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을 못 읽었다. 아침-빨래-설거지-점심-빨래-청소-저녁-설거지-다림질. 점심 시켜 먹었는데도 그랬다. 나처럼 살림에 손 안 대는 사람도 이럴진대, 야무진 살림꾼들은 다들 어떻게 사시는건지. 아니다. 그 분들은 나랑 다르지. 그 분들은 손이 빠르지. 빠르다, 그 분들은. 나는 느리고. 나는 손이 느린 사람이다.

소설을 읽을 때의 감동을 기쁨이나 즐거움만으로 한정짓는 건 불가능하다. 슬픔도 걱정도, 염려도 미움도 모두 소설이 주는 감정일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게 될 기쁨이나 먹먹함이 10이라 했을 때, 나는 18페이지에서 그런 감정 총량의 4.3을 느껴버렸다. 먹먹하고 암담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올리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시는 감정의 격동이 일어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 인물에게 자신을 대입하는 건,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다.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키기도 하고, 주인공이 아닌 사람에게 스스로를 대입시킬 수도 있다. 스트라우트의 문장을 따라가면서 나는 올리브가 될 수도, 루시가 될 수도 있다. 어제 읽었던 올리브의 이야기에서, 나는 R이 되었다. 쿵, 가슴이 내려 앉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왜 R이 되었을까. 나는 왜, 상처 주는 사람이 아닌 상처 받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었을까. 나는 왜 유령이 아닌, 유령과 같이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왜 S가 아닌 R이 되었을까.

올리브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만큼 내 마음의 향방이 궁금해지는 순간. 나는 왜, 왜 R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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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10-2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은 평소에도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선택을 할 성향이 아니라서 그런거 아닐까요? 😄

단발머리 2024-10-28 06:11   좋아요 1 | URL
아~~ 그러면 좋겠어요.
근데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상처받은 거는 잘 기억하잖아요. 자기가 상처 준 거는 잘 기억 못하고요.
저 책의 그 부분에서... 어쩜 저는 상처받은 지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지요. 그게 삶을 부인하는 거는 안 됐으면 하는데 말이지요.

최대한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제 감상을 적고 싶었거든요. 설렁설렁 적어놓은 저의 감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망고님이실거라 생각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