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창 시절에 『제인 에어』를 여러 번 읽었어요. 이런 식으로 읽은 적은 전혀 없었지만요. 제가 (당시) 겪은 것은 미국의 메트로폴리스에 온 양심적인 교육 이주자에게 해당하는 전형적인 자전적 계기였어요. 이는 파농의 숭고한 불쾌에 비견할 만한 감정이지요. 그런 욕구 자체는 미국적 신조American Creed에 의해 생산되었고요. 인도에서 하인을 거느리는 자라면 누구든 제인 에어가 버사에게 한 짓을 똑같이 합니다. 이 한 편의 소설이 인도에 있는 우리를 계급 너머로 회심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비현실주의적이지요. 제가 텍스트에서 암시한 것은 우리가 샬럿 브론테를 인종주의자라 부를 수는 없다는 겁니다. - P96
활동가 영역에 발을 담그기 전에 저는 "특권을 버리고 다시 배우라"unlearn your privilege라고 썼어요. 여러분은 자신의 특권-이 대목에서는 문학에서 계급-생산적인 특권을 사용하면서 반전시켜야만 합니다. 사실 여러분이 특권을 버리고 다시 배울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그런 시도에 계속해서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면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함몰되고 말아요. 여러분의 특권 사용이 봉건적이라 하더라도, 이는 봉건제 없는 봉건성이니, 역사는 우리에게 어떤 다른 선택도 남겨 두지 않았어요. 조심스럽게 나아가세요. - P100
마하스웨타와 브론테는 둘 다 타자를 동물로 변환시킨다는 문학적 토포스를 사용해요. 나중엔 타자와 동물을 파괴할 수 있지만요. 모종의 휴머니즘이지요. 『제인 에어」의 버사는 개와 같고, 타실다르Tahsildar는 어떤 동-물 A-N-I-M-A-L로 변신하지요. - P101
또한 우리는 서양과 서발턴이 이항 대립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암시에도 불구하고 간디와 네루는 서발턴이 아니었어요. 실은 둘 다 오리엔탈리즘의 변종들을 사용해 자신을 ‘인도인‘으로 여겼지요. - P103
저는 우리가 스스로 준비해 이론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해제를 썼을 때, 저는 학부에서도 대학원에서도 철학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저는 계몽된 주립 학교인 아주 관대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제게 1년의 안식년을 주었지요. 저는 번역을 막 끝낸 이 책의 해제를 쓰려고 학교에 처박혔어요. 또한 동일한 유형의 이유로 이 나이 먹고도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우지요. 이른바 아시아의 세기라고 하는 우리 시대에 문화 정치에 관해 작업하는이라면 의당 이러한 언어 메모리들을 입력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봐요. 이론가의 작업에서 언어적 실천은 대충 다루고 논증의 핵심만 간추려서는 안 됩니다. 이론을 읽는 건 그것을 하나의 1차 텍스트로 읽는 거예요. 도구화해 적용하려는 어떤 것으로 이론을읽는 게 아니에요. 그것 자체를 위해 읽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의 정신적 비품의 일부가 됩니다. - P106
이런 주장은 마르크스에게도 적용되지요. 읽기의 여유를 누리는 제 강의에서 『자본』을 읽을 때는 마치 그것이 우리 책상에 막 놓인 새것인 양 읽어요. 우리가 그것을 쓰고있는 양 읽는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이론을 제대로 읽는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읽는 건 내면화하는것이지요. 이론화는 하나의 실천이에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이 변하지요. 그리하여 우리가 읽기를 행할 때 이론적 읽기의 모든 것이 우리의 읽기를 조직하기 시작하고요. 이는 우리가 그것을 적용하기 때문은 아니에요. - P107
|