가지 원칙을 꼭 실천해야 한다.
첫 번째 반드시 필요한 물건의 리스트를 정확하 - P-1

게 만들어라. 우리는 막상 어떤 것이 필요한지 정확히 모르고 지낼 때가 많다. 필요 없는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지 않으려면 내가 진짜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리스트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절대 사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면불필요한 소비는 현저히 줄어든다.

두 번째, 물건을 다 쓸 때까지 절대로 새로 사지마라. 아직 쓰던 물건이 남아 있는데도 새로운 것을사는 순간 낭비는 시작된다. 비슷한 물건이 집 안에계속 늘어나면 결국 모든 물건이 중복 소비로 이어져 쓸데없이 돈만 많이 들게 된다. 반드시 내가 가진물건을 끝까지 다 쓴 후, 새 물건을 사야 한다.

세 번째, 물건을 다 쓰고 난 후에는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구입하라. 약간 비싸더라도 제대로된 제품을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경제적이다. 처음에는 돈이 많이 드는 것 같지만, 결국 만족감이 높아 다시 다른 제품을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 - P-1

이다. 소비를 진짜로 줄이는 사람은 싸구려가 아니라 한 번에 제대로 된 물건을 고른다.

네 번째, 새로운 물건을 하나 추가할 때는 반드시기존의 물건을 하나 처분하라. 새 물건을 살 때마다기존 물건을 그대로 두고 추가로만 사들이면, 내 삶은 끝없이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된다. 결국 소비 습관을 통제하지 못하고 계속 소비의 악순환에 빠지게된다. 새 물건을 하나 살 때마다 이전 물건을 하나 버리거나 처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무한정 늘어나는소비를 멈출 수 있다.

다섯 번째, 절대로 할부로 물건을 사지 마라. 할부는 실제로 내가 버는 돈과 내가 쓸 수 있는 돈의 차이를 크게 착각하게 만든다. 할부로 사면 당장은 부담이 적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미래의 소비를미리 당겨쓰는 것뿐이다. 내 수중의 현금으로 살 수없는 것은 원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비가 아닌것이다. 현금이 없다면 살 자격이 아직 안 되는 것이 - P-1

라 생각하고, 반드시 현금을 모은 뒤에 사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 처음에는 소비 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진정한 내소비 속도다. 이 원칙들을 정확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서 무의미한 소비는 완벽히 사라지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소비만 남게 된다. 결국 이 습관이 나를 경제적 이득과 진정한 만족으로 안내하게될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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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아버님 어머님께.

4월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이곳의 개나리는 쌀알만한 꽃봉오리를 달고서 벌써 2주째 태연자약하게 봄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꽃을 피울 기온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고 있는 생명에게서 기다림의 여유를 배웁니다.
어머님 편지 21시까지 잘 받았습니다. 2년 반 동안 172통의 어머님 편지를 받았습니다. 깊은 사랑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1968년도 늦가을, 부산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깨알 같은 펜글씨로 ‘부중입학‘이라는 기원을 노트표지 가득히 채우시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그제나 저제나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아버님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과 염려와 기도가 큰 뒷받침이 되었음을 징역살이를 정리하며 새삼 느끼 - P-1

게 됩니다. 172통의 편지가 말해주듯이 지속적인 관심과 염려 덕분에 알찬 생활을 이제 마무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면회 시에, 출소하면 바로 하향하여 계속 부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도 간략히 답변드렸지만 그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함께 살자고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자식이 위험한 지경에 처하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모님의 염려와 희망 모두를 잘 이해할수 있으며 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 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서울이나 인천에서 어떤 장사를 하는 처지였다면 저는 부산에서 함께 살기 위해 가게를 처분하고업종을 바꿔서라도 내려갔을 것입니다. 제가 의사라면 병원을 옮겨 부산에서 개업하며 부모님을 모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처지에서 부산에 내려가 산다는 것은 제가 그동안 젊음과 정열을 바쳐가며 노력해왔던 일, 바로 저의 직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면서 동시에 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인생함로를 분명히 해나가는 두가지 일을 조화시켜 둘 다 이뤄낼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날 제가 드린 답변도 바로 이런 취지에서였습니다. 물론 저는 형식적으로 도 - P-1

리를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화목하게 오래오래 동고동락하며 생활하는 것은 그 실현 여부를 떠나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로 부산에 내려와 살자는 말씀을 들으며 다른 한편으론 큰 아픔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수십년간 자신의 정열과 노력을 다 바쳐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피아니스트가 당장 피아노 치는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지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해도 실성한 일이지만, 37살 먹은 피아니스트에게 직업을 바꾸라는 얘기는 걸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나이가 될 때까지 해온 일을 아주 고는 일이라 규정하는 것과 다를 바 있습니다. 이제까지 헛살았으니 이제부터 다른 일하며 바로 살라는 얘기입니다. 바로 저를 체포한 수사관들이 그랬습니다. 검사도 그렇고 유죄를 선고한 판사 역시 그랬습니다 정치범이 한경
명도 없다는 노태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 저에게 해주한일 그만두고 만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실제로 검사는 반성문을 쓰면 바로 내보내주겠다고 얘기했었죠. 제가 한 일이 정당하고 올바르다고 믿기에 저는 반성문 쓰기를 거부하고 대신 2년 6개월의 징역살이는 택했습니다. 
그간의 징역생활을 여유있고 안정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단 한순간도 - P-1

후회하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일이 없이 꿋꿋하고 낙천적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가족·친지들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제가 한 일에 대한 확신, 그 정당함에 대한 자부심 이런 것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하루를살아도 지옥을 경험한 것처럼 싫어하는 징역살이를 웃으며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달리 인내심이 강해서 참은것이 아닙니다. 이만한 고생은 오래전부터 각오했던 일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에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광스런 일, 보람된 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런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
이것은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결과가 아닙니다. 의롭게살아야 한다. 불의와 싸우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개인의출세나 영달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초등학교에서부터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개근상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면서 - P-1

배운 내용이며 또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온 것들입니다. 간혹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리 간절하게 제가 좋은 학교에 입학하길 원하실 때 어머님께선 제가 그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셨습니까? 저는 지금도 잊지 않습니다. 바로 20년 전 1972년 2월,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시는 어머님을 뒤로 하고 정든 집을떠났습니다. 그날 기차가 낙동강변을 거슬러 올라갈 때 붉은 태양이 강물을 비추며 서쪽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그 태양을 보며 저는 맹세했습니다. "객지타향에 가더라도 한눈팔지 않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여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볼 때 보다 더 열심히 살지 못한 점들이 반성되고부모님을 보다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이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또 제가 다짐한 대로 정도만은 곧게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속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편하게 사는 길들도있다지만 저는 그런 인생의 길에선 아무런 살 의욕을 느끼지 못합니다. 비록 힘든 길이긴 하지만 그간의 노력으로 저는 일정한 역량을 쌓았고 또 남달리 이런 일에 재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고생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도 염려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다른 사람이 보는 것보다는 덜 힘들며 무엇보다도 의롭고 - P-1

보람된 일이며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처럼 오랫동안 마음먹고 노력해왔으며 또 재질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오직 정의감 하나 갖고 앞뒤 가리지 않고 화염병을 던지거나 밀가루를 뒤집어씌우는 것과는 질이 다릅니다. 현실적 조건에 맞춰 합리적이고 현명한 방법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직업과 그것에 대한 저의 생각을 널리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먼 길에서 돌아온 아들을 불을 끄고 글씨를 쓰게 한 후 아직 멀었다며 바로 쫓아낸 한석봉의 어머님처럼 
제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는지, 성실하게 일하는지를 관심을 갖고 채찍질해주시기 바랍니다. 

훗날 후손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했으나 이 나라와 민중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남겨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모님의 이해와 격려는 제가 이 세상에서 뜻을 펴고 또 사회에기여하는 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자식된 도리를 다하면서 또 저의 직분을 다하는데 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맹장 아래 약졸 없듯이 강한 부모 밑에 약한 자식 없을 것입니다. 보다 강하게이 험한 세파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타의에 의해 강제된 징역생활이었지만 인생에 유 - P-1

익한 시간으로 활용함으로써 결국 승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승리한 사람들답게 웃는 얼굴로 만나기 바랍니다. 또 늘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게 되는데 아버님께선 이곳까지 안 오셨으면 합니다. 제가 찾아가서 뵙는게 도리일 듯싶습니다. 어머님께선 멀미 예방약으로 ‘귀밑에‘
(붙이는 약 이름)를 이용하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1992년 3월 25일
회찬 올림 - P-1

우리는 직장 동료입니다

여러분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이전 17대 국회 때 현역 의원 중에 제가 제일 먼저 제안했는데, 그때도 함께하셨던 분 계십니까? 한분 계시네요.
그리고 19대 때는 본청 귀빈식당에 한번 모셔야겠다. 해서 그곳에서도 식사를 같이 했었습니다.
이런 행사는 저희가 사진 몇 장 찍으려고 형식적으로 하는것은 아닙니다.

 저희 정의당 의원들은 여러분과 같은 공간,
국회라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입니다.

비록 맡은 바 업무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국민을 위해 한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라는 의식을 저희는 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20대 국회가 시작되는 오늘 첫 행사로 여러분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여러분이 늘 직장 동료라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 P-1

우리나라 곳곳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여러분과 같은 처지의 많은 분들이 저희가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대변해야 하는 분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소 어색하고, 다소 불편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저희의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과 진심이 잘 통하기를 바라고 저희가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이 일하는 동안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 저희가 저희 일로 생각하고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원래 쓰던, 여러분들의 노조가 쓰던 공간이 잘 유지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도록 또 저희가 노력할 것이고요.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사무실 같이 씁시다. 
그냥 공동으로 저희 정의당이 국회에 있는 한 여러분들이 외로워 - P-1

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원내대표로서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늘 식사 맛있게 하시고, 종종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5.30, 
국회 청소 노동자와의 오찬 간담회 인사말 - P-1

고(故) 노회찬 의원의 20대 국회의 첫 공식 일정은
다름 아닌 국회 청소 노동자들과의 식사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직장 동료입니다‘라는 담담한 한마디에는 그가 꿈꾼 정치의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매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면 청소 노동자들에게 장미꽃을 건넸고, 
국회사무처가 휴게 공간을 비워달라고 요구하자
"그럼 저희 사무실 같이 씁시다"라고 손 내밀던 사람이었습니다.

2018년 7월 27일, 그의 국회 영결식 날, 작업복을 입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국회 앞 운구차 길목에 조용히 도열했습니다. 
평소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단 한 사람의 정치인을 보내며,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했던 노회찬이라는 이름이 왜 그토록 오래 가슴에 남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이 인사말을 책에 싣는 이유는, 정치가 누구 곁에서 시작해야 하고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 글은 20대 국회의원 노회찬 의원의 ‘처음‘이었고, 또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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