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y by the Sea>를 읽고 있다. 사연이라면 이렇다. 나는 올해 초, 첫 영어책으로 <Oh William!>을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 윌리엄!>을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푹 빠질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것도 좋았고, 읽으면서 중간중간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도 즐거웠다.

 


현재는 오더블 구독을 하고 있는데, 오더블 구독을 하면 한 달에 크레딧을 한 개씩 받는다. 사 놓고 안 들었던 오디오북이 많아 해지 상태였는데, 한 달에 0.99달러 3개월 행사를 한다고 안내 이메일이 와서 다시 구독했다. 암튼 해지 전에 크레딧 정리하면서 <Oh William!>도 구입해 두었더란다. 한 번 더 읽어야지, 의 마음.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하는데, …… 역시나 좋다.  2장을 읽은 찰나, 그다음 이야기가 담긴 책이 집에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겉에서 보면 수납장이지만 문 열면 책장인, 사 놓고 안 읽은 원서가 그득한 원서 칸을 살피니 이 책이 있다. <Lucy by the sea>. 그래, 그러니까. 이 책이 집에 있네. 그렇게 책을 펼치고, 그리고 나는 이 책만 읽는다.

 


이 글은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쓰기 시작했는데, 원래 제목은 <윌리엄 욕하기 (feat. Lucy by the sea)>였다. 나는 윌리엄을 욕하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쓰고 싶었고, 그의 행동이 얼마나 비열한지 쓰고 싶었고, 그의 악행이 얼마나 의도적이었는지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나는 윌리엄을

 


윌리엄을 좋아하게 됐다. 이해하게 된 건 아니지만, 그의 어떤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싫으면서도 좋은, 미우면서도 좋은. 그렇게 내 고민은 시작되었다.  

 


인간은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존재라는 걸 안다. 정체성이라는 건 사람들이 붙여놓은 이름이라는 걸 안다. 임무나 역할이 아니라, 사람 존재 그 자체로서 그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걸 안다. ‘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윌리엄에 대한 나의 감정이 복잡해질 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윌리엄이 좋은 사람이면서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안다. 루시에게 과 같은 사람이었으면서, 루시 안의 튤립 줄기를 툭 꺾어버린 사람이란 걸 안다. 좋은 아버지이고 다정한 남편이었으면서 바람둥이였다는 걸 안다. 실패한 후에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정확한 판단을 빨리 내릴 줄 아는 사람이면서, 루시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안다. 그러니까, 나는 윌리엄의 양면적 혹은 다면적인 모습을 알고, 그걸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적어도 그는 소설 속 가상 인물이 아닌가. 하지만, 하지만!!! 그에 대한 내 감정이 이렇게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윌리엄은 85% 정도로 좋은 남편이었지만 바람을 피웠으니 나쁜 남편이다. 오엑스. 그가 불륜을 저지르고 가족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었지만, 루시를 구해주었으니 결국은 좋은 사람이다. 오엑스. OX.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감정 이분법에 빠진 사람인가. 호감 아니면 비호감. 호 또는 불호. 사실 나는 애증이라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애와 증이 공존한다면, 그 상태의 핵심 정서는 애가 아니라 이라고 생각한다. 하얀색과 파란색이 함께 한다면, 하얀색과 파란색이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하늘색으로 변하듯이 말이다. 하늘색은 하얀색이 아니라 파란색에 가까우니 말이다. 양가감정이란 말도 그렇다. 두 가지의 상호 대립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양가감정 중, 정서적 양가는 조현증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나는 정리하고 싶다. 정하고 싶다.

 


 

나는, 담백하게 윌리엄을 미워하고 싶다. 그를 미워하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게 안 된다.

 


 

그런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크기가 한없이 드넓어서 여러 사람을 사랑하고 아껴줄 시간과 체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여기 윌리엄의 마음이 있다. 윌리엄은 자신의 마음을 나누어 준다. 첫번째 부인 루시와 세 번째 부인 에스텔에게 준다. 세번째 결혼에서 얻은 10살짜리 딸 브리짓과 첫번째 결혼에서 얻은 장성한 딸들 크리시와 베카에게 나누어 준다. 마음을 이렇게 나누어 준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소설을 읽을 때 나는 루시가 되니까), ‘루시인 나는 윌리엄의 마음 전부를 원하는가. 그를 온전히 소유하기 원하는가. 그의 마음 전부가 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불가능한데그건 불가능한데, 난 그걸 원하는 걸까. 괜찮아 보이는, 혹은 근사한 모습의 윌리엄이 온전히 내 사람이기를 원하는 걸까. 짜증날 때도 있고, 가끔 떨어져 있을 때 기쁘기도 하지만, 그가. 그 윌리엄이 내 것이길 원하는 걸까.

 

 


 

나는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흥얼거리는 편인데, 정확히는 흥얼거리기 보다는 좀 크게 부르는….. 편이다. 설거지할 때도 운전할 때도 거리를 걸어 다닐 때도 노래를 부른다. 나는 항상 아멘이라서 찬양도 많이 부른다. 어떤 노래가 꽂혔을 때는 그 노래듣는다. 열 번, 백 번, 이백 번. 그 노래만 듣는다. 요즘에 꽂힌 노래는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이다.

 


나는 노래방에 가지는 않아 그쪽 세계는 잘 모르지만, 노래를 많이, 자주 부르는 사람들은 안다. 자신의 음색과 음역대와 잘 어울리는, 즉 노래를 불렀을 때 좋은(?) 효과를 내는 노래가 따로 있다는 걸 말이다. 화사, 심규선, 스텔라장 같은 몽환적 목소리는 따라 하기도 쉽지 않고, 따라 한다고 그대로 되지도 않는다. 어쩔. 나는 스텔라장의 노래를 부른다.


 



 








파리를 닮은 여인, 한여름 땡볕에 썬탠을 하고 한껏 섹시해진 프랑스어 잘하는 친구 만나면 한글 발음 좀 써달라고 해야겠다. 라무흐, 레 베게트, 파리. 이것밖에 모르겠다.


 

L’Amour, Les Baquettes,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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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1-04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이랑 윌리엄 얘기 하려면 저도 오 윌리엄을 얼른 읽어야겠어요! 루시바턴 읽고 윌리엄은 아직 남겨뒀는데......

공쟝쟝 2023-11-04 21:59   좋아요 2 | URL
그 전에 <무엇이든 가능하다!> ! 전 루시 바턴 세계관 계보도 그렸는데. 다음 기회에 올리도록 하겠어요.

단발머리 2023-11-07 17:45   좋아요 1 | URL
은오님 / 그래서 제가 제 옆자리 앉으시는 분께 <오, 윌리엄> 권했다는거 아닙니까. 어제도 점심 시간에 루시 이야기 나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님 / 전 두 권 남았으요. <내 이름은 루시 바턴(반 읽음)>이랑 <무엇이든 가능하다> 뒤쪽을 먼저 읽는 편 ㅋㅋㅋㅋ

공쟝쟝 2023-11-04 2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감정이 지표라고. (물론 어떤 생각이 굳어지면 그것이 감정의 작동 원리가 되기도 하죠) 감정이야 말로 몸에 새겨진 그 사람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내 감정의 결이 이토록 세세하구나를 헤아릴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하고, 그런 소설을 읽을 때는 단발님 말씀대로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걸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 작가가 되는걸까요) 나 자신을 아는 데는 감정이 중요하지만, 그 이상을 알고자 하면 감정을 잠시 내려 놓을 필요도 있죠. 정말로 지식의 확장은 그럴 때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2. + 애와 증이 있을 때 증이 더 본질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다는 ‘말‘(욕망)에 대해서. 제가 가진 지성을 총동원해서 내리게 된 어떤 결론을 하나 놓고 가자면....... 감정, 그것은 ‘변한다‘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변할지는 ... 모른다는 것. 다만 내 몸에 기입되는 관계-지식과 아주 멀리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내 감정을 느끼는 데 미련하고, 썩 좋은 감정 상태에만 살고 있지는 않아요. 다만 좋은 감정을 느끼는 일을 많이하면서도, 미래의 나를 위해서 지금 나의 성급한 판단을 중지시키는 방법도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몸들에서 나오는 감정들과 지식들을 더 이해하고 싶어졌어요.

3. 저는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시는 것 처럼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숙고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알고 계실지도? ㅎㅎㅎ 여기까지 적고 나니 갑자기 좋아하는 문장 긁어 오고 싶은 충동.

˝(152) 가령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와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두 문장은 문장의 주어만 다를 뿐 의미론적으로는 동일한 문장이다. 그러나 어떤 두 사람이 각기 이러한 생각을 품고 10년을 살았다면, 이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묻는 사람은 타인이 나를 이해할 수 없음에 초점을 맞추어 타인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한편,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묻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보다 경청하는 사람이 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

책의 출처는 허경 선생님의 <내맞너틀>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3-11-08 08:58   좋아요 0 | URL
1. 전 윌리엄에 대한 제 생각을 반드시 정리하고, 한 쪽으로 밀어내겠어요. 이쪽 아니면 저쪽이요. 저도 이 혼돈을 참을 수가 없으니까요.

2. 감정은 변하지요. 맞습니다. 성급한 판단을 중지시키는 방법도 있죠. 다만 저는.... 애가 5, 증이 7일 때는, 마이너스 2라는 계산이, 저는 안 된다는 거에요. 저는 그런 사람인가봐요. 찍히면 죽는다, 아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애가 5, 증이 7일 때, 제 계산법은 마이너스 38입니다. 다시는 안 만나죠. 안 만날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

3. 저도 이 책을 읽었다죠 ㅋㅋㅋㅋ 기억은 안 나는데.... 인용해주신 문장은 잘 기억해둘게요. 나도 써먹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