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다 이해하겠다는 결심을 뒤로 하고 읽기 때문인데, 어찌되었든 글자는 읽을 수 있고. 게다가 이 글자란 한글. 자랑스러운 우리의 글자. 202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한글로 읽어야 제맛.

이 책이 어려운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자면, 내가 섹스를 섹슈얼리티로만 이해해서 그러한가, 이런 생각을 제일 먼저 하게 되고, 아니면 섹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몰라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섹슈얼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답은 이렇다.

섹슈얼리티는 인간성을 동물적이거나 자연적인 유산에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탈구시키고 탈정향시키며 인간 사회의 특징들(정치, 예술, 과학, 사랑, 종교 등)에 탐닉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적인 존재의 영역이다. (72쪽)

아... 탈구와 탈정향의 정의를 먼저 알아봐야 할 듯.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여기가 눈에 띈다.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을 쓴 리비에르의 주장인데, 그는 여성성이 본질적으로 가면이고, 여성성을 '걸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여성의 충동적인 추파와 교태는] 그녀가 지적 성과를 낸 이후 아버지와 같은 인물들로부터 받을 보복 때문에 뒤따르는 불안을 떨쳐내려는, 무의식적 시도였다. 그 자체로 성공적인 성과로서 공적으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버지를 거세하고 아버지의 페니스를 소유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행할 응징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리비에르, 1929, 305>, 109쪽)

지적 성과를 낸 이후 불안을 떨쳐내려는 무의식적 시도로서의 추파와 교태에 대한 표현을 나는 마리 루티의 책에서 읽었다. 읽은 기억이 난다. 잠깐, 책 좀 꺼내 올게요.











<여성성의 가장Masquerade>. 아, 리비에르의 이름이 이 책에 나온다는 걸, 지금 알았다. 마리 루티는 프로이트의 제자인 리비에르의 이론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공적인 여성들의 방어 기제. 여성스러운 인상과 섹시한 외모, 애교 부리는 태도 등등. 이는 성공한 여성을 목격한 후 실망하게 될 남성들을 위로하기 위한 보상 작용이라는 것이다. 마리 루티 역시 그 전략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한다.

철학 같은 남성 중심의 영역에 대해 강의할 때, 특히 이 구역에서 숭배받는 관념에 도전할 때 내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선택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웃긴 일이지만, 남성 동료들이 내가 그들의 진열장에서 황금 팔루스를 몰래 치마 밑으로 빼내 간다고 느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공격보다는 낫다. 봐라! 그런 위허한 절도 행각을 벌이기에는 나의 치마가 너무 짧고 구두는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가. (『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 169쪽)

'훔친 것'에 대한 두려움은 벌 받을까 하는 두려움을 넘어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런 것(훔친 물건, 훔친 지위) 안에 '내'가 없으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 내가 가진 것은 가식, 가면일 뿐인가 하는 의문. 존재에 대한 불안. 라캉은 이를 '주체성 그 자체의 특권'이라고 부른다.(112쪽) 그건 또 대체, 무슨 말인가.






왜냐하면 정신분석은 - 모든 외부 장애물을 제거한 완전한 성적 만족의 불가능성을 무의식적 섹슈얼리티 그 자체의 구성적이고 통합적인 부분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 P21

무의식은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온다. 이것은 또한 프로이트의 (가)설인 모든 억압 자체의 근원이자 조건으로서의 원억압Urverdrängung에 대한 강한 (라캉적) 읽기를 구성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억압을 개념화하면서 그 가설을 도입한다. 이 가설에 의하면 보통 억압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상 이미 "후억압Nachdrängen"인 것이다. 사실상의 억압, 혹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억압이란 이미 억압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억압은 구성적으로 재이중화되어있기 때문이다. - P28

즉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성적 관계에 있는 불가능성(존재론적 부정성)이 그 자체로, 그것의 부분으로서 현실에 등록되어 있는 것들"로 나타나는 지점이다.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독특한 형식으로서 발견한 바 있는, 그런 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 P36

지식과 성 사이의 이러한 중요한 연결은 성경에서 원죄의 장면에 국한되지 않고 더 발전되며 반복적으로 고집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성경적 의미의 지식"이라는 표현도 있는 것이다. 성경이 "타자를 앎"으로서의) 성교를 언급하는 이 특수한 방법은 분명, 우리가 아는 성교에 대한 대부분의 일반적인 완곡어구, 가령 "들어가다", "누구와 동침하다", "안으로 들어가다"와 동류가 아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완곡어구들일 뿐이다. - P40

다른 한편, 지식이 성교를 가리키는 방식으로, 오직 특이한 (부정적인 인식론적 잔상으로서 등록된, 존재론적 공백으로 타락하는 성적 관계에 대한 의미화 흔적을 우리가 식별할 수는 없는가? 다시 말해 "성경적 의미에서 타자를 앎은 지식이 결여되어 있는 타자의 그 지점과 엮여야 한다. 그리고 종교적 관점에서, 성적 관계에 대한 기표를 결여한 타자 안의 지식의 결여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수치 말이다. 벗은 몸을 보는 것은 이 몸들 그 자체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 벗은 몸들이 전달하는 데에 실패한 것, 말하자면 성적 관계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 P40

전 지구적 인간 해방의 결정적인 장애물은 인간성("인간본성")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인간 해방은 사실상 인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 해방 기획에 있어 약한 고리이다. 이런 사유의 선상에서 우리에게는 보통 이 딜레마를 해결할 더 강한 방법 혹은 좀더 약한 방법이 있다. 즉 신인류/신남성을 만들거나, 인간성의 파괴적인 요소를 "다른 길로 터주어서 canalize" 그 요소를 사회관계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에 방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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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0-20 16: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 오늘 나도 라캉 알튀세르 정신분석 유물론자들 칸 정리하다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한 숨 쉬면서 루티 언니 (맨 윗칸에 바나나 위용 당당하게 위치해있음) 째려보고 왔기에. 이 페이퍼에서 찌지뽕을 왕창 누릅니다. 두번 세 번 두 번 ㅅ ㅔ 번 누르다가 눌렀나요? 눌러졌지요?

˝라캉은 이를 ‘주체성 그 자체의 특권‘이라고 부른다.(112쪽) 그건 또 대체, 무슨 말인가.˝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체성 그 자체의 특권. (아직 단발님이 읽으신 거기까지 못 읽었어요.)
다 걷어차버린 존재 자체에 대한 존재 스스로의 불안이요. 단발님은 예외입니다. (깊게 숙고된 종교는 거기를 메꾼다는 것이 제가 가진 일종의(?) 이론입니다) 계속 베끼고 베끼고 베끼면서도 대타자를 계속 걷어차야하거든요. 실존주의 냄시 나게 말하자면 계속 기투해야하는 건데. 그 불안... 그 밑바닥에서 고고한 불안... 그게 일종의 특권이라는 말로 저는 이해됩니다. 합니다. 그 뒤에 그 속에 그 안에 본질. 혹은 어떤 무언가가 작용할 거라는 것은 타자들의 환상일 뿐 주체 스스로는 인식하고 있죠. 내 얼굴에 찰싹 달라 붙어 있는 내가 연기하고 있는 가면을. 젠더 관점 쫌 더 섞어보면, 자기가 떨고 있는 그 허세를 똑바로 볼 줄 아는 여성의 도전에 대한 일종의 신경증적 반응일까요? 철학에 도전하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거기에 대한 안심까지 시켜주시는 넓디 넓은 루티의 헤아림이 하이힐?

좀 멀리 갔는 데... 카사노바 호텔에서 아니 에르노가 본인의 섹스를 그렇게 묘사하는 장면이 있어요. 기억이 잘 안나는 데 일종의 수행성. 시뮬라시옹? 섹스-쾌락 저도 잘 모르지만. ..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혹은 없다고 그것이 억압되어 있다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지 않고 또 말하지 않는.성기 결합외의 그 입과 눈과 귀들이 행하는 일련의 모든 것.을 섹슈얼리티라고 한다면. 왓이즈섹스. 는. 너무도. ‘지성적‘인 질문이다. 저급하지도 더럽지도 역겹지도 혹은 수치스럽지 않은.

그러나 왓 이즈 섹스 를 존재론적으로 질문하는 여자는 얼마나 부담스러우며 그것의 실재에 닿고자 하는 여자는 또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단발머리 2024-10-21 13:55   좋아요 1 | URL
댓글 준비 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먼댓글 서비스 없지만 먼댓글 형태로 돌아옵니다. 기다리세요! 메롱!

단발머리 2024-10-22 09:04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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